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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이 만들어 낸 和合과 靈感의 大敍事詩
김남수 / 미술평론가
자연은 인간에게 오묘한 조화와 신비 속에 감춰진 영험의 세계가 실존한다. 무릇 인간들은 자연의 신비를 깨치기 위해 역사 속에 태어나 역사를 만들고 역사와 더불어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숙제를 풀기 위해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갈 것이다. 유산 민경갑의 예술은 최소한의 언어로 압축하고 축쇄(縮刷)한 영감으로 빚은 형상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장자(壯者)는 "자연을 관조하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기(氣)로 얻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그의 그림에도 비유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의 그림에는 세상의 속기도, 장황하고 잡다한 설명이나 불필요한 췌육(贅肉)도 말끔히 씻어버린, 작가가 희구하는 진수(眞髓)와 순도 높은 화혼(畵魂)만 농축되어 있다. 오늘의 대서사시적(大敍事詩的) 그의 회화세계가 그만의 독자적인 화맥(畵脈)으로 우뚝 선 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반복 속에 세우고, 허물고, 도전과 시련을 겪으면서 숱한 변신을 통하여 유산만의 자화상(自畵像)을 만들어 낸 대 결정체(大 結晶體)인 것이다. 그는 자연과 말 없는 교감을 하면서 화합과 詩情으로솟는 영감(靈感)을 작품으로승화시키고 있다.
그의 작업노트에 기록된 한 구절을 인용하면 '나무 잎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좋고,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 또한 정겹다. 이름 모를 산새들의 정다운 노래 소리와 누구 듣는 이 없어도 소리 높여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도 사랑스럽다. 이른 새벽 어느 산사에서 흘러나오는 들릴 듯 말 듯 은은하게 울리는 풍경소리와 스님의 무심하게 두드리는 목탁소리는 자연에서 나는 소리와 더불어 화음을 이루며 신비감을 한층 더 해 준다. 그 어느 악성(樂聖)이 있어 이렇게 고요하고 장엄하며 감동적인 소리를 연출해 낼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며, 자연을 찬양하는 대서사사적인 소리의 향연인 것이다. 이렇게 감동이 솟구치는 전율 앞에 아무런 생각 없이 붓을 잡고 소리의 흔적들을 화면 위에 옮겨 놓는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조차 놓칠 수 없기에... 나는 오늘도 붓을 놓지 못 하는가 보다'라고 적고 있다.
이는 주지주의(主知主義)가 만들어낸 서사시라기 보다는 감성적인
울림이 만들어 낸 서정적인 감각시요, 작가의 폐부(肺腑)에서 솟구치는 절규다. 소동파가 설파한 '화중유시'나, '시중유화'의 경지가 아닌가. 창작의 세계는 가시적인 외연의 세계와는 큰 인연을 갖지 못 한다. 피사체로서의 자연은 위대한 연주자의 촉매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유산 민경갑의 예술세계는 무한 시공 위에 유영(遊泳)하는 자유의 미학이다. 표현의 기법과 방법론에서 때로는 표현주의 적인 양식으로 때로는 초구상주의적인 예술양식으로 표출되고 있지만 그가 추구하는 구극(究極)의 목적은 인간주의 실현에 있다.
그가 즐겨 소재로 다루고 있는 '山'은 지난 50년 동안 엄청난 변화를 거듭해 왔다. 소재주의적 경향으로 출발한 회화세계가 추상표현주의적인 현대적 감각의 화풍으로 변신을 했고, 다시 구상적 요소의 이미지화로 변주를 했다. 다시 말해 오늘에 와서 디테일한 숲이나 시냇물, 계곡이나 나무와 새, 바람에 산들거리는 꽃이나 창공에 떠 있는 구름도 그 모두가 화면에서 지워졌다. 육중하고 말없는 산의 형상과 이미지, 그리고 은유적인 메타포 속에 이토록 많은 물상들은 흡수되고 용해되어버린 것이다. 이른바 그의 예술이 완성의 경지에 다다른 시점이라고나 할까. 그의 화폭 속에는 인간의 황홀경과 눈부신 우주의 축제가 전개되고 있다. 시각이나 언어로서의 설명이 아니라 심오한 환상의 감각의 세계가 현란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치열하게 몸짓하며 절규하는 영혼의 세계인 것이다. 그의 예술의 특징을 지적해보면 형상이 보여주는 함축미와 내재율, 화면의 환상적인 공간분할, 현란한 색점의 배열과 한국의 빛깔 등 형이상학적 묘한 뉴앙스가 화면을 수놓고 있다. 결코 단순구성의 물리적인 현상세계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씨는 그의 평문의 한 구절에서 '유산의 그림에는 그런 황홀한 환상이 넘친다. 이것은 그림이기 이전에 도가의 세계이고 선의 세계이다.
거기에 이미 현실은 없다. 오직 그의 의식과 미적 감수성에 의해 만들어진 조형적인 환상만이 존재한다. 세상과 내가 혼연일체가 되는 완벽한 초월적인 의식을 유도하는 것이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이는 그가 화가로서의 완성의 경지에 가 있음을 시사하는 글이다.
지금 파리 유네스코 Salles Miro 전관에서는 민경갑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예술의 본 고장이요, 세계문화예술의 중심 축을 이루고 있는 파리에서 한국미술이 유산을 통하여 집중적으로 조명된다는 것은 감격적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작품의 주제로 설정하고 있는 '자연 속으로(Vers la Nature)는 그의 50년을 결산하는 큰 의미가 주어지고 있다. 한국화단에서 독보적인 조형언어를 구사하면서 유산 특유의 화맥을 형성해 온 그는 한국미술을 집대성한 대표적인 원로화가요, 산 증인이기도 한 것이다. 이번 파리전은 작품의 주제와 정신, 표현의 방법과 기법 등에서 새로운 경지를 열고 있으며, 한국미술의 진수를 세계시장에 널리 보여주는 민간차원의 큰 지평이 되고 있다. 또한 선진국에서 작가의 반세기를 총결산하는 기념비적인 큰 의미가 주어지고 있다.
그는 1933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미대를 나와 영남대, 동덕여대, 원광대 등에서 교수를 지냈다. 국전 초대작가를 역임했고 심사위원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예술문화상과 서울시 문화상, 현재 예술원 회원으로 있으면서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유산 민경갑의 '자연 속으로' 연작
자연에서 발산하는 소리의 향연
신항섭 / 미술평론가
바로 눈앞에 높다랗게 누워 있던 현실의 산이 별안간 일어선다. 그리고 산은 거인의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더니 종적을 감춘다. 무심히 산을 따르던 구름은 갈 곳을 모르고 허공을 맴돈다. 그런데 잠시 후 산이 하나 사라지고 난 하얀 자리에 이제껏 본 일이 없는 간결한 산 하나가 불쑥 들어선다. 산을 되찾은 구름은 기쁜 듯이 하얀 꽃을 무수히 쏟아낸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선의 피리소리가 하얀 종이 위에 꽃들을 받아놓는다.
유산 민경갑은 2년 전까지 이런 그림을 그렸다. 어느 특정 물상이 아닌, 대자연 그 자체와 마주한 채 관조함으로써 얻어지는 이미지를 종이 위에 옮겨 놓는 식의 그림이었다. 산은 그에게 실제적인 산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산은 대자연의 숨결을 감지할 수 있는 생명의 원형이자 조형의 본보기이기도 했다. 그가 오래도록 산의 이미지에 집착해온 것은 생물의 본거지라는 그 장엄함 및 엄숙성과 무관하지 않다. 생명의 순환을 어김없이 실천하는 자연의 법칙을 조형적인 어법으로 전환한다는 발상이야말로 무위자연을 궁극으로 하는 동양의 회화사상과 일치한다.
산의 이미지를 통해 찾아낸 것은 생물에 요구되는 삶의 조건으로서의 그 유기적인 속성이었다. 즉, 모든 존재가 없는 듯이 존재하는 그 포괄적인 존재방식을 지지했다. 그래서인지 실루엣과 같이 아주 단출한 산의 이미지 이외에는 형체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 대신에 아무 것도 없는 듯한 실루엣 속에는 무수한 생명의 원소들이 하나의 유기체의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것에 실체의 본질을 담는다는 의식과 거기에 끌리는 행위 그리고 그 결과
결과로서 유기체의 덩어리와 같은 이미지가 남는다. 이처럼 그의 그림은 자율적인 생명의 작용처럼 자기복제의 원리를 통해 개체의 분열 및 집합이라는 증식의 논리로 채워지는 유기체의 공간이다.
그의 '자연속으로' 연작은 그 이미지가 아주 명백하고 선명하면서도 특정의 물상과 합치되지 않는 비구상의 세계를 지향한다. 형태를 구체화시키면, 다시 말해 어떤 특정의 이미지로 형태를 규정하면 이미 그 본질로부터 벗어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려는 것인가. 감상자가 누릴 수 있는 상상의 공간을 박탈할 수 있다는 자각이야말로 그가 구체적인 형태를 버리는 이유일 것이다.
최근의 작업에서 산을 버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신에 산을 대자연에 귀속시키지 않고 하늘의 아들로 만들어버렸다. 즉, 그 자신의 회화적인 영감을 지배하던 산의 이미지를 우주로 향하는 무한공간에다 분해시켰다. 이제 그에게 산은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산은 여전히 그 자신의 회화적인 상상력의 모체가 되고 있다. 산은 이제 대지, 즉 대자연의 상징적인 언어가 되어 있다. 그 산의 이미지는 대지로부터 홀가분하게 승천한다. 대지를 떠난 산의 정령은 무한공간인 하늘, 즉 우주로 눈부시게 확산한다.
바람을 따라 나부끼는 무수한 손들이 하늘을 부른다. 그 손끝에 감응하는 찬란한 하늘의 빛들이 꽃가루처럼 부서져 내린다. 그것은 이미 지상의 노래가 아니다. 회화적인 순수의 빛깔로 치장한 하늘의 요정들이 화답하는 예술의 찬가인 것이다. 지상으로부터 발단한 하얀 빛깔이 잘게 쪼개지면서 우주의 품으로 파고든다. 너울너울 춤추듯 무수한 손들로 변환하는 하얀 빛깔들의 손짓은 우리로 하여금 신비로운 우주의 축제로 빠져드는 듯한 감흥으로 이끈다. 이것은 분명히 회화적인 환상이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여흥으로 빠져드는 그 황홀경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림을 보는 동안 나의 존재를 잊어버린 채 그 유기적인 생명의 환희에 주저 없이 동화한다. 그렇다. 그의 그림은 지상을 떠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정신과 감정의 그 자유로운 항해를 보장하는 것이다.
유산의 그림에는 그런 황홀한 환상이 넘친다. 이것은 그림이기 전에 도가의 세계이고 선의 세계이다. 거기에 이미 현실은 없다. 오직 그의 미의식과 미적 감수성에 의해 만들어진 조형적인 환상만이 존재한다. 세상과 내가 혼연일체가 되는 완벽한 초월적인 의식(儀式)을 유도하는 것이다. 일체의 논리적인 의식세계를 극복하는 초월적인 세계만이 전개된다. 한마디로 그의 그림은 지상과 하늘을 잇는 가교로서의 비전을 제시한다. 지상의 그림으로서의 의미를 떠나 지상과 하늘을 하나로 매개하는 조형적인 장치인 것이다. 동시에 지상의 실상, 즉 육체로부터 분리된 영혼이 하늘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것은 영원을 갈망하는 자유의지의 표상이다. 그의 그림과 마주하다보면 이와 같은 환상에 쉽사리 동화되는 것이다.
한국인은 이러한 환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만장이나 성황당의 깃발은 물론이려니와 창문, 흰옷, 색동, 단청, 살풀이춤, 무당춤 따위의 전통 적인 생활습속과 관련된 것들을 연상하게 된다. 그렇다. 최근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는 그 자신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경험에 영향을 받고 있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잠재의식의 표출이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경험이 합성해낸 이미지들은 구체성을 지지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의식의 항해처럼 그것이 추상이든 비구상이든 자율적인 이미지로 귀결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거기에서 찾아낼 수 있는 형태 또는 색채와 관련한 그 어떤 현실적인 이미지와도 직접적인 대입을 허용한다. 그런가 하면 그 어떤 현실적인 이미지와의 결합도 부정한다. 그가 창조해낸 이미지는 그 자체로서 이미 독립적인 존재인 까닭이다.
비록 그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 그 경험의 근원은 한국인의 오랜 전통적인 삶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에 열거한 생활습속과 관련한 것들은 오늘도 여전히 한국인의 의식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추상적이든 비구상적이든 그가 제시하는 이미지들에 누구나 공감의 미소를 보낼 수 있다.
그의 그림에서 선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우주적인 신비한 이미지를 위해 기능 하는 명쾌하면서도 간명한 선은 이미지의 통일성을 수용한다. 어떤 조형적인 하나의 원리에 순종하는 그 질서정연한 선의 흐름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이미지를 옹호한다. 선의 형태는 거의 직선적인 성향이지만 기하학적인 선의 개념과는 완연히 다르다. 면과 면이 만나는 접점에서 형성되는 자율적인 선인 까닭이다. 색면과 색면이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경계가 그어지는 가운데, 그가 고안해낸 흰색의 깃발 또는 얼음 조각과 유사한 미지의 이미지를 향해 협동한다. 선은 그 미지의 이미지를 우주로 끌어낸 뒤 문득 화면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색채는 어떤가. 수묵을 기본으로 하는 색채는 음양오행사상에 근거한 전통적인 오방정색에 근거한다. 한국인의 삶에 하나의 채색의 원리로 작용하는 오방정색은 색동이나 삼태극 그리고 관혼상제에서 흔히 쓰이는 다양한 원색의 이미지를 하나로 통합한다. 솔직하고 명료한 한국인의 생활감정을 그대로 받아내는 원색은 그의 그림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약속의 메시지이다. 한일월드컵에서 붉은 색이 한국인의 통합된 힘을 이끌어낸 것은 아주 구체적인 실례의 하나이다. 원색은 한국인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힘의 근원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인인 그에게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신비의 대상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극복할 수 있는 신비가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비주의는 샤머니즘이 아니다.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경배의 대상인 것이다. 그는 한국인의 생활전통이 된 동양적인 신비주의를 조형적인 원리로 삼았다. 평면적인 세계, 즉 일루전으로 채워진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그림을 그러한 한계로부터 구원하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그 자신의 내부로부터 탈출하여 지상에 견고한 뿌리를 내린 채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듯한 그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환희의 이미지를 우주에 펼치는 거인의 존재를 보았다. 거인은 무엇인가.
그는 이에 대한 답을 내놓고 있다. 그가 기대하는 거인의 꿈은 이미 그 자신의 작품 속에서 실현되고 있다. 전통회화의 현대화라는 시대적인 요청에 아주 선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전은 그 자신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옹호해온 예술적인 신념에 의해 지워지지 않을 하나의 큼직한 거인의 발자국으로 남겨지게 됐다. 오늘 우리가 볼 수 있는 그의 작업은 동양적인 회화사상이 일구어낸 경이로움의 하나인 것이다.
COVER ARTIST
大自然이 만들어 낸 和合과 靈感의 大敍事詩
김남수 / 미술평론가
명화를 그려내는 화가는 세계적인 화성(畵聖)으로 손꼽힌다. 세계적인 화성들은 각기 저마다 창조적인 주제와 양식을 가지고 있다. 명화를 그린 화가들을 보고 그 후학들은 일백년쯤 후에 미술사적인 인물로 높이 평가하면서 영원히 기린다. 그토록 명화가 탄생하기에는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시사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오묘한 조화와 신비 속에 감춰진 영험의 세계가 실존한다. 무릇 인간들은 자연의 신비를 깨치기 위해 역사 속에 태어나 역사를 만들고 역사와 더불어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숙제를 풀기 위해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갈 것이다.
유산 민경갑의 예술은 최소한의 언어로 압축하고 축쇄(縮刷)한 영감으로 빚은 형상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장자(壯者)는 "자연을 관조하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기(氣)로 얻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이 작가의 그림에도 비유되는 말이다. 그의 그림에는 세상의 속기(俗氣)도, 장황하고 잡다한 설명이나 불필요한 췌육(贅肉)도 말끔히 씻어버린, 작가가 희구하는 진수(眞髓)와 순도 높은 화혼(畵魂)만 농축되어 있다. 오늘의 대서사시적(大敍事詩的) 그의 회화세계가 그만의 독자적인 화맥(畵脈)으로 우뚝 선 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반복 속에 세우고, 허물고,
도전과 시련을 겪으면서 숱한 변신을 통하여 유산만의 자화상(自畵像)을 만들어 낸 대 결정체(大 結晶體)인 것이다. 그는 자연과 말 없는 교감을 하면서 화합과 詩情으로 솟는 영감(靈感)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의 작업노트에 기록된 한 구절을 인용하면 '나무 잎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좋고,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 또한 정겹다. 이름 모를 산새들의 정다운 노래 소리와 누구 듣는 이 없어도 소리 높여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도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이른 새벽 어느 산사에서 흘러나오는 들릴 듯 말 듯 은은하게 울리는 풍경소리와 스님의 무심하게 두드리는 목탁소리는 자연에서 나는 소리와 더불어 화음을 이루며 신비감을 한층 더 해 준다. 그 어느 악성(樂聖)이 있어 이렇게 고요하고 장엄하며 감동적인 소리를 연출해 낼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며, 자연을 찬양하는 대서사사적인 소리의 향연인 것이다. 이렇게 감동이 솟구치는 전율 앞에 아무런 생각 없이 붓을 잡고 소리의 흔적들을 화면 위에 옮겨 놓는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조차 놓칠 수 없기에... 나는 오늘도 붓을 놓지 못 하는가 보다'라고 적고 있다.
이는 주지주의(主知主義)가 만들어낸 서사시라기보다는 감성적인 울림이 만들어 낸 서정적인 감각시요, 작가의 폐부(肺腑)에서 솟구치는 절규다. 피사체로서의 자연은 위대한 연주자의 촉매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유산 민경갑의 예술세계는 무한 시공 위에 유영(遊泳)하는 자유의 미학이다. 표현의 기법과 방법론에서 때로는 표현주의적인 양식으로 때로는 초구상주의적인 예술양식으로 표출되고 있지만 그가 추구하는 구극(究極)의 목적은 인간주의의 실현에 있다.
그가 즐겨 소재로 다루고 있는 '山'은 지난 50년 동안 엄청난 변화를 거듭해 왔다. 소재주의적 경향으로 출발한 회화세계가 추상표현주의적인 현대적 감각의 화풍으로 변신을 했고, 다시 구상적 요소의 이미지화로 변주를 했다.
다시 말해 오늘에 와서 디테일한 숲이나 시냇물, 계곡이나 나무와 새, 바람에 산들거리는 꽃이나 창공에 떠 있는 구름도 그 모두가 화면에서 지워졌다. 육중하고 말없는 산의 형상과 이미지, 그리고 은유적인 메타포 속에 이토록 많은 물상들은 흡수되고 용해되어버린 것이다. 이른바 그의 예술이 완성의 경지에 다다른 시점이라고나 할까. 그의 화폭 속에는 인간의 황홀경과 눈부신 우주의 축제가 전개되고 있다. 시각이나 언어로서의 설명이 아니라 심오한 환상과 감각의 세계가 현란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치열하게 몸짓하며 절규하는 영혼의 세계인 것이다. 그의 예술의 특징을 지적해보면 형상이 보여주는 함축미와 내재율, 화면의 환상적인 공간분할, 현란한 색점의 배열과 한국의 빛깔 등 형이상학적 묘한 뉘앙스가 화면을 수놓고 있다. 결코 단순구성의 물리적인 현상세계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지난 2002년 파리 유네스코 Salles Miro 전관에서는 민경갑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예술의 본 고장이요, 세계문화예술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파리에서 한국미술이 유산을 통하여 집중적으로 조명된 것은 감격적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작품의 주제로 설정하고 있는 '자연 속으로(Vers la Nature)는 그의 50년을 결산하는 큰 의미가 주어지고 있다. 한국화단에서 독보적인 조형언어를 구사하면서 유산 특유의 화맥을 형성해 온 그는 한국미술을 집대성한 대표적인 원로화가요, 산 증인이기도 한 것이다. 이 파리전은 작품의 주제와 정신, 표현의 방법과 기법 등에서 새로운 경지를 열고 있으며, 한국미술의 진수를 세계시장에 널리 알리는 민간차원의 큰 지평이 되었다. 또한 선진국에서 작가의 반세기를 총결산하는 기념비적인 큰 의미가 주어지고 있다. 그의 작업의 변화주기를 편의상 4기로 구분한다면 그 1기는 ‘자연과의 조화’ 2기는 ‘자연과의 공존’ 3기는
자연 속으로’ 최근작 4기는 ‘무위자연’으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유산 민경갑 예술양식의 대미를 총정리하는 4기의 예술은 그가 한국성을 추구하려고 하는 사유의 철학과 정신주의가 이 작품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가령 백색을 선호하는 화면의 공간분할이라던지, 주술적인 기복신앙의 형상이나 이미지의 출현, 선황당을 은유법으로 묘사한다던지, 그러면서도 그의 조형언어는 최소한의 축쇄를 통하여 응축하고 감필을 통한 작가가 성취코져 하는 또 다른 위대한 자연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데 우리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다음은 미술평론가 신항섭씨의 평문의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천연 재료를 이용하여 만들어지는 그의 물감은 순도 높은 색상을 제공한다. 색채가 그처럼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경우가 그의 작품 말고 또 있었던가. 검정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어떤 색깔도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듯 맑고 투명하여 그 자체만으로도 시각적인 쾌감은 물론 감정의 정화가 이루어지는 기분이다. 단지 그림과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맑아지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색채 이미지 및 정서는 그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설득력의 하나이다.
- 중략 -
또한 ‘자연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것들로서 산, 소나무 또는 불특정의 나무, 대나무, 바위, 매화, 백련, 천 자락, 불상 따위 등 이들 소재는 단순한 그림의 구성 요소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상징하는 의미를 내포한다. 더불어 구성적인 간결한 윤곽선이나 평면적인 색채 포름으로 변형되거나 변주되면서 자연미라는 하나의 통합된 질서 속으로 편입된다.
자연에서 채택되는 소재들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이들 소재는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아니다. 동양인의 삶을 지배하는 자연사상 또는 생활 철학을 그림으로 용해시키는 기능을 한다. 토속 신앙을 포함하여 음양사상, 도가사상, 불교사상, 유교사상 따위의 전통적인 삶을 지배하는 정신세계를 함축하고 은유하며 상징하는 도구로 이용된다. 이들 소재는 그 어떤 무거운 주제도 아주 경쾌한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소재들의 형태 및 색채가 어떤 식으로 해석되는가에 따라 그림의 내용 및 정서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몇 가지 과정으로 변화되어 왔는데 그 첫째는 자연과의 조화, 둘째는 자연과의 공존, 셋째는 자연 속으로, 넷째는 무위자연이라는 제재가 그것이다. 그가 최근에 명제로 채택한 ‘무위’라는 개념은 인간의 존재성을 비워낸 이미지가 아니라, ‘순수한 자연 상태 그대로 ’를 말하는 것이다. 일체의 감정의 찌꺼기나 의식이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는 자연미의 순수한 원형 또는 그 진면목을 보자는 것이다. 물론 그 순수성은 그 자신의 미적 감각 및 미의식에 의해 걸러진 조형적인 세련미와 함께 한다. 아마도 때묻지 않은 자연의 본래 모습을 가정한다면 다름 아닌 ‘무위’의 상태를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전제 아래 화면은 이전보다 한층 간소하게 처리된다. 설명적인 요인을 줄임으로써 자연의 순수미는 시각적으로 더욱 명쾌하게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위’ 연작은 일체의 기교를 배제한 조형의 순수성을 추구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형태를 압축하여 함축적인 이미지로 귀결하고자 한다. 물론 여기에서 소재들의 이미지는 상징적인 언어로서의 기능을 한다. 동양사상 및 생활 철학을 상징하는 압축된 소재들의 이미지는 도상이나 부호처럼 최대한 단순화되면서 상징적인 언어 체계를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징적인 언어, 즉 단순화된 소재들은 기꺼이 자연 및 조형의 순수성을 위해 봉사한다. 고유의 사실적인 형태미를 희생하여 그가 주재하는 ‘무위’의 세계 그 일원으로 편입하는 것이다.
‘무위’를 통해 도달한 그의 조형세계는 오염된 우리들의 눈과 마음을 말끔히 씻어내는 강렬한 정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대자연에서 추출되는 순수미가 지극히 투명한 색채이미지로 환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투명한 색채이미지는 그 자신의 미의식이 걸러낸, 대자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빛나는 생명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빛나는 생명의 아름다움에 감염되는 기쁨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순수한 아름다움에 속수무책 현혹될 수밖에 없다”라고 정곡을 지적하고 있다.結 論
유산 민경갑의 예술세계는 한국성을 지향하는 독자적인 예술양식과 독보적인 화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가 전달하고 있는 개성주의와 언어는 그의 영험적인 체험의 미학을 통하여 표현주의적인 양식으로 연출되고 있다. 그 수 많은 설명적인 이야기들이 축쇄되고 감필되어 필요한 진수만을 화폭에 남기는 그만의 예술세계는 세계의 예술양식과 공감하고 공존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성에 뿌리를 두고 연마되고 다져진 그의 예술이 세계질서에 편입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 날을 기대해 본다.
민경갑
Min, Kyoung KAB
• 195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 1969 쌍파울로 비엔날레 초대
• 1979 현대화랑 초대 개인전
• 1986 현대한국미술 상황전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 1988 88세계 현대미술제 초대 (국립현대미술관)
• 1995 한국미술'95 질량감전 초대 (국립현대미술관)
• 2002 서울시립미술관개관 기념전 <한민족의 빛과 색> 초대
• 2002 프랑스 파리 UNESCO 초대 개인전
• 2002 한일 국민교류의해 기념 일한현대미술전 (일본 요꼬하마)
• 2004 민경갑전 - 일본미술세계 초대 개인전 (일본 도쿄)
• 2005 한일 현대미전 (일본 후꾸오카)
• 2007 한일 현대미술전 (일본 동경)
• 2008 한중 현대미술전 (중국 베이징)
• 1972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초대작가
• 1974~1979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위원
• 1988 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
• 1988 88서울올림픽 예술위원회 운영위원
• 1988~1989 서울특별시 예술위원회 예술위원
• 1988~1989 서울특별시 시정 자문위원
• 1998 원광대학교 미술대학교수 정년퇴임
• 2000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선출
• 2004 한일 우정의 해 자문위원 (외교통상부)
• 2005 미술은행 운영위원회 초대위원장 (문화관광부)
• 2005 대한민국 미술대전 비구상부문 심사위원장
• 2005 스페인 아르코 주빈국 조직위원회 위원
• 2006 단원 미술제 조직위원회 운영위원장
• 1996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 2001 서울특별시 문화상 수상
• 2002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훈
• 2004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 2007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
• 2009 5.16 민족상 수상
• 현재 : 대한민국 예술원 미술분과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