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마다 예술제 라는게 있었다. 우리 아이들 마저 졸업후 십년이 훌쩍 지났으니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사진부였던 친구는 주말마다 아버지 카메라 들고 다니면서 찍은 작품을 전시한다고 한참을 바빴다. 노래를 잘 하든 못하든 회장단이 다 포함된 합창부는 예술제의 꽃이었다. 전통과 역사를 같이 하는 옆 남학교와 합동 공연도 했던것 같다. 방송부, 미술부, 안내하느라 단복을 입고 서성이던 걸스카웃까지 예술제가 있던 한주는 여학교에 남학생도 들어올수 있어 학교는 총 천연색이 된다.
너무 아스라한 추억이지만 그때 만들었던 문집이 아직도 남아있다. 문집만들기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유일한 행사였다. 운동장 한켠에 각 반별로 테이블을 놓고 작품을 전시 했다. 예술제를 위해 학교를 들어서면 맨 먼저 보게 되는 것이다.. 표지부터 마지막 장까지 십대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는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그래서 더 다양하고 대단했다. 문집 맨 마지막에는 자기 프로필을 적고 빈 공간을 만들어 다녀간 흔적을 남기도록 했다.
작가 못지 않은 그림솜씨로 표지를 장식하고, 촛농을 녹여 작품을 만들고, 색지로 입체를 표현하거나 만화 주인공보다 더 근사한 얼굴을 그려 눈길을 끄는 문집들이 쌓려갔다.
일찌감치 내용을 채워둔 나는 표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며칠을 앓듯 헤매던 나에게 친구는, 빨래도 아닌데 쥐어짠다고 나올건 없다면서 화방을 들러보자 한다. 이것저것 보면 뭔가 떠오르지 않겠냐며.
중앙로 화방은 낯선 냄새부터 신기한 재료들로 가득했다. 그러다가 깊고 푸른 바다색을 닮은 종이 앞에 발이 멈췄다. 아니 그대로 익사당했다. 아무것도 필요없었다. 오로지 그 짙은 파랑 하나면 충분했다. 종이로만 문집을 감쌌다. 푸른 바탕위에 흰 색으로 제목을 썼다.
“시장사람들”
그 당시 학생잡지에 응모했던 글이다.
전시된 문집을 누가 읽어줄까도 궁금했지만, 그 넓은 운동장 푸른점을 볼때마다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문집엔, 가을 햇살아래 소란하던 친구들의 그리운 파랑과 방명록 제일 먼저 사인을 한 미술선생님의 설레던 파랑과 열일곱 행복하던 파랑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 시를 만나는 순간 마지막 구절에 사로잡혔다
“파랑을 좋아하냐고 묻지마세요. 난 어쩔줄 모를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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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의 감각> 김개미
파란색이 차갑다 생각하지 않아요
드높은 가을 하늘을 보고
차갑다 생각한 적 없어요
어려서 그렇게 배웠다고
커서도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은
내 생각이 아니죠
골목 깊은 곳의 파란 대문은
동네에서 제일 예쁜 파란색
파란 나라 파란 몸 스머프는
내가 제일 아끼는 파란색
파란색은 100가지도 1000가지도 넘어요
어떤 파란색은 꿈속에만 있고
어떤 파란색은 어떤 사람에게만 있고
어떤 파란색은 저녁에만 있어요
아직 아무도 본 적 없는 파란색도 있어요
얼마나 많은 파란색이 발견될지
누가 발견할지 나는 너무 궁금해요
물감 뚜껑을 닫는 순간
나와 당신의 파란색은
더 이상 같은 색이 아니죠
나는 내 마음속의 파란색을
당신은 당신 마음속의 파란색을 볼 뿐이죠
화가들은 자신만의 파란색을 가지려고
일평생 색깔 속으로 여행을 떠나죠
노랑에서도 빨강에서도 초록에서도
파란색을 가지고 나오죠
내게 파란색을 좋아하냐고 묻지 마세요
나는 어쩔 줄 모른답니다
첫댓글 저도 파랑볼펜을좋아해요 검정보다 확장되고 풍성해보여서
어릴때부터 남달랐네요
오~~ 또 반가운 분을 만났네요. 파랑친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