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갈빗대?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었다고 하는 이야기에서 나온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와 해석이 있다.
첫째, 옛날 독실한 그리스도인은 남자의 경우 여자보다 갈빗대 하나가 적을 것이라 믿었다. 1543년 현대 해부학의 창시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Vesalius)가 '대담하게' 남녀 공히 같은 숫자의 갈빗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공표하자 많은 기독교인은 그를 두고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공박했다.
성경에 뭐라 했든 현재 남녀 갈빗대 수는 그가 지적한대로 한쪽에 열두 깨씩 좌우 스물네 개 모두 같다. 아마 아담의 경우 배꼽도 없고
갈빗대도 하나 모자랐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남자에게 유전적으로 내려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정형외과 의사에
의하면 지금도 남자의 갈빗대 숫자가 여자보다 하나 적지 않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둘째, 갈빗대 이야기를 놓고 남녀의 본성이나 지위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하는 일이다. 여자는 남자의 일부에 불과한 갈빗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남자보다 열등하다고 한다거나, 혹은 남자의 원재료는 흙이지만 여자의 원재료는 갈빗대였으므로 여자가 더
고급제품이다 하는 따위이다. 여자는 남자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게 보였기에 그를 "돕는 배필"로 지었졌으므로 남자의 종속물이다
하거나, 혹은 하나님이 남자를 지어 놓고 보니 뭔가 모자란 제품 같아 다시 지었는데, 그것이 여자요, 그 긴 창조 과정에서 그
대미(大尾)를 장식한 것이 바로 여자다 하는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여자는 남자의 옆구리에 있는 갈빗대로 만들었으니 기껏해야 "side issue"(곁다리로 생긴 것)에 불과하고 또 여자의 성격도 갈빗대의
모양처럼 구부러졌다고 하거나, 여자는 남자의 중간쯤에 있는 갈빗대로 만들어졌으니 남자보다 높지도 낮지도 않다 하는 해석도 있다.
재미있는 해석들이지만, 이 이야기가 이렇게 남녀 우열의 문제를 말해주려는 이야기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셋째, 이 갈빗대 이야기를 비교종교학적이라고 할까, 비교신화학적 시각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여러 문화권에서 전해 내려오는 신화를
살펴보면 상당수의 신화에서 최초의 인간은 남녀 성을 한 몸에 지녔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인간을 영어로는 'androgyne'라고 하는데,
희랍어로 남자란 뜻의 'andros'와 여자란 뜻의 'gyne'가 합해서 된 말이다.
우리말로는 양성구유인(兩性具有人) 쯤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힌두교에서도 그 옛날 최초의 인간은 양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인간보다 몸집이 두 배나 컸다고 나와있다. 그러다가 외롭고 쓸쓸하여 "콩이 반으로 나누어지듯" 나누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갈라진 반쪽들이 서로 만나 결합하는 것이 곧 결혼이라 본다. 조로아스터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플라톤의 <<심포지엄>>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었다고 한다. 남자와 남자가 붙어서 하나로 이루어진 순남성 인간, 여자와 여자가
붙어서 하나로 이루어진 순여성 인간,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붙어서 하나로 된 양성구유 인간이었다. 이 세 종류의 인간은 그러니까
모두 등과 옆구리를 밖으로 하고 서로 앞으로 붙어 있었다. 네 개의 팔과 네 개의 다리에다 오장육부도 모두 둘씩 있었고, 얼굴도 물론
두 개인데, 서로 바깥쪽으로 향해 있었다. 보통 때는 네 개의 다리를 사용하여 걸어다녔지만 바쁠 때는 네 개의 다리와 네 개의 팔,
모두 여덟 개를 사용하여 바퀴 돌듯, 굴렁쇠 구르듯, 올림픽 체조선수들이 텀블링하듯, 굴러다닐 수도 있었다.
이렇게 다니는 것이 너무 빠르고, 힘도 셀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마음이 자고해져 신에게 도전하기까지 했다. 위협을 느낀 신들은
서로 의논한 끝에 , 제우스 신의 제안에 따라, 인간을 반으로 갈라놓기로 하고, "삶은 계란 자르듯" 모두 반으로 잘라,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남자와 여자로 분리해 놓았다. 그리고는 얼굴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고, 성기도 앞쪽으로 옮겨 놓았다. 인간의 사랑
(에로스)이란 이렇게 본래 붙었다가 잘려서 떨어져 나간 다른 쪽에 대한 동경이라고 한다. 이렇게 동경하다가 자기의 진짜 짝을
찾으면 다시 팔 다리를 '얼크렁 설크렁' 하고 붙어서 함께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Symposium, 189-191).
아담의 갈빗대에서 하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갈빗대'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원문은 '첼라'(tsela)이다.
그런데 이 말을 반드시 '갈빗대'라 번역할 필요는 없다. 기원전 3세기에 나온 희랍어 70인역에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담의 '첼라'의
한해서만은 그것을 '갈빗대'로 번역했기때문에 그 후 계속 '갈빗대'로 이해되어 왔을 뿐, 그 말 자체는 그냥 '한 쪽'(side)이라는 뜻이었다.
출애굽기 26:20에 보면 "성막 다른 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다른 편'의 원문이 바로 '첼라'이다. 첼라를 다른 한 쪽이라든가 다른
한편으로 번역한다면, 아담의 갈비뼈를 꺼내서 하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아담을 둘로 갈라 한 쪽은 남자(이쉬)가 되고 다른 한쪽은
여자(잇샤)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영어에서 'man'이라고 하면 '남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남녀를 포괄하는 '인간 전체'를 뜻하기도 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담'이라는 말도 남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일차로는 남녀 둘 모두를 포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말 개역 성경에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창2:7)라 한 것이나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2:1)라 한 말 등에 나오는 '사람'은 '아담'의 번역이다.
따라서 '아담'은 이 경우 '양성구유의 인간'이었다고 보아 틀릴 것이 없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이렇게 읽으면 그것은 남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은 본래 남녀 한 몸이었다는 것, 사랑은 그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라는 것,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다."(창2:24)는 것은 이렇게 인간의
원초적 모습으로 되돌아감이라는 것,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막10:9)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창조질서에 근거한다는 것 등을 일깨워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첫댓글 갈빗대가 아니었군요.... 음 그런데 이런것에 무슨 비유니하며 암호처럼 이해하고 내가 풀었네 하는 식으로 이러쿵 저러쿵하는 말에 속아버린 어리석은 과거....아흐..... 진작에 알았어야 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