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 23:1-16 우리 세대가 받은 사명 찬송: 6, 28, 71장 교독문: 히 10:19-32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생은 자신의 세대를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타락 이후 인생에게 내리신 형벌이었다. 원래 인간은 영원토로 살도록 지음을 받았지만, 이 타락이 모든 것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어지고, 하나님의 공급도 사라지고, 흙에서 지음을 받은 대로 흙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아무 목적 없는 삶이 지속될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를 형성하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도덕의 원리를 만들어 내고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우면서 그들 나름의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나가면 그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진보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세대와 똑같은 원리 아래에서 더 이상 발전이 없는 아무 목적이 없는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이것이 세계 역사가 보여주는 진리이다.
물론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삶은 편리해졌으며, 삶의 내용도 풍부해졌다. 먹을 양식을 저장하지 못하던 삶에서 냉장고의 발명으로 많은 양식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음식의 풍부함으로 인해 이제는 적게 먹는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문명이 발전해 가면서 나타나는 불합리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성도가 살아간다. 그래서 성도의 삶도 예외가 아니다. 한 세대가 오면 한 세대는 가기 마련이다. 야곱의 시대를 지나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동안 애굽의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들을 출애굽시키셨고, 40년의 광야 생활을 인도하셨다. 40년이 마칠 때,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 동편에 정착하여 모세를 통해 마지막 설교를 들었고, 이제 모세는 자신의 시대를 끝내고 여호수아에게 지도권을 넘겨 주였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점령한 후 계속 진군하여 가나안 남부와 북부 지역의 요충지를 점령했다. 하지만 아직 많은 땅이 정복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그 땅을 그려서 각 지파에게 분배하긴 했지만, 이들 각 지파들은 아직 그 땅을 정복하러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나이가 많아 늙었다.
이제 여호수아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먼저 지도자들을 부른다. 23:2을 보면 “온 이스라엘 곧 그들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 권면의 내용을 말한다. 수 23장에 기록된 내용이 바로 이 권면이다. 3-4절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여호와께서 어떻게 우리를 위하여 싸우셨는지를 말한다. 이것은 여호수아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 앞서 친히 전쟁을 수행하셨음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3장의 요단 강이 갈라진 것, 6장의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 그리고 10장의 큰 우박 덩이가 떨어진 것과 태양과 달이 머무른 것 등이 그것들이다. 이런 이적들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며, 이제 남아 있는 땅을 차지할 것을 5절에서 명령하고 있다. 이 정복 전쟁, 즉 가나안 땅을 심판하는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여호수아 다음 세대가 수행해야 할 마땅한 사명이었음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 여호수아 시대의 사명은 땅을 분배하는 것이요, 여호수아 다음 세대는 분배 받은 땅을 정복하여 취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각자의 세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받아 그 세대를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전쟁을 무엇을 기반으로 수행해야 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6-16절에서 복과 저주에 대하여 권면의 내용을 주고 있는데, 이 내용은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
레 26:3-4, 14-17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가 파종한 것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의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신 28:1-2, 15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신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은 하나님의 복과 저주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하다. 여호수아는 분명히 이 말씀들을 근거로 하여 지금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가야 할 지도자들, 즉 장로들, 수령들, 재판장들, 그리고 관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백성들을 이끌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권면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이 순종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그대로 따라가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일들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과거에 모든 것을 앞서서 수행하신 분이심을 기억한다면, 앞으로도 그분이 언제나 앞서서 일하실 것임을 분명한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할 때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다음 세대에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호수아 시대의 세대에게 주신 사명은 땅을 분배하는 것이요, 다음 세대가 수행해야 할 사명은 분배 받은 땅을 정복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군사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밖에 달리 수행해야 할 것은 없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6절부터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권면을 시작으로, 8절에서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는 강한 권고를 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여호와를 의지했을 때, 하나님의 승리를 맛보았기 때문에, 즉 이전 세대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 여호와의 일하심을 경험해야 할 다음 세대에게 그들의 경험을 이야기함으로써,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고 따를 것을 강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2절부터는 순종하지 아니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말한다. 12절을 보라.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으로 시작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 16절을 보면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는 강한 경고를 말하고 있다.
여호수아 23장은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고 이제 그의 사명을 다음 세대에게 남겨줄 때 지도자들에게 주는 권면과 경고의 말씀들이다. 이 말씀들을 들은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지금 우리는 어느 세대에 속해 있을까? 이제 우리의 세대는 거의 지나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우리의 시대를 마감하면서 다음 세대에게 우리의 믿음을 넘겨주어야 할 때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두 가지를 생각해아 할 것이다. 하나는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무엇인가, 그리고 다음으로 우리 다음 세대, 즉 우리의 자녀들과 믿음의 후배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전달하며 그들로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수행하면서 살아가도록 권면할 것인가, 이 두 가지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온 세광교회의 사명은 무엇이었는가? 어쩌면 우리는 여호수아의 시대처럼 싸움을 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물론 우리의 싸움은 물리적인 총칼을 들고 하는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얼마나 영적 전쟁의 터에서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이 세상을 복음으로 가득 채우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라. 이태원 2동에 세광교회를 세우신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어느 지역에 한 교회가 선다는 것은 그 지역의 성도들이 부름을 받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함이다. 사람을 향한 호불호가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사명, 즉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심을 보여주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우리의 삶을 통하여 친히 보여야만 했다. 이런 사명을 우리가 수행하면서 살아왔는가, 아니면 교회 안에서의 교제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 왔는가, 아니면 이 땅의 자원을 더 많이 갖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이용하였는가? 우리는 어떤 사명을 수행하며 살아왔는가? 일제 강점기 시대에 믿음을 지킨 우리의 선조들의 믿음을 우리가 유산으로 물려 받았는데, 그 믿음을 정확히 지키며 ‘하나님 존전의식’과 함께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 절대 의존 감정’을 갖고 신앙의 삶을 바르게 살아냈는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배운 대로 우리 믿음의 후손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바르게 가르쳤는가? 그래서 내가 이 세상을 떠나도 이들이 믿음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는가? 이것이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믿음의 삶의 내용들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이 믿음을, 내가 아는 하나님을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에 우선권을 두느냐에 대한 싸움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신앙의 삶을 살면서 무엇에 우선권을 두고 살아왔는가? 신앙인가, 아니면 현실의 삶인가? 성경의 원리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전도서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헛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은 이 땅에 있지 아니한가! 물론 우리가 육신의 삶을 살아가기에 육신에 필요한 것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도 이것을 아시기 때문에 기도할 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간구하도록 허락하셨다. 하지만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왜 이 양식을 허락하시는가를 깨닫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저 하루의 양식을 얻음으로 그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성도의 삶의 태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삶을 잠시 살아갈 뿐이다. 잠시이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요, 미래를 바라보며 여호와를 신뢰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야 할 사명인 것이다. 이 기초적인 삶 위에 하나님은 각 세대마다 여러 사명을 주신다. 여호수아 시대의 땅 분배, 그 다음 세대의 땅 정복과 같이, 우리 시대의 사명과 우리 다음 세대의 사명은 분명히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
우리 시대의 사명은 무엇인가? 선조에게 받은 믿음을 바르게 세우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 이전 세대의 믿음은 그 내용이 연약하긴 했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그리고 선교 초기 시대를 지나면서 이 나라에 복음이 확장되는 수고를 하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사명이었다면, 이제 우리가 받은 사명은 그 믿음을 더욱 바르게 세우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전 세대를 답습할 수 없다. 더욱 전진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을 계시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리고 이전 세대가 물려준 믿음의 경험들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더욱 바르게 세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 우리가 받은 사명이다.
이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때, 우리 다음 세대, 즉 우리 자녀들의 세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유산으로 물려준 이 믿음을 더욱 풍성하게 지켜내야 할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세상과 동화되지 않는 믿음인 것이다. 우리는 여호수아의 다음 세대를 통해 이 교훈을 받을 수 있다. 그 내용이 사사기에 기록된 대로, 그들은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세상과 동화되어 음란하게 이방신을 섬기는 자리에 들어가고 말았다. 현 시대에도 이런 모습은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나타나고 있다. 많은 성도들이 세상의 자원을 움켜쥐기 위해 욕심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사뭇 사사 시대와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주어진 땅 정복의 사명을 여러 가지 변명으로 수행하지 못하였으며, 그 땅의 백성들과 혼합되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삿 2: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이렇게 다음 세대의 믿음이 빨리 사라진 일도 없을 것이다. 분명 이들은 그들의 선조들과 하나님의 이적을 많이 경험한 세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그 믿음이 퇴락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민족들과 혼합하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우리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 땅을 완벽하게 하나님 나라로 만들 수는 없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 나라는 완성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우리 후손이 가져야 할 바른 신앙의 내용은 ‘무엇을 우위에 두느냐’일 것이다. 충성과 순종이냐, 아니면 동화되는 것이냐, 둘 중의 하나이다. 이 가운데 갈등하며 분명히 하나님께 충성하며 가르침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만 겨우 우리에게 주신 사명,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지켜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분명하게 이 믿음을 보여주어야 하며, 다음 세대가 이 믿음을 이어 받을 수 있도록 지금 우리의 신앙을 바르게 세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작금의 신앙생활의 의미인 것이다. 이런 귀한 사명을 바르게 깨닫고 더욱 하나님 앞에서 이 믿음을 지켜가기 위해 애를 쓰는 성도들이 되기 바라며, 이 믿음을 다음 세대에 물려 주기 위해 더욱 기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