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德)을 베풀어야 복(福)을 받는다.
옛날 괴산지방에 유명한 서길보라는 지관이 살았는데 비룡상천(飛龍上天)형의 정승지지를 발견하고는 안동권씨 서족인 권수암(權遂庵)의 조상묘터로 잡아주었는데 묘를 쓰고 나서부터 발복하여 서족이면서도 벼슬길에 올라 판서를 거처 정승의 반열에 까지 올랐다.
그런데 정승의 반열에 오른 후에도 지관에게 공을 갚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관의 뒤를 봐주지 않은 것을 서운하게 생각한 지관의 농간으로 정승에서 물러난 이야기이다.
옛날에는 원족과 서족간의 사이가 멀고 서로 왕래를 하지 않아 서족들은 출세를 하고도 본가로부터 멸시를 당하기 일 수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벼슬을 한 후에 본가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러 갔는데 원족들은 서족이 사당을 더럽혔다. 는 이유로 그 사람을 내쫓은 후에 그 자리를 대패로 깎아버리는 수모를 당하고난 후 다시는 사당에 찾아가지 않았다.그런데 서족이면서 벼슬길에 올라 정승에까지 출세하게 된 것은 서길보라는 지관이 비룡상천형의 정승지지를 정해주었기 때문이다.
당초 지관 서길보가 서족에게 비룡상천형의 정승지지의 묘지터를 정해준 것은 보잘 것 없는 서족 출신이니 나중에 벼슬을 하게 되면 지관인 자기에게도 한자리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권수암이 지관 서길보가 정해준 비룡상천형의 정승지지 명당에 자기조상을 모신 후에 발복하여 우연한 기회에 서족이면서도 벼슬길에 오르게 되였다.
벼슬깅에 오른 권수암은 승승 장구하여벼슬이 점점 높아져 판서를 지내게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정승이 되였다.
그런데 당초 서길보가 생각했던 것처럼 벼슬이 높아지면 지관인 자기에게도 벼슬 한자리를 마련해 줄줄 알았는데 몇 번을 부탁하였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더욱이나 정승자리에 올라 10년이 되도록 벼슬자리를 만들어 주기는커녕 찾아가도 예전처럼 친절히 대하는 것이 아니라 박대하기에 이르렀다.
서길보가 가만히 생각하니 괘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였다.
서족출신으로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명당을 잡아주어 정승에까지 올랐으면 그 공을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벼슬이 높아지니 지관인 자기는 만나주지도 않는 것이 몹시 서운하였다.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오른 지관은 농간을 부리기로 마음먹고 정승을 찾아가서 하는 말이 "대감님 이제 그 산의 정기가 다 됐으니 묘지를 옮겨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정승이 가만히 생가해 보니 보잘 것 없던 자기를 정승까지 할 수 있도록 유명한 지관이 하는 말이니 그럴듯하게 생각 되여 “그럼 자네가 좋은 명당을 찾아봐주게”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서길보는 “ 옳타구나! ” 생각하고 형체만 명당인 터를 잡아 주었다.
욕심 많은 정승은 서길보가 잡아준 형체만 명당인 장소에 비룡상천형에 있는 자기 조상의 묘를 이장하고 말았다.
그러자 묘지를 이장하고 난 다음 바로 정승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였다.
그리고 서서히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자 기이하게 생각한 대감은 서길보를 불러“ 자네가 잡아준 명당으로 선대묘를 이장 하였는데 어찌하여 가세가 기우는 것인가? 하고 물어 보았다
서길보는 시침을 뚝 떼고 대답하였다.“ 명당은 하늘이 숨겨둔 것으로 후손이 덕을 베풀어야 발복이 되는 것입다”
대감은 그때서야 속은 것을 알아채고 덕을 베풀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나 한번 엎어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것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 가세는 얼마가지 않아 집안이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권수암과 서길보의 이야기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명당이라고 하더라도 후손들이 덕을 베풀지 않으면 그 복을 다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