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읍에서 남쪽으로 바다를 향해 가다보면 산 자락에 펼쳐지는 온통 푸른 물결들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차밭인 보성다원이다 .
이곳은 차나무들이 대밭이나 떡갈나무,오리나무 숲 산비탈에서
이슬 맞으며 자라는 야생 차나무들과는 달리 대규모로 인공 재배되고있는데,
보성은 우리나라 녹찻잎의 90퍼센트를 생산하는 차의 주산지 이다
1939년에 차 재배의 적지를 찾아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던 일본의 차 전문가들은
여기에서 발을 멈췄다 ..
차나무가 잘 자라려면 날씨가 따뜻하고 연평균 강우량이 1,500mm 이상 되어야 하는데
이 곳은 강우량은 좀 모자라지만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교차하는 곳이어서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끼어 습기를 보충해 준다 .
이곳의 차밭은 일본인 회사인 경성화학주식회사가 1941년에 야상 30경보를 개산하고
인도산 베니호마레 종 차나무를 심으면서 조성되기 시작했다 .
그러나 일본인들이 기업식 재배를 시작했을 뿐, 이곳에서 차가 재배된 것은 훨씬 전부터이다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 지리지 " 에 도 이미 이곳이 차의 산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우라 나라에 차가 들어온 것은 신라 선덕왕 때이지만 널리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흥덕왕 3 년에 김대렴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차 씨를 가지고 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후부터라고 한다 .
이때부터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는 호남과 영남 지방은 우리 나라 차의 본고장이 되었다
차 문화는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주로 선승들에 의해 다도가 발달되어 왔다
신라시대에 차는 승려와 화랑들을 중심으로 유행했는데.,
삼국유사에는 경덕왕 때 충담 스님이 해마다 3월3일과 9월 9일에 경주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에게 차를 달여 공양했다는 이야기,
경덕왕이 월명사에게 차를 예물로 주었다는 이야기등 주로 승려와 관계된 차 이야기가 실려있다
고려 시대에는 왕실이나 귀족들 사이에 차 마시는 습관이 널리 퍼졌고
절에 차를 바치는 다촌이라는 부락이 생길 정도로 다도가 성행했다
조선시대는 불교가 억눌리고 생활이 검소해짐에 따라 다도가 쇠퇴했지만
역시 승려들 사이에서 명맥이 이어져 왔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차의 선 을 하나로 생각한 대흥사 초의선사에 의해
다도는 크게 부흥 했으며 그와 교분을 가졌던 정약용,김정희 등 선비들도
차에 심취 했었다
===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남 편 에서 발췌 ==
촬영차 10여연 전에 들렀던 보성 차밭은 이제는 관광지가 되어있었다
요즘은 전국이 드라마 촬영지 라는 슬로건 하에 많은 사람이 몰려
안개낀 새벽의 운치는 느낄 사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녹차 밭에서 머물러 있던 시간은 잊을 수가 없을거 같다
첫댓글 푸른 차 한잔에 온 몸은 봄빛으로 속살거린다. 에헤라~~ 이 귀한 봄이 저 비탈밭에서 이슬먹고 자랐구나..ㅎㅎ
햇빛님은 글자체가 한편의 시란 말입니다^^
작년 추석명절때 가족여행을 하면서 다녀왔었습니다 사람들의(사랑*노력*보살핌*내공)과 자연이 그것을 허락한 자비로움과 은혜로움의 바탕으로 멋있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매우 감동이었죠^^이라면 찻값과 각 먹을꺼리들이 너무 비싼편* 너무 상업적인 느낌 ... 뭐 그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초록의 보성차밭~다시 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