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 만
이 영 창
작은 물방울이 큰 물방울에 부대끼면 순간적으로 큰 물방울에 흡수된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자연 원리중의 한 단면이다.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강자의 편으로 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돈, 권력, 지식.
사람들은 힘의 축적을 위하여 그것을 얻고자한다. 지배당하는 자의 비애를 알면서도 일단 그것을 취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군림하고 교만을 싹틔운다. 어쩔 수 없이 그것은 인류와 함께 인간들의 힘의 논리가 되어 길들여졌다. 과정이야 어떻든 이긴 자가 강자이기에 강자의 것은 거짓도 진실이 되고 약자는 진실마저도 거짓으로 남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보면서도 그것이 삶의 진리인 것처럼 역사 앞에 고개 숙여온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어린 시절의 일화로 유명한 사과나무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던 사과나무를 베어 버렸다. 소년 워싱턴은 추상같은 아버지의 분노에도 "제가 그랬습니다"하고 솔직히 말하며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그의 정직한 마음이 훗날 대 정치가로서의 바탕이 되었다는 워싱턴 전기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사회에 큰소리 뻥뻥 치며 거짓말을 태연스럽게 하는 정치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민주화운동가였는지 정치 운동가였는지 아리송한 사람들, 그러나 워싱턴 전기의 사과나무 일화마저도 꾸며낸 이야기라고 한다. 책에 따라 사과나무이기도 하고 벚나무이기도 하니 그럴 것도 같다. 워싱턴 전기를 처음 쓴 메이슨 록 윔스가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쓴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로 되어버린 것이다.
한편 역사가 인정하지 않은 뒷면에는 진솔한 한사람의 생애가 조작의 파렴치 인으로 영원히 남을 뻔했던 진실이 있다. 스페인 북부의 칸타브리안 산맥 근처에 산틸라나 델 마르라는 성이 있다.
어느 날 그 성으로부터 사냥을 나온 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하루를 거의 다 소비했으나 사냥다운 사냥도 못하고 개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의외의 사건에 사냥꾼들은 모두 흩어져 개를 찾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땅이 갈라진 곳으로부터 들여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땅바닥 갈라진 틈을 따라 내려갔다. 신기하게도 그들 앞에는 커다란 동굴이 하나 나타났다. 그들이 그곳에서 개를 구출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주인인 마르셀리노에게 낮에 있었던 사실을 낱낱이 보고했다. 이 말을 들은 마르셀리노는 직접 그 장소를 찾아가 보았으나 특별히 흥미로울 것도 없는 단순한 여느 굴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잘못 이용될 것을 우려하여 동네 아이들이 그 안에서 놀지 못하도록 발견된 굴을 막아 버리라고 명령했다. 그 뒤로 사람들은 그 동굴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았고 아주 잊어버렸다.
어느 해 가을, 여행을 좋아하고 모험심이 강했던 마르셀리노는 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파리를 방문하게 되었다. 박람회 장에 들른 그는 우연히 빙하시대의 도구들과 조각품에 흠뻑 빠져 그 진열대에 매료되었다. 마지막 빙하시대는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전에 끝이 났지만, 지구의 탄생이후 빙하시대가 여러 번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그 시대는 다시 올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마르셀리노는 파리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질학 전문가를 찾아 빙하시대의 유물 탐사에 대하여 심열을 기울여 배웠다. 그는 어떤 비장한 각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는 삽과 토치(전등)등 발굴 도구로 무장한 다음 10여년이란 기간을 막아두었던 그때의 동굴을 찾아들어갔다.
처음 발굴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여 실망도하였으나 일년쯤 지나서 드디어 그는 손도끼에 돌화살촉을 찾아내는데 까지 성공하였다.
그때부터 그에게 힘이 솟았고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섯 살 난 그의 딸 마리아와 동굴에 함께 들어가는 기회가 생겼다. 앞서 가고 있던 마르셀리노는 순간적으로 딸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그는 당황하여 딸 마리아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와 보았다. 그곳은 천장이 너무 낮아서 그가 그냥 지나쳐 간 곳이다. 딸 마리아는 그 벽에서 소가 노려보고 있는 그림을 보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마르셀리노에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벽에 불빛을 대자 비로소 들소들의 그림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 벽은 온통 들소들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수컷. 암컷. 새끼들이 온갖 자세로 그려져 있었고 다른 벽과 천장에는 더욱 신기한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감격한 나머지 손을 대 보니 물감이 묻어?! ? 듯 젖어 있었다. 마르셀리노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는 친구인 절친했던 빌라노바 교수와 상의하고 자기의 대 발견에 대하여 세상에 함께 발표했다. 지금 알타미라 동굴이라고 알려진 그 곳이다.
그러나 리스본에서 열리는 선사시대 학자대회에 마르셀리노가 참석해 보니 그의 발견을 학자들은 조작이라고 간주해 버리고 있었다.
실제로 유럽의 모든 지식인들이 그 그림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었다는데 더욱 충격적이었다. 마르셀리노는 그 그림을 복제하여 책으로 발간했다. 그러나 그 책마저 무시당하고 말았다.
고대의 혈거인 들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없으니 아주 뻔뻔스러운 속임수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선사학자 카타일해크는 알제리에서 열린 대회에서 마르셀리노를 입장조차 시켜주지 않았다. 지식인이라는 교만한 깃발아래 마르셀리노의 진실은 짓밟히고 그의 등 뒤로 세월은 흘러갔다.
몇 년이 흐른 후 카타일해크는 베제레 계곡 안에서 새로 발견된 동굴을 조사하게 되었다. 그 때 조사한 그 동굴이 알타미라와 비슷한 그림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세월은 흘러서 갔지만 그는 전에 마르셀리노에 대한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실수를 사과하려고 알타미라로 찾아 왔지만 이제 어른이 된 딸 마리아가 아버지의 무덤이라며 그를 무덤 앞으로 데려다 주었을 뿐이다. 지성의 아집은 교만에서 싹텄으리라. 앎의 세계는 자기만 아는 세계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지성의 깃발을 들고 강자의 행세를 했다. 교만이란 산물은 강자라는 토양위에서 어깨를 넓게 피고 자라는 내적 존재가 아니던가. 어디서 나는 그런 특산물을 부근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가슴 속에
이영창
철길에 서면, 한없이 그 길을 따라 가고만 싶다. 가고 가다 또 가다 보면 철길의 끝은 있을까. 기차는 어떻게 돌아오는 것일까. 기차 안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면 그것은 어디로 가는 걸까. ‘철길은 매우 더러운 거야’ 언제 시간이 나면 철길을 따라 하루 종일 걸어 볼까. 기차를 타고, 좋아하는 봉희와 어딘가, 밤새도록 떠나봤으면. 어린시절 철길만 보면 생각해 보던 기억이다.
충북선이 복선이 된지도 이제 여러 해 된다. 선진국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도 생산성이 높아져 전국을 도는 물량이 몇 배 늘었어도 무난히 소통 시키고도 남는다. 나는 충북선이 단선일 때 학교를 다녔고 그때에 세상 공부삼아 무전여행을 떠났던 일이 복선이 된 철길을 보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기우러 가는 어느 오후, 나는 개나리 보따리 걸머메고 고생길을 떠났다. 증평에서 청주로, 청주에서 조치원으로 가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면 다음 날 아침 경주에 닿게 될 것이라 마음먹고 있었다. 경주에 닿으면 친구를 만나 부산으로 가고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 화진포까지 동해안의 요충지를 돌아 볼 예정이었다. 주머니에는 달랑 차비 밖에는 없다. 고행을 마음먹고 떠나는 무전여행의 차비란 죽음으로 가는 노자 돈이었다. 말하자면 염부 돈이란 것과도 같은, 그만치 소중히 다루는 것이었다. 그 소중한 돈으로 조치원에 도착하게 될 5시 반 기차표를 샀다. 이제 주머니는 텅 비었다. 씨 갑 돈 몇 푼은 있나. 다음 기차는 요령껏 알아서 타야한다. 친구와 둘이서 출발하게 될 장소에 가면 다른 모든 잡다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 ?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고생을 자처한 여행이기 때문에 다가 올 모든 일을 감수해야만 한다. 지금은 배낭여행이란 것이 유행 하지만 예전 나의 학창시절에는 무전여행이란 것이 유행했다. 돈이란 것을 일부러 챙기지 않고 자신의 현재 있는 그대로 떠나는 여행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돈 없이 사는 세상을 감히 살아 갈 수가 있는가. 사서 고생을 하게끔 되어있었다. 배낭을 걸쳐 메고 시작이다. 각오는 대단했지만 출발 처음부터 사고가 나, 암담한 일이었다. 우리의 앞을 여유를 부리듯 달리던 기차가 도중에서 탈선을 한 것이다. 예기치 아니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탈선이란 심각한 사고다. 그러나 역 측에서는 적어도 8시 경이면 개통이 된단다. 하는 수 없이 때를 기다려야 했다. 지루한 기다림 후 8시가 가까워지자 한 시간 쯤 더 지연 된다는 방송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9시경이 되자 오늘 안으로 개통 될 가망이 없다며 차표를 물리실 분은 요금을 돌려준다는 방송이 또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미 청주로 돌아갈 버스가 있을 리 없다. 그렇다하여 주머니가 비어서 여관을 갈 수도 없고 난처했다. 막연하게 서성이는 나의 옆으로 한 청년이 다! 가 왔다. 나보다 4~5세 가량은 더 많아 보였다. “차표 물렸어요?” 그가 ? 렐? 내게 물었다. 내가 고개를 저어 보이자 “이리 주세요. 내 것과 함께 물러 올 테니” 그는 차표를 쥐고 역 사무실 계원에게 가서 물러 왔다. “여관에 갑시다.” 그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나도 대합실에서 밤을 새울 수는 없는 일, 날이 밝으면 그 때가서 청주로 되돌아갈 셈치고 따라나섰다. 주머니에는 차표 물린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관이랬자, 역 부근 오늘날의<하숙집>. 저녁을 흉내 내고 아침 차 시간에 맞춰 깨워달라고 주인에게 말하고 잤다. 새벽 4시에 주인이 우리를 깨웠다. 기차가 오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리나케 세수를 하고 요기를 했다. “숙박비 얼마요?” 그러자 그 청년이 빙긋이 웃으며 간밤에 계산을 치렀다는 것이다. “얼마였지요? 내 몫은 내가 치러야지요.” “몇 푼 되지 않는 걸 뭘 그러세요. 빨리 차표나 사러 갑시다.” 그리하여 나는 곤경을 면할 수가 있었다. 물론 내가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생면부지의 한 청년을 왜 도와 주었을까? 그가 어떻게 나의 곤경을 짐작하고 내게 선심을 베풀었을까? 지금도 나는 그를 모르고 있다. 서울에 산다는 그 청년을, 그 후 나는 그를 평생 동안 ?! 箕便? 만나 본 일이 없다. 제갈 길로 가는 사람일 뿐이다. 생각하건데 나그네의 가벼운 기분으로 우연히 동행하게 된 것 뿐인데 그 숙박비를 지불할 수도 있을 수도 있는 것인가. 나는 평생을 두고, 그 날의 그가 베푼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계산을 치렀다면서 나를 향하여 싱긋 웃어 보였던 그 미소에서 나는 인간의 가슴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답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나는 한 때 깜박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스님이 찾아와서 시주 좀 하라 하는 것을 우리는 천주교 믿는다고 잘라 말하고 돌려세운 사실이 있다. 그러고 나서 이 사실이 생각났다. 그 후로 우리 집을 향해 무엇이든 협조해 달라는 사람들을 매정하게 돌려보내는 일을 삼가하고 있다. 곤경에 빠진 어느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만이 옛날 여행을 떠나던 날, 밤에 만난 그 청년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사는 것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한 청년의 가슴속에서 엄청난 사랑의 마음을 전파하고 있음을 나는 느끼고 있다. 나의 잊을 수 없는 젊은 날의, 가슴 뜨거운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