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서산에 져도 노을은 붉으리/이광기 시집
작품 감상 : 김영태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 성향은 삶을 바탕으로 한 체험을 기초로 하여 자신의 감정과 의식을 기준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젠가 원로 문인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적지 않은 내 나이를 보고 이제 시를 쓰고 맛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당시에는 그 말이 나와 작품을 비하하는 소리로 들려 마음이 상하였는데,
삶의 연륜이 쌓여 체험을 바탕으로 살아오는 동안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하여
작품을 창출하여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작품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가까스로 알게 되었다.
이광기씨는 문인으로 등단한 작가도 아니며 전문적인 글쓰기를 공부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 살아온 연륜을 바탕으로 가식 없이 써 내려간 글 속에 작가의
절실한 삶을 바탕으로 하여 체험을 통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져 있어
문학적인 시작법과 미사여구를 동원한 작품보다 절실한 작가의 감정과 심정이 전해져 오고
가슴에 와 닿아 글쓰기에 있어 살아온 연륜이 주는 영향이 아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광기씨의 작품은 학문적인 접근으로 따지면 허술한 부분도 눈에 보이겠지만
작품에서 발견되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순수한 감정의 표현이나 느낌을 전하는 것에는
미사여구와 허구로 포장한 잘 꾸며진 작품보다 오히려 진솔하고 순수하게
가슴에 다가와 한 시대의 흐름 속에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경험하고
작가의 글을 통하여 대리의 삶을 느끼며 작가와 비교하여 살아온 날의 반성과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미래에 대한 자신의 처신이나 방향을 느낄 수 있다.
살아보지 않고는 막연하게 짐작하고 느끼는 삶의 행로를 이광기씨는 "나의 일생 길"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희수(稀壽)가 되고 보니
후회는 없지만 아쉽다는 표현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시간을 알뜰하게 보낼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으며 "희수(稀壽)"에서도 작가는 부귀영화를 위하여 말이 달리듯이 정신없이
살아오다 보니 청춘은 구름같이 흘러버리고 이제라도 청산의 덕을 쌓아 인생의 흔적을
남기자고 자조의 목소리를 통하여 독자에게 인생의 바른 가르침을 주고 있다.
지내온 생이 남에게 허물 잡히지 않고 스스로 최선을 다하였다면 세월의 흐름에 떠밀려
짧은 삶의 시간을 남겨 두었다 할지라도 후회 없이 지나온 삶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고
남은 생을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음을 "은하수"와 "멀다 했는데"에서
말하고 있으며,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마음이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자연을 벗하며
자연 속에서 생성의 이치와 원리를 깨닫게 되어 피고 지는 꽃 한 송이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지켜보고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는 것을
"옥상 위"와 "산새"에서 보여주며 자신이 살다 간 흔적이 되고 자신의 삶의 보람이 되는
자식과 손자들에 대한 사랑과 걱정을 마지막 남은 인생의 과제이자 삶의 행복으로 여기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뜰 앞에 감나무"와 "자식 훈(訓)"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광씨의 "해는 서산에 져도 노을은 붉으리"는 제목이 말해 주듯이인생의 황혼기에서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여생도 희망과 사랑을 가득 안고지나온 삶의 허전한 부분과 아쉬운 부분을 채우기 위하여 지나온 세월 못지않게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으며, 독자에게는 삶은 나이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바탕한다는 것을 체득하게 해 준다.
작품 소개
나의 일생 길
젊은 인생길을 잊고 산 청춘
가나의 무경길은 멀기도 하였건만
한숨으로 스쳐 보며
독행독보(獨行獨步) 섭력(涉歷)하니
젊음의 묻어버린
향우지탄(向隅之歎) 길 생각하면
지상에 존재하는
고뇌에 잠재한 인간의 슬픔이다.
지금은 가려진 수란(愁亂)을 빗겨 간
젊음의 묻어버린 삶을 생각하니
내 인생 헌 옷남 입고 희수(稀壽)에 왔으니
후회는 없지만 아쉬울 뿐이다.....
*무경:거치고 좁은 길
*독행독보(獨行獨步):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일을 처리 함
*섭력(涉歷):여러가지 일을 경험을 가짐
*향우지탄(向隅之歎)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한 탄식
*수란(愁亂):금심으로 마음이 뒤숭숭함.
--------------------------------------------------
희수(稀壽)
인생길 멀다 하고 철없이 살았건만
고희(古稀)는 점잖게 자리 잡고 찾아왔네.
세월 속에 업혀 쫓겨 온 칠순에
철들자니 둔한 몸은 말이 없고
부귀빈천(富貴貧賤) 잦은 곳에 몸 맡기며 흥정하고 돌아본다.
수십 년 세월 마연(馬煙)에 넋을 잃고 온 길
아득하고 먼 길인데
미혹(迷惑)한 인간은 약한 존재임을
가뭇한 세월에 추억을 골라
고생길 짧은 문조(文藻) 일흔 해 읽어보며
팔순 길 멀다 하고
청산길에 덕이라도 쌓고 살아보라.
*고희(古稀):팔순
*부귀빈천(富貴貧賤):재산이 맣고 지위가 높고,가난함과 천한 것
*마연(馬煙):말이 달릴 때 나는 먼지
*미혹(迷惑):정신이 헷갈려 헤맴
*문조(文藻):시문
-------------------------------------------------------
인생이란
인생은 본바탕으로 지닐 수 없지만
본래의 모습을 누구도 시들어 가는
인생을 후회할 수도 없다.
짧은 날에 행복이나마 감사하고
남은 인생을 눈여겨보며
끝없이 닿는 시간까지 세상을 쓰다듬으며
가깝고도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내가 숨 쉬는 동안 건강을 찾고
웃음 속에 기쁨을 안고 살아가면 어떠하리
인생의 무상함을 막을 길이 없는데
삶 속에 괴로움이 있거늘 어이하리
---------------------------------------------
은하수
수 많은
영혼이 떠 올라
하늘에 수 놓은 은하수
밤이면 쳐다보며 눈물지으니
상념에 젖어 슬퍼지는구나!
수천 리 하늘을 쳐다보면
어느새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어
옷 깃을 스치는 바람도 한기가 베어있네.
----------------------------------------------
멀다 했는데
그 옛날 어른들은 젊은이를 보고
갈 길이 멀다 하였는데
어른 된 지금에야 갈길이
가까워 부딪치는구나
지난 세월 뒤돌아 볼 시간없이
안부마저 전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안개 속에 걸린 희망을
세월 속에 부탁한들 누가 들어주나
생명의 아쉬움은 나이 들수록
바빠지는구나
-------------------------------------------------------
부고(2)
부고 받고 찾아간 고향 밤은
이렇게도 허무한 밤인 줄은 몰랐다.
사방은 죽은 듯이 고요하게
소리없이 이 밤을 지키고
한 사람의 운명이 지고 간
초상집만 떠들썩하며
살아있는 자만이 슬픔과 비통이
이곳에서 울부짖구나!
장생불사 못할망정
육신 장수 못할 망정
걱정없이 살아 보았으면 어떠하리
이 밤도 내 마음도 역시
어수선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