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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참풍수지리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한성
박사공파(博士公派) 약사(略史) |
박사공파는 조선 시대에만 상신(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5명, 대제학 1명, 문과급제자 152명을 배출하였다. |
박사공파는 고려 국자박사(國子博士 지금의 국립대학교 교수) 강계용(姜啓庸) 선조님을 파시조(派始祖)로 모신다. 박사공은 1274년(고려 원종 15년) 통신사 도독 김방경(金方慶)의 서장관으로 여몽(麗蒙)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일본을 다녀왔다. 아버지 박사공을 따라 함께 일본에 갔던 내급사공 인문(引文) 선조님은 그 뒤에 또 한 차례 여몽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합류하였으나 풍랑을 맞아 생사의 고비를 몇 차례 넘기고 돌아와 후손들에게 벼슬길에 나아가지 말라고 훈계하고 인문(引文) 선조님도 더 이상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아 관직이 내급사에 그쳤다. 조선 초 하연(河演) 선생이 지은 진양 하씨(河氏) 경태보 발문에 하복야(복야는 정승급 관직)와 교우한 기록이 있는 걸 보아 고향에서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한 듯하다. 박사공 손자 사첨(師瞻) 선조님은 감찰어사를 지냈기 때문에 후손들을 어사공파라 불렀으나 지금은 박사공파에 흡수되어 박사공파라 부른다.
박사공파 중흥(中興)의 기틀을 이룩한 문경공(휘 군보) 박사공의 5세손 문경공 군보(君寶) 선조님이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좌시중을 역임하면서 박사공파 중흥(中興)의 기틀을 이룩하였다. 문경공의 두 아들 모두 재상급에 올랐다. 장남 시(蓍) 선조님은 문하찬성사를 지내고 공목(恭穆)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둘째 아들 서(筮) 선조님은 좌의정에 올라 양희(良僖)란 시호를 받았다. 이러한 기록은 조선왕조 실록에도 실려있다. 특히 공목공의 다섯 아들 중 첫째 회백(淮伯) 선조님은 고려에서 정당문학, 대사헌을 지내고 조선 개국 후 동북면도순문사 (東北面都巡問使)에 올랐으며, 성리학에도 밝았다. 후손들은 공의 호를 따서 통정공파(通亭公派)라 부르며, 둘째 아들 회중(淮仲) 선조님은 보문각 대제학을 지내고 역시 후손들이 공의 호를 따서 통계공파(通溪公派)로 부르는데, 이 분들의 후손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인물이 나왔다. 막내 아들 회계(淮季) 선조님은 공양왕 사위였다.
통정공의 넷째 아들 석덕(碩德) 선조님은 세종대왕의 동서로서 개성유수, 지돈령부지사(知敦寧府事) 등을 지냈으며 시호는 대민이고 시와 글씨에 능했다. 대민공의 아들 희안(希顔), 희맹(希孟) 형제 선조님은 통정공파의 대표적 인물로 꼽는데, 희안 선조님은 세종 23년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 직제학이 되어 정인지, 성삼문 등과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다. 뒤에 단종 복위에 연루되었으나 "참으로 현사(賢士)이니 죽이지 말고 중용하라"는 성삼문의 변호로 화를 면하고 뒤에 호조참의를 지냈으며 공의 호를 따서 인재공이라 부른다. 인재공은 시서화삼절 (詩書畵三絶)이라 불려질 정도로 이 방면에 있어 당대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동생 희맹 선조님 또한 당대의 문장가이자 서화가로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世子賓客)이 되고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거쳐 좌찬성에 올랐으며 시호는 문량이다.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맹경(孟卿) 선조님은 인재공의 4촌 형이다. 연산군 때 우의정을 지낸 귀손(龜孫) 선조님은 문량공 희맹 선조님의 아들이며 중종 때 대제학을 지낸 혼(渾) 선조님은 영의정 강맹경 선조님의 종손자이다.
통계공 맏증손 자평(子平) 선조님은 예종 때 대사간을 지냈으며 공의 현손 사상(士尙) 선조님은 선조 때 우의정을 지냈다. 우의정공 사상(士尙) 선조님의 둘째 아들 진흥군(晉興君) 신(紳) 선조님은 선조 때 평난공신(平難功臣)에 오르고 이조, 병조판서를 거쳐 중추원사를 지냈다. 셋째 아들 인(絪) 선조님은 왕자사부(王子師傅)를 거쳐 임진왜란 때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오르고 진창군(晋昌君)에 봉해졌다. 진흥군 신(紳) 선조님의 둘째 아들 홍립(弘立) 선조님은 5도 도원수로 정묘호란의 주역으로 나라의 위기를 막았다. 특히 인(絪) 선조님의 후손은 고종 때에 와서 준흠(浚欽), 시영(時永), 문형(文馨), 난형(蘭馨), 우형(友馨), 국형(國馨) 등 판서급 인물을 배출해서 명가로 꼽힌다. 이 밖에 인조 때 화포술(火砲術)을 전하고 도승지를 지낸 홍중(弘重) 선조님은 우의정을 지낸 사상(士尙) 선조님의 종손자이다.
통계공의 증손자 참판공 징 선조님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공신록에 오르고 강원도관찰사, 예조참판 등을 지내고 지중추부사를 역임했으며 특히 후손 중 33명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7대손 흡(恰) 선조님은 그 유명한 태백오현 중에 한 분이며 11대손 유(游) 선조님은 기로소에 들어 가는 영예를 얻었다. 일부 후손들이 경북 지방에 정착하며 문벌을 떨쳤는데. 통계공의 14대손 하규(夏奎), 진규(晉奎) 형제 선조님은 나란히 대사간을 지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이 문중에서 대법관 신욱(信旭) 등 사법고시 합격자가 많아 사회 중추적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
* 박사공파대종회에서 1세 박사공 : 계용(啓庸). 2세 급사공 : 인문(引文). 3세 어사공 : 사첨(師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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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 |
5 세 |
6 세 |
7 세 |
8 세 |
9 세 |
비 고 |
대장군파 |
재신공파 |
여은공 |
대사간공 |
경의(敬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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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사공- 말동(末同) |
상호군-빈/부사과 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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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령공 |
부사직- 예(禮) |
승경(承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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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훈랑- 순(順) |
상의/상희/상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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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공- 흡(洽) |
계좌/계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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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성군파 |
직장공 |
상호군공 |
이인(以仁)/이의(以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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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사 |
참의공 |
참의공- 귀령(龜令) |
참의공-위봉(渭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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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군파 (진원군) (4) |
문경공파 (5) |
공목공파 (6) |
통정공파 |
장령공파 |
군수공파-자신(子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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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감공파-자의(子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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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공파-자보(子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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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직공파-자검(子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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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령공파 |
문경공파-맹경(孟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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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공파-숙경(叔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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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공파- 진덕(進德) |
민(敏)/치(致)/미(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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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민공파 |
인재공-희안(希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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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량공파-희맹(希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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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공 희증(希曾) | ||||||
감찰공파- 순덕(順德) |
희명(希明)-풍헌(豊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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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공파 (7) |
소윤공파 |
대호군파-휘(徽) |
별표참조 | |||
정낭공파-윤(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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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공파-혜(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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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판공파 (8) |
영선군파-이찬(利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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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공파-이인(利仁) | ||||||
별좌공파-이성(利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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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공파-이경(利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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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공파-이순(利順)(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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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서공파-이행(利行) |
별표참조 | |||||
생원공파-이흥(利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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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파-이온(利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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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공파-이공(利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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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공파- 안명(安命) |
사성공 순(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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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공파 |
의(毅) |
응형/응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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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신공파 |
효손/효곤/중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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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원군파 |
염(렴)/서우(胥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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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공파 |
좌랑공-책(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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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정공파-전(詮) |
집의공-신덕(信德) |
현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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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판공파-주(籌) |
사정공-대생(帶生) |
곤(崑)/윤(崙)/암(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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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공-서생(瑞生) |
계종(繼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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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군파-여(餘) |
헌납공-명덕(明德) |
직장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