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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국제뉴스} 스크랩 KBS 위기의 시대(1부) - 굶주리는 10억
heaven 추천 0 조회 63 15.04.18 02: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KBS 위기의 시대(1부) - 굶주리는 10억

 

 

쌀집아저씨가 올해 민족21 잡지에 1년 동안 농촌과 시골살이에 대한 기사를 연재하게 됐습니다.

새해 1월호에 연재된 기사를 소개합니다.

 
식량위기와 한미FTA 
 

201?년 겨울 대한민국이 커다란 위기에 빠졌다. 
위기는 자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1?년 1년 내내 전 세계에 몰아닥친 자연재해가 문제였다.

겨울 끝자락부터 봄까지 계속된 가뭄은 씨를 뿌려도 제대로 싹이 트지 않게 만들었다. 짧은 봄이 끝나고 무더운 여름이 되자 집중호우와 몇 차례 태풍으로 곡식들은 물에 잠겼다. 가을이 되었으나 농촌 들판은 찬바람만 가득했고 수확의 기쁨은 사라져 버렸다. 201?년에 계속된 자연재해로 세계의 모든 식량 생산량이 평년 대비 40%나 급감하였다. 인류를 위협할 식량위기가 눈앞에 닥친 것이다.

 

자연재해로 인한 생산량의 급감은 자연스럽게 가격의 폭등을 불렀다.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주식인 밀은 가격이 50% 올랐다. 예상보다는 낮은 가격이다. 밀은 재고량이 많고, 교역량이 생산량의 20%에 이르기 때문에 생산량 감소와 가격폭등의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었다. 밀의 가격은 올랐지만 절대적인 양의 부족으로 인한 심각한 위기 상황 없이 어려움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에서 터졌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와 인구가 많지 않기에 쌀은 교역량도 전체 생산량의 3%에 불과하다. 당연히 국제적인 쌀 재고량도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자연재해로 쌀 생산이 급감한 상태에서 기존의 쌀 재고량을 포함해도 올해 수요에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쌀 수출국인 미국과 호주는 올해 쌀보다는 부가가치가 더 높은 밀을 주로 재배했다. 또 다른 쌀 수출국인 태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는 자연재해로 쌀을 수출할 여력을 잃어버렸다. 결국 계속된 자연재해는 쌀 부족으로 교역량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시아에 식량 대란을 몰고 왔다.

 

세계 쌀 교역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계 곡물 회사 카길은 자연 재해로 인한 세계 쌀 시장의 위기를 맞아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쌀의 수출 가격을 전년 대비 300% 올렸다. 식량을 무기화한 엄청난 폭리였으나 동북아시아 어떤 나라도 그에 대해 항의하지 못했다. 카길이 쌀 교역을 독점한 상황에서 그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한국을 포함한 쌀 소비국들은 대외 무역으로 많은 외환보유고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쌀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쌀 자체의 교역량이 많지 않아 돈으로도 쌀을 사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은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이면서도 초강대국의 지위를 이용해 쌀을 무난하게 확보했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쌀 수입개방에도 불구하고 적정 식량자급률을 유지하려는 정부의 정책과 국민들의 노력으로 필요한 식량자급률을 달성하여 어려움이 덜했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중국, 일본과 달리 아주 심각했다. 한국은 2005년 쌀의 수입개방과 2011년 한미FTA 이후 전체 식량자급률은 10%로 쌀의 자급률은 50%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는 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식량위기는 한국에서서 폭발했다.

쌀 가격이 폭등하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였다. 한 가구당 살 수 있는 쌀의 양이 한 달에 20kg으로 제한되었다. 상인들의 매점매석을 단속했으며 정부미 방출 등 여러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부족한 쌀을 어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국민들의 쌀 수요에 미치지 못해 가격은 전년 대비 500%나 폭등했다. 식량대란을 막으려던 한국 정부의 모든 정책이 실패하고 만 것이다. 

기자가 나와 있는 서울 반포동의 이마트 앞에는 쌀을 사려는 시민 5~6 시간씩 줄을 서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서울과 부산 등 일부 대도시에서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폭력과 약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정부는 식량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주요 쌀 수출국과 메이저 곡물회사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자연재해로 수출국들도 더 이상 쌀을 수출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곡물회사들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에 바빴다.

 

식량위기가 길어지면서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는 점점 빈번해지고 격해졌다. 결국 며칠 전 서울 도심에서 있었던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100 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말았다. 더 이상 상황을 방치할 수 없었던 한국 정부는 계엄령을 내려 도시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치안을 강화해 시위와 약탈을 막았고, 쌀 배급제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세계에 경제성장의 신화로 불리던 한국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가지고도 주식인 쌀을 구하지 못해 국민들이 굶는 현실에 직면하고 말았다. 더 이상 대책이 없어진 한국 정부는 주변 아시아의 쌀 생산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자연 재해로 인해 시작된 식량위기가 한국을 시위와 약탈,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쌀 부족 사태는 외국에서 쌀이 수입되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 더욱 심각하다. 10%도 안되는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생산 기간이 긴 쌀의 특성상 한국은 내년 1년도 이런 어려운 기간이 지속될 것이다. 이번 사태의 해결은 햅쌀이 나오는 내년 가을에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내년 세계 기상 상황이 좋아져서 쌀 수출국들의 쌀농사가 풍년이 들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주식인 쌀을 외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이번 식량위기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힘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2020년 세계 5위의 경제대국 한국의 기막힌 배고픈 현실이다. 
<2020년 1월 3일 한국 서울에서 ROTARI 특파원 RICE JANG 기자>

 

며칠 전 한미 FTA가 국회에서 비준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참 갑갑했다. 어디에 하소연 할 수가 없어 더욱 갑갑했던 것 같다. 한미 FTA에 대해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미 FTA로 농업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얘기는 많다. 하지만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이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 지 얘기해 주는 곳은 없다. 피해를 제대로 아는 곳이 없으니 제대로 된 대책도 있을 리가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미국 자료에 보니 우리나라 농업생산량의 8% 정도의 미국 농산물 수입이 매년 증가한다는 것이었다. 산술적으로 10년이면 우리나라 농산물의 80% 정도가 미국산으로 대체된다고 보면 되겠다.

 

한미 FTA 국회 비준이 1주일 정도 지났다.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농부로서 앞으로의 전망을 가늠해보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어디서, 어떻게 고민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정도는 짐작이 된다. 현재 우리 농업의 기득권을 대기업과 대형 유통회사들이 가지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그 기득권이 외국으로, 외국계 곡물회사와 유통회사로 넘어갈 것이라는 짐작이다. 우리나라 먹거리 대부분은 이제 우리 농부들이 아닌 외국 농부들의 몫이 될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농부들은 우리나라 먹거리 시장에서 작은 틈새시장 속으로 쪼그라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렇게 크고 중요한 일을 국회에서 처리하는 동안 두 손 놓고 쳐다만 봤다.

우리 농부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국회에서 한미 FTA를 통과시키며 떠들어대던 자들은 자신들이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지도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것은 높디 높은 국회나 청와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지만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땀 흘려 일하는 우리 농부들과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있다. 나라를 지키며 움직이는 것은 바로 우리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지난 주 밭에 보리를 파종했다.

보리 파종은 11월 중순 정도에 해야 하는데 가을걷이와 정미소일로 늦은 셈이다. 그래도 다행히 날씨가 따뜻해 싹이 잘 트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리를 파종하기 전에 트랙터로 로터리를 쳤다. 콩과 팥의 깍지와 풀이 함께 있어 두 번 로터리를 쳐서 땅을 곱게 갈았다. 그리고 포크레인으로 작업을 했다. 흙이 쌓인 물골을 정비하고, 밭 가운데에 다섯 개 오름을 만들고, 연못도 하나 만들었다. 오름에만 보리를 파종하고 흙으로 살짝 덮어 줬다. 해가 서쪽 하늘로 불그스레하게 저물어갈 때 보리 파종이 마무리 되었다. 농부가 된 후에 가장 즐거운 일은 바로 가을걷이, 수확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쌀집아저씨는 더 즐거운 일이 있다. 수확하기 전에 논과 밭에서 녀석들을 만나는 것이다. 아직도 녀석들을 만날 때는 설레고 기분이 좋다. 쌀집아저씨는 온전한 생산이란 농업의 생산뿐이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놈의 한미 FTA가 무엇인지 첫 번째 글이 너무 무겁다.

이렇게 무거운 얘기는 좀 내려놓고 앞으로는 농촌과 농업에 대한 쌀집아저씨의 생생한 얘기를 전해드릴 것을 약속한다. 다음에는 빼꼼히 고개를 내밀 보리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
http://blog.daum.net/ssalzip/12375864

 

식량위기 정말 올 것인가? http://blog.daum.net/rda2448/6975193  농촌진흥청 자료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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