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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처럼 옛날에 해우(김) 하던곳이 고향인 어떤분의 글이
추억을 떠올려 웃음짖게하는 재미있는글이어서
글쓴분의 허락도 받지않고 옮겨보았습니다.
긴 여름날
팽나무, 몰꼬시 나무 그늘아래에는 어김없이 발장치는 소리가 들리고, 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나오는 동백아가씨를 합창하며 탁 탁 탁 탁 탁... 니줄 발장, 다섯줄 발장...
들녁으로 갯바탕으로 쏘다닐려고 하면 ' 오늘은 발장 서른장 처나야 한다' 땡볕에서 대나무 쪼개시던 아부지 말씀에
애꿎은 발장틀은 발장꽁의 무차별 공격을 받아야 했다.
공회당 서늘한 대청안에서는 왱왱왱왱 샌나꾸 꼬는 기계소리 힘차고
나팔처럼 생긴 주둥이에 볏짚을 집어넣으면 뱅뱅 꼬이며 아이 팔뚝같이 굵은 샌나꾸를 길게 토해냈지.
발판을 밟는 어른들의 검붉은 등짝위로 흐르던 땀방울처럼
시원한 막걸리 담은 양은주전자도 함께 땀을 흘렸다.
음력 9월이 가기전에 포자도 하고 바닥에 발도 쳐야하는디...
대나무 발을 둥글게 말아서 지게에 머리에 이고지고 뒤뚱뒤뚱 갯가로 걸어가시던 동네 어르신들,
욕심많게 여러대를 지고 가시다가 균형이 안맞아 가끔 길바닥에 부려버리기도 하셨지.
발말을 밖고, 거뭇거뭇 포자된 발을 치고, 건장을 세우고, 해오(해우.김)둠벙도 파고, 꼬챙이도 이쁘게 갈라서 한쪽에다 붉은 페인트 칠도 하고, 꼬챙이 통, 작년에 쓰던 걸고리, 새대리도 고치고, 군대 헬멧같은 바가지, 믹꽁 쪼갠 바가지, 해오(김)통, 가오(해우가구), 도래, 됫박, 해오틀, 불 피울 깡통, 헌발장, 새발장 건장막에다 차곡차곡 쌓아두고, 치끝에 가서 썩은 나무토막 한아름 해다 놓고...
아! 올해는 해오(김)가 잘 되야 할텐데...
시양 떡하나 얻어먹고 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해오가 시작되었다.
탁탁탁탁
새벽 예배당 종소리 울리기도 전에 해오좃는 소리 온 동네 떠나갈 듯...
김치에 꽁보리밥 급하게 한술 뜨신 부모님은 조락에, 거렁지에 해오를 담아 끄스름 반쯤 서린 새구등불 하나 앞세워 건장으로 향한다.
해우둠벙 얼음을 깨서 한쪽으로 밀어놓고 가오 (해우가구)에 해오랑 물이랑 부어넣어
도래(몽돌이)로 밀고 댕기고 비비면 검붉은 물이 시름처럼 꼬랑을 타고 흘렀지.
동백지름 한방울 떨치고, 아이들이 엉기성기 치러논 발장에 또박또박 틀을 대고 됫박으로 한장한장 떠가면 내시던 엄메(엄니)의 손끝은 추위에 이내 감각이 없어졌을텐데...
" 불좀 피까라"(피울까요)
" 비온단디 빨리 뜨세(발장에다 해우뜨기). 나무도 밸로 없구마 "
아이들을 위해 썩은 나무가지 한토막도 아끼셨던 부모님들...
해오(김)널러 가야하는디...
졸린 눈을 비비고 웃목에 차러진 밥상을 마주하면 입안이 깔깔해 밥맛도 없었지.
" 혜영아 우리 해오 싸묵자"
" 안돼, 아부지가 다 시놨당께, 오빠! 서두(해우)가리 무쳐줄까?"
서두가리 무쳐 밥에다 비벼먹고 종종 걸음으로 건장엘 가면 부지런한 아이들은 벌써 저만치 널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아홉줄 널어라" 아부지 말씀에 왐마 오늘 해오 많이 뜬갑다.
징합다이. 노무 (남의집)건장까진 안갔으면 좋겄다만...
큰놈이라고 윗줄부터 자리잡고 쭉쭉 널어나가고, 서열대로 중간, 아래로 널어 나갔지. 막내는 맨 아래 마지막 한 줄, 그라고 해오 날르고 불 피우는 당번...물 질질 흐르는 해오 나르기도, 쪼그리고 앉아 널기도 힘든데 동작이라도 느리면 '저 써글년 머한당가' 맨날 구박만 당하고...
막내야 미안하다.
지나가는 어르신들의 "빤뜻 빤듯 잘 널었다" 하는 칭찬에 어깨를 으쓱하며, 시린손 호호불고 불도 쬐가면서 한참을 널다보면 뒷산 장작밭 너머로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어서들 가봐라'...
책보자기 어깨에 둘러메고 학교가는 길, 개야찜속 물에 불어 손가락만 흰 여린 손에는 해오 부스러기가 항상 묻어 있었다.
그나마 학교가는 날은 잠시 해방되지만 방학때는 해오를 다 널도록 건장에 붙어 있어야 했지.
아부지는 틀과 가오(해우가구)에 붙어 있는 해오 부스러기를 죄다 모아 마지막 한장까지 애써서 만들려고 그려셨고, '아따! 그만 하씨요~' 엄메는 그러는 아부지한테 늘 한소리 하셨지.
해오한장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셨던 우리 부모님들...
마지막 까지 함께 널고 온가족이 줄이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뉘집 해오는 퍼래가 많고 뉘집은 너무 얇게 떳고, 먼 해오를 저렇게 삐뚤삐뚤 널었당가...ㅋㅋㅋ
언제 다시 우리 부모 우리 형제들과 오손도손 깔깔대며 행복하게 걸어갈 수 있을까.
다시는 못올 머나먼 길 가신 우리 엄메, 사무치는 그리움에 눈시울이 뜨겁습니다.
간혹 물때 때문에, 일이 바빠 부모님들은 해오를 다 널지 못하고 마무리를 우리한테 맡기셨는데 그때부턴 집안에 제일 큰놈이 대장이 되었다.
웃줄 두줄만 쭉 늘어놓고 동생들이 따라 올때까정 새대리(해우도마로짐작됨)에 기대 앉아 있기도 하고, 꼬챙이로 혼자 땅따묵기도 하며 동생들만 구박했지. 윗줄만 너무 빨리 널면 등틴다나 머다나.^^
" 아부지! 눈온단디 뒤깨 (뒤집어)너까라"
" 아니다 올캐 (바르게)널어라 "
행여나 진눈깨비라도 내리면 덜마른 해오를 걷어서 다음날 배깔해야 하기 때문에 그게 싫어서 아들은 첨부터 뒤깨 널라고 하고, 아부지는 가능하면 빨리 말려서 하루에 다 끝내려는 심산으로 항상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지. 배깔(뒤집어널었다 바르게너는것)하는게 어디 쉬운일이냐. 징합제.
대가리 좀 커서부터는 마른갯것(건장에서만 하는일)은 내가 책임졌으므로 아부지 의견에 반해서 뒤깨널곤 했지. 그래놓고 염전가서 맘껏 뛰놀아도 부담이 없었으니까.
학교에서도 온통 해오 생각...
오늘은 바람이나 세게 불어서 아부지네가 바닥에 안나갔으먼 좋겄다.(바다에 김띁으러 가지않으면다음날은 쉬는날이니) 이런 바램도 수없이 했지.
길봉이, 하자, 봉섭이네가 사는 골목을 지나 땅금뫼 길로 걸어가면서 해오가 어느정도 말랐는지 한번씩 살펴보고 해오 마르는 소리도 귀기울여 들어봤었지. 행여 따닥따닥 마르는 소리가 들리면 불알에서 핑강소리가 나도록 뛰어야 했다. 이미 말라 나풀거리는 해오 몇장 뜯어서 입에 물고...
해오가 덜말랐으면 굼시렁거리며 게으름을 피우고, 홍승이네 순이네 집에서 감지도 한나 얻어묵는 여유를 부렸지. 그러다가 등티서 욕먹은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포깍진 감지에 짐치 얹어 아구창 터지도록 밀어넣고, 한두개는 손에 들고 건장으로 가면서 묵다가 노무집 벽부람에 힘껏 쳐발라 놓고......
" 등틴다~ "
" 눈온다~ "
공습경보 보다 더 무서운 소리
밥묵다가, 똥누다가, 공차다가, 야따하다가도 이소리만 들리면 누구나 이유없이 그저 건장으로 달려야 했다.
" 영단아! 은숙아! 이 써글년들은 워디가서 머하고 자빠졌대, 등 다틴디..."
따닥따닥, 찌지직...
헐레벌떡 건장에 도착하여 우선 군데군데 꼬챙이를 빼서 느슨하게 해 놓고, 손아귀가 터질만큼 가득 걷어서 건장에 비스듬이 세운 후 앞 몇장은 뒤깨서 꼬챙이를 찔러 놨지.
등티고 바람부는 날은 더더욱 정신 없었구.
반쯤 걷히면 맏이는 따땃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 63빌딩(그땐 31빌딩이었다) 처럼 높게 쌓아놓고 해오를 배끼기 시작했다. 착착착착... 배끼는 것도 신나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대부분 집안의 맏이가 담당했지. 앗싸리 말해서 젤로 팬했으니까. 빨리 뱃끼고 기회만 있으면 묶어서 도망가려고 궁리도 많이 했고... 눈이라도 올라치면 배낀 해오 젖는다며 배낀것 잠바에다 묶어서 집으로 줄행랑...
동생들의 해오 걷는 속도는 점점 줄어들고, 군데군데 치러야할 발장이 산처럼 쌓이고, 웃줄 두줄은 성님이 걷으라며 질게 남겨 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