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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요 세부의 바다빛깔은 시각마다 일곱가지 색으로 변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빙 지역들이 유난히 많고 세 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이유도 바로 그 유명한 에메랄드 빛의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맑고 깨끗 한 바다와 하얀 모래 백사장 아래에서 있다보면 하루가 너무 짧고 또한 썰물 시간을 잘 맞추면 바닷물이 갈 라지며 모세의 기적과 같은 하얀 백사장이 드러나 신비함을 더하기도 한다. 맑고 깨끗한 바다와 하얀 모래 백사장 아래에서 있다보면 하루가 너무 짧고 또한 썰물 시간을 잘 맞추면 바닷물이 갈라지며 모세의 기적 과 같은 하얀 백사장이 드러나 신비함을 더하기도 한다. 색다른 문화를 접하고 싶으면 세부 시내 관광을 해 볼 만하다. 세부는 필리핀에서 2번재로 큰 도시이기 때문에 역사적 발자취를 가장 잘 간직한 매혹적인 도시 이다. 또한 세부에는 각종 수공예품 제작 산업이 발달되어 있어서 눈을 돌리게 만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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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식민지 시대 의 문화 유적지와 교회가 여러군데 남아있는데 성페드로요새 박물관과 마젤란의 십자가 등을 둘러보면 필리 핀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산호빛의 바다를 헤치면서 방카에 앉아 바다를 구경 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조그만한 문인도에 도착한다. 이국의 정취를 느끼면서 현지인이 준비해주는 아일랜 드 호핑, 초보자도 할 수 있는 체험 다이빙, 세부의 비사야 해역에서 1년내내 안정되게 즐길 수 있는 사파 리다이빙, 원색의 산호초사이로 누비고 다니며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열대어를 구경할 수 있는 스노클 링, 그밖의 제트스키, 실탄사격, 골프, 낚시, 시내관광, 카지노, Bottom Glass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다. |
세부섬의 유적지들은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 필리핀 최초의 요새인 산 페드로 요새 마젤란이 가져 왔다는 마젤란 십자가 마젤란 십자가 ,필리핀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제일 오래된 산토니뇨(아기예수)가 있는산토니뇨 성당 ,부자들이 사는 마을인 비버리힐즈와 도교사원 등 많은 유적이 있다. 세부섬의 밤은 마닐라의 밤 못지않게화려하다. 가라오케,디스코텍,맛사지 ,사격 등 모든 유흥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 기 때문이다.가족단위의 관광객을 위한 위락시설로는 막탄섬부근의 섬을 3~4 시간동안 일주하면서 즐기는 island hopping tour는 가족단위 또는 단체 관광객의 발길을 기다리고 possipor라고 하는 잠수함투어도 관 광중의 하나이다.세부는 맑고 깨끗한 바다와 하얀 모래백사장 아래 서있다보면 하루가 너무 짧고 또한 썰물 시간을 잘 맞추면 바닷물이 갈라 지며 모세의 기적과 같은 하얀 백사장이 드러나 신비함을 더한다. 마닐라 로 부터 남동쪽에 500km 필리핀 군도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1521년 마젤란이 필리핀 상륙시 첫발 을 기록한 섬으로 마닐라가 수도로 정해지기 이전에는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으며 동양에서 가장 스페인적 인 도시라고 불린다. ♣ 지리적 특성과 세부,막탄 설명 마닐라 동남쪽 560Km로 비사야 섬들의 중심에 위치하고 길이 300km, 250만명으로 서쪽으로 네그로스섬과 동 쪽으로 보홀섬을 두고 있으며 크고 작은 167개의섬들이 주위를 먼저 받아들여 발달해온 세부섬은 무역의 중 심지로 문화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독창적인 것을 지니고 있다. "남쪽의 여왕도시" 라고도 불리우는 세부 섬은 특히 남단부 항구 주변에 모여있는 짧은 시간내에 돌아볼 수 있으며 깨끗하고 조용한 해변 휴양지와 오랜 역사를 가진 명소 유적지는 손님들에게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호소하고 있는 듯하다. | |
막탄 국제공항의 아부노는 수제품 기타 생산지로 방문자는 기타공장에서 직공이 손으로 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공장 입구에 들어서면 기타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며 기막힌 연주솜씨를 보여 주고 있으며, 세계의 각국으로 수출이 되는 품질이 우수한 명품으로 꼽히고 있다. | |
세부로 가기위해서 보통 마닐라에서 출발하는 국내선을 이용하며 마닐라/세부간은 매일 8∼9편이 운항하는 PAL을 이용한다.소요시간 은 1시간이다.배편은 선박회사에서 1주에 약 7편이 운행하고 있다. 각 매표소나 시내의 대리점에서 미리 예 약하고, 소요시간은 배에 따라 다르나 약 22∼25시간 정도 걸린다. 공항에서 시내로 - 공항에서 세부 시내까지는 차로 약 40분 걸리고, 택시 요금은 80페소 정도이다. 운전수 가 있는 렌트카는 한 대에 약 150페소이다. 공항 셔틀 버스가 비행기 도착 시간에 맞추어 아침 6시부터 막 차 도착시간까지 1시간에 1대씩 공항과 시내를 왕복한다. 요금은 30페소이다. 단 기본적으로 버스에 사람들 이 차야 출발하므로 상당히 기다리게 되는일도 있다. 산토니뇨 성당 ( Basilica Minnore del Santo Nino) 가장 오래된 성당이고 먼동쪽 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있는 바실리카풍의 성당이다. 성채 산페드로는 필리핀에 처은으로 정착한 스페인 사람들의 중심지로서 지어진 작은 성채이다. Colon거리(나중에 콜롬버스 거리가 됨)는 세부시의 가장 중심가 이다. | |
♣ 세부의 볼거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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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푸라푸 동상 |
마젤란 십자가의 육각정 | |
산 페드로 요새 | |
도교 사원(Taoist Temple) 시내로부터 약 6km거리에 위치한 세부시의고급 주택지로 불리는 베버리힐즈의 구릉지에 있는 중국사상가 노자를 숭배하는 사원으로 국교인 카톨릭이 압도적인 이 곳에서 극소수의인 도교의 화려한 사원은 예상을 빗나가기에 충분하다. 산의 경사면에 설립한 이 사원의 위용은 중국사원 특유의 건축 양식과 붉은 색을 기초로 하는 화려한 채색이 특색이며, 최상부의 본당으로 통하는 99개의 계단을 올라 가면 세부시의 전경과 막탄 섬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 |
알타비스타 컨트리 클럽 (Alta Vista Country Club) 18-hole 의 챔피언쉽 golf 클럽입니다.Black Knight 에의해 설계 되었습니다.막탄 공항에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 거리의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개인 소유의 클럽이지만 손님들과 여행객들에게도 개방하고 있다. 설계는 파 71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얀 모래 벙커가 초록색 잔디밭과 잘 어울리는 산호색 바위 주변으로 있다. 18번 홀인 우승 코스는 PAL 인터 클럽에 위치해 있고 중요한 필리핀 골프 연맹의 하나이다. 코스 주변의 레스토랑, 바, 찻집과 남녀용 현대식 락커룸, 테니스 코트, 볼링장, 수영장, 펠로타와 배드민턴장 등이 완벽히 설치된 좋은 클럽하우스가 있다. | |
로자리 거리에 있는 필리핀 최고의 종합대학. 창립은 1595년. 현재의 학생수는 약1만 명이다. 부속의 선 카를로스 대학 박물관에는 세부 비사야 민다나오 등이 각지에서 발굴된 유품을 비롯하여 인류학과 생물학의 귀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어서 동남아시아의 문화사를 안 후로는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다. 특히 필리핀 각지의 해양 동식물의 수집에 힘을 쏟고 있다. 또 생물학부의 토끼 모자이크도 볼 만한 것으로, 이것은 나비의 날개를 이용하여 만든 진귀한 예술품이다. 음식점 Seafood City Lighthouse Lantaw Gardens 다이빙 사파리 투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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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5년 레가스피에 의해 세워진 이 교회는 산 어거스틴 교회라고 하는데 산토니뇨란 '어린예수' 로서 필리핀에서는 성인의 예수보다는 어린예수에 대한 숭배심이 강한데, 이 교회안에는 '어리예수상(Senor Santo Nino)이 유리케이스 속에 봉안되어 있으며 교회내부의 중앙을 화려하게 장식해놓은 것이 특징이고 매주 일요일마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며 교회안에서는 작은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산토니뇨상은 마젤란이 세례의 기념으로서 1521년에 세부의 여왕에게 보낸것인데 16세기에 세부가 전쟁에 휘말렸을 때 화재가 휩쓸고 간 자리에 상처 하나없이 누워 있었다는 일화를 갖고 있으며, 세부 사람들의 수호신이다. 또한 교회근처에서 촛불을 키며 기도하는 모습, 산토니뇨상에 키스하며 기도드리려는 사람이 죽 늘어있는 모습과, 교회안의 수백년 전의 조각과 그림, 샹드릴라 따위가 진열되어 있어 마치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교회안은 수백년 전의 황홀한 조각과 그림들이 진열되어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를 자아내게 한다.마젤란크로스에서 10m 밖에 위치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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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 | |
수도회는 1949년부터 1950년까지 산 카를로스 신학교를 만들었다. 도시민들은 Santo Tomas de Villanueva에 많은 헌신을 보내었다. 수도사인 Meliton Talegon은 교구 왼쪽에 묻혀 있으며 그는 훌륭한 카톨릭 신부로 많이 기억되고 있다. 이 성당은 큰 보수공사를 치뤘는데 Pablo Alcatraz가 내부 칠을 했으며 원래 오르간은 아직도 남아 있다는 멕시코의 성당에서 가져왔다. ♣ 성당의 건축양식과 특성 외형은 매우 간단한 직사각형인데 이것은 코린트 양식의 기둥과 평면의 처마장식으로 3개의 단계,3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져 있다. 종탑은 성당의 낮은 곳에 위치해 있는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 구조물에 합쳐져 있어 예술적 불일치를 이루고 있다. 코세텡은 그것을 이르러 종지기의 구역이라고 부른다. 성당 전체의 외형 중에서 알가오 성당은 가장 섬세하고 로코코적이다. 아치 현관이 코린트 문자와 날개를 편 독수리로 장식되어 있는 직사각형의 받침대가 있는 기둥의 측면에 위치하고 있다. 정문 위의 그 조그만 직사각형은 카톨릭의 상징과 천사장 미카엘 천사의 작은 동상을 겅배함을 의미한다. | |
3. 볼리준 성당 (The Church of Patrocinio de Maria in Boljoon) | |
Boljoon성당은 1599년 지어진 이래 400년 기념의 해를 맞았다. 그동안 이 성당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영원한 예수님의 은혜가 내려질 것이라 한다. | |
♣ 설립 1. church of Boljoon은 Church of Carcar의 지배를 받고 있을 당시에 설립 2. Boljoon성당은 1690년 10월 31일 독립교구 3. 1692년 4월 5일 니콜라스 신부에 의해 명명 4. 1737년 9월 27일 수도원은 성직자의 부족으로인해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의해 운영 5. 1747년 Boljoon성당은 Liloan, Cotcot and Maraling 들과 교체되어 카톨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 역사 옛날에는 잦은 이슬람교인들의 습격으로 Boljoon 교인들은 늘지를 못했다. 교인들을 지키기 위해서 수도사 Julian Bermejo는 푼타 타농에서 만하게까지의 바닷가를 따라 정찰탑을 짓게 했다. 이것은 후에 카르카르까지 확장되었고 총 길이는 96킬로미터에 다르게 되었다. 그는 또한 사람들이 다쿨 발라이 라고 부르는 커다란 네모꼴의 집을 지었는데 그 집은 돌로 만들어졌고 최소 1미터의 두께의 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에 감동받은 정부 관료는 이 요새를 수호하기 위해 포격 장비를 지원해 주었다. 베메죠 수도사는 또한 긴급 상황 속에서도 계속 전갈을 취할 수 있도록 통신 시스템의 설치를 허가하였다. ♣ 성당의 건축양식과 특성 첫번째 건물들은 1782년 이슬람 교도의 급습으로 거의 파괴되었으며 마을 전체도 그러했다.
이 성당의 직사각형 종루는 1701년에 지어져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으며 이슬람 군대에 대항해 싸우기 위한 대포가 보이는 대포구멍이 있다. 종탑의 종소리는 오슬로브와 알코이에 까지 들릴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그 종들은1802년 이슬람 사병인 다투 오렌데인이라는 자가 이끄는 이슬람인들로 인해 약탈 당했다. 회교도가 지긴 했지만 그 종은 다시 되찾지 못했다. 프래이 안토니오 마글라노는 그때 볼준 사병들을 이끌었던 전사 신부였다. 실재 장식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본당과 수랑, 2미터 두께의 회반죽과 석회로 만든 28개의 기둥들이 있다. 이 기둥들은 기둥의 두께만큼 벽을 지탱하고 있다. 그것들은 종교적인 길처럼 인식이 되었지만 도난을 당했다. 성당의 스타일은 사이비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을 혼합시켜 놓은듯하다. 디자이너는 겉은로는 알가오 와 달라쿼터의 성당의 패턴을 본떴으며 창틀이나 얇은 기둥들을 사용하여 몇가지의 로코코양식의 장식품들을 추가했다. 거기에는 인상파 그림작품인 '아 라 그레코'작품이 표현되어 있다. 모든 세부 성당 중에서 Boljoon성당은 필리핀의 신믹지였던 과거의 느낌을 잘 살려주고 있다. Boljoon성당은 세부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건물중 하나이며 잘 보존되어 있다. 최근 1998년에는 복구와 보전이 명해지기도 했다. 1999년에는 독일 정부의 도움으로 전분적인 연구를 총하여 복구와 보존의 노력이 이루어 지고 있다. | |
4. 사진으로 보는 성 캐서린 성당 (St. Catherine's Church) | |
5. 다나오시의 토마스 패리쉬 성당 (Sto. Tomas Parish Church of Danao City ) | |
다나오 성당은 1755년 마뉴엘 드 산타 바바라 수사에 의해 건설되었는데 사탕 수수와 바닷가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 장식들은 1800년대에 완성되었지만 2차 대전 중 1942년에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 |
이 성당의 매우 재미있는 부분은 종들인데 그 종들의 이름들은 성인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산 알리피오 종은 1845년에 달렸고 45킬로그램이 나가며 가장 오래된 종이다. 다른 두 종들은 1917년에 더 설치된 것들인데 이 종들의 이름은 630 킬로그램이 나가는 빌라네바와 249 킬로그램이 나가는 사그라도 코라존 종이다.그러나 이 성당에 대해 정말 재미있는 것은 이 성당의 외관이 뒤죽박죽 이라는 것이다. 성당의 일부는 옛날 것이 남아 고유의 디자인 그대로 이고 다른 부분들은 잘 어울이지도 않고 시대 착오적인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질문들이 그 건물의 건축상의 스타일의 확실성에 대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면 도금한 주교관 둥근천정은 1981년 보수공사때 추가된것이다. 이것이 건축 디자인에 바실리카 양식을 접합시켜 훗날 추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마치 오리지널 디자인처럼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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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립 오슬로브란 이름은 셌다가 약했다가 하는 조류의세기로 나타났다 보이지 않았다가 하는 바다근처의 강하고 신선한 물의 흐름 이란 뜻이다. 오슬로브는 1848년 1월 8일에 마리아님의 은혜아래 독립된 교구로서 시작되었다. | |
마을은 국방 장관 겪이었던 나르키오 카르베리아가 바랑귕기에서 이슬람교도와 맞선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를 영접하게 되어 그로부터 특별한 특권을 받게 되었다.
1851년 오슬로브의 많은 젊은 청년들이 이슬람 교도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장군이었던 율비촌도를 따라 자원집대 하였다. 성당에서는 파스칼 이반네즈 신부를 앞세워 시쿼조르 섬에 배치되는 청년들을 위해 애국적인 연설을 해주었다. 1848년 마파에 의하면 오슬로브의 매력적인 점은 잘 골라진 돌로 만들어진 장엄한 성당이라고 했다. 성당의 시작은 줄리앙 베메죠신부(세부시 곳곳에서 이슬람 교도들에 대항해 싸웠던 줄리앙 베메죠 신부와는 동명이인이다.)에 의해 1830년에 건축이 시작되었다. 성당은 18년 후에 완성되었고 비숍 노말도 지메노가 축복 의식을 거행하였고 그것이 그 성당의 첫번째 미사가 되었다. 종탑의 5틍에는 11개의 종이 있는데 5틍이 무너지고 난 후에는 4층으로 옮겨졌다. 성당은 1942년에 필리핀 게릴라들에 의해 지하에서 천정까지 많이 파괴되었다. 1955년에는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불로 성당 주변의 부지까지도 벽 두개만 빼놓고 모조리 붕괴되었다. 베네딕토 자프라 신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재건축을 시작하였다. 마침내 콘스탄티노 박톡토이 신부가 그 성당의 수도원을 보수했고 1980성당의 150주년 축하를 받을 때즈음에 성당 전체의 개조를 완성하였다. 종탑과 외관의 창문은 직사각형으로 생겨 성당은 심플하게 보인다. 외관 디자인의 깔끔함은 건물의 수직적인 모습과 곧은 직선들을 잘 강조해준다.다수의 반쯤 파묻혀 있는 벽기둥들은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들을 잘 나타내 준다. 박공벽은 삼각형으로 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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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립 1599년 수도원은 비자얀의 언어학자였던 알롱소 드 멘트리다 신부를 지휘로 하여 문법을 공부할 학교로 만들어졌다. 또한 그곳에서는 선교사들의 시골에서의 노동등이 행해지고 나이가 들거나 아픈 신부나 사제들을 위한 집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 성당은 카놀릭의 보호아래 매우 신성한 장소였다. 성당에 소속되어 있는 사제들의 숫자신부 한 두 명당 3-4명으로 신부들을 제외하고도 꽤 많은 수였다. 1578년에 총회가 열려 모든 신부들에게 그전의 관습대로 바실리카 성당을 위해 기도드리게 했다. 164년 신부는 그 지방에 1월 14일을 바실리카 성당의 축제일로 경포하고 축하했다. 그 축하에는 엄숙하고 장엄한 미사와 설교와 깃들여 졌으며 신부는 마을 사람들의 자애로운 보호자로서 최고의 칭송을 받을만했다. 니콜라스 드 라 쿠아드라 신부는 바실리카 성당에 바치는 헌신과 애정을 널리 알리기에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는 매우 표본이 되는 사람을 살았고 신성한 장소에서 행해질 매우 장엄한 종교의식의 설교문을 만들고 동상을 장식하기 위해 많은 보석들을 사용했다. 바실리카 성당의 첫번째 9일기도는 1889년 성당의 당시 주임신부였던 마테오 디아즈 신부에 의해 인도되었으며 세부언어로는 title Novena ug pagdayeg sa Ssmo. Ni? Jesus nga guisimba sa cyudad sa Sugbu였으며 여러 지역 방언으로 인쇄되었다. 이 9일기도는 셀 수도 없이 재판되었다. 지금에 이를때까지 9일기도의 신봉자들은 매주 금요일 미사에 참가하고 있으며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1. 1566년-예수의 형상이 나타났었다는 장소에 지었던 첫번째 성당이 불에 타 없어졌다. 없어진 성당은 디에고 드 헤레라 신부가 나무와 니파를 이용해서 지었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성당은 1739년 곧 완공되었다. '벨라'라는 작가에 의하면 '성당은 지진에 견딜수 있는 석조 건축물의 모든 특징적인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 그대로 그 성당은 모든 지진들을 이겨냈다. 디어즈 수도사에 의해 1889년에 창문을 추가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원래의 성당의 형태는 유지되었다. 1965년 성당과 수도원은 매우 큰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그 공사는 크리스챤 국가의400년 공사중 어떤 곳보다도 큰 공사였다. 공사는 역사적 인문들과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최대한의 존경심으로 진행되었다. 카디날 서품대, 교황 특사 사절, 등이 성당을 방문하여 '바실리카 미노르' 라는 이름을 수여하였고 교황인 바울 4세에 의해 카톨릭의 이름으로 엄청난 특원들이 주어졌다. 한편 전 대통령이었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바실리카 성당을 그것의 역사적인 중요성을 감안하여 국립 성당으로 선언하였다. ♣ 성당의 건축양식과 특성 · 외관-이슬람과 로마네스크 양식, 신고전주의적 모습들이 잘 혼합되어 고도로 아름다운 경지로 묘사되어 있다. 외형은 오리지널의 돌의 질감과 자연스러운 색깔을 고수하고 있으며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맛을 전해준다. · 종탑-반대편 끝에 위치해 있는 수도원과 평형하게 위치되어 대등한 모습이다. 교차되어 있는 두개의 가려진, 그리고 열려있는 창문이 있으며 이슬람의 영향으로 둥금 돔과 난간등으로 장식되어 있는 삼각형의 뾰족한 탑으로 마무리가 된다. · 중심부분-시선의 종점이다. 아치형으로 생긴 현관은 직사각형의 양쪽의 코너와 잘 어울린다. 이중 가장자리의 삼각형 벽은 외관을 더욱 꾸며놓고 있다. | |
8. Balamban (St. Francis of Assisi Church) |
9. Badian (St. James the Apostle Church) |
10. Ginatilan (San Gregorio Magno) | |
11. 산타로사 데 리마 성당 (Church of Santa Rosa de Lima in Alcoy): 1867년 세부 시내에 설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