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재물은 취금헌 박팽년 선생 탄신 6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순천박씨충정공파종친회가 발행하고,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송은석이 지은 [충정공 박팽년 선생과 묘골 육신사 이야기]라는 책의 원고이다. 책의 처음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시간 나는대로 게재토록 하겠다. 강호제현들의 많은 관심과 질책을 기다린다.
1. 남편의 옷과 함께 묻히다, ‘의관장묘(衣冠葬墓)’
혹시 ‘의관장묘(衣冠葬墓)’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말일 것이다. 요즘 학생은 선생님이 칠판에 영어를 쓰면 아무 말 않다가, 한자를 쓰면 기겁한다고 한다. 참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의관장묘’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한자를 한 번 들여다봐야 한다.
‘옷 의(衣)’, ‘갓 관(冠)’, ‘장사지낼 장(葬)’, ‘산소 묘(墓)’
이 한자들을 잘 조합해보면 의관장묘는 ‘옷이나 갓 등으로 장사를 지낸 산소’라는 뜻이 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시신이 아닌 옷이나 갓으로 장사를 지낸다니 말이다. 이번 이야기는 묘골과 파회를 연결하는 고갯길 한 편에 조성되어 있는 ‘의관장묘’에 대한 이야기이다.
박팽년 선생의 둘째 아들 박순과 성주 이씨 부인
1456년[세조 2] 6월, 사육신 사건으로 박팽년 선생의 집안은 부·자·손 3대에 걸쳐 9명의 남자가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보살핌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임신 중이었던 선생의 둘째 며느리 성주 이씨 부인에게서 한 생명이 태어났다. 그는 17년간을 외가인 묘골에서 박씨 성을 지닌 노비라는 뜻에서 ‘박비(朴婢·朴斐)’라는 이름으로 숨어 살았다. 그 뒤 성종 조에 이르러 그는 자수를 했고, 성종은 그에게 하나 남은 귀한 옥이라는 의미로 ‘박일산(朴一珊)’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결국 560년 내력의 묘골 박씨의 역사는 바로 이 박일산[박비]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다.
이처럼 끊어질 뻔했던 가문의 대가 다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둘째 며느리였던 성주 이씨 부인의 공덕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의 딸과 성주 이씨 부인의 아들을 맞바꿔 남몰래 길러준 이름 모를 그 여종의 공덕 또한 대단하다 할 것이다. 어쨌든 대구 관아에서 노비 생활을 하던 성주 이씨 부인은 사후 자신의 친정이자 아들의 고향인 이곳 묘골에 묻히게 된다. 이때 성주 이씨 부인은 또 한 번 부덕(婦德)을 발휘한다. 바로 자신이 묻힐 자리에 남편의 의관(衣冠)과 함께 묻힌 것이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사육신 사건 당시 성주 이씨 부인이 한양에서 대구로 내려올 때 남편의 의관 일부를 챙겨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참고로 당시 참형을 당했던 박팽년 선생 가문의 3대 9명의 남자 중 지금까지 묘가 남아 있는 경우는 ‘박중림[세종]·박팽년[서울]·박순[대구]’ 세 사람 뿐이다. 이 중 박중림·박팽년 부자의 묘에는 체백이 묻혀있지만, 박순의 경우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체백 대신 그의 의관이 묻혀 있다. 사실 노량진 사육신 묘역의 묘들만 해도 과거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장릉지의 기록에 의하면 사육신 사건 당시 한 승려가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에 묻었다고 하는데 그 승려가 김시습(金時習)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목숨을 걸고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알려진 김시습처럼, 한 집안이 역모죄로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남편의 의관을 챙겼던 성주 이씨 부인. 그 끔찍했던 상황에서도 후일을 도모했던 그녀의 부덕이 놀라울 따름이다.
현재 의관장묘는 묘골에서 삼가헌이 있는 파회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 우측에 있다. 위쪽에 있는 묘가 진사 박순과 성주 이씨 부인의 합폄묘(合窆墓)로 세칭 ‘의관장묘’로 불리는 묘이다. 그 아래에는 성주 이씨 부인의 아들이며, 박팽년 선생의 손자이자, 순천 박씨 묘골 입향조이자, 묘골 박씨의 실질적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박일산과 그의 부인 고령 김씨의 묘이다.
묘골 선영과 의관장묘 [사진출처: daum지도]
위쪽 의관장묘에는 ‘진사순천박공휘순지묘(進士順天朴公諱珣之墓)·배성주이씨부(配星州李氏祔)’라 새긴 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의 비문 중에서 이번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부분을 그대로 한 번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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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配) 성주 이씨는 군수 철근(鐵根) 일휘(一諱)[일명] 철주(鐵柱)의 따님이었으니, 병자년의 화를 당하여 친정 곳인 대구 관아에 예속(隸屬)되어 일생을 마쳤으며 평생토록 고이 비장(秘藏)해오던 공의 의관(衣冠)으로 이곳에 합폄(合窆)하였다. 유복(遺腹)으로 일남(一男) 일산(一珊)을 두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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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관장묘. 위쪽이 의관장묘이며 아래쪽은 박일산 부부의 묘이다.
의관장묘. 진사순천박공휘순지묘(進士順天朴公諱珣之墓) 배성주이씨부(配星州李氏祔)
첫댓글 감사히 보고 갑니다...
늘~~평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