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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특강 6강-2 (전통불교문화원)
13-6 地獄業(지옥업).
13-11 그대가 살아있는 문수다.
지옥 업이라고 하는 제목인데요. 이런 제목은 제가 의미대로 이책을 편집하면서 단것입니다. 본래는 쫙~~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로 붙었어요.
제 나름대로 단락을 짓고, 거기다 한 번씩 이해하기 쉽도록 이렇게 제목을 그저 붙여본 것입니다.
13-6 地獄業(지옥업)
道流(도류)야,
莫取次被諸方老숙印破面門(막취차피제방노숙인파면문)하야
道我解禪解道(도아해선해도)하라.
辯似懸河(변사현하)하나 皆是造地獄業(개시조지옥업)이니라.
若是眞正學道人(약시진정학도인)은 不求世間過(불구세간과)하고.
切急要求眞正見解(절급요구진정견해)니
若達眞正見解圓明(약달진정견해원명)하면
方始了畢(방시요필)이니라.
道流야 莫取(막취), 취하지 말라.
次被諸方老숙印破面門(차피제방노숙인파면문)하야,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니, 諸方老숙들이 印破面門. 面門을 인가해주는 것을 입고, 말하자면 “공부 어지간히 됐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인가하는 겁니다. 요즘도 인가하는 그 관례가 있습니다. 인가하는 것을 입어서,
道我解禪解道(도아해선해도)하라. 나는 말 하대 解禪解道라. 禪도 알고ㆍ道도 안다. 라고 하는 것을 取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그것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겁니다. 선을 알았다ㆍ도를 알았다. 라고 누가 인가해주는 것ㆍ누가 인가해주는 것, 그것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자기 공부가 돼야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辯似懸河(변사현하)하나, 그 변재가, 아~~ 아는 것이 많아가지고 변재가 懸河. 저기 은하수를 그냥 쏟아 붓듯이ㆍ큰 폭포가 쏟아지듯이, 그렇게 언변이 좋게 설법을 잘 한다 하나,
皆是(개시조지옥업)造地獄業이니라. 이것은 모두가 지옥 업이다ㆍ지옥 업을 짓는 것이다. 造地獄業이니라.
若是眞正學道人(약시진정학도인)은 만약에 眞正한 學道人은, 그럼 그렇지 아니하고 진정한 학도인은, 도를 배우는 사람은 不求世間過(불구세간과)하고, 세간의 허물을 구하지 아니하고, 寺田(사전)을 파든지 무슨 천성산 도룡용을 어쨌든지 간에 세간의 허물을 구하지 아니하고,
切急要求眞正見解(절급요구진정견해)니, 정말 절실하게 급한 것.
切急 = 매우 급한 것ㆍ아주 급한 것은 뭔가 하면 眞正見解를 구하는 겁니다. 정말 급한 일은 眞正見解를 구하는 것이다. 바른 소견, 아 이거 하나 얻자고 우리가 중 되고ㆍ부처님하고 인연 맺었고, 정말 하늘같은 부처님하고 이 좋은 인연을 맺었을 때 거기서 우리가 건져야 할 것이 뭐냐 이겁니다. 무슨 놀고먹는 것ㆍ주지라고 존경받는 것, 이것 아니다 이겁니다.
眞正見解. 정말 바른 소견 구하는 것, 이것이 무엇보다도 급해ㆍ급하다.
切急. 切急이라고 그랬습니다. 절절이 급한 것. 지극하게 급한 일이 이것이다 이 말입니다. 眞正見解를 구하기를 요하는 것이니,
若達眞正見解圓明(약달진정견해원명)하면, 만약에 眞正見解를 통달해서 뚜렷이 밝아질 것 같으면, 참되고 바른 소견. 세속에도 살림에는 “눈이 보배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도 닦는데ㆍ불교를 이해하는데, 참되고 바른 소견.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圓明할 것 같으면
方始了畢(방시요필)이니라. 바야흐로 비로소 다 마쳤다고 할 수 있다.
견해만 바르면 끝이다 이겁니다. 그 다음 뛰어 넘어서 42쪽
13-11 그대가 살아있는 문수다.
道流(도류)야 儞祇今聽法者(이지금청법자)가
不是儞四大(불시이사대)로대 能用儞四大(능용이사대)하나니
若能如是見得(약능여시견득)하면
便乃去住自由(변내거주자유)니라.
約山僧見處(약산승견처)하면 勿嫌底法(물혐저법)이라.
儞若愛聖(이약애성)하면 聖者聖之名(성자성지명)이니라.
有一般學人(유일반학인)이
向五臺山裏求文殊(향오대산리구문수)하나니,
早錯了也(조착요야)라 五臺山無文殊(오대산무문수)니라.
儞欲識文殊麽(이욕식문수마)아? 祇儞目前用處(지이목전용처)가
始終不異(시종불이)하며 處處不疑(처처불의)가
此箇是活文殊(차개시활문수)니라.
儞一念心無差別光(이일염심무차별광)이
處處總是眞普賢(처처총시진보현)이요,
儞一念心自能解縛(이일념심자능해박)하야
隨處解脫(수처해탈)은 此是觀音三昩法(차시관음삼매법)이니라.
互爲主伴(호위주반)하야 出則一時出(출즉일시출)하나니
一卽三三卽一(일즉삼삼즉일))이라 如是解得(여시해득)하면
始好看敎(시호간교)니라
그대가 살아있는 문수다. 아~ 제목 근사하지요?
그대가 살아있는 문수다. 우리 모두를 보고하는 소리... 여기가 “임제록의 절정이다.” 제가 그렇게 메모를 해놨는데요. 임제스님의 소견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정말 우리 불교에 대한 그런 안목ㆍ소견ㆍ견해, 이것의 최절정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임제록의 절정” 이라고 하는 말은요. 요즘 사람들은 다 총명하고ㆍ견문이 넓고 해서 잘 알아들으시겠지만, 이런 것은 꼭 우리 마음에 한 번 새겨 둬야할 그런 일입니다.
道流(도류)야 儞祇今聽法者(이지금청법자)가, 그대 다만 지금, 법문 듣는 그 사람. 그것은 不是儞四大(불시이사대)로대, 그대의 지수화풍 사대가 아니다. 아니지만 能用儞四大(능용이사대)다. 능히 사대를 활용 한다 이겁니다. 사실은 지수화풍 사대로 된 이 육신이 없이 달리 무슨 마음이니ㆍ불성이니ㆍ뭐니 할 것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사대가 아닙니다. 법을 듣는 것은 사대가 아니지만, 사대를 활용해서 법을 듣는다. 이겁니다.
若能如是見得(약능여시견득)하면, 만약에 능히 이와 같이 본다면
便乃去住自由(변내거주자유)니라. 곧 가고 머묾에 자유스럽다.
約山僧見處(약산승견처)하면, 約자가 자주 나오지요.
이것을 강원에서는 전통적으로 잡을 약자로 그렇게 봅니다. “잡는다.” 라고 말하면 이것이 얼토당토않습니다. 山僧見處를 잡으면 = 山僧見處에 의거 하면 = 山僧見處에 의지해서 보자면, ←이런 뜻입니다.
勿嫌底法(물혐저법)이라. 조금도 싫어할 것이 없는 법이다.
儞若愛聖(이약애성)하면, 그대가 만약 성인을 사랑하면,
聖者는 聖之名(성자성지명)이니라. 성인ㆍ성인하는데 그 성인이라고 하는 것은 성인이라고 하는 이름일 뿐이다. 이 이름이 성인이다 이 말입니다.
有一般學人(유일반학인)이, 만약 일반학인이
向五臺山裏求文殊(향오대산리구문수)하나니, 대개 그러잖아요. 지금 우리나라에 문수도량이 있고, 관음도량이 많지요? 우리가 같이 겸해서 생각하면 됩니다. 또 저기 우리 강원도 오대산은 역시 문수도량으로 그렇게 되어 있지요? 여기는 중국의 오대산의 그 문수도량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오대산에 문수보살이 화현한다고 해서 저기 서안에서부터, 그 때는 장안이지요. 장안에서부터 오대산까지 일보일배하면서 몇 년이 걸려서 갑니다. 또 지금 우리 TV나, 직접 가셔서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그 티벳 사람들이, 저~ 기 티벳 라사 포탈라 궁전, 보타라카산 이라고 하는 관세음보살이 계시는 곳이라고 경전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화엄경에도 보타라카산에 관세음보살이 계신다. 라고 이렇게 되어 있어서 그래서 그 궁전 이름을 포탈라 궁전, 보타라카산 이라고 이렇게 이름하고, 거기에는 “관세음보살이 화현 하는 곳이다.” 이렇게 해가지고 그~~ 전국에 퍼져있는, 중국이 얼마나 땅이 넓습니까? 몇 년 걸려서 일보일배하면서 가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 사천성에도 티벳 사람들이 참 많거든요. 운남성ㆍ사천성. 지금 “티벳 장교자치구” 라고 하는 그 지역 말고, 그 지역 밖에 이쪽 서안에 가까운 사천성이라든지ㆍ운남성이라든지, 이런 곳에 티벳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사실은 옛날에 거기까지 티벳 땅이었습니다.
당나라하고 전쟁해서 싸우고, 그래서 당나라에 이겨가지고 티벳에서 그 공주를 정략결혼까지 시켰잖아요. 그 때는 나라 이름을 토번이라고...
토번이라는 것도 티벳이라는 말의 옛한문 표기지요. 그 때는 그랬다고요. 그 만치 넓은 땅이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쪽에 티벳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럼 그런 사람들이 예를 들어서 일보일배하면서 포탈라 궁전까지 관세음보살 친견 한다고 그렇게 절하면서 가는 그런 풍속을 우리가 지금 환하게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오대산은 또 오대산에 문수보살이 있다고 해서 역시 그런 식으로 친견 하러 갑니다. 특히 역사적으로 유명한 분은 無着文喜(무착문희)선사 라고 하는 분이, 그 분이 오대산을 향해서, 그 분은 워낙 큰스님이니까 기록에 남아 있지요. 그 분 역시 오대산을 향해서 일보일배하면서, 저~ 기 서안에서부터 오대산까지 문수보살을 친견 하러가는 그 정말 열화와 같은 신심이지요. 그 신심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하늘을 찌르는 그런 신심이지요. 티벳 사람들, 요즘도 그런 신심 가지고 있잖아요.
저는 앉아서 봤지만, 차마고도 보면, 그 포탈라궁전까지 일보 일배는 아니고 다섯 걸음인가? 세 걸음 띠어가지고 절한번 하고ㆍ다섯 걸음 띠어서 절한번 하고 그러더라고요. 그 얼음 빙판 위를ㆍ그리고 또 경사지고ㆍ냇가고 할 것 없이, 냇가는 물에서 절을 못하니까 건너가지고 물거리 만치 제 자리에서 또 절하더라고요. 야~ 참, 우리 같으면 그것은 그냥 ‘아이고 이거 웬 떡이냐?’ 하고 그냥 지나갈 텐데 건너가지고, 이것은 그냥 건너왔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예를 들어서 ‘내가 여기 세 번 절해야 한다. 열 번 절해야 한다.’ 면 그 자리에서 절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고 거기까지 가잖아요. 요즘은 매스컴을 통해서 우리가 환히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역시 오대산도 그와 같은 믿음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그런 이야긴데요. 一般學人이 向五臺山裏求文殊하나니, 오대산을 향해서 문수를 구하나니, 早錯了也(조착요야)라. 벌써 틀려버린 일이다ㆍ벌써 틀려버린 일이다. 이것이 無着文喜선사 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五臺山에 無文殊(오대산무문수)니라. 오대산에는 문수보살 없다. 천하 사람이 다~, 오대산은 문수도량이고, 살아있는 문수가 나타난다고 하는 그런 성지인데, 어찌 그 당시, 지금도 아니고 어찌 그 당시 그런 아주 순수한 신앙으로 꽉 차 있는 그런 불교풍토에서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오대산에는 문수보살 없다. 저~ 기 관음도량, 관세음보살이 나타난다는 의상대. 거기다 대고 “관세음보살 없다.” 그런 말 감히 못하지요. 우리나라에 관음도량이 많은데 같은 의미지요.
儞欲識文殊麽(이욕식문수마)아? 답을 안주면 안 되지요. 이렇게 대안을 제시하지 아니하고 덮어놓고 비판만 하면 안 됩니다. 바른 소리만 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임제스님처럼 대안을 딱 제시해야 됩니다.
儞欲識文殊麽아? 그대가 문수보살을 알고 싶은가? 진정한 문수를 알고 싶으냐? 이 말입니다. 祇儞目前用處(지이목전용처)가, 다만 그대 눈앞에서 작용하고 있는 그 것. 보고ㆍ듣고ㆍ말하는 소리 듣고ㆍ부르면 대답하고ㆍ배고프면 밥 먹고 하는 그 작용하는 그 것. 用處라고 하는 말은 그 말입니다.
그것이 始終不異(시종불이)하며, 시간적으로ㆍ공간적으로, 이것은 시간적으로 다르지 아니해요. 늘 그 사람입니다ㆍ늘 그 사람이라요. 누구하고 싸우는 사람ㆍ누구하고 즐겁게 지내든 늘 그 사람이 하는 겁니다. 그 한 사람이 始終不異입니다.
處處不疑(처처불의)야. 곳곳에ㆍ어디 있든지ㆍ여기 전통불교 문화원에 와있든지ㆍ아니면 箇(개)사찰에 가있든지ㆍ대중처소에 가있든지, 전혀 의심할 바 없는 공간적으로 늘 그 사람입니다. 사실은 어디에 가 있든지 그 사람이지요. 그것이 此箇是活文殊(차개시활문수)니라. 이것이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 문수보살이다. 이 문수가 중요하지요. 설사 오대산에 살아있는 문수보살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 일입니다. 그 사람 문제라고요. 나하고는 사실 별 의미ㆍ관계없습니다. 설사 문수보살이 있다. 저~ 기 포탈라 궁전에 진짜 관세음보살이 살아 계신다 하더라도 그 어쩌잔 말입니까? “내가 거기 가서 봤다.” 그것 어떻게 할 겁니까? 그것 뭐 하자는 겁니까?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입니다.
나는 내 인생이 따로 있습니다. 100번 친견해봐야, 그 어려운 3보 일배 하면서 그 빙판을ㆍ그리고 경사진 데를ㆍ물을 건너가면서 그렇게 힘들게 가가지고 결국은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ㆍ얼굴 찾아 봤다. 그것 어쩌자는 겁니까? 일보일배하면서 친견하러 가는 바로 그 사람. 그 사람은 始終다른 사람이 아니고, 어느 곳에 있든지 의심할 바 없는 사람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살아 있는 문수보살이다. 이것이 살아있는 문수보살이고ㆍ이것이 살아있는 관세음보살이다.
이야기 난김에 그 차마고도에 3보 일배 하면서 가는 사람들, 다섯 명인가? 그렇게 갔지요? 네 사람인가? 절을 하고, 한 사람은 짐을 끌고, 노인이 짐을 끌고 가다가 중간에서 텐트치고 밥해 먹고 그렇게 절 하는데, 그것을 보조하는 사람이 하나, 그 무거운 짐을 수레에다 싣고 그렇게 가는 겁니다. 그렇게 가다가 결국 그 노인이 나중에 병이 나가지고, 다른 젊은 사람이 그것을 밀고 가고 그렇게 했는데요. 그래도 다섯 사람이 거기까지 도착 했어요. 티벳 라사의 포탈라 궁 앞까지 도착을 딱~ 했어요. 거기 가서 또 10만 배하는 겁니다. 포탈라 궁전 앞에 광장 있잖아요. 거기서 또 10만 배하는 겁니다.
그래 할 것 다했어요. 하고 나서 그 다음 일이 참,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점입니다.
그 다섯 명 중에 한 사람은 거기서 중이 되고, 한 사람은 집에 가족들이 있어요. 동충하초를 캐가지고, 그쪽 지역에 아마 동충하초가 유명한가 봐요. 동충하초를 캐가지고 돈을 벌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런 것으로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다. 사실 또 그렇게 했고요. 그렇게 포탈라궁전까지 3보 일 배하면서 그 고생ㆍ고생. 손에 대는 판자를 몇 개를 갈았잖아요. 그리고 무릎에 대는 큰 고무, 자동차 타이어 고무 같더라고요. 그 고무를 몇 개를 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절을 하면서 거기까지 갔지만, 결국은 그대로, 출발하기 이전 그 사람입니다. 가족을 위해서 동충하초 캐요. 또 한 사람은 스님생활이 좋아 보이니까 거기가서 발심해서 스님이 되고, 다른 사람들은 본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처음에 출발 할 때 그 사람이 결국 그 사람입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이것이 신기한 겁니다. 이 사실이 신기한 겁니다.
至至發處(지지발처)라. 그 어려운 고생해서 이르고 이르러서 도착한 그 자리가 출발한 그 자리입니다.
行行本處(행행본처)라. 아무리 행하고 행해도 본래의 그 자리. 본래의 그 자리더라. 사람에서 출발해서 결국은 사람에 도달하는 겁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이 사실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뭔가 있는 듯이 환영에 사로잡혀놓으면 뭔가 새로운 세계가 있는 것 같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어려운 일을 하는데, 여기 참 기가 막힌 대목 아닙니까? 오대산에는 문수보살 없다. 문수보살을 친견 하려고 3보 일 배하면서, 그 오대산을 고생ㆍ고생 가고 있는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그 당사자가 진짜 살아있는 문수인줄 왜 모르느냐?
아까 이야기 했듯이, 오대산에 경전상에서 이야기 되고 있는 문수보살이 설사 있다고손 치자. 어쩌잔 말입니까? 포탈라 궁전에 관음보살이 있다고손 치자. 가서 보고 어쩌잔 말입니까? 그 100번 봐도 내 인생은 내 인생대로 그냥 있습니다. 그냥 있다고요. 관세음보살의 깨달음이 순식간에 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요. 문수보살의 어떤 지혜가 내 몸 속으로 그냥 쑥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요.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저 그리워하고, 또 그 불타는 신앙심을 표현하는 것뿐이지요. 이런 이야기는 아무에게나 못하지요. 여러분 같이 수준 높은ㆍ안목이 높은 사람들에게나 해야지, 보통불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것 신심 떨어지는 소리입니다.
관음도량에는 관세음보살이 계시고ㆍ영험을 주고ㆍ복을 빌면 복을 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 또 그것이 인연이 돼서 자꾸자꾸 안목이 달라지고ㆍ차원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입시철에는 기도하게 해요. 부처님이 시험 잘 치게 한다고 이렇게 해야 된다고요. 그래야 그 사람들이 마음 놉니다. 신도들이 마음 놓고 한다고요. 그 인연을 통해서 그들이 나중에 다 그야말로 이러한 이치까지 이르러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리까지 이르러 갈 수 있는 그런 작은 씨앗이 되고ㆍ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 절대 부정하면 안 됩니다. 복 비는 것도 부정하면 안 되고ㆍ입시 기도하는 것 부정하면 안 되고, 최소한도 그런 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자꾸 심어줘야 됩니다.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하고 인연을 돈독하게 맺도록 해줘야 된다고요.
해주다 보면 어느 날 저~~ 만치 높이 안목이 높아지는 그런 수가 얼마든지 생깁니다. 또 이런 고차원적인 이야기 좀 들었다고 돌아 가가지고 또 “그것 아무 소용없는 거라.” 고 “네가 다 관세음보살이고 네가 문수인데 뭘 어디다 대고 빌고 자시고 하냐?” 고 이렇게 덜 떨어진 소리 하고 있으면, 허허 그러면 철 덜든 것이지요. 철이 푹~ 들면, 다~~ 이해하는 겁니다. 다 이해하고 그것도 참 좋은 인연 인줄 알게 됩니다.
儞一念心無差別光(이일염심무차별광)이, 그대의 한 생각 차별 없는 그 광명은 處處總是眞普賢(처처총시진보현)이다. 곳곳에, 어느 곳에 있든지 모두가 참다운 보현보살이다.
儞一念心(이일념심), 그대의 한 생각 그 마음이
自能解縛(자능해박)하야, 스스로 능히 속박을 풀어가지고, 여기ㆍ저기 속박되어 있는데 능히 속박을 풀어가지고, 隨處解脫(수처해탈)은, 어디에 가있든지 곳을 따라서 해탈 되는 것은 此是觀音三昩法(차시관음삼매법)이다.
이것이야말로 관세음보살의 위력이다 이겁니다. 觀音三昩法이다. 아~ 참! 대단하지요? 앞에는 문수보살 이야기 했으니까, 여기는 보현보살ㆍ관세음보살. 이렇게 세 분을 이야기했습니다.
互爲主伴(호위주반)하야, 서로ㆍ서로 주인이 되기도 하고 벗이 되기도 해요. 出則一時出(출즉일시출)이거나, 나오면 일시에 다 나와요. 문수도 되고ㆍ보현도 되고ㆍ관음도 돼요. 하지만, 一卽三三卽一(일즉삼삼즉일))이니,
하나는 곧 셋이 되고, 내 한 사람이 곧 세 사람이 되고, 문수ㆍ보현ㆍ관음이 되고, 그 문수ㆍ보현ㆍ관음이 곧 내가돼요.
如是解得(여시해득)하면,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始好看敎(시호간교)니라.
비로소 경전을 참 잘 본 사람이다. 경에 안목이 있는 사람이다.
看經者慧眼通透(간경자혜안통투). 그러잖아요. 경을 보는데 진정 안목을 가진 사람이다. 始好看敎. 경을, 敎를 참 잘 보는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임제스님 법문 참, 근사하지요? 뭔가는 모르지만 아무튼 속 시원 하지요? 뭔가 모른다는 그것이 의미 깊은 겁니다. 우리가 그 깊은 속내는 아직 모르니까요. 참 속 시원합니다. 그러니 옛날 우리 선사 스님들이 완전히 미치는 겁니다. 미치고ㆍ반하고ㆍ팔짝 뛰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임제스님ㆍ임제스님” 하고 그냥 임제스님 밑에 줄을 서가지고 “내 비석에 꼭 임제스님 몇 대손” 이라고 적어 달라고 이렇게 당부를 하고, 죽은 뒤에도 “임제 문중에 다시 태어나도록 축원해 달라.” 고 하고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후손은 전부 임제스님 후손이고, 임제스님의 물이 전부 여러분에게 다 튀어 갔습니다. 여러분 정신 속에 DNA검사 하면 전부 임제스님DNA가 다 우리에게 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그것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까지 제가 열변을 토하는데 그것 안 들어가겠습니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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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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儞祇今聽法者(이지금청법자)가, 그대 다만 지금, 법문 듣는 그 사람. 그것은 不是儞四大(불시이사대)로대, 그대의 지수화풍 사대가 아니다. 아니지만 能用儞四大(능용이사대)다. 능히 사대를 활용 한다...석대원성님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_()()()_
언제나, 다시봐도, 어려운 한문을 스스럼 없이 현실에 맞게 해석해 내시는 큰스님의 안목을 늘 존경하옵니다.
유치원 생에게 고등수학을 가르치려는 무모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큰스님의 배려도 돋보입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참 불교의 진리를 널리 전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釋대원성님 수고 많으십니다.
_()()()_ 고맙습니다.
眞正見解...대원성님 고맙습니다._()()()_
祇儞目前用處(지이목전용처)가 始終不異(시종불이)하며 處處不疑(처처불의)가 此箇是活文殊(차개시활문수)니라...바로 이 순간 눈앞에서 작용하는 그 당체가 시간,공간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짜 살아있는 문수보살이다. 고맙습니다._()()()_
....早錯了也(조착요야)라 五臺山無文殊(오대산무문수)니라...고맙습니다_()()()_
그대 눈앞에서 작용하고 있는 그 것. 보고, 듣고, 말하는 소리 듣고, 부르면 대답하고, 배고프면 밥 먹고 하는 그 작용하는 그 것, 이것이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 문수보살이다...釋대원성 님! 수고 하셨습니다._()()()_
祇儞目前用處...고맙습니다. _()()()_
그대가 살아있는 문수다..._()()()_
儞一念心無差別光이 處處總是眞普賢이다..._()()()_
감사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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切急要求眞正見解 ... 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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