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종宗’ 자 항렬, 주곡 숙연재 문중
프롤로그
달성군 하빈을 중심으로 낙동강 좌우 연안에 뿌리내린 전의이씨 예산공 종중. 400년 내력을 지닌 이들의 주요 세거지로는 달성군 하빈면 하산·동곡·기곡과 다사읍 부곡·주곡, 낙동강 건너 고령군 다산면 상곡·차남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 지역을 벗어나 타지에 터를 잡은 문중도 여럿 있다. 경남 진주·울산·언양, 경북 성주[선남]·청도[이서]·칠곡[북삼][동명][송산], 전남 여수, 대구 수성구 고모 등이다. 그런데 전의이씨 예산공파 본거지인 하빈면 인근 다사읍을 세거지로 하면서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문중이 있다. 바로 주곡注谷 숙연재肅然齊8) 문중이다.
8) 숙연재 문중은 예로부터 肅然‘齋’가 아닌 肅然‘齊’로 재실 명을 사용해오고 있다. 한글 표기도 숙연‘제’로 하고 있는데, 본고에서는 숙연‘재’로 표기했다. 대구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 542.
전의이씨 17세世 ‘종宗’ 자 항렬
앞서 하목정 창건주 낙포 이종문에 대한 내용을 다룰 때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470년 전 하빈에 터를 잡은 전의이씨 예산공 종중은 낙남조 이필의 손자 대에 와서 몇 개 계열로 나눠진다. 낙남조 이필은 부인은 세 분이었지만 슬하에는 외아들 이경두 뿐이었다. 이경두는 두 명의 부인 사이에서 아들 7명을 두었다. 세 명의 부인 사이에서도 외아들뿐이었던 이필의 입장에서는 귀하디귀한 손자를 무려 7명이나 본 것.
‘이종문·이종택·이종무·이종선·이종효·이종언·이종도’
참판공 이경두의 첫 번째 부인인 증정부인贈貞夫人 파평윤씨는 고령 상곡에서 이름난 가문 윤황尹滉의 딸이었다. 파평윤씨는 2남 3녀를 뒀다. 장남이 낙포 이종문, 차남이 참봉 이종택이고, 딸들은 각각 야성송씨 송광정, 여주이씨 이우신, 광주이씨 이원우에게 출가했다.
두 번째 부인은 증정부인 진주강씨인데 아버지는 강호姜虎, 조부는 현감을 지낸 강국로姜國老였다. 진주강씨는 5남 1녀를 뒀다. 장남은 병절교위 용양위 부사과 이종무李宗武, 2남은 이종선李宗善[후손을 두지 못했다], 3남은 통덕랑 이종효李宗孝, 4남은 성균진사로 가선대부에 증직된 이종언李宗彦, 5남은 장사랑將仕郎 이종도李宗道였다. 딸은 김해김씨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의 아들 김경金璟에게 출가했다. 김대유는 세 명의 현인을 배출한 김해김씨 삼현파三賢派의 삼현 중 한 명이다. 삼현은 모암 김극일, 탁영 김일손, 삼족당 김대유인데 김대유는 김극일의 증손자이자 탁영 김일손의 조카다.
진주강씨의 손자에는 첨지중추부사 상호군 이지창, 통덕랑 이지국, 성균진사 이지협, 장사랑 이지훈·이지란·이지용이 있었다. 이들은 이후 하빈의 하산과 칠곡의 북삼·동명·송산 등지로 흩어져 세거했다.
| 16世 | 17世 | 18世 | 분파 | 세거지 |
이경두, 초배 파평윤씨 | 이종문 | 이지영 | 수월당공파 | 달성군 하빈면 하산·기곡·동곡, 진주 |
| 이지화 | 다포공파 | 고령군 다산면 상곡·차남, 성주 선남 |
| 이지발 | 부용당공파 | 달성군 다사읍 부곡 |
| 이지시 | 임하헌공파 | 달성군 다사읍 부곡, 울산 언양 |
| 이종택 | 이지형 | 적성공파 | 청도 이서, 수성구 고모 |
| 이지호 | 정로위공파 | 전남 여수 |
이경두, 후배 진주강씨 | 이종무 | 이지창 | 상호군공파 | 칠곡군 북삼 |
| 이종효 | 이지국 | 통덕랑공파 | 달성군 하빈면 하산 |
| 이종언 | 이지협 | 진사공파 | 칠곡군 동명면 송산 |
| 이종도 | 이지란 | 승사랑공파 | 고령군 다산면 월성 |
주곡 숙연재 문중
진주강씨 소생 4형제의 후손은 현재 세대가 32世까지 내려왔다. ‘종’ 자 항렬 4형제가 전의이씨 17世니, 그동안 15-16대를 내려온 것. 한 세대를 20-30년으로 잡으면 약 400년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 동안 진주강씨 후손은 번성에 번성을 거듭했다. 그런데 하빈 인근에 세거한 다른 예산공파 문중과는 달리 세거지가 전국 각지로 흩어져 있어, 문중원들의 소속감이 떨어지고 단합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뜻있는 문중원들이 나서 진주강씨 할머니를 중심으로 후손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해법이 하빈 인근 마을인 다사읍 문산리 주곡注谷에 재실 숙연재를 건립하고 ‘숙연재 문중’을 결성한 것.
여기에는 상호군 이지창의 후손으로 구한말 의금부도사·중추원의관을 지낸 동산 이근중李根中[27世], 통덕랑 이지국의 후손 연정 이현성[26世], 진사공 이지협의 후손 남계 이현효[26世] 등의 노력이 컸다. 하지만 이때 세운 숙연재는 1970년대에 허물어져 버렸다. 이에 숙연재 문중원들은 다시 힘을 합쳐 2008년 본래 숙연재 자리에서 남서쪽으로 10여m 쯤 옮겨 지금의 현대식 숙연재를 건립했다.
현재 숙연재는 일반적인 목조 재실 건물과는 달리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단층 건물이다. 건물 내부는 가운데 넓은 거실을 두고 좌우에 방·주방·화장실 등을 갖췄다. 건물 입구에는 넓은 잔디 뜰이 있고 동쪽 뒤편에는 주차장이 있는데, 이 주차장 자리가 본래 숙연재가 있던 자리다. 숙연재 뒤편에 증정부인 진주강씨묘와 함께 문중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지난 2020년 주곡 숙연재 문중에서 증정부인 진주강씨묘비를 다시 세웠다. 1948년에 세운 옛 비가 비문이 많이 마모된 데다, 6·25한국전쟁 때 입은 총탄 흔적이 많이 있어 새로 세운 것. 비문은 참판공 이경두의 12대손인 이국로李國魯 하목정보존회장이 지었다. 새 비 마지막 명銘 부분은 다음과 같다.
세월이 너무 오래되고 그동안 몇 번의 병란을 거치는 동안 할머니와 관련된 문적들이 거의 없어 마침내 족보에 나타난 여러 기록과 이어 내려온 구전에 의거하여 위와 같이 약술略述하고 이에 명銘을 이으니, 태백산의 맑은 정기 문산 주곡 머무르고 / 낙동강의 푸른 물결 명당길지 돌고 도네 / 할머님의 깊은 은덕 이제토록 맑고 밝아 / 추원보본 이곳 묘역 대를 이어 수호하고 / 자강불식 이은후손 만세토록 번성하리.
에필로그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 주곡 숙연재는 본래 증정부인 진주강씨묘를 비롯한 주곡 문중묘역을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숙연재는 용도에 약간 변화가 있다. 변화보다는 ‘업그레이드’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전통 목조 한옥양식 재실은 무엇보다 전통의 멋이 살아 있고 운치가 있어 좋긴 하다. 하지만 관리문제나 실용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현대식 건물에 비해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숙연재 문중은 이 부분에서 결단을 내렸다. 모든 생활양식이 현대화된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과거 전통 문화와 양식을 고집하기보다는 현세대, 나아가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처럼 관리가 쉽고 사용이 편리한 문중회관형 재실을 건립했던 것. 하지만 숙연재 문중 역시 다른 전의이씨 문중과 마찬가지로 변화 속에서도 자신들의 뿌리만큼은 확실히 하고 싶었다. 숙연재 거실 정면 벽에 걸린 좌우 길이 약 5m에 이르는 대형 ‘전의이씨 주곡 숙연재 문중 세계도’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주곡에는 참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주곡注谷이란 지명이 언제부터 있어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 주곡에 ‘문산정수장’이 있다는 점이다. ‘물을 넉넉하게 대주는 골짜기’, 주곡에 신기하게도 현대식 정수장이 들어선 것이다. 정말 이름은 아무렇게나 짓는 것이 아닌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