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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下獨酌(월하독작) 1
꽃 속에 술단지 마주 놓고 밝은 달님 잔 속에 맞이하니 달과 그림자 셋이어라 달님은 본시 술 못하고 그림자 건성 떠돌지만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 동반하고 모름지기 봄철 한때나 즐기고저 내가 노래하면 달님은 서성대고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 흔들대네 깨어서는 함께 어울려 놀고 취해서는 각자 흩어져 가세 영원히 엉킴없는 교유맺고저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리
月下獨酌(월하독작) 2
하늘이 술을 사랑않으면 하늘에 술별 없었으리라 땅이 술을 사랑않으면 땅에 술샘 없었으리라 하늘과 땅이 술을 한결같이 사랑하니 애주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청주는 성인에 비하고 탁주는 현인과 같다네 성인과 현인을 이미 마셨거늘 하필코 신선이 되길 원할소냐 석 잔이면 대도에 통하고 한 말이면 자연에 합친다 오직 술꾼만이 취흥을 알 것이니 아예 맹숭이겐 전하지 말지어다
月下獨酌(월하독작) 3
삼월 함양성은 봄을 맞아 백화만발하여 비단 같구나 누가 봄을 외로히 서글퍼 하나 봄을 맞는 술잔을 마땅히 들게 인생에 빈부와 길고 짧음은 일찍이 조화로 마련됐느니 한잔 술에 생사가 동일해지고 인생 만사 가리기 어려우니라 취하여 천지도 잃고 올연히 쓰러져 자며 내몸이 있는 줄 나도 모르니 즐거움 더할 나위 없도다
月下獨酌(월하독작) 4
답답한 수심 천만갈래니 삼백잔 술을 마셔야 하네 수심 많고 술은 적으나 술잔 드니 수심 사라져 술을 성인이라 부른 까닭 알겠노라 술이 거나하니 마음 절로 열리노라 수양산에 숨은 백이 숙제나 쌀뒤주를 노상 비운 안회나 당대에 허명 남겼자 무엇하랴 게 가게 안주 신선의 선약이요 쌓인 술찌끼 봉래산을 옮겨 놓은 듯 이제 마냥 술마시고 달과 함께 대 위에 취하리
― 장기근 편역, 태종출판사, 1975
이백은 자(字)가 태백(太白)입니다. 중국 당나라 현종과 숙종 때의 시인이지요. 하지장은 그의 시에서 이백을 하늘에서 귀양 온 선인으로 불렀습니다.
“천재와 광인을 가름하는 선은 명백히 긋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나는 본래 초나라의 미치광이’라고 이백은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참모습을 한마디로 파악할 도리는 없지요. 자유분방한 낭만주의와 격렬한 현실주의를 동시에 지녔으며, 탈속적 도가사상과 경세제민의 유가사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고매한 이상과 원대한 정치적 포부를 품고, 뛰어난 학문과 재능을 지니고, 끓는 듯한 정열을 비추어 열렬하게 현실참여를 희구했다가도, 홀연히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도통하고자 했던 이가 이백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모순투성이의 인간이요, 미치광이라고도 하겠습니다.”(장기근)
좋은 시가 다 그렇듯 “소리를 잡되 그림을 내치지 않고, 그림을 잡되 소리를 배제하지 않아야 합니다. 소리와 그림을 함께 붙잡아 그것으로 문채(文采)의 지극함을 삼아야합니다. 시는 문채와 성운(聲韻)이 조화롭게 어울릴 때 위대해집니다. 유협은 문심조룡에서 이상적인 문장으로 풍(風)과 골(骨)과 문채의 3박자를 이야기했습니다. ‘풍’이 작가의 사상과 감정, 기질적인 것의 기운생동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면, ‘골’은 몸을 지탱하게 하는 뼈대로 표현의 짜임새와 체계를 바로 세워줍니다. 풍과 골이 살아 있어야 글에 생기가 있고, 동시에 수사의 화려한 ‘문체’가 빛이 납니다. ‘채(采)’란 사물에 감응하는 느낌의 총체입니다. 즉, 풍과 골을 갖춰 오직 빛나는 문채로 높이 날아오를 수 있어야만 문장의 봉황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장석주,『상처 입은 용들의 노래』) 月下獨酌(월하독작) 네 편의 시야말로 ‘풍, 골, 문채’ 3박자를 모두 갖춘 절묘한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달 아래 홀로 술 들며’라는 제목부터 얼마나 낭만적입니까. “꽃 속에 술단지 마주 놓고” 불콰하니 대취하여 환한 보름달 아래 용천검을 휘두르며 검무를 추는 시인 이백이 눈에 선합니다. 비록 천하를 얻진 못했지만 “내가 노래하면 달님은 서성대고 /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 흔들대네”에 드러나듯, 술과 꽃, 보름달과 그림자가 시 속에 혼연일체 된 모습이야말로, 대붕이 하늘에 오르는 웅혼한 경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기운생동의 ‘풍(風)’이 있는가 하면, 죽어서도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길” 소원하는 정신의 ‘골(骨)’이 있고, 사물에 접신된 문채(文采) 또한 기막힙니다.
저는 젊은 날 이백의「月下獨酌(월하독작)」에 나오는 그대로, 보름달 아래 아리따운 처녀를 끼고 꽃밭 속 술에 취해 밤늦도록 덩싯덩싯 춤추며 좋아한 기억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특히「月下獨酌(월하독작) 2」를 무척 탐했는데, “하늘이 술을 사랑않으면 / 하늘에 술별 없었으리라 / 땅이 술을 사랑않으면 / 땅에 술샘 없었으리라 / 하늘과 땅이 술을 한결같이 사랑하니 / 애주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라는 구절을 외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고성방가에 두주불사했습니다. 이 때 저는 꼭 시인이 되면, 이백의「月下獨酌(월하독작)」에 화답하는 멋진 시를 짓겠노라고 천지신명께 원(願)을 세웠습니다. 그 꿈은 마침내 10년 후 1998년 봄에야 이루어집니다.
여자 엉덩이만한 둥근 보름달이 떴다 내 오늘, 법이산 위에서 그 엉덩이 밟고 올라 쑤-욱 구름장 위로 고개를 내밀면, 껄껄껄 시선 이백이 하늘 위서 손을 뻗는다 이렇게 우리는 초저녁 북극성에 걸터앉아 술상이 나오기 전 한 수 시를 짓고, 지구로 떨어지는 별똥을 바라보며 눈앞에 귀찮게 아른거리는 우주선 파리채로 후리고, 참 고운 몸매의 샛별이 웃는 듯 床(상)을 받쳐들고 나오면, 안주론 별자리 황소를 굽고 술은 북두칠성 국자로 알콜 성단에서 뜨고, 어린것들은 조랑말자리 별에 태워 성도를 한바퀴 천천히 돌게 한다 그렇게 한밤중 거나하게 취하면, 우리 둘은 어깨를 끼고 은하수 강가에 배를 띄우는데, 이백은, 뱃머리서 월하독작을 읊고 난, 취흥에 겨워, 저 이쁜 달 엉덩이를 힘껏 '철썩' 때린다 그러면, "으응" 하고 잠 덜 깬 웬 여자 볼멘소리가 방 한구석에 자늑자늑하다
― 김동원,「보름달」 ―시선 이백의「월하독작月下獨酌」에 답하여. 전문
제게 있어 대구 수성 못은 참혹했던 투병시절의 외로움을 달래준 연인과도 같은 매혹적인 볼륨의 미학 공간입니다. 4만평 가득 물로 채워진 연못 둘레를 아침, 점심, 저녁 산책을 무려 5년 간 했습니다. 흰 눈이 퍼붓던 법이산에 올라서서 바라본 겨울 새벽 야경에 비친 수성 못은 한 폭의 진경산수화였습니다. 봄밤 벚꽃 핀 환한 보름달과 포장마차에서 새어나온 불빛이 바람에 흔들려 온갖 형상으로 물속에 일렁거리면, 저절로 제 입에서는 이백의 저「月下獨酌(월하독작)」이 흥얼흥얼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극도로 아픈 몸은, 상대적으로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을 꿈속처럼 신비롭게만 채색했습니다. 그날도 물과 빛과 꽃이 뒤엉켜 소곤거리는 듯한 환청과 환시를 느끼며, ‘만약 내가 죽어 저 광활한 우주로 돌아간다면’ 하고 주검을 상상하는데, 불현듯 시가 악보처럼 둥 둥 둥 떠오는 것입니다. 그 길로 집으로 달려가 4년의 퇴고를 거치며 완성한 시가 바로 졸시「보름달」입니다. 저는 그 때 빛의 속도보다 인간 생각의 속도가 더 빠르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이해했습니다. 단번에 시적 상상력 하나로 북극성에 뛰어올라 광대무변한 우주 별들을 구경했으니까요. 그날 제가 느낀 영감의 황홀경은 이루 형언할 길 없습니다. 육체의 오르가즘이요, 정신의 카타르시스였습니다. 마치 우주와 저와 이백이 실제 은하수의 바다에 노니는 물아일체경의 세계였습니다. 그날 밤 전 오로지 상상력 한 놈만 데리고, 은하수 강가에 배를 띄우고 시선 이백의 술잔을 공손히 받으며, 참 예쁜 달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뱃머리에 앉아 호호탕탕 대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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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36도 염천에 김동원 교수님 수고 하셨습니다.
강의실을 가득 채워주신 문우님들 땀 많이 흘리셨죠?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지금껏 김동원 시인의 <보름달>처럼 스케일이 큰 시를 보지 못했네.
문장마다, 문장과 문장 사이 은하수가 흐르네.
아, 내 일찌기 이백과 임제의 현신이라 생각했거늘
내 잠시 이렇게 좋은 술벗을 잊고 지냈더니
오늘밤 <월하독작>은 내가 대신 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