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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명창 조통달 선생에게 출연 요청 전화를 드려 6월 말로 녹화 일정을 잡았다. 전화를 세번이나 한 것이니까 삼고초려(三顧草廬)까지는 아니어도 한번 모시기 위해 애를 쓴 것은 분명하다. 이쯤 공을 들여서-담당PD가 몇 차례 전화한 걸 가지고 공들였다는 게 좀 거시기하지만- 섭외 못할 국악인은 없으리라. 조통달 명창께 "이러저러한 프로그램이고 녹화는 어떻게 진행되고..."하다가 "진행자들은 '비개비들'입니다"라고 한 말끝에 조명창이 한마디 하신다. "워마 비개비라는 말을 알어?"
*국악인들을 섭외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것이 있다. 그분들은 '알아주는 사람'을 반가워 한다는 것이다. 사무적으로 프로그램 설명을 하다가 국악인들이 곧잘 쓰는 은어 한마디만 내놓아도 금세 전화기 저편의 태도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선생님 제자들 여러 명 데리고 오시면 좋은데 '이돌'이 쪼까 거시기 해서요" 그러면 "이돌이란 말을 알어?"하는 반응을 먼저 보인다. 사실 지역방송에서 출연 요청을 하면 '이돌'을 보고 오시겠는가. '국악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어서 불러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일진대. 모름지기 자식 아끼지 않는 부모가 없듯, 제자 자랑 안하는 스승이 있으랴. '이돌'이 쪼까 거시기 하다고 해도 방송 출연 기회가 있다면 제자들 하나라도 더 못 데려와 아쉬워들 하신다.
*이쯤되면 '비개비'가 뭐고 '이돌'이 뭔지 감이 잡힐 것이다. 헌데 정작 중요한 것은 '비개비'나 '이돌'의 뜻이라기보다, 이런 말들이 '국악판'을 좀 아는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이라는 게다. 국악인들 '속'을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은 터라, 젊은 방송 PD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르지만 '비개비'니 '이돌'이니 하는 '국악인 용어'를 쓰면 "와따메 솔찬허시" 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내가 아는 '국악인 용어'라고 해봤자 <얼씨구학당> AD 시절에 주워들은 몇 가지뿐이다. 그 용어라는 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아는 사람들 끼리끼리 써버릇하니 재미도 있다. 남들 모르는 비밀 한가지라도 아는 양 말이다. 재담(才談)의 보고(寶庫)이기도 한 국악판. 그 재담들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옛적부터 써왔던 것이다. 요즈음 가볍고 귄대가리 없는 국적불명의 재담 아닌 재담들이 TV와 인터넷에 적잖이 유포되고 있지만 국악인들은 여전히 '진진하고' '씹어볼수록 맛이 나는' 예술성 있는 표현들을 쓴다. 재수 없음을 일컫는 "꼭 각시 팬 날 장모가 온다"라든가 영문 모르는 상태를 말하는 "밤새 울고 나서 누구 초상이냐고 묻는다"는 말들...
*그런 '국악인 용어'나 재담속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좀더 많아지면 안될까. 언제부터인가 '거시기'가 우리 시대의 보통명사로 급부상한 터. '비개비'나 '이돌'이 보통명사의 자격을 얻게 되면 국악 대중화가 이루어진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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