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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금여기-가톨릭인터넷언론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봉
교회쇄신 컬럼
무엇을 보려고 명동성당에 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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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7.17. 한상봉 http://cafe.daum.net/cchereandnow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 |
가난한 사람들이래야 하느님이 필요하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네덜란드 북(北)브라반트 지역의 꽤 알려진 목사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처음부터 화가가 아니었으며, 큰아버지의 소개로 여러 화상(畵商)에서 일했는데,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으로 가난한 화가들의 그림을 팔아서 이문을 챙기는 그림장사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일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직자가 되기 위해 암스테르담의 이모부 스트릭커 목사의 집에서 머물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 집은 상류층 주택가에 있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식당엔 캘빈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찬장엔 은식기가 반짝반짝 빛을 냈다. 고흐는 멘데스라는 학자에게서 신학을 배웠는데, 그 집에 가려면 예배당과 철공소, 술집과 석판인쇄소 앞을 지나가야 했다. 그러나 12시간 이상씩 공부를 해도 늘 허기를 느꼈다. 과연 7년 이상 신학을 공부해야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멘데스는 고흐에게 새로운 정신을 일깨웠다. 집 주변의 빈민가를 거닐며 멘데스는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종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노동자들은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어. 병에 걸려도 의사를 부를 돈이 없지. 오늘 일을 해야 그것도 중노동을 해야 내일 먹을 거리가 생기지. 이 사람들 집은 보다시피 작고 초라해. 한 발만 내딛으면 배고픔과 굶주림이야. 허덕이면서 살고 있지. 이 사람들야말로 하느님을 생각하며 위로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야.”
빈센트 반 고흐 늙은 노신사인 교회 그렇다면 부유한 사람들에겐 종교가 소용없다는 말인가. “그 사람들이야 좋은 옷에 안전한 지위가 있고, 불행에 대비해서 돈도 저축해 두었지. 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이란 부유한 노신사야. 한 마디로 세상일이 뜻대로 잘 되어가는구나, 하고 만족해 하는 노신사지.” 고흐가 말했다. “그들은 좀 숨막히는 사람들이군요.” 그 순간 고흐의 마음속에는 스트릭커 목사의 교회가 떠올랐다. 그 교회 신자들은 부유하고 잘 배웠고, 또 이 세상에서 좋은 것들에 대해 민감하며,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스트릭커 목사의 설교는 아름답고 위안을 주긴 했지만 신자들 중에는 위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고흐가 찾아간 곳은 보리나주의 프티밤이라는 광산촌이었다. 이 마을 마르카스 광업소 근처엔 가난한 광부들의 오두막과 시커먼 탄진을 뒤집어 쓴 나무 몇 그루, 쓸모없는 석탄 무더기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한눈에 삭막하고 황량해 보였다. 사람들은 누덕누덕 기운 옷에다 가죽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죄다 굴뚝청소부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전도사 자격을 받고 ‘아이들의 집’이라고 불리는 곳에 예배당을 마련했다. 첫예배는 성공적이었다. 그날 검댕이가 묻은 얼굴로 고흐는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가 지상의 나그네라는 믿음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것이고 또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순례자들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이르는 머나먼 여행길입니다. ... 슬픔은 기쁨보다 낫습니다. 그리고 뛰어오를 듯한 환희 가운데서도 서러움은 있는 법이지요. 잔칫집보다는 초상집에 가는 게 낫습니다. 왜냐하면 슬픔을 통해 마음이 더욱 예뻐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당신께 간구하오니 우리를 악에서 지켜주옵소서. 우리에게 가난도 부(富)함도 주지 마시고 다만 우리에게 합당한 양식으로 우리를 먹여주소서.” 그러나 고흐는 광부들과 그 가족들의 비참한 삶을 알게 되면서 점점 회의에 빠졌다. 어린 것들이 얼어 죽어가고 있는데 은혜를 달라는 기도와 복음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느님은 어디 계신가? 그 길로 고흐는 아늑하고 빵 굽는 냄새가 고소한 하숙집을 떠나 광부들의 움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옷가지들도 모두 나눠주었다. 그는 광부들과 똑같은 집에서 자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침대에서 잤다. 예배당인 ‘아이들의 집’은 문을 닫고 광부들의 오두막을 방문하며 예배를 가졌다.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몸을 씻어주며, 뜨거운 음식과 약도 만들어 주는 실제적인 의무에 전념했다. 성경책을 펴볼 짬도 없었고 광부들에겐 하느님 말씀도 사치품처럼 느껴졌다.
절망 뒤에 오는 것 얼마후 고흐는 탄광사고로 죽은 57명의 광부와 가족들을 위해 장례식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의 좁은 오두막에 백여 명이 목이 타는 심경으로 모여들었다. 고흐는 굶주림과 좌절로 야위고 무참히 부서진 광부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그런데 때마침 브뤼셀의 복음전도위원회 목사들이 방문해서 이 광경을 보고 질겁을 했다. 불룩한 배를 두드리며 어느 목사가 “더러운 이 자들을 돌려보내!” 하고 말했다. 고흐가 “아직 예배가 끝나지 않았는데요.”하자, “예배는 상관없어. 모두 돌려보내라구 ... 도대체 자네, 무슨 짓을 한 건가? 이런 굴속에서 예배를 드리다니, 어쩌겠다는 건가? 이게 기독교 성직자에게 어울리는 행동인가? 이런 식의 짓거리를 하다니, 자넨 완전히 미쳤군. 우리 교회를 모독할 셈인가?” 고흐는 즉시 면직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절망 뒤에 찾아온 것은 그림이었다. 더 이상 광부들의 삶에 끼어들지 않고 빈 마음으로 탄광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모자를 푹 눌러쓴 늙은 광부가 정문을 빠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등은 웅크린 채 광부는 뼈만 남은 무릎을 절걱거리며 걸어갔다. 무엇이 고흐의 마음을 끌어당겼을까? 그는 무심히 연필 토막을 꺼내 검은 들판 너머로 타박타박 걸어가는 광부의 모습을 재빠르게 그렸다. 고흐는 다시 광부들의 오두막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이번엔 성경 대신에 도화지와 연필을 든 채였다. 광부들은 전처럼 그를 보고 반가워했다. 흙바닥에서 노는 아이들, 난로 위에 몸을 굽히고 있는 아낙네들, 하루의 일이 끝나고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는 모습, 탄광과 검은 들판, 밭을 가는 농부들을 그렸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생기가 돋아났다. 그렇게 그들은 현존했다, 거룩하게 성자처럼.
지학순 주교 옛다 과자나 사 먹어라 예전에 김지하가 지학순 주교를 두고 쓴 시가 하나 있다. <축복>이다. 원주역 바로 앞엔 해방촌 해방촌 바로 뒤엔 법원 법원 바로 옆엔 주교관 어느 그믐밤 은발의 주교님이 길을 가셨다. ‘할아버지 놀다 가세요.’ ‘놀 틈 없다.’ ‘틈 없으면 짬을 내세요.’ ‘짬도 없다.’ ‘짬 없으면 새를 내세요.’ ‘새도 없다’ ‘새도 없으면 탈나세요.’ ‘탈나도 할 수 없지 옛다 과자나 사 먹어라.’ 어느 보름밤 은발의 주교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하라고 악쓰는 세상 놀다 가라니 이 무슨 축복!’ 매매춘 여성에게 오히려 축복을 받고, 그걸 축복이라 여길 줄 알던 사람이 원주교구 초대교구장이셨던 고(故) 지학순 주교였다. 1970년대엔 모든 억울한 목숨들이 그분을 찾아왔다. 수배중인 노동자, 농민, 지식인들뿐 아니라 하소연할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먼저 지학순 주교를 찾았다. 그래서 주교관은 늘 북적였고, 담당 형사들이 늘 주교를 따라붙었다. 형사들에게마저 정답던 지주교다. 그분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들이 찾아와서 나를 주교로 만들어 주었다. 주교는 섬기는 사람 아니던가. 교황은 종중의 종이라는데...” 명동성당은 명품(名品) 그러나 지금 명동(明洞)성당은 명품(名品)성당으로 진입하는 중이다. 그래서 늘 공사중이고 공사에 방해되는 사람들은 얼씬거리기 쉽지 않다. 성당은 수시로 때때로 결혼식으로 북적거리지만 이런 날 오는 사람들은 예복을 갖추어 입은 탓에 명품의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는다. 성당을 그들에게 내어주고 돈을 벌어들이고, 교구청 깊은 곳 주교관 앞마당은 항상 한산하여 커다란 개 한 마리 그늘에서 졸고 있다. 두문불출 교구장께서는 사람 가려 만나시고, 공부하고 번역하고 공부하고 번역한다. 고흐처럼 네덜란드 사람이었던 쇠렌 키에르케고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나의 사명을 이해하는 것, 도대체 하느님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게 진리가 되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 내가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위해 죽고자 하는 그 이념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소위 객관적인 진리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설사 내가 위대한 철학 체계를 샅샅이 연구하여 사람들이 요구할 때 그 체계들을 질서정연하게 제시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키에르케고르는 학문에 묻혀 사는 사람들을 “거대한 성을 세우고 자신은 그 옆 헛간에서 사는 사람과 같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이게 복음이라고 말할뿐 그는 복음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서울대교구장은 차 한 잔 얻어마시며 “국민들의 소리를 잘 들으셔야 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하러 몸소 청와대까지 방문한 적이 있었다.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주교회의 의장인 장익 주교가 출타중도 아닌데, 왜 서울교구장이 대통령의 초대에 응했는지 모르겠다. 답방이라도 하듯이, 한승수 국무총리는 염수정 보좌주교와 명동성당 주임신부를 예방하였다. 역시 명동은 명품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고위급 인사들이 교회의 위계와 절차를 무시하고 명동부터 찾으니 말이다.
쇠렌 키에르케고르 정평위에서 성명 발표하고 교구장은 딴전 그러나 명동에 거처하는 장상들은 서울대교구 정평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성명서에 나타난 내용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6월 3일,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경제 성장보다 국민과의 소통, 도덕성 회복이 우선>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날 성명에서는 “모든 국가의 제도나 정책은 인간 존엄성과 생명을 보호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공동선을 이루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전제 한 뒤에 “최근 이명박 정부는 물질만능주의와 성장 중심주의 속에서 올바른 방향을 잃어버린 채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정책을 쏟아내 왔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정권 초기의 인사파동부터 계속된 잘못된 정치에 대해 우려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막아왔고, 국민을 섬기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오히려 오만과 독선의 태도로 일관하여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운하 포기와 쇠고기 재협상 등을 요구하였다. 교구의 공식입장이 그러하다면 응당 대통령과 정부각료를 만나는 절호의 기회에 장상들은 교회의 입장을 전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정작 만나서 정치권력의 입에 발린 소리만 한다면 교회의 그 발언의 진정성을 도대체 누가 믿을 것인가?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명동성당이 고흐의 오두막 교회를 찾아왔던 브뤼셀 복음전도위원회 목사들처럼 가난한 대중을 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명동성당 위에는 바리케이트같은 차단철책이 있으며, 성당 들머리에서조차 가련한 이들의 농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명동성당 역사에서 1970년대를 제외하고는 1987년 6월민주항쟁 때조차도 흔쾌히 성당을 사람들의 해방구로 내어준 적이 없었다. 시민들이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시위를 했지만, 성당측에선 사무장과 사목위원 등을 동원하여 수없이 훼방을 놓았던 것을 기억한다. “이곳은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발적인 노력도 없이 ‘민주화의 성지’라는 명패를 붙이는 것은 마다하지 않았다. 수배중인 노동자들이 공권력을 피해 머물 수 있는 곳은 이제 명동성당이 아니다. 우기고 들어와 봤자 싸늘한 눈빛아래 홀대받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억울한 사람마다 먼저 문턱 낮은 조계사로 달려가는 모양이다. 망각의 습관, 나자렛 예수가 누구였지? 키에르케고르 이야기 한번 더 하자면, 그는 예수께서 짓밟히고 가련한 자들을 부르고 계신다고 믿었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어느 누구도 너희 생존에 대해 눈곱만큼도 관심 갖지 않는 너희 멸시받는 자들, 무시당하는 자들아! 너희 병든 자, 절름발이, 귀머거리, 소경, 불구자들아, 다 나에게 오너라! 너희 나환자들아!” 키에르케고르는 만약 나자렛 사람 예수가 모든 실패한 사람들, 소외된 무리와 더불어 지금 여기에 나타난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은 아마 메시아를 처형하지는 않을 지라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진지하게 취급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예수를 멸시하고 질책할 것이다. 그를 거부하고 험담하고 경멸하고 조롱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고위층 인사들은 도대체 예수가 교도권의 동의 없이 교회쇄신을 시도하는 게 정당한 지 따지며 몰아세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예수가 한때 부랑자였고, 떠돌이였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갈릴래아의 흙바람 속에서 선잠을 자던 예수, 숱한 세월을 목수의 망치질로 땀을 흘렸던 예수가 남루한 옷를 걸치고 어부들과 세리들과 창녀들의 벗이 되어 예루살렘에 나타났다가 법과 권력을 거머쥔 자들에 의해 도살당했다는 것을 애써 환상 속에서나마 잊으려 한다. 복음서의 말씀 한 획도 지워지지 않을 텐데, 같은 복음서를 읽으면서도 복음 말씀을 진지하게 대면하지 않는다. 그들이 권력과 부자들에게 영혼을 저당잡혔기 때문일까? 예수는 청년으로 죽었지만, 교회는 이미 늙고 부유한 노신사가 되어 근력이 딸리는 까닭일까? 나중에 요한 23세 교황이 된 론깔리 추기경은 1962년 첫부임지인 베네치아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의 집을 찾아가고, 고아원과 학교와 병원을 방문했다. 발걸음을 멈추어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노 젖는 뱃사공의 뚝심을 칭찬하고, 바구니를 이고 모퉁이를 돌아오는 아낙네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그리고 추기경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동자 주거지인 마르게라와 메스트레논을 방문하였다.
요한 23세 교황 그들은 좀 숨막히는 사람들이군요 고흐가 말했던가. “그들은 좀 숨막히는 사람들이군요.” 론깔리 추기경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제 여러분, 요즘 세상은 뭔가 질식할 듯한 공기에 짓눌려 있습니다. 그것을 정화하십시오.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으십시오.” 그분이 교황이 되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열었다. 그 결과가 <사목헌장>의 첫마디가 되어 울려나왔다.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든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물론 그 가련한 사람들을 빌미삼아 성공한 사례도 있다. 뉴라이트운동연합의 상임의장인 김진홍 목사가 세운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있는 ‘두레 천막교회’다. 청계천에서 활빈교회를 세워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고 자처하는 김목사는 현재 보수적 개신교의 수장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아마 대통령을 배출한 소망교회처럼 ‘천막교회’도 개성있는 명품교회가 될 모양이다. 천막교회 사무국장인 오천근 장로는 광야에서 유랑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며 “소박한 의미의 천막교회를 계획했는데, 본의 아니게 천막이 매끈해져 쑥스럽다.”고 말했다. 이 교회는 올림픽 원형 경기장처럼 천막으로 지붕을 덮은 것은 사실이지만, 80억원을 들여 2,000여평의 지상 4층 건물에 3,000-5,000석 규모의 대성전을 지었다. 그가 부자들의 편에서 기를 쓰고 있는 이유를 알만하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말했던 마르크스의 말을 본의 아니게 증명해 주고 있는 셈이다.
두레천막교회 촛불은 지금, 거리에 있나 성당에 있나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을 두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두렵게 다가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마태 11,7-9) 예수는 세례자 요한 때부터 하늘나라가 폭행을 당해 왔다고 말한다. 폭력을 쓰려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잘 차려입은 신도들과 교권세력들이 ‘저들만의 천국’을 만들고 있다면, 그곳에 예언자는 없다. 예언자는 오히려 출타중이다. 거리에 있다. 구죽죽한 거리에서 비 맞으며 가녀린 촛불을 들고 있다. 예전에는 성당 안에서 은은한 빛으로 눈시울을 뜨겁게 하던 촛불이 이젠 거리에서 세상을 밝히고 있다. 그 촛불은 거룩하다는 성당이 아닌 무력한 채로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 가운데 있다. 복음서에서 사람들이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라고 조롱했을 때, 예수는 아마 “그래, 나는 그들의 친구다. 그래서?”하며 맞받을 것이다. 지혜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는 목자처럼 가련한 백성 가운데 자리를 잡으신다. 위세당당한 명품교회 안에선 예수의 자리가 없다. 이천년 동안 교회가 제국을 거느리며 황제처럼 군림하던 시대를 아직도 그리워하는 자들이 있다. 에집트의 고기가마 곁을 못 잊는 백성이 있다. 예수께서 버린 ‘아버지’와 ‘스승’의 명패를 다시 주워다 대문에 거는 사람이 있다. 그 집에 들어앉아 들창으로 빼꼼이 밖을 내다보고 사람을 가리고 가려서 집에 들이는 이들이 있다. 불청객을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예수는 불청객처럼 느닷없이 방문하리라. 그러나 귀 밝고 눈 맑은 이들이 아무리 피리를 불어주어도 춤추지 않고, 아무리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사람들에겐 구원이 없다. 그분의 손길이 그들을 비껴갈까 두렵다. 거리에 선 이들을, 명동성당 들머리에 이따금 찾아와 휴식을 청하는 이들을 맞아들여 주교관 한 귀퉁이에서나마 손수 따뜻한 차를 끓여 대접하는 교회를 상상한다면 그것도 과분한 걸까?
한상봉/ 이시도로,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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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7.17. 한상봉 http://cafe.daum.net/cchereandnow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