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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종인 교무/기간제전무출신 둥지골훈련원 |
| 힘들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낙원으로 인도하는 일은
세상 어느 일보다 거룩하며 교무가 되는 길이야말로 21세기에 가장 보람있는 길이라고, 멋진 교무가 되겠노라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강동교당을
떠나왔다. 대종사님과 선진님들의 혼이 살아 숨쉬는 영산에서의 삶은 하루 하루가 성스럽고 고귀한 서원의 시간이었다.
하루
하루가 아쉬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참으로 행복한 놈이다. 대종사님 법 만나 이 회상에 귀의했다는 것이 최고의 행운이고
느즈막에 전무출신하겠다고 나섰을 때 흔쾌히 쫓아내준 아내가 있어 행복하다.(처가는 지독한 기독교 집안이었기 때문에 결혼 전·후 갈등의 얘기를
하자면 지면이 너무나 부족하다) 지금 아내는 강동교당에서 주인 노릇 잘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길을 열어 준 교단에 감사하다.
보돕시(겨우) 반야용선 끄트머리라도 잡고 승선한 기분이다.
영산에서의 공부한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1)대종사님과 선진님들의 숨결과 간난했던 시절을 한 때라도 잊지 않고 생각하며 근검절약을 생활화했다. 전기 한등, 물 한 컵이라도
아끼며 전긍리박(戰兢履薄)의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생활했다.
2)전무출신의 정신을 놓지 않고 교법에 의거한 원칙 있는 일과에 한치
빈틈없이 생활했다. 단 한차례의 좌선도 빠지지 않고 수업 일과도 모두 소화했다.
3)매 식사 후 성지 참배(대각터, 생가터,
정관평, 중앙봉, 영산원, 옥녀봉 등)를 돌아가면서 했다. 선진님들의 혼을 오롯이 받는 기운과 기쁨과 건강을 선사했다. 가끔이지만 삼밭재에서
기도는 영성을 살찌우는데 더 없이 귀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비오는 날 영산원에서 좌선은 빗소리와 어울린 천상의 공부
시간이었다.
4)영육쌍전의 봉공 작업도, 자칫 잃기 쉬운 건강과 스트레스 해소에는 매우 적절한 시간 배분이었다. 도량 관리를 우리가
깨끗하게 관리한다는 것은 심신이 다 같이 건강해지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5)매 시간 공부한 내용을 녹취해 복습하고, 다음날 공부
할 내용과 과제를 점검하고 예습했다. 또한 선진님과 스승님들의 책들을 두루 참고하며 원음방송(이성택 종사 <정전>, 조정중 종사
<대종경> 강의과 〈원불교신문〉을 탐독했다. 수시로 떠오르는 감상들을 바로바로 스마트폰 어플인 노트에 빠짐없이 기록하며 저녁
염불공사와 심고가 끝나는 하루 유무념 대조와 일기를 기재했다. 또한 일요일에 점검하는 일기 발표와 감상 발표는 공부중 백미였다. 실제 일어나는
심신작용처리건을 대중과 함께 공유하며 공부하면서 서로를 가깝게 알아가는 계기였다. 감각감상은 성리공부의 깊이를 재어보는 공부였다.
6)금요일 오전에 있는 김주원 종사의 <정전> 강의는 보너스중의 보너스였다. 참으로 귀한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앞자리
쟁탈 신경전이 은근 벌어지기도 했다. 어느날 지금껏 내가 알았던 교법들! 난마(亂麻)처럼 엉키고 꼬였던 교법들이 정리가 되면서 말끔히 청소가 된
듯 정신이 시원해지면서 마치 PC를 포맷한 것 같은 상쾌함을 느꼈다. 정신 먹거리, 육신의 먹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해 준 영산선학대학교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이상의 열거와 같이 이곳 생활은 나에게는 전생의 복이 아니면 누릴수 없는 그야말로 홍복이었다.
대종사님 이하 선진님들의 기운과 함께 한 생활이었다. 나의 1일은 일반 학생들 4일로 알고 생활했다. 어찌 근원 성지인
이곳에서 부처 될길을 쉽게 알아가며 하고 싶은 공부를 이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랴! 이제는 받았던 은혜를 이 회상에, 이 교단에 보은해야 할
임무만이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