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박기자와 통화 내용
* 새벽 1시 20분 무안동 코롬방 다과점, 수퍼마케트 일원 식품 가게를 부수고 들어가 빵, 음료수를 실어가.
* 새벽 2시 목포역 대합실 전부 파괴, 연동 파출소 모기관 목포지부 방화. 항동 파출소 무기고 태우고, 시내 파출소 전부 파괴. 해안 경찰서, 세무서 파괴.
* 새벽 3시 남양 어망 공장 부수고, 열차 불통, 시외· 시내 버스 불통. 중· 고 학교장 재량 휴교령.
각목, 카빈 공포 쏘고 다녀. 무기 휴대한 젊은이 복면하고 1백명 정도. 다른 데모대 1천여 명. 시민호응 안해. 시내 상가 모두 철시. 군대는 안보여. 학생들은 질서지켜. 마이크로 [자중하자].
오전 10시 40분 서기자 광주 도경국장 관사에서 경비 전화로 송고
* 서기자 눈으로 확인한 학생, 시민 사망자 20명.
* 총격전(시가전)은 21일 오후 4시부터 시작.
* 21일 오후 7시-8시 30분 사이에 도청, 도경에서 군 철수, 조선대 쪽으로(1만여 명). 도청 도경은 시민이 접수, 일반인 접근 금지 시켜. 학생들은 [헌혈하자]고 전단 뿌려(22일 오전).
* 오전 10시 50분 수만 시민이 도청 앞에 모여 궐기대회. 총리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 수백명이 총 휴대.
시민들이 경찰 페퍼포그차, 장갑차들을 몰고 질주하고 다녀. 경찰 헬멧 등 장비도 학생들이 쓰고 다니고, 어제 시가전은 예상 이외로 심하지 않았다.
군이 철수 하면서 경찰 무장해제, 경찰 간부들 권총도 빼앗아 가. 그래서 경찰 불만이 심하다.
무장해제 당한 경찰, 사복으로 바꿔입고 광주를 빠져나가.
22일 오전 현재 거리는 학생과 시민 뿐. 곳곳에 핏자국, 불탄 자동차 잔해 등이 널려 있고, 22일 계엄사령관의 광주사태 발표는 시민들을 자극, 흥분시켰다.
중앙지, 광주 지방지 없고 이곳 방송도 안돼 전주 KBS 방송을 듣고 있다. 학생들은 강경파(군이 우리를 쏘는데 우리만 당할 수 없다), 온건파(무기휴대 반대, 난폭한 행동반대)로 나뉘어 있음.
12시에 총리가 온다는 소문. 총리가 오면 학생· 시민· 군· 경찰· 총리협상. 협상이 잘되면 풀리고. 계엄사 발표 때문에 군이 들어오면 큰 충돌이 있을 것이다.
21일 도청, 도경 시민 인수 후 공공건물 파괴 전혀 없다. 기자가 사진 찍으면 박살. 도경 국장집도 가정부 혼자. 이곳도 위험하여 피신하고 싶다.
다른 기자들은 빠져 나갔다. 21일 오후 3시 이후 현지에서 전화하는 기자는 자신 뿐. 신변위협 느끼고 있다.
오전 11시 40분 내무부 보고
* 도청서 부지사, 기획관리실장, 내무국장이 학생대표들과 협상 중. 도청은 학생들이 지키고 있다.
순천 상황
열차가 이리까지 밖에 못간다. 여수- 서울간은 운행. 순천- 목포간은 두절. 21일 밤 승주군 송강면 지서에 10여 명이 와 무기를 내놔라. 무기가 없자 유리창을 부수고 이불을 가져갔다.
오후 2시 여수 이기자
* 현재로는 조용. 민심은 안 좋아. 중· 고등학교 휴교령. 목포 관공서 모두 접수된 듯.
여수에서는 전화 안돼. 어제 광주에서 여수쪽으로 온다던 시위군중은 벌교까지만 왔다가 강진으로 돌아 강진 전경대 중대 본부 무기고 접수, 무기 등 싣고 광주로 되돌아 가. 화순 탄광에서도 화약 등 갖고 광주로 갔다는 소식.
오후 3시 50분 목포 상황
* 목포역 옥상에 [광주 시민의 피를 보답하라] [김대중 석방하라] [김일성 오판말라] 플래카드 걸려 있고. 대형 소방차 1대, 해군 지프 1대, 제일 영동교회 선교용 버스1대를 타고 다닌다.
법원, 검찰에도 난입, 부숴(오늘 새벽). 목포서 버스 11대가 광주로 합세하러가 (오늘 아침).
* 오후 1시 오창근 목포 대학장, 시내 야당인사, 종교인, 이병대 시장 등이 모처에 모여 난폭해져 가는 데모를 건전하고 평화적 시위로 설득키로 결의.
* 오후 3시 목포역 광장에 나와(시장은 제외) 군중들을 설득(4천여 명). 군중들이 박수쳐. [시내 대학생부], [고등학생부] 플래카드, 1천여 명이 이들을 앞세우고 평화적 시위, 연도에서 시민들 박수. 무기 든 사람들은 별도로 다녀, 이들은 호응 안해 두갈래.
은행, 관공서 철시. 23개 중· 고교가 무기 휴교령. 국민학교도 학교부근 학생들만 일부 등교했다가 곧 돌아가.
7시 10분 광주 서기자
* 사망자 56. 데모 군중이 시체 56구를 관에 넣어 도청 앞 광장에 놓고 7시 부터 추도식. 시민, 학생사이에 강· 온이 맞서.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를 것 같다.
통신 보도 내용
* 22일 오후 4시 30분쯤 광주시내 국군통합병원 부근에서 데모군중 틈에 끼여 있던 30대 여간첩 용의자 1명을 시민들이 붙잡아 대치 중인 군인에게 인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민에 따르면 이 여인은 지난 19일 밤 데모때 [여기저기에 불을 질러야 한다]고 외치고 다니는 것을 수상히 여긴 데모 학생들이 그녀의 행동을 계속 주시 하던 중 이날 붙잡아 카메라 1대와 함께 군에 신병을 인계했다는 것.
10시 25분 목포 박기자 전화
* 오후 4시 30분 목포역 광장에 목포 대학생 2백여 명 모여 평화적 시위를 위한 궐기대회를 갖고 3만여 명의 시민들에게 집으로 들어가도록 호소했다.
학생들은 또 무기를 휴대한 젊은이들에게 목포에는 계엄군이나 경찰관이 대치하고 있지 않은데 여러분이 공포를 쏘고 다니면 시민들이 오히려 불안감을 느낀다며 카빈이나 M1 탄피 등을 회수했으나 일부는 계속 공포시위를 하고 있다.
* 오후 5시 40분 목포 청년회의소 회원들 30여 명도 [민주시민의 대행진] [현실을 슬퍼합시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목포 대학생들과 함께 무기회수 운동과 함께 평화적 도보 시위를 했는데 연도의 3만여 시민들은 이들에겐 박수로 호응했으나 무기를 들고 자동차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외면했다.
* 목포→서울 기차나 버스 통행이 안되자 목포 해안에선 1인당 1만원씩 받고 소형 모터선으로 30명만 모이면 목포에서 군산까지 수송하고 있음(군산서 서울 가는 것은 차편이 있음).
* 오후 10시 30분 자동차 시위자 등 4백여 명, 무기 일부와 수류탄 회수 못했음.
밤 10시 30분 서울 시경에 보고 된 내용
* 대학생들은 협상 받아 들였으나 일부 시위 군중들은 반대하는 입장(현지 도청의 모 부이사관의 말). 학생대표들, 도청에서 계엄 분소장과 이야기 중이다.
학생들은 현재 사태가 크게 벌어지자 겁도 나고 해서 뒤로 물러서는 상태. [이제 우리는 모르겠다]는 식이라는 것.
현재 총기는 약 3천 5백 정 정도가 시민들 수중에 가 있는데 회수된 것은 2백- 3백정 뿐이고 나머지는 시위군중이 갖고 있는 듯, 지금도 시가지 곳곳에서는 간간이 총성이 들림.
* 도청 광장에는 3만여 명이 모여 추도식 하려 했는데 오후 10시 30분쯤에는 1천여 명으로 줄어 들었음. 시체는 도청 앞 광장에서 관에 넣어 늘어 놓고 있으며 과격한 말들이 나오고 있음.
* 관에는 죽은 사람의 사후 사진이 붙어 있는데 연고자를 찾기 위함인 듯. 사망자 중에는 고교생들도 있는 듯, 수습대책위원회는 학생들과 협의에 진전이 없자 귀가하고 있음.
총리의 헬기가 상공으 지나쳐 가자 시민들은 [허수아비 총리 하고는 상대 안한다] [오려면 책임자가 오라].
* 관 옆의 시민들과 총기를 가진 시민들은 아직도 과격. 오늘은 소강 상태로 넘길 듯. 그러나 내일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