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그림먼저 감상 하시죠)
가족 family (1998)
<문자추상> 151×123cm, 1975
담요에 유채로 그려 작품의 표면에 미세한 섬유질이 보이며
대담한 형태의 문자들이 짜임새있는 화면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화가의 무기는 바로 그림이다.
예부터 예술가들은 권력자에게 봉사하고, 권력의 노예가 되어왔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굳게 지키며 민중들 편에 서야 한다.”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 1904-1989)
이응노처럼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희생된 화가도
한국 회화사에서는 찿아 보기 힘들겁니다.
고암의 젊은시절 사진과 말년의 작업실에서의 사진 그리고 21세 연하인 두번째 부인 박인경여사
박정희 전대통령이 한국경제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근대화의 기틀을 완성한 점등은 상당부분 그 공(功)을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그시기 많은 학자와 학생, 심지어 예술가들이 중정의 취조실 또는 공작에 의해 희생당한
것은 그 功이 아무리 크더해도 상쇄될수도 없어질수도 없는 큰 과(過)일겁니다.
한정권의 유지와 편리를 위해 수없이 자행됐던 정치공작중 한 중심에
고암이 있었고 고암 뿐만 아니라 그의 본부인은 고암보다 더한
고독과 아픔의 세월을 평생 짊어져야만 했습니다.(2부소개)
고암은 동백리사건(1967년)으로 옥고를 치른 데 이어 백건우·윤정희 부부 납치미수사건(1977년)에
연루되는 등 시련을 겪었습니다. 1969년 사면되었으나 계속 국내에서의 활동은 못했고 금기작가로 알려져 왔었습니다.
해금된 이후 89년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던 1월 10일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등
유난히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응노의 인생은 그 자체가 격동의 한국근현대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
군상 (1989)
손에 손잡은 사람들에게서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자유? 힘? 희망?
우리눈에 그저 평범해보이는 이그림을 70년대 정권의 관점에서는 소요, 데모, 반란, 궐기,
등으로 해석했을겁니다. 하긴 한대수의 "물좀주소"라는 노래도 금지곡으로 지정할 정도였으니
이정도 그림이라면 북한의 불온 전단 제작자정도의 처벌을 받았을수도 있었겠죠?ㅋㅋ
여기 계신분들은 모두 70년대를 회상 하시는데 그리 큰 어려움이 없는 분들 이실겁니다.
잠시 70년대의 정서와 시각으로 군상 시리즈를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20대는 사군자를 습득하면서, 한국 전통의 동양화와 서예적 기법을 기초로 한 모방시기라면,
30대는 자연물체의 사실주의적 탐구시대,
40대는 반추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 사실에 대한 사의적(寫意的) 표현,
50대(1950년대)는 유럽으로 이주한 뒤 추상화가 시작됩니다.
그 이후 10(1960년대)년은 서예적 추상을, 말년까지는 민족의 통일무인 군상의 시대입니다
군상 A Large group of people | 종이에 수묵 | 70×138.5㎝ | 1986
위에 군상시리즈를 보면서 가슴이 시원해지시는걸 느끼셨나요?
그의 군상시리즈가 80년대에 활짝 꽃피운것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국민의 자유가
얼마나 최근까지 억압받고 통제되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 입니다.
그는 지필묵을 기본으로 하는 동양화에서 출발하였으나, 동시대의 시대의식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도전과 탐구의 여정을 거침으로써, 동양화라고 불러왔던 전통회화를
보편적 현대미술로 끌어올리고 국제화시킨 당대의 인물입니다.
또한 그는 독창적인 회화 언어를 창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종이, 천, 펠트 등의 재료를 사용한 콜라주 작업과,
도자, 조각, 태피스트리, 판화 등의 장르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창작할 수 있었습니다.
* 콜라주 (프랑스 어)collage근대미술에서,화면에 종이, 인쇄물,사진등을 오려 붙이고 일부에 가필하여 작품을 만드는일
* 태피스트리(tapestry)여러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넣은 직물, 벽걸이등의 실내장식품
* 파피에콜레(papier collé )입체파의 한기법으로(피카소가 처음사용)물감대신 신문지, 벽지,상표등을 붙여 작품을 하는일
** 콜라주와 파피에콜레의 차이점은? 꼴라쥬는 캔버스 등의 화면에 여러 다양한 재료를 붙이는 것을 의미합니다.재료의 제한이 없습니다..빠삐에꼴레는 좀 더 좁은 의미로, 종이를 붙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빠삐에는 영어의 paper에 해당하죠ㅎ)
문자 추상 Letter abstract | 한지에 콜라주, 채색 | 122×95㎝ (60) | 1978
이 작품은 작가 예술세계의 절정기에 제작된 구성적 문자추상으로 문자 자체의 기하학적인 형상들을 해체하고
변형하여 재구성 하였으며 색감 역시 이전의 무채색 계열에서 벗어나 짙은 색감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응노의 문자추상시리즈는 1960년 초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지속적으로 열정을 쏟은 주제입니다.
60-70년대까지 윤이상씨와 함께 중앙정보부의 블랙리스트 윗부분을 차지하던
고암은 추상의 세계로 은둔합니다, 그에게 현실적 사실적표현은 중정에게 더큰
표적을 던져주는것과 같았을 겁니다. 하지만 막연한 은둔이 아닌 동양인으로서
한국인으로서 할수있는 작업을 선택하게 됩니다. 바로 문자추상의 세계입니다.
또한 방향성을 잃고 행해지는 전통의 재해석과 재현의 유행 속에서 동양화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란 과연 무엇이며,
동양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의 습작시절 스케치입니다.
사람들 human (도자기 작품)
이응노와 함께 문자 추상의 큰획을 그은 작가는 남관입니다.
남관 [南寬, 1911.11.25~1990.3.30]
서양화가 남관 화백(1911∼1990).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했던 그는 동양의 수묵화와 서양의 추상화를 결합한
독특한 예술세계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는 옛 문명의 흔적으로 남은 기호에서 인간의 생명력을 읽어냈습니다.
그의작품은 일그러진 형상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비극적이거나 기괴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화면을 이루고 있는 색채가 아름답고 환상적이기 때문에 마치 꿈이나 우주적 공간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는 예술세계를 추구했던 남 화백은 프랑스 화단으로부터 동서양의 문화를 서로
조화롭게 결합한, 보기 드문 예술가로 평가받았 습니다. 그역시 이응노와 같이 문자추상작업을 많이한 화가입니다.
대전 이응노 미술관
대전광역시 서구 만년동 396 (대표전화 042-602-3270)
// 동영상 블로그에서 항상 호출. function AllBGMStop() {}
작가사진옆에 특별히 부인사진을 넣은것은(21세연하 두번째 부인이라는 특이한 설명과 함께)
수덕여관이라는 이사진과 드러나지 않은 또다른 여인의 눈물겨운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구한 사연은 2부에서 풀어보겠습니다.
손수건이나 휴지 준비하시고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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