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귀의 하옵고, 법우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마음살이가 좀 나아지셨습니까?
제 20 교시 내용을 올립니다. [慧日]
----------------------------- 제20교시:불교발생의시대적배경(2)
안녕하십니까? 행복하십시오. 붇ㄷ하빠-라입니다.
(계속) 아리안인종이 인더스강을 건너서 펀잡지역에 도착한 것은 지금부터 약 3000년 전입니다. 펀잡[五河]지역에 정착한 이래, 그 유명한 상징조작을 합니다.
1. 맨처음 한 일이 힌두교의 신 - 브라흐만 신을 만들었습니다.
아리안족들이 이런 생각을 합니다. 태초에 신이 있었다. - 이 신의 이름을 ㅂ라ㅎ만(Brahman) 이라고 하자. -
여러분들 교재에는 브라흐만교 라고 써있는 겁니다. 브라만교, 바라문교라고도 합니다. 나중에 인도에 들어와서는 힌두교로 발전하는 始端을 엽니다.
신이 먼저 있었고, 이어서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이 신에게 아부를 해야만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인간이 직접 신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제를 통해서, 매개체로 하여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
신이 할 말이 있으면 사제司祭 에게 사제가 인간한테, 인간이 사제한테 사제는 신한테로 만나는(의사를 소통하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사제를 매개로 하여 신한테 祭를 올리게 됩니다. 인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제독점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은 관음기도를 관음전에서 합니까? 觀音殿에서 기도하면, 관음보살님이 올 거라고 믿고 있습니까?
지장기도는 어디에서 하나요? 地藏殿에서 합니까? 다시 말해보면, 지장보살이 지장전에 올 거라고 믿기 때문에 거기서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기독교는 교회에서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교회도 여호와 하나님이 올 거라고 믿기 때문에 교회에서 하는 거죠. 철탑을 뾰쪽하게 하는 것은 그걸 타고 오시라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무당집에 대나무를 높이 세우는 원리도 전혀 같은 원리입니다. 신이 대나무를 타고 내려온다고 믿기 때문이죠.(宇宙木 cosmic tree)
힌두교에서는 신이 물이 깨끗하게 흐르는 강가에서도 맑고 깨끗한 모래 틈으로 올 거라고 믿고 있는 겁니다.
그런 장소에 가서 깨끗하게 청소해놓고, 재물을 차려놓고 마지막으로 동물을 죽여서 그 피를 뿌려놓고 기도를 하는 겁니다.
목련존자의 어머니 이야기를 읽어보시면, 자기 어머니가 장사만 갔다오면 항상 제물을 차려놓고, 피를 뿌리고 기도를 하는 통에 온 동네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놓고는 신의 이름을 계속 반복하여 부르는 겁니다. 일주일동안 부르면 칠일기도 - 백일동안 부르면 백일기도 -
지금 절에 가보면 어떻게들 합니까?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 끊임없이 이렇게 기도하죠.
이것은 불교에서 만든 게 아니라, 3000년 전에 힌두교도들이 자기들의 신을 반복해서 부르면, 신이 올 거라고 믿고 하는 기도를 지금 그대로 하는 겁니다. 이것을 대승불교가 받아들여 기도하는 형태로 자리를 잡은 겁니다.
아리안인종은 인류 역사상 아주 특이한 상징조작을 합니다.
유럽에서 신이 만들어졌을 때를 살펴보면, 이 사람들의 신만 主神으로 모시고, 나머지는 모조리 사탄, 이단異端으로 몰아서 제거시켜버렸습니다만, 이 사람들은 아주 특이한 생각(논리구조)을 합니다.
[우리가 너희들과 전쟁해서 이긴 것은 우리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후견인인 우리의 신이 위대해서 전쟁에서 이긴 것이다] [너희들이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는 너희가 무능한 것도 원인이지만, 너희들이 믿는 신이 무능하기 때문에 졌다]
[전쟁의 승리자인 우리가 너희를 지배하듯이, 우리의 主神을 너희들의 신으로 가장 높이 모셔야 한다]
즉, 패배한 원주민의 신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아리안민족의 주신을 모시는 열등한 신으로 위치체계가 바뀌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원주민들을 지배하는 효용가치의 크기에 따라서 자기인종의 주신을 제 1신으로 모시고, 그 밑에 원주민의 신들을 제 2신, 제 3신 - 이렇게 만든 겁니다.
이때부터, 힌두교의 엄청난 표용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부처님도 제 2신 - 비쉬누신의 9번째 화신으로, 예수님도 제 2신, 아무나 골고루 한자리씩 위치를 배정해줍니다.
이젠 아리안은 성스러운 것[Ariya]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4성제 四聖諦를 원어로는 cattu ariya sacca, 八正道 ariya aṭṭhaṅgika magga, 聖人 ariya
표용력이 넓어서 좋긴 하는데, 반면에 어지럽게 돼버린 겁니다. 이렇게 해서, 一神敎的 多神敎라는 특이한 형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 절에 가시면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주신이라고 보고, 대웅전은 맨 높은 곳이나 맨 중앙에 모셔 놓고 - 집도 제일 크죠.
그 옆쯤에 관음전이나 지장전은 좀 작게 있습니다. - 제 2신인 셈이죠. 다시 그 옆은 산신이나 용왕당이 배치됩니다. 부처님을 기점으로 해서 보면, 보살은 제 2신이라고 보고, 산신이나 용왕은 제 3신으로 본 겁니다.
힌두교도들이 신을 배치한 방식을 그대로 대승불교에서 받아들인 겁니다. 중국, 우리나라에서 가람을 배치할 때 - 형태를 그대로 답습한 것입니다.
평지에서는 대개 밤에 별을 보고 점을 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점성술이 발달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北斗七星신앙입니다. - 칠성신 七星神 -
신앙체계를 포함한 문화가 산을 넘어 전파될 때는 山神신앙이 발달합니다. 바다나 강을 건너 올 때는 水神이나 龍王신앙이 발달(추가)하죠.
觀世音菩薩의 경우는 이란지역에서는 강을 수호하는 신이었습니다. - 아바로키테스바라 Avalokitesvara 로 불리는 - 이것이 대승불교에 끼여 들어와서 관세음보살로 바뀌어 버린 겁니다.
불교가 인도에서부터 들판을 지나고, 사막지대를 거치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우리나라에까지 오다 보니까, 지나는 곳마다 신을 끌어 모아서 오게 되는 겁니다.
들판을 지날 때 칠성, 산맥을 넘을 때에 산신, 바다를 건너 올 때는 용왕신, 강을 건널 때에 수신, 그러고 보니, 절이 귀신종합청사라고 하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이 - 귀신들의 종합청사 - 얼른 들으면 속상한 것 같긴 해도, 한발 물러나서 생각해 보면 딱 맞는 말인 것 같죠.
아무튼 대단한 표용력을 발휘하는 셈인데 - 불교가 지나가거나, 힌두교가 지나가면 신 때문에 싸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필요에 따라서 추가로 갖다 넣으면 되니까 말이죠.
인류역사상 단 한번도 자기 종교로 인해서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 종교는 불교뿐입니다. 서로 편한 방식대로 살면 되기 때문이죠. - 이게 불교의 기본생각입니다.
2. 두 번째로 신이 우주를 지배하는 기본원리로써 윤회설을 만듭니다.
빠리어로 쌍싸라Samsara 라고 합니다. 한문으로 번역해서 윤회輪廻 - 바퀴가 돌아가듯 돌고 돈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말입니다.
아리안족들은 또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와서 죽을 때까지, 지금 사는 이 삶을 - 금생 今生 - 이라고 하자.
그리고 내가 어머니 자궁으로부터 나오기 이전에도 현재 내가 사는 것과 같은 동일한 방식이 삶이 있었다. - 이것을 전생 前生이라고 하자.
그리고 내가 죽고 난 이후에도, 현재 내가 살아가는 동일한 방식에 삶이 존재한다. - 이것을 내생 來生이라고 하자
이렇게 하여, 시간적으로 전생 - 금생 - 내생 - 삼생을 윤회한다.
공간적으로는, 땅 밑에 지옥地獄이 있고, 아귀餓鬼가 있고, 그 위에 수라 修羅가 있다. 이렇게 상정했습니다. - 아귀, 수라를 묶으면 아수라阿修羅가 됩니다.
다시 이 위에는 축생畜生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위에는 인간人間이 있고, 제일 위에 천상 天上이 있다.
지옥에서 천상까지 6토막으로 설정하면 - 6도윤회 六度輪廻, 다섯 토막을 내면 5도 윤회 - 몇 토막을 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겁니다. 몇 토막으로 구분하느냐는 사실 별 의미가 없는 거죠.
한편, 우리가 삶을 누리는 이 세상, 우주에 대한 관념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점, 중국사람들이나 유럽사람들은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 땅위에 하늘이 있고, 땅 밑에 지옥이 있다 - 뭐 이런 수준입니다.
인도사람들은 조금 더 복잡하게 생각했습니다.
우주의 중심에는 수미산 須彌山이 있다. 그 산꼭대기에는 제석천 帝釋天이라는 하늘이 있고, 산 맨 밑에는 무간지옥 無間地獄이 있다.
그리고 지옥에서 제석천까지에 三十三天이 있을 거다 - 라고 본 거예요.
보신각에 除夜의 종을 칠 때 종을 몇번 칩니까? 33번을 치는 데 - 삼십삼천이 열려라 하는 겁니다.
절에서 아침저녁에 치는 종은 33번, 36번, 아니면 28번을 칠거예요. 하늘이 이 숫자만큼 열리라고.
이러한 아리안족의 관념체계가 브라만교, 힌두교로 나타나고, 나중에 불교에 들어와서 약간 각색되면서 심오한(!) 의미가 첨가되죠.
28층 정도에 도솔천 도솔천이 있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도솔천, 도솔암, 도솔사 - 여기서 나온 거예요.
[주] 도솔천| Tusita 兜率天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欲界) 6천(六天) 중의 제4천 통속적인 어원해석으로는 ‘만족시키다’의 의미로 설명하여 지족(知足) ·묘족(妙足) ·희족(喜足), 또는 희락(喜樂) 등으로 번역한다. 그 내원(內院)은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內院宮)이라고 하며, 석가도 현세에 태어나기 이전에 이 도솔천에 머물며 수행했다고 한다.
현재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여기에서 설법하며 남섬부주(南贍部洲 : 인간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 하생(下生)하여 성불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도솔천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로서, 정토신앙과 관계가 깊다.
도솔천 안에 궁궐이 있는데, 그 궁궐 이름을 內院宮 이라고 하자. - 여기에서 內院精舍, 內院寺, 內院庵이라는 용어가 나타나게 됩니다. <내원> 이라는 말은 우주의 중심, 中華라는 말과 똑같은 말이죠. 그 내원궁에는 미륵부처님과 석가모니부처님이 살고 있답니다.
다시 수미산 남쪽에는 小宇宙가 있는데 - 그곳이 裟婆世界라고 하자. 그 내원궁에 계신 두분 부처님이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에 내려와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때 타고 오시는 교통편이 흰 코끼리입니다. 부처님 태몽이 하얀 코끼리죠 - 한명밖에 못탄다고 합니다.
56억 7천만년마다 한번씩 내려올 수 있는데 두 사람이 한꺼번에 올 수 없으니까, 두 분이 내기를 했답니다. 미륵부처님이 이겨서 내일 미륵부처님이 내려올 건데 -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급해서 밤에 미리 내려와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내려올 부처님이 미륵부처님이라는 거죠.
이것을 이후로 정치적으로 너도 나도 상징조작하는 것입니다. 56억 7천만년 있다가 내려오려고 했는데 - 이 사바세계가 하도 수상하여 미리 내려왔다고 말입니다.
내가 미륵이다 - 선포해버리는 식입니다.
미륵을 상징하는 꽃이 하얀 연꽃입니다 - 백련 白蓮 -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백련교도의 혁명 같은 것이 자주 일어납니다.
백련교도의 란이라고 적혀있습니까? 왕의 입장으로서는 反亂이니까, 그렇게 적을 터이고, 민중의 입장으로서는 혁명입니다. - 그게 다른 겁니다.
관세음보살을 상징하는 꽃은 붉은 연꽃 - 홍련 紅蓮 (낙산사 홍련암) - 지장보살을 상징하는 꽃은 푸른 연꽃 - 청련 靑蓮(범어사 청련암) - 이렇게 연꽃이 불교의 상징 꽃으로 이루어집니다.
미륵부처님/미륵보살이 강조되는 사회는 혼란, 위기의 시대입니다. 영남지역에서는 삼국이 통일할 때, 특히, 서기 600년대 중반 - 신라에서 많이 강조되었는데 -
젊은이들 전쟁으로 보내면서 - ‘네가 미륵이다’ - 화랑의 이름으로 사용했습니다. (미시랑 등 다수 사례)
호남지역에서는 미륵이 강조됐던 시대는 백제 무왕시절(미륵사건립), 특히 조선말에 엄청나게 강조되었습니다.
[주] 서기 600년대 중반, 신라와 백제에서 미륵사상의 강조는 국가권력에 의하여 조장된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국쟁패의 사생결단의 시기에 국가에 의한 -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 <총력안보> 의 구호아래 기득권 세력이 권력독점을 강고히 하는 것으로 위기 국면을 돌파하자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조 말기, 밖으로는 서세동점 외세의 식민지화 침략위협, 안으로는 계급제도와 경제체제의 모순이 극대화된 시기 - 내우외환의 혼란기에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지배세력을 제치고 이땅의 피지배 민중이 스스로 내세운 대항, 극복논리인 점이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慧日 補註]
지금은 영남지역이 더 잘 살사는 편이지만, 그때는 호남지역이 훨씬 잘 살았습니다. - 당시는 농토가 주된 경제기반이었기 때문이죠. 먹을 게 많으니 더욱더 수탈을 당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가렴주구, 폭정에 시달리는 민중이 힘들다고 하므로, 이들을 대변하는 미륵이 등장을 하게 됩니다. 조선말에 생긴 원불교, 증산교, 대순진리회 등 수많은 미륵종교들이 나타나게 되는 배경입니다.
각설하고, 彌勒下生에 대하여 계속하겠습니다.
나중에 중국에서 어떻게 상징조작 되는가 하면, 사람이 사바세계에서 죽을 때, 가게 되는 곳이 두 군데 있다고 설정합니다. 한곳은 땅속으로 꺼져서 가는 지옥地獄과 또 한 곳은 하늘로 솟아 극락 極樂으로 가든지 -
우리가 죽는 순간에 우리 머리에 스폰지같은 것이 있어서,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의 모든 행위를 빨아들여 날라 갑니다.(中有, 中陰神) 극락으로 날라 가던지, 지옥으로 가던지 할텐데요. -
자식의 입장으로 봐서는 우리 부모는 지옥으로 갈 확률이 많을 것 같으니까, 이것을 극락으로 전환시킬 수 없는가?
질문 1: 누구한테 로비를 하면 바꿀 수가 있는가? 정답 : 재판장한테 하면 된다. 질문 2 : 재판장이 누가 되나? - 정답 : 염라대왕이 한다.
재판을 몇 번 하나? - 일곱 번 한다. 몇 일만에 하나? 7일만에, 모두 일곱 번 한다고 해서 - 49齋가 됩니다.
자! 이제, 염라대왕한테 부처님의 힘으로 도움을 청하자.
이런 관념에서 티베트, 중국에서 49재齋가 생겨난 겁니다. 흥미가진 분은 티베트의 死者의書를 읽어보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제석천이 우주를 관장할 때에 정보원 겸 지킴이를 4명 배치합니다. - 4명이 四天王입니다.
절 입구로 다가가면, 마을과 산의 경계지점에 산문山門이 있습니다. 통도사 입구에 서있는 영축산문 하는 것이 바로 이 문입니다.
이 문을 통해서 산으로 계속 들어가면 산과 절의 경계지점에 문이 하나 있는데, 이 문이 一柱門이고.
일주문을 통해서 지나면 부처님이나 스님들이 지내는 공간하고, 화장실과 분리해놨는데 - 그 문이 사천왕문입니다. 사천왕문에는 사천왕을 조각해서 안치해놓고 있습니다.
불교는 되도록이면「공격을 하지 말자」- 이것이 불교의 기본생각이죠. 사천왕을 조각할 경우에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의도를 조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조각해야 하느냐? 눈은 찡그리고, 입은 헤 - 벌리고 우리가 애들과 장난치는 것처럼, ‘요-놈 하듯이’ 이렇게 조각해야 사천왕을 불교철학에 맞게끔 조각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어떤 사천왕을 보더라도 눈이 찢어진다거나 입을 악 물고 있다면, 조각기법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불교철학과는 동떨어진 조각인 것입니다. 겁은 주되,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조각속에 넣어야 하는 거죠.
다음에 그런 작품을 보시면, 잘됐네, 못됐네 품평하면서 - 보고, 그냥 지나가면 됩니다.
동쪽으로 가면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 동방약사유리광세계라고 했고, 서쪽에는 서방아미타 극락정토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세 번째로, 내가 지옥으로 갈 건지, 극락으로 갈 건지, 천상으로 올라갈 것인지 - 그 기본 원동력이 무엇인가?
이때 윤회설에서는 <개인의 행위가 원동력이다> - 이렇게 규정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꾀어버리는 미끼입니다.
모든 종교에서 내가 천상으로 갈 건지, 지옥으로 갈 건지 - 신이 결정한다고 하기 마련이죠. 그래야 신이 권력을 쥘 것 아닙니까? (全知全能 = All Mighty!)
그런데 윤회설에서는 신이 빠져버리는 구조입니다. “너의 행위가 결정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본인한테 돌려버립니다. 이게 들으면 그럴듯합니다.
네 번째로는, 그러면, 나의 어떤 행위가 상승의 원동력이냐? 나의 어떤 행위가 하강의 원동력이 되는 - 그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은 신을 모실 것, 신을 어떻게 모실 것인가 하는, 즉, 제사를 어떻게 지낼 건가 - 하는 것을 기록해 놓은 기록문인 베다를 읽을 것.
그리고 세 번째로 아리안족이 내세운 것이 직업의 세습입니다
이 항목은 개인의 행위부분과 더불어 핵심 코드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게 개방되어 있다면, 부모의 직업을 이어받는 것이 대단히 명예롭거나 신용일 수도 있습니다. 음식점같은 데 가보면 - 3대째 했다 - 하는 것을 많이 적어놓잖아요.
하지만 직업의 선택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시대상황이라면, 직업의 세습은 신분의 세습을 의미합니다.
왕의 자식은 영원히 왕의 직업, 청소부의 자식은 영원히 청소부라야 한다는 것이죠.
이 직업에 충실하게 세습을 지켜나가면, 그것이 상승의 원동력으로 작동할 것이지만, 직업을 바꾸면 바로 지옥으로 간다. - 어디 구데타 한번 해보려고 해도 찝찝해서 못하기 십상입니다.
윤회설이 결국은 - 인도사회 민중의 혁명의지를 좌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리안족이 지배할 때 피지배민들의 의지를 꺾어 버린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게 윤회설이 만들어지는 배경이 된 것이죠.
직업세습 - 결국에는, 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혁명을 일으키지 마라! 꼼짝 달싹도 하지 마라! 꿈도 꾸지 마라! 꼼짝하지 말고 복종해라 - 바로 이 메시지를 원초부터 주입시키는 거죠.
우리의 유교도 마찬가지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유교도 동중서에 의하여 한제국의 국가 유교주의로, - 국가의 통치이데올로기로 채택될 때를 한번 짚어 보겠습니다.
공자가 어떻고, 맹자 말씀에 어쩌고, - 뭐 이 때문에 채택됐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건 우리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러했던 시대상황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이 말입니다.
국가 유교주의로 채택될 때의 고려 사항 - 핵심코드는 극기복례이었습니다.
사서삼경 등 관련 책을 살펴보면 극기복례 克己復禮 라는 말은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자> 라는 뜻인데 - 사실 이런 내용은 그냥 글자 그대로 해석해보는 소리일 뿐이고 - 결국은 <내 능력에 상응되는 대가를 보상받겠다는 마음을 극복하라.>
대가를 보상받을 려면 - 강력하게 요구하는 등 말이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내 권리를 주장해야 하고, 정의를 이야기하려면 자꾸 말을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말이 많으면 소인배다] 라고 해놨죠. 또한, 요즘 식으로 - 말 많으면 빨갱이다 하는 것이 바로 그거예요.
이처럼 말 많으면 빨갱이다, 말 많으면 소인배다 하는 것도 동일한 상징조작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예로 되돌아가자” 라고 했는데, 어떤 예로 돌아가느냐 - 주나라시절의 예법 周禮로 돌아가는 겁니다.
주나라 예는 신분제에 기초한 사회였습니다. - 그러니 신분을 세습하고 구데타를 하지 말자 - 이런 캐치프레이즈야 말로 국왕이나, 귀족들, 요즘 표현으로 바꾸면, 기득권 세력이 가장 좋아할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내가 왕이라도 구데타 일으키지 말자는 이야기만큼, 귀에 쏙 들어오는 이야기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유교가 국가의 통치이데올로기로 채택된 배경이 됩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표면적인 부분과 속에 있는 뜻이 전혀 다릅니다.
네 번째로는 절제를 계속 강조합니다.
요즘 인도에 관해서 책을 써 놓은 것을 보면 인도인은 욕심이 없고, 눈이 맑고 - 하는데 관점에 따라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인도인이 무엇 때문에 절제를 하느냐 이거예요.
제가 알고 있기로는 세상에서 제일 욕심이 많은 사람에 인도사람이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로 욕심이 많느냐 하면 - 금생에 돈을 써버리면, 내생에 가난하게 태어난다는 거죠.
나는 부자로 태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부자로 태어날 수 있느냐? 금생에 안쓰면 내생에 부자로 태어나게 된다. 내생에 부자로 태어나기 위해서 금생에 절제한다.
이만큼 욕심많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금생에 연애를 하고 싶은 대로 - 모두 다 하고 살면, 내생에 지독히 못 생긴 사람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하자면, 내생에 연애를 많이 하기 위해서 금생에 안하자는 주의예요.
하지만 지배세력들은 누릴 것, 다 누리고 - 쓸 것, 다 쓰고 사는 겁니다.
인도인은 어떻다고 온갖 소리를 떠들어 대지만,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곳이 인도입니다.
펜슌, 할리우드보다도 더 많이 만듭니다. - 볼리우드라고 하는 봄베이 주변에 있는 영화산업 지역입니다. 일반적으로 <마살라 무비>라고 하는데, 거의 99.9%가 섹스영화죠.
우리나라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결국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윤회설에서 계속 주장하는 것 - 절제의 미덕, 국민의 도리 - 우리도 이렇게 떠들어 대고 그래쌌습니까?
나라가 어려우니까, 과소비를 하지 말자. - 이것은 우리 국민모두가 과소비한다는 전제로 성립되는 얘기일테죠. 사실, 일반 백성들이야 뭐가 있어야 과소비를 하죠.
결국은 가진자 - 10%가 과소비 계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진 10% 계층한테 소비를 좀 줄이자 라고 하면 될 것인데도 - <국민모두가 과소비한다.>라고 덮어씌워 버리는 거예요.
윤회설에서 상승과 하강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결국은 그것은 직업을 세습합시다. 그리고 절제하자. 그것만큼 상승하고 하강한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다섯 번째로는 보상을 언제 해 줄 것인가? 입니다.
만약, 내가 한달 있다가 일을 해 줄 테니, 일하기 전에 미리 선금을 받으면 - 노동자가 유리할 것입니다. 일해주고 당일치기로 받으면 - 비슷하다 하겠죠.
한달 일을 해주었는데, 월급은 한달 있다가, 나중에 받으면 - 사용자에게 훨씬 유리할 겁니다.
일은 올해에 했는데, 보상을 50년 후에 받는다면, 누구에게 유리할까요? 정답 : 당연히 사용자가 유리하겠죠.
윤회설은 일한 대가로서의 보상을 언제 해주느냐? 정답 : 절대로 금생에 보상은 없습니다. 내생에 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뭐라고 하셨느냐고 하면, 지난 시간에 세계관 강의에서, “확장시키지 마라! 바로 지금, 가능한 범위로 줄여라” “그래야 답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라고 하셨습니다.
이 아리안족 사람들은 어떻게 주장했느냐? 전생에 행위는 금생에 보상받고, 금생의 행위는 내생에 보상받고, 절대로 금생에 보상은 없다. - 이것이 그들의 기본 주장입니다.
다음 여섯 번째로는 전생에 내가 한일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이 사람들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 현재 상태를 봐라! - 이게 완전히 사람 죽이는 꼴입니다.
내가 부자집에 태어난 걸로 봐서 전생에 복 많이 지었던 것이고, 네가 달동네에 태어난 걸로 봐서 전생에 복을 적게 지었다. 간단명료한 이치로 대답합니다.
하지만, 지금 달동네 태어난 것만 해도 속상해 못살 지경인데, 전생에 복 못지은 것까지 한꺼번에 덮어씌워 버리는 겁니다.
지금 사업이 잘 안 되는 것도 속상한 판인데 - 전생의 복을 못 지은 것까지 덮어 씌워 버리게 됩니다.
이게 어떻게 주장이 가능하게 되느냐 하면, “그러기 때문에 난 복을 많이 지었으니 금생에 지배자가 되어있고, 너는 복을 짓지 않아서 금생에 노비가 된거야”
“따라서 나는 너를 다스리는 직업에 충실하고, 너는 다스림을 당하는 직업에 충실해야만, 우리가 내생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느냐 - 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논리로 민중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게 됩니다.
일곱 번째로는 윤회의 주체가 무엇인가?
인도에서 윤회를 주장하는 사람들 - 수많은 철학의 유형이나 종교의 유형이 여기까지는 전부 동의를 합니다. 불교처럼 아예 무신론을 주장하는 종교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이제부터 파가 나눠지는데요. 어떻게 파가 나눠지느냐 하면 - 간단합니다.
내가 한 전생의 행위가 어디에 축적되어 다음 생으로 이전되느냐는 겁니다.
바가지에 축적되어 이전되면 A파, 양동이에 축적되어 이전되면 B파, 페트병에 축적되어 이전하면 C파, - 뭐, 이렇게 되는 거죠.
무엇이 다르냐? - 윤회의 주체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죠.
아트만 atman 으로 아니면 유식 唯識으로 아니면 종자 種子로, 아니면, 불성 佛性으로 아니면, 여래장 如來藏으로
어떻게 이름을 붙이는 것에는 상관없이 거기에 축적되는 주체가 무엇이냐? - 이것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아트만설. 한문으로 번역하면 我, atman[싼쓰끄리뜨어], atta[빨리어]
내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이 아트만이 내 머리속에 존재하다가, 스폰지처럼 내가 금생에 한 모든 행위를 모두 빨아들여서, 숨이 끊어지는 순간, 몸에서 빠져나갑니다.
자기가 빨아들인 에너지양만큼 날아다니다가 이미 잉태되어 있는 다른 자궁 속으로 들어가서, 그 생명체의 머리로 들어갑니다.
자기가 빨아들인 것을 꽉 쫘 내보내서 거기에다 주입시키면, 그 사람의 영혼으로 자리잡는다. -이겁니다.
오늘 집에 가서 자제들을 한번 보세요. 혹시 본인을 닮았으면 내 유전자를 받은 것일 겁니다만, 그렇지만, 자제들의 영혼은 부모로부터 받은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마음은 어느 중생의 정신이거나, 아니면 어느 축생 - 개, 소, 닭의 것이 들어왔는지 모른다는 거죠.
몸은 부모로부터, 마음은 다른 중생으로부터 - 이것을 믿든지, 안 믿든지 일절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가 윤회의 핵심적인 코드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윤회설이라는 것은, 개인의 행위와 그 다음 現世의 상태 - 이 두 개밖에 모를 거예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윤회설을 - 부처님이 인정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에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단호하게 부정하셨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윤회설의 전부인데 -
아마도 여러분이 접할 수 있는 책에는, 너무 단편적으로만 퍼뜨려 놨기 때문에 이상하게 꼬여 있을 겁니다. 이것을 도표처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는 것입니다.
지금 어느 책이라도 펴보면, 위의 항목들 중에서 한부분이나, 두 개 정도를 갖고 계속 설명할 뿐이죠.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원동력은 무엇이고, 그 기준은 무엇인가 그리고 보상은 어떻게 받고, 증명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전의 주체는 무엇인가? -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윤회설을 해부해 놓은 책은 한권도 없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누가 한마디 주장하면 그냥 따라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믿든지, 안 믿든지가 -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그것은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고,
과학적으로 증명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참이냐 거짓이냐 - 나누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로는 카스트제도입니다.
우리가 태어나면 - 윤회설에 따라서 이 땅에 태어나게 되면, 신분을 부여받게 됩니다. - 자동적으로
제 1계급은 司祭라고 합니다. 브라만신을 모신다고 해서 브라만계급, 바라문 - 하는 게 이겁니다.
정치인(왕족, 귀족)이나 군인이 제 2계급이 됩니다. 부처님도 제 2계급 출신입니다.
세 번째가 평민, 농민, 상업인 등 입니다. 제 4계급이 노예.
그런데 이 노예계급에도 끼지 못하는 제5계급 - - 不可觸賤民 등이 있습니다. 4성 계급이라 하지만, 결국은 5성 계급으로 구성됩니다.
제 5계급(out-caste)은 불가촉천민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조선조말의 백정보다도 더 못한 계급 취급을 받습니다. 이들의 옷깃만 스쳐도 지옥에 간다고 합니다. - 不可觸賤民 - 마을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마을외곽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현재 어느 정도 되느냐 - 전체 인도인구의 1/5입니다. 지금 인도 인구를 대략 10억 잡으니까. 2억5천에서 3억명 정도 됩니다.
현재 여러분들이 잘 아는 가장 순종 - 브라만계급은 간디입니다. 제5계급 중에서 가장 순종이 암베르까르박사입니다. - 혹시 들어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
암베르까르박사는 간디와 동시대 사람이며 간디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죠, 우리만 모르는 겁니다. 이분은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도 받고, 인도에서 변호사로써 활동했습니다. 원탁회의 일원으로 참가했습니다.
간디는 독립운동과정에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면, - 인도를 사제가 지배해야 한다고. - 그래서 독립하는 방법으로써 비폭력 평화주의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간디는 국내문제에 대한 입장으로 돌아오면 신분이 평준화되는 것을 단식까지 해가면서 무산시켜 버립니다.
우리가 대개 알고 있는 간디는 흔히 이야기되는 그런 인권주의자가 아닌 정치인으로서의 간디인데 - 인권주의자 간디로 포장되어 우리한테 알려지게 된 것이 문제인 셈이죠.
영국에 대해서 비폭력 평화주의로 대응하자고 하면서도, - 국내문제로 돌아오면, 이 사람들의 계급을 해방시켜주는 법안을 통과시키자는데 맞서서 - 간디는 단식을 하고, 이슬람교도와 결합을 해가면서 까지 이 법안자체를 무산시켜버립니다.
그때[이 때문에] 암베르까르가 나와서 천민을 위한 활동을 전개합니다.
우리가 영국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나, 사제계급에 지배당하는 거나 - 지배당하는 것은 똑같은데 민족의 해방이 무슨 의미가 있노? - 하면서 계급해방을 주장합니다.
이 분은 인도의 초대 법무부장관이 되어 인도헌법 초안을 만듭니다. 또 돌아가기 2, 3달 전에 불교로 개종을 단행합니다.
- 나는 힌두교로 태어났지만, 힌두교도로는 죽지 않겠다. - - 이 땅에 이 지긋지긋한 신분을 타파하고 죽겠다. - 라고 선언하면서 불교로 개종합니다.
이렇게 불교로 개종할 때 천민 약 60만 명이 동시에 개종을 합니다. - 지금 법륜스님 같은 분이 인도에 가서 천민구제활동을 하는데, 바로 이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현재 인도의 거의 모든 불교도인들이 이 사람들 계급이죠.
우리나라는 지금 본적을 기재하는 난까지 없어졌는데 - 지금도 인도에는 서류를 작성할 때에 신분을 적습니다. - 나는 1등 계급, - 너는 2등 계급, 3등 계급, 4등 계급, 기타 등등.
그런데 불교도로 개종을 하게하면, 신분상에는 제약없이 자유로워지는 대신에, 혜택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指定 카스트제도, Scheduled Caste) 이 것이 지금 인도가 직면해있는 현실입니다.
인도는 헌법을 얼마나 잘 만들어 놓았냐 하면, 소수계급(5계급)을 위해서 정치적 배려를 하도록 규정해 놨습니다.
힌두교도들이 모든 것을 다 장악하고 있으니까, 불교도로 개종해서 권리를 찾으면 그 자리를 다 줘야 하니까 - 그래서 권리찾기운동을 법륜스님 같은 분들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이 힌두교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불씨가 되는 바람에, 불교도에 대한 테러가 자주 발생하는 등 -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 방편인지 - 현재로서는 잘 모를 지경입니다.
부처님이 나오고 , 부처님의 제자들이, 2,300년 동안 수천만 명이 노력했지만, 아직도 이 질서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새로운 상황이 조성됩니다. 드디어 기존 질서를 깨부수는 신형무기가 나타났습니다.
- 스타 TV입니다. - 이 상업 TV가 위성방송을 타고 15년전부터 들어옵니다. 요즘 인도의 어지간한 지역에는 TV가 보급되어 있죠.
우리가 살던 사회하고 전혀 다른 사회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보다 수천 배의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그 토대부터가 몽땅 뒤집어지기 시작하는 거죠.
스타TV에는 BBC 등 위성채널이 굉장히 많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나라의 아리랑채널도 나옵니다. 이렇게 외부세계의 모습이 아무런 차단장치없이 고스란히 들어오니까 -
인도사회가 급격하게 -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 더욱 격렬하고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 신분제도 역시 그 뿌리로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더스강 지역에서부터 시작된 역사가 발전해나가는 구조입니다. 그럼 지금까지 설명한 것을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아리안인종이 브라만신 중심, 윤회설, 그리고 카스트 제도 - 이런 것을 무기로 삼아 토착민중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카스트Caste라는 말은 인도말이 아니라 포르투갈어입니다. 300, 400년 전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인도에 와보니까, 피부색깔로 계급을 나누는 것을 보고, 이 말의 포르투갈 말이 카스트입니다. 카스트 제도 - 고유명사가 된 겁니다.
B.C.E. 10C 경 인도대륙의 전쟁터는 간지스강주변으로 이동합니다. 이후 B.C.E. 3C 중반 아쏘까왕에 의한 인도 통일까지 전쟁으로 점철되는 시대가 이어집니다.
이러한 시대상황과 지역이 불교가 활동하는 시기와 지역이 거의 일치하는 것입니다.
브라만신에 의한 신 - 사제 - 인간의 질서구조, 피부색과 인종의 계급적 사회구조가 외부로부터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강제적으로 주입될 때 - 문화이식과정 - 초기에는 거의 일방적으로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소화한 후에는, 주체적 입장에서 대응논리가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변용논리, 또는 반대주장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입니다.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일(受容) 경우에는 대개 300년 정도를 한 주기로 그 과정을 밟아간다고 합니다.
처음 100년간은 정신없이 받아들이기에 급급합니다. - 전혀 주체적 변용과정없는 상태 그대로 말입니다 - 주체적 입장에서의 대응논리 형성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註] 물론 수용을 거부하는 쪽에서는 체제부정, 국가혼란 야기 등의 이유로 국가수호를 앞세워 엄청난 물리적 박해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논리적인 대응은 제대로 시도되지 않습니다.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그저 주입되거나, 수용하기에 급급하는 수준의 양상이 전개됩니다.
새로운 문화의 충격이란 대개 이런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과시하기 마련입니다.
그 땅에서의 인간 삶과 사회 전체에 있어서 그 基底에서부터, 뿌리째 뒤흔드는 것입니다. [慧日 補註]
그러다가 다시 100년쯤을 경과하는 시기에는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200년 정도 지나면 대응논리를 넘어서서 공격논리를 개발합니다.
이러한 전개양상을 우리나라의 경우에 개괄해보면, 임진왜란을 겪고 난 이후, 중국을 통해서 西學이라는 게 들어옵니다.
이것의 내용은 모두 천주교에 대한 것입니다. <하늘에는 천이 있고, 땅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과 천은 서로 동등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평등하다>
- 우리나라에는 양반과 상놈이 길도 함께 가지 못하지만, 하나님앞에서는 평등하다면서 같이 집회도 하고, 한 밥상에서 같이 먹는다. 이것은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끼친 가장 큰 영향력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다 보니, 민중적인 입장에서 이런 혁명적인 사상이 어디 있느냐 거죠. 그래서 그 논리를 변용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약 100년 정도 지나니까, 서학에 대응하는 東學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이 땅에서 삶을 누려온 주체적 입장에서 대응논리를 만들어 냅니다.
동학이라는 것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압도적 무력을 무기로 밀고들어온 서학에 대응 논리로써 기능하는 겁니다.
동학하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을 살펴보면, “뭔 소리 하노?”, “사람이 하늘이다” 라고 합니다.
이미 들어온 서학에서는 인간과 천은 결코 동등하게 양립할 수 없는 主從의 관계로 설정되어 있습니다.(敎理體系)
그런데 <人乃天 - 인간과 하늘은 평등하다, 동등하다.> - 서로 동등한 위상을 갖고 있다. 이래서 동학쪽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동요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동학혁명이 성공하게 되는 이념적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때도 보면 하늘을 인정하는 측면은 전혀 서로 간에 같습니다. 왜냐, 100년 정도에서는 천[天] 자체를 부정하는 상황에는 아직 멀었습니다. 아직 그렇게까지 내디딜 만한 용기도 나지 않을뿐더러, 논리전개도 못미치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도 동일한 구조가 이루어집니다. 하늘에는 신이 있다. 신이 우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인간도 만들었다. 인간이 신한테 의존할 때만이 신으로부터 은총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주장을 하고서는 어떻게 해야 은총을 받을 수 있는가? 신한테 아부를 해야 한다. 사제를 통해서 아부<제사, 기도>하자. 사제를 통해서 기도를 하자. - 대강 이런 겁니다.
여러분들은 절에 가서 49재 지낼 경우에 여러분이 직접 시장에서 제수를 장만하여 지냅니까? 아니면 절에서 대신 지내줍니까? - 대부분 대신 지내주는 걸 택하죠.
여러분이 관세음보살에게 직접 기도를 합니까? 칠일기도, 백일기도를 하면서 스님에게 기도를 해 주십쇼 라고 부탁합니까?
여러분이 직접 기도를 하면, - 신과 직접 만나는 거지만 -
스님한테 해주십쇼 하면, 그 순간부터 스님이 사제가 되는 겁니다. 스님들이 목탁을 치며 지내 주니까 - 스님이 사제가 됩니다.
사찰을 운영하는 기본형태가 되고 - 즉, 스님이 먹고사는 직업이 되어버렸죠.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다 보니, 신과 인간 사이의 교류라는 거창한 담론이 사제계급의 형성, 정치적, 사회적 위상과 역할, 경제적 존립기반 등 이해관계로 꽉 짜여진 구조적인 문제로써 기능하는 것입니다.
다시 원래로 되돌아가서 계속하겠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제일 짜증나는 게 뭐냐고 하면 - 실컷 말해서 대부분 정리해 놓으면, 상대방이 마지막 한 단어만 살짝 바꿔버리는 통에 짜증나죠.
실컷 이야기 듣고 있다가 마지막 판에 일어서면서, “그런데요 ”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대개 말싸움할 때를 주의깊게 관찰해 보면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각설하고,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 인도전역에 들이 닥칩니다. 세월이 흘러 원주민과 아리안족중에서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이젠 정신적 충격에서 다소 정신을 추스립니다.
이 사람들이 지배집단의 주장논리에 같이 동조하면서도, 일방 변용하는 대항논리를 창출해 냅니다.
<신이 우주와 인간을 만들었다> - <맞다> <그리고 신한테 아부를 해서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 <맞다> 여기까지의 주장에는 그대로 동의합니다.
그다음부터 논리구조를 다르게 전개시킵니다.
이 사람들은, 신이 우주를 만들었는데 자기가 만들어 놓은 피조물을 보니까, 너무 좋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신이 피조물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 하는 거예요.
원래는 인간과 신이 결코 양립할 수 없는 主從關係인데 - 여기서는 신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모습, 계급, 기타 등등은 서로 다양하지만, “내 마음속에 동일한 신이 들어와 있는 셈이므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이러한 주장(對抗論理)을 전개합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신과 동격이다 하는 논리구조가 성립하는 겁니다. 요즘 기독교의 [내 마음에 신이 있다] - 라는 말이 같은 표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 개개인에게 다 들어 갈 수가 없잖아요? - 그래서 아주 기발한 생각을 펼칩니다.
마치 손오공이 몸의 털을 한줌 뽑아서 자기분신을 잔뜩 만들 듯이, 신이 자기 분신을 만들고, 그 분신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 - 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신의 分身이 그 유명한 - Atman[Sanskrit語], atta[Pali語] - 입니다. 한문으로 번역하면 <我> 입니다 .
[주] 사전에는 아트만 : 개체의 본질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인격체의 본질 - 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하늘에는 梵이 있고, 즉 브라만이라는 신이 있고 내 마음속에는 신의 분신인 我가 있고, 이제 우리는 하늘에 있는 신에게 기도나 제사를 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신의 분신과, 즉, 우주의 근원인 브라만신의 분신과 하나가 되면, 신의 은총을 입을 수 있다. - 라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바로 梵我一如 사상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아바타라는 것에 대하여 들어보셨습니까? 바로 여기에 철학적 배경과 논리적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나중에 참선을 이 논리에 도입하여 암웨이처럼 다단계 판매방식을 개발하여 상품화한 것이 아바타수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주의 창조주, 主宰神 - 梵(범, 브라ㅎ만신)을 불교에 도입 각색하면, 바이로차나, 또는 비로차나 - 비로자나불(法身佛). 대승불교로 들어오면서 힌두교체계가 수없이 도입되어 각색됩니다. 앞으로도 수없이 수용, 각색되는 근원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하늘에 있는 신에게 - 사제를 통하여 - 기도를 하고 제사를 지낼게 아니라, 내 마음에 있는 신의 분신과 내가 하나가 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수행이라고 표현합니다. - 요가Yoga 瑜伽라고 부르는 그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아무도 기도하러 가지 않는 거예요. - 내 마음에 있는 신의 분신과 하나가 되면 된다 하면서 -
이러니 - 이제부터 司祭계급이 먹고살기 힘들어지는 거예요. 당연히,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한테 무자비하게 탄압을 가합니다. 심지어는 불에 태워서 죽이기도 하고요.
유럽에서 자주 발생한 신교-구교 분쟁이라는 것이, 얼핏 보면, 이념분쟁처럼 생각되겠지만, 사실은 사제계급의 물적 토대가 무너지니, 반발이 터져 나올 수밖에요.
오늘 여러분들 절에 가서 스님들께 살림살지 말고 수행만 하라고 해보시죠. 누가 가장 반발할 것 같습니까? - 당연히 주지스님과 그 측근그룹이겠죠.
이처럼 사제계급이 가장 극렬하게 반발하면서, 탄압을 가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탄압을 받으니까, 이들이 도피하여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생각이 동일한 사람끼리 가까이 앉아서 (우빠), 무릎을 맞대고(니샤드) - 우빠니샤드 upanisad - 여러분들의 교재 437쪽에 우빠니샤드라고 나옵니다.
결국 스승과 제자들이 무릎을 맞대고 가깝게 앉아서, 하늘에 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 분신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
따라서 내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신의 분신과 내가 하나가 되면 신의 은총을 입을 수 있다. -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 - 기도할 필요도 없다. - 이렇게 주장을 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상 우파니샤드철학 이라고 합니다.
지난 회에 강의했던 것 중에서 잠깐 다시 보충하고 가겠습니다.
신의 분신이 아트만입니다. 이게 주체가 되어서 윤회를 하는데 - 我 - 윤회의 主體
사람한테 들어갔다가, 어떤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들어가서, 변화하여 서로 다른 형체를 갖추게 되더라도, 아트만의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 이것을 상 常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또한 아트만은 순수 그 자체이므로 어떤 형태로 몸을 바꿔 윤회를 되풀이하더라도, 결코 오염 汚染되는 법이 없다. - 이래서 정 淨 이라고 합니다.
또한 신의 분신<atman>은 너무나 맑고 아름답기에 행복, 즐거움만으로 충만해 있다. - 樂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혹시 스님들이 글씨 써놓은 것을 보면, 常 - 樂 - 我 - 淨 - 이렇게 써놓은 것 보셨습니까? 보신 적이 있다고요! - 흐뭇해하시는 데.......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이거는 불교적 관념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승불교에 스며든 힌두교 브라만신의 분신에 대한 설명인 것입니다.
이때 부처님은 어떻게 주장하셨느냐? - 세상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데, 신의 분신이 어디 있을 수 있노? 당연히 無我 anatta 라고 하셨습니다.
신의 분신이 없기 때문에 , 영원히 형체를 변치 않는 신의 분신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는가! 모든 것은 조건지어졌기 때문에, 조건이 변하면 끊임없이 변해간다. 따라서 - 無常 anicca 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또한 우리 마음은 결코 순수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마음은 욕망이나 이기심, 적대감이나 분노, 선입관이나 편견에 의해서 얼마든지 물들 수 있다.(오염될 수 있다) - 이래서 染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오염될 染 말이죠.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욕망이 충족되지 못한다면, - 맨날 즐거울 게 어디 있노? - 짜증도 나고 그렇지 - 이러한 불만족스러운 마음 상태를 dukkha 라고 표현하셨으며, 중국에서 이 용어를 苦라고 한문 번역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은 初傳法輪經에 그대로 등장합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부처님은 경전에서 단 한번도 윤회가 없다고 이야기하시지 않습니다. 또, 그 본질로 들어가면 단 한번도 윤회를 설명한 적도 없습니다. 윤회를 설명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윤회에 관련된 핵심적인 단어를 모조리 부정합니다.
- 무슨 이야기냐 하면, 예를 들면, 부산시장이 여기에 왔다고 해서, 무엇 좀 해주세요 할 경우, 단도직입해서 - ‘안됩니다.’ - 라고 말하면 누가 표를 줍니까?
즉, [안됩니다] 하는 표현을 - ‘검토해보겠습니다’ - ‘고려해보겠습니다’ - - ‘우리 실무자를 데리고 와서 법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 결국은 - [안됩니다, NO] - 라는 표현을 다르게 하는 거죠.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부처님은 정치인 - 비록 대국인 코살라의 보호국이긴 해도 태자출신입니다. 외교적인 修辭에는 도사인 분입니다.
그러므로 경전을 잘 - 살펴보시면, 윤회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지만, 윤회의 핵심적인 이론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부정하십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어떠한 경전을 펼쳐 봐도, 삼법인이 안나오는 것이 있는지?
그러나 어떤 경전을 들여다봐도 윤회를 아까처럼 설명하는 책이 있는지? - 전혀 없습니다. -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해서 넘어 가버리는 겁니다.
[주] 당시 국가와 사회계급질서의 최정상부를 점하고 있는 브라만교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시대상황에서 전법선언 초기부터 - 교단이라는 어느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기도 전에
기존 세력들과 무모하게(?) 맞부딪치게 되는 상황을 일찍부터 조성할 이유가 아직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아직은 힘이 미약한 현실적 상황인 점을 고려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이 저-[혜일]의 개인적 추측입니다.
이점은 각종 경전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도 충분하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항시 재가 신도들이나, 브라만수행자들, 정치인(왕, 왕족, 대신들)이 물어오면 보시를 하고, 마음을 청정하게 하면 천상에 태어날 수 있는 이익이 되므로 그리 하세요. 뭐 이런 수준으로 대답합니다만,
(어느 정도 마음이 맑아져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음을 간파한 후에는) 그렇지만, 나라면 수행을 해서 마음을 맑히겠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은 수행자 - 제자들에게 법문, 수행지도하시는 경우에는 단호하게 삼법인을 설하고, 늘 상기하도록 가르칩니다.[慧日 補註]
그런데 문제는 내 마음에 들어와 있는 신과 내가 어떻게 하나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인데 -
아주 기발한 생각을 합니다. 몸을 통제한다. 이것이 바로 조신 操身입니다.
가령 내가 이렇게 서 있는데 - 피곤해서 앉고 싶다는 마음이 날 경우, 앉아 버리면 신과 거리가 멀어 진다라고 본 겁니다. 반대로, 피곤하지만 계속 서서 한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한다면, 신과 거리가 가까워진다고 본 거죠.
그래서 한쪽 다리로 서서 13년을 있었다든지 - 머리를 몇 년씩 깎지 않으니, 몇 미터가 되었다든지, 요가 책을 들여다보면, 기기묘묘하게 한번 취하기는 어렵지만, 오래 버틸 수 있는 자세가 많습니다.
피곤하다고 그 자세를 풀어버리면, 신과 거리가 멀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버티면 버틸수록 신과 거리가 가까워진다 이거죠.
두 번째로는 조식 操息입니다. 이게 숨쉴 식자인데요. 숨을 통제한다. - 숨을 쉬고 싶은대로 - 다 쉬어버리면 신과 거리가 멀어진다.
그래서 숨을 통제를 하는데 처음에는 천천히 통제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복식호흡이나 단전호흡처럼 천천히 쉬다가 나중에는 안 쉬는 수준까지 가는 거죠. 그러면 신과 거리가 가까워진다고 본 거예요.
생물이 육지에 있으면서 숨을 안 쉴 재간이 있습니까? 그래서 땅에 묻어 달라고 한다든지, 물 속에 들어가서 바위를 붙들고 안나오고 - 아무튼 그리했습니다.
부처님도 苦行林 Tapas 에서 6년 고행하실 때를 묘사한 경전을 보면, 이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 하는 표현도 수없이 나옵니다.
세 번째가 조심 操心 입니다. 마음을 조절, 통제한다. 마음이 끊임없이 인식대상을 찾아다니면 신과 거리가 멀어진다.
따라서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계속 고정시키면 신과 거리가 가까워진다. 바로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요가수행입니다.
자 이제 찬찬히 따져보세요. 어째 우리가 하는 참선하고 비슷하지 않나요? 조금만 몇 개 바뀐 것 같죠. 바로 그겁니다.
세간사를 한번 들여다보면, 재산을 몽땅 털어서 물건을 만들었는데, 전혀 안 팔립니다. 뒤따르는 동업자가 한두군데만 살짝 바꿨는데, 그만 대박을 터뜨린 거죠. - 맨땅에서 불교가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거죠.
숨을 통제하는 것을 자연리듬에 맡겨놓고, 마음을 한군데 고정시킬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하는 마음을 따라 붙이니까, 부처가 된 거 아닙니까!
단지 코드 두개를 바꿔버리니까 -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밑에서 대박을 터트려 버린 것 아닙니까!
각설하고, 다시 되돌아가서 -
그러면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분신과 내가 「하나가 되자」, 똘똘 말자」,「묶자」 - 이 말이 산스크리트어로 유즈 Yuz - 이것은 동사인데요, 명사로 만들면 요가 Yoga가 됩니다.(한문으로 瑜伽)
<몸과 마음을 통제하자 또는 묶자> 그러면 신과의 거리가 가까워질 거야 - 이렇게 생각한거죠.
삼법인 같은 것 - 무아, 무상, 고 - 을 설명할 때, 이것을 불교의 세계관과 연관지어 따져보고, 이번 시간에는 힌두교와 연관지어 봐야 그 의미가 정확하게 드러납니다.
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을 부정하지 않지만, 신의 역할을 바꿔 버린 겁니다. 기독교에서 신의 역할을 새로 바꿔 버린 것처럼-그래서 改新이라 하잖아요. 이런 식으로 여기서도 신의 역할을 바꾼 거죠.
신의 분신이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고 믿으므로 수행을 하는 거죠. 신이 하늘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기도를 합니다. 내가 뭘 믿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행동유형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계속] ---------------------------------------------------
사천왕(四天王)
사찰을 찾아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문이 일주문이다.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 절 이름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일주문 다음으로 만나는 문이 천왕문이다. 금강문이 있는 사찰은 금강문 다음에서 만날 수 있다.
천왕문에는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이다.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을 방어한다는 뜻에서 조성됐다. 사천왕은 인도의 고대 신화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왕이다.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 네 곳을 각각 관장했다고 해서 사천왕이다. 동쪽은 지국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서쪽은 광목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이 지켰다.
사천왕상은 사찰마다 그 배치나 천왕상이 들고 있는 지물이 다소 차이가 있다. 천왕상 제작시 신앙대상이었던 소의경전이나 조성자에 따라 달리 배치되거나 표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는 다음과 같다.
동쪽은 지국천왕이다. 비파를 들고 있다. 안민(安民)의 신으로 불린다. 선한 이에게는 복을, 악한 이에게는 벌을 주었다고 한다. 언제나 인간을 고루 보살펴주고 이들이 살고 있는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해서 지국천왕이라 한다. 남쪽은 증장천왕이다. 칼을 들고 있다. 자신의 위덕으로 만물을 소생시키는 덕을 베푸는 천왕이다. 서쪽은 광목천왕이다.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다. 악인에게 고통을 줘 구도심을 일으키게 하는 천왕이다. 북쪽은 다문천왕이다. 탑을 들고 있다. 어둠 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하는 천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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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慧日 손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