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와 자서전 문화
우리는 흔히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카사노바나 돈 후안을 꼽는다. 돈 후안은 문학이나 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설 속의 인물인 반면 카사노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실존인물이다. 그의 화려한 여성편력은 육체적 향락이라는 도덕적 타락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여성들은 진정한 신사를 기다린다는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카사노바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말년에 쓴 회상록 ‘내 생애의 역사’라는 책이 출판되면서부터 이다. 그의 회상록은 돈벌이를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일생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치부를 아무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그래도 차마 당대에서는 이를 공개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자신의 명예보다는 자신과 염문을 뿌린 귀부인들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의 회상록은 유언에 따라 120여년이 지난 증손자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햇빛을 보게 되었는데 이 책 하나 만으로도 그는 유명인물이 되었고 한때는 이를 흉내 내려는 풍조도 있었을 정도이다. 그는 여성편력의 대가, 바람둥이, 사기꾼으로 회자 되지만 실제로는 지식인이자 문학가이며 외교관과 행정관리등 다양한 경험의 일생을 산 인물이다. 그는 죽을 때 까지도 자신의 이름이 역사에 남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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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베네치아 태생으로 젊은 시절에는 성직자가 되었으나 어린 자매와 또 다른 유부녀와의 성 추문에 휘말려 재판을 받고 탄식의 다리를 걸어 감옥에 갇힌다. 지금도 베네치아에 가면 카사노바가 건넜던 탄식의 다리가 관광명소가 되어 있는데 이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탄식의 강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으로 생각된다. 로마신화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차례로 건너야 하는 강이 있는데 두 번째로 건너는 강이 바로 탄식의 강이다. 사람의 영혼이 생전의 악행을 후회하는 것처럼 죄수들은 탄식의 다리를 건너며 인생의 회한에 잠겼을 것이다.
그러나 명석한 두뇌와 자유분방한 성격의 카사노바는 탈옥을 택했고 그 일로 인해 일생을 유랑하며 살게 된다. 후일 여행가 또는 모험가로 불리게 되었지만 그것은 결과론적인 수식어일 뿐 평생을 유랑할 수 밖에 없는 탈옥수라는 운명이 그렇게 만든 셈이다.
회상록에 따르면 그는 파리. 런던. 마드리드. 베를린 등을 전전했고 그가 만난 인물은 국왕에서부터 볼테르, 루소등 사상가와 사교계의 귀부인등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카사노바는 회상록 외에도 소설‘20일 이야기’를 써서 현대 공상과학소설의 원조라 일컫는 ‘해저 2만리’의 작가 질 베른 문학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만일 카사노바가 없었다면 질 베른도 그 영감을 얻지 못했을 것이며 질 베른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공상과학소설이나 우주를 소재로 한 대형 SF 영화가 탄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카사노바는 현대 과학문명을 발전시키는데 숨은 공헌자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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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쓴 회상록 때문에 후일 호색한으로 불리우게 되었지만 자기 인생을 발가벗긴 글을 남겼다는 점에서는 존경할 만하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참회한다는 것은 고귀한 인간정신과 진실을 추구하는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했던 그 누구도 일생을 살아오는 동안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솔직하게 고백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자서전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적인 “명상록”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꼽힌다. 이 두 사람의 자서전은 지적이고 철학적인 성찰이 뛰어나 철학이론으로도 손색이 없으며 문학성이 뛰어나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가 되기 전에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였으며 명상록은 주로 국외 원정시 전쟁터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일명 참회록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자기 죄를 진심으로 참회하고 신에게 구원을 기원하고 있다.
이에 비견되는 자서전에는 루소의 참회록이 있다. 루소는 이 책에서 적나라한 자기 고백과 자아의식을 뛰어난 상상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루소는 사상가임에도 철학적 논리전개 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운 서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근대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적 작품이 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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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성장과정을 회고하고 정신적. 지적발전을 기록한 전기다. 자신의 생애를 재조명함으로써 그것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보다 깊이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삶은 그 봉우리가 높을수록 골짜기 또한 깊다. 아니 깊은 골짜기를 지나지 않고서는 결코 높은 봉우리에 오를 수 없다. 진정한 자서전이라면 봉우리의 빛나는 햇살보다는 골짜기의 어두운 면에 대한 자기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시대에 쓰여진 대부분의 자서전은 자신의 과오나 인생에 대한 진솔한 고백 보다는 실현 불가능한 업적을 쌓아올린 영웅담 일색이다. 사람은 누구나 강점과 약점이 있게 마련이고 어떤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인생의 정도로만 걸어가고도 한 분야의 최고봉에 올랐다는 것은 위선에 불과하다. 20세기 최고의 미술가 피카소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에 넋을 잃고 있을 때에 어린아이의 눈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하였으며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또한 예술은 사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특히 정치와 기업은 죽느냐 사느냐의 정글의 법칙이 작용한다. 정글에서 도덕적이고 정당한 방법만 쓰고도 살아 남았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며 진실이 아닌 자서전을 왜 써야 하는지 의문이다. 그것은 결코 도덕적이지도 않고 성공해 가는 과정의 정당성도 발견하기 어렵다. 이는 그렇게 쌓아 올린 인생의 부귀영화가 과연 자신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은 결과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제는 단지 돈 벌이만을 목적으로 자신의 성 스캔들까지 폭로하는 세태이고 보면 인간의 추악함이 어디까지 이를지 한심하다. 옛날에는 명예를 가장 소중히 하였지만 오늘날은 돈을 위해서라면 명예정도는 가볍게 팔아먹는 시대이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대필까지 하여 돈벌이에 나선다. 더 나아가 이를 사업으로 영위하는 업체까지 생겨났을 정도이니 과연 이러한 자서전 문화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진정한 자서전은 성공의 외형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불의와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고뇌하는 내면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인터넷신문 부산넷뉴스 김상호 컬럼 게재 B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