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 12일 「남북교류협력에관한기본지침」 시행 이후 1998년 12월 말까지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한 남한주민의 북한방문은 신청 729건(6,836명), 승인 668건(6,365명), 성사 584건(5,724명)이며, 북한주민의 남한방문은 신청 15건(607명), 승인 14건(597명), 성사 12건(575명)으로 집계되었다. 전체적으로 남한방문보다 북한방문이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남북한 인적 왕래가 북한방문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연도별 추이를 살펴보면, 남한주민의 북한방문은 1992년까지는 비교적 활발히 이루어지다가 북한 핵문제로 남북관계가 경색되었던 1993년과 1994년에는 현저히 감소하였으나, 1995년부터 기업인, 대북 경수로지원사업 관련 인원을 중심으로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적극적인 교류협력 정책기조를 지속적으로 견지해 나감에 따라 지난 수년간의 방북인원을 능가할 정도로 북한방문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북한주민의 남한방문은 1993년까지는 조금씩 이루어지다가 1994년 이후 1998년 12월까지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 북한방문
(1) 기업인 방북
1992년 10월 남포경공업단지 투자실무조사단의 방북 이후 한동안 단절되었던 기업인의 방북은 1994년 11월 「남북경제협력활성화조치」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96년 9월 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97년 들어 재개되기도 하는 등 기업인의 방북이 남북관계의 전반적 상황에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남북경협활성화조치」(줁98.4.30)에 따라 기업인의 방북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1998년 한해의 방북실적은 신청 95건(312명), 승인 91건(293명), 성사 77건(231명)으로 전년에 비해 다소 증가하였다. 특히 대기업 총수의 방북이 허용됨에 따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북이 성사되었고, 이를 계기로 금강산 관광사업이 이루어지는 등 남북간 대규모 인적․물적 교류의 계기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 사회문화분야 방북
사회문화분야에서의 북한방문은 초기에는 남북국악인 서울․평양 공연과 남북통일축구대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단일팀 평가전과 남북여성세미나 등 남북공동 참여행사 중심으로 이루어지다가 1992년부터는 종교인 등을 중심으로 개별적인 북한방문이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1996년까지는 북한이 체제유지 차원에서 사회문화분야 교류를 기피함에 따라 우리측 사회문화계 인사의 방북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나, 1997년 들어 사회문화분야 협력사업이 처음으로 시작되면서 종교인, 언론인 등을 중심으로 방북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우리 사회 문화계의 대북교류 열기가 고조되고, 북한도 사회문화분야 교류에 다소 융통성을 보임에 따라 지난 수년간에 비해 방북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1998년 한해의 방북실적은 신청 66건(352명), 승인 60건(300명), 성사 40건(238명)으로 전년에 비해 크게 증가하였다. 1998년에 성사된 주요 방북사례로는 리틀엔젤스예술단 평양공연, 주요언론사 관계자의 방북 등을 들 수 있다.
(3) 대북 경수로지원사업 관련 방북
대북 경수로지원사업의 진전에 따라 관련 인원의 북한방문은 대폭 확대되고 있다. 1995년에 부지조사 활동이 시작되어 부지조사단 및 관련 의정서 협상을 위한 대표단이 방북하였다.
1997년에는 초기 현장공사 착공을 위한 사전 실무협상단과 초기현장공사 착공식(8.19) 참가 정부대표단, 부지조사단 등 총 571명이 북한을 방문하였다. 1998년 들어서는 초기 현장공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됨에 따라 12월 말까지 97건 756명의 방북이 성사되었다. 현재 초기 현장공사가 계속되고 있어 한국전력(주) 및 합동시공단의 건설인력이 장기체류 중이며, 향후 본공사 착공 등 공사진척에 따라 방북 또는 현지 체류인원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4) 대북 식량지원 관련 방북
1997년에는 북한의 식량난을 덜어주기 위한 민간의 대북 식량지원을 위해 남북한 적십자사간의 합의에 따라 지원식량 인도요원 149명이 북한을 방문하였다.
1998년 들어서도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12월 말까지 20건 129명의 방북이 성사되었다.
다. 남한방문
북한주민들의 남한방문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개최된 남북고위급회담 북한대표단의 남한방문,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 1991년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단일팀 평가전과 1992년 우리측 경제계인사 방문 및 산업시찰을 위한 김달현 정무원 부총리 일행의 남한방문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93년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두만강개발계획 관련 통신분야 전문가회의(1.27~30)와 자원․산업․환경분야 전문가회의(11.8~10)에 각 3명씩 참석한 이후로는 북한주민들의 남한방문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994년 이후 우리측은 서울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분야의 문화․체육행사나 국제회의 등에 북한측을 꾸준히 초청하였으나 이에 응해오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2. 북한주민 접촉
가. 개 황
남한주민의 북한주민 접촉은 1989년 6월 12일 「남북교류협력에관한기본지침」 시행 이후 1998년 12월 말까지 신청 12,090건(25,246명), 승인 11,671건(24,031명), 성사 3,447건(9,269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북한주민 접촉은 매년 증가하여 오다가 1996년 9월 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일시 감소하였으나 1997년 이후 다시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특히 1998년 들어 이산가족분야를 중심으로 북한주민 접촉신청이 급격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주민 접촉은 기업인들의 교역․투자상담, 이산가족들의 재북가족과의 서신교환, 학자․종교인들의 제3국 개최 학술회의 참석 등의 형태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 경제분야
1989년 이후 1998년 12월 말까지 신청 2,993건(7,791명), 승인 2,895건(7,517명), 성사 1,499건(2,561명)에 이르고 있다. 1998년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교류협력정책에도 불구하고 국내경제사정 악화로 인한 남북경제협력이 부진하여 신청 566건(1,374명), 승인 558건(1,345명), 성사 331건(565명)으로 전년보다 다소 증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물자교역 및 남북경협 협의 목적의 북한주민 접촉은 북경, 홍콩 등 제3국에서 꾸준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이러한 접촉을 토대로 기업인 방북 및 남북경협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나가고 있다.
다. 사회문화분야
(1) 학 술
1989년 이후 1998년 12월 말까지 학술분야 북한주민 접촉은 신청 435건(3,002명), 승인 399건(2,692명), 성사 133건(1,700명)으로 집계되었다. 1998년에는 신청 49건(173명), 승인 46건(175명), 성사 21건(74명)으로 전년보다 다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북간의 학술교류는 대부분이 중국지역에서 개최되고 있는데, 이는 중국지역 동포학자․단체들의 북한과의 교류경험 및 지리적 근접성을 감안한 결과이기도 하다. 1998년 주요 접촉사례로는 제4차 남북해외학자통일학술회의(2.20~21, 북경), 남북대학간 학술교류 협의(6.10~11, 북경), 제4회 조국통일에 관한 국제학술토론회(8.5~7, 비엔나) 등이 있다.
(2) 문화․예술
1989년 이후 1998년 12월 말까지의 문화․예술분야 북한주민 접촉은 신청 280건(1,317명), 승인 237건(1,234명), 성사 68건(649명)으로 집계되었다. 1998년에는 신청 48건(167명), 승인 47건(172명), 성사 27건(75명)으로 전년에 비해 크게 증가하였다.
1998년 주요 접촉사례로는 코리안 평화미술전 서울․평양전 개최 협의(4.6, 동경), 리틀엔젤스예술단 북한공연 협의(4.11~14, 북경), 윤이상 통일음악회 남북한 공동개최를 위한 협의(6.22~23, 북경) 등이 있다.
(3) 체 육
1989년 이후 1998년 12월 말까지 체육분야에서의 북한주민 접촉은 신청 162건(831명), 승인 153건(803명), 성사 44건(489명)으로 나타났다. 1998년에는 신청 36건(465명), 승인 34건(463명), 성사 13건(395명)으로 전년에 비해 크게 증가하였다. 1998년 주요 접촉사례로는 북한 권투선수 국제시합 출전 협의(5.4~5, 북경), 아시안게임 참가 남북한 선수단 공동응원 협의(12.12~20, 방콕) 등이 있다.
(4) 관 광
1989년 이후 1998년 12월 말까지 관광분야에서의 북한주민 접촉은 신청 155건(483명), 승인 147건(455명), 성사 41건(116명)으로 집계되었다. 1998년에는 신청 15건(43명), 승인 15건(43명), 성사 7건(23명)으로 외형상으로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으나, 예년과 달리 단순접촉에 그친 것이 아니라 금강산 관광사업의 실현으로 이어지는 획기적 성과를 거두는 밑거름이 되었다.
1998년 주요 접촉사례로는 금강산 관광 및 개발사업 추진 협의(7.5~6, 북경) 등이 있다.
(5) 종 교
1989년 이후 1998년 12월 말까지 종교분야 북한주민 접촉은 신청 299건(1,381명), 승인 245건(1,233명), 성사 94건(727명)으로 나타났다. 1998년에는 신청 55건(214명), 승인 51건(202명), 성사 35건(150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크게 증가하였다.
1998년 주요 접촉사례로는 통일과 나눔 남북교회협의회(3.16~18, 시드니), 제6차 조국의 평화통일과 선교에 관한 기독자회의(10.8~10, 오사까) 등이 있다.
(6) 언론․출판
1989년 이후 1998년 12월 말까지 언론․출판분야 북한주민 접촉은 신청 237건(623명), 승인 198건(531명), 성사 45건(130명)으로 나타났다. 1998년에는 신청 31건(53명), 승인 30건(54명), 성사 13건(22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다소 증가하였다.
1998년 주요 접촉사례로는 중앙․동아일보 등 언론사들의 방북을 위한 사전협의 목적의 접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