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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야속했다
내일(7월27일) 목포 하굿둑에 골인하려면 오늘 많이 걸어야 한다.
6시 이전(5시 48분)에 걷기 시작한 것은 강따라 걷기 10일째 중에서 처음이다.
봉황면(나주시) 덕룡산에서 발원하여 만봉제(堤)에 머물렀다가 금천과 하나된 후 북류,
영산강으로 합류하는 만봉천 양곡교를 건넜다.
1989년 홍수 때 큰 피해를 당한 뒤 제방을 더 높이 쌓고 새로 놓았다는 다리다.
짙은 안개 때문에 시야가 거의 없는 이른 아침에 만봉천 하류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은 밤을 새웠을까 새벽같이 나왔을까.
마니아, 중독자 어느 쪽이라 해도 건강에 해로울 텐데 왜 저럴까.
낚시 삼매경을 모르면서 새벽부터 허튼 생각하고 있는 건조한 늙은이.
양곡교를 중심으로 ㄷ자 형의 만봉천 길에서 영산강 합류지점 직전, 정량(正良/운곡동)
배수퍼프장 앞 우람한 느티나무가 왜 푸대접을 받고 있을까.
섬진강 임실의 장뫼에서는 별것 아닌 나무도 상을 받았고 웬만하면 모두 보호수 이름표
차기 마련인데 왜 밉보였을까.
운곡동에서는 보호수 경쟁이 치열한가.
정량마을 서북의 가야산 줄기가 영산강 합수지점 아래에 한 단애(앙암/仰岩)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자전거는 우회해야 한다.
높지 않은 아방고개(?)를 넘고 진부마을(津夫/진포동)을 관통해 영산강 둑으로.
아방고개에서 앙암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어놓았다.
앙암이 나주의 절경 중 하나라는 뜻일 것이다.
올라보려 하다가 안개의 훼방으로 시야가 없기 때문에 포기했다.
영산강 절경중 하나라는데 안개가 야속했다.
아침 7시가 되기 전이지만 해는 중천으로 솟았는데 마실 물이 없지 않은가.
이른 아침의 결례임을 알면서도 목장이 딸린 정돈된 집 마당의 여인에게 물을 부탁했다.
고맙게도 냉동된 500ml 패트병 하나를 들고 나온 여인.
자전거 탄 사람만 보다가 걷는 늙은이를 보는 것이 신기한가 웃어주었다.
웃음으로 사례하고 마을회관 앞으로 해서 영산강 둑길로 올라섰다.
건너편은 다시면 구진포나루터다.
차량뿐 아니라 오토바이까지 통행을 금지한 강둑 자전거길.
차량이야 푯말 때문에 진입하지 못하겠지만 오토바이가 순순히 따를까.
지키지 못할 법 남발하면 법의 권위만 퇴색하기 때문이다.
첫 쉼터(진부)에서 잠시 쉬었다가 진포동(津浦)의 평촌(平村), 포두(浦頭),와 오량동(五
良)을 지나 왕곡면(旺谷)과 다시면(多侍)을 잇는 새 다리(미개통?) 밑을 통과했다.
이 다리는 특이하게도 영산강뿐 아니라 논에도 교각을 세우고 상판을 놓았다.
토지 매입비의 절감 효과를 노린 것일까.
저지대 논의 매입과 성토보다의 교량공사의 비용이 저렴애서? .
여기 자전거길을 조성한 시기는 꽤 된 듯 한데 가로수들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날림 이식으로 인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러는 이식 당시대로 송두리째 뽑혀 죽어가고 있다.
영산강 상류(담양)부터 이런 꼴이 계속되고 있다.
한심스럽게도 마치 토지수용지역의 토지 소유자들이 지가를 많이 받기 위해 급조하는
농원처럼 꽂아놓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죽산교 밑을 통과했다.
나주시의 영산강 다리들은 말썽이 없다 했더니 웬걸.
2000년 1월에 개통했다는 13살짜리 죽산교(연장 650m,폭 11m)가 만신창이란다.
이 고질에는 약이 없는가.
섬진강에서 말한대로 전과있는 설계자와 시공사를 영구추방하면 어떠떨까.
기술자와 건설사의 전멸을 초래할까.
역모의 획책만이 반역인가.
사기꾼의 말을 믿을지언정 이 사람들의 말은 믿을 수 없다
죽산보(竹山洑)에 당도했다.
왕곡면 송죽리(松竹)와 다시면 죽산리 사이 영산강를 막은 보다.
예전에 나루가 있었으며 죽산리 주민들이 반남면 소시장에 갈 때 이 나루를 이용했단다.
다리가 놓여 편해졌는데 다시 보가 건설되었다.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16개 보 가운대 유일하게 유람선 통로 수문을 가진 보란다.
"목포에서 이 보를 거쳐 영산포, 승촌보까지 70km 구간을 유람선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되었고, 황포돛배 운항을 통해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나.
꿈도 야무지다.
폐기처분했던 경인운하를 기어이 만들어 띄운 아라뱃길 유람선을 보시라.
그 길을 걸으며 생각해 보면 이 꿈이 얼마나 허황되었는지 절로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기꾼의 말을 믿을지언정 이 사람들의 말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영산강제4경 '죽산춘효(竹山春曉)'는 죽산 일대를 말하는 것인지 죽산보인가 애매하다.
어느 쪽이라 해도 왜 '봄날의 새벽'인가.
이 곳의 봄철 새벽이 그렇게도 볼만(壯觀)한가.
비 내리는 날 외에는 거르는 날 없이 늘 새벽안개에 시야가 없는데도.
더구나 '춘효' 는 한가로우면서도 노곤한 봄날 아침의 정경을 노래한 중국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689~740)의 시제(詩題)인데.
春眠不覺曉,(춘면불각효), 노곤한 봄잠이라 날 새는 줄 몰랐더니
處處聞啼鳥.(처처문제조). 여기저기 새 울음소리 들려오네
夜來風雨聲,(야래풍우성), 지난 밤에 비바람 소리 들려왔것다
花落知多少(화락지다소). 꽃잎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또 있다.
등록문화재 제485호인 안중식(心田安中植/1861~1919)의 동양화 '백악춘효(白岳春曉)'
국권을 침탈당한지 5년 되는 해(1915년)에 그린 그림인데 미술평론가에 의하면 "침묵과
고요, 적막감이 새벽안개와 함께 짓누르고 있어 망국의 비통함을 담은 그림"이란다.
얼핏, 낭만적인 듯 하나 긍정적인 단어가 아니라는 말이다.
다른 좋은 뜻이 있는데도 내 식견이 모자란 탓일까.
죽산보 쉼터에서 만난 두 자전거 주자(60대?)가 나를 1990년대로 돌려놓았다.
그 시기에, 나는 산에 오르는 막간을 이용해 자전거를 즐겨 탔다.
내 자전거의 장거리 주행은 질주가 아니고 고속 보행을 의미했다.
내게 자전거는 지그재그 하며 보다 많이 탐방하게 하는 고마운 기구일 뿐이었다.
동일 시간에 보다 많이 보며 동일 탐방 일정을 보다 빨리 이루게 하는 문명의 이기였다.
누누이 말해온 대로 이즈음의 자전거 마니아들은 전율할 정도로 스피드를 자랑한다.
건강 달리기 또는 관광 달리기가 아니고 기록 경기(race)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영산강은 섬진강에 비해 원성의 소지가 적으나 자기 때문에 피해가 막심한 현지 주민에
대한 사려가 전혀 없는 듯이 보인다.
이같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막대한 국비를 쏟아부은 정부는 비판받아야 한다.
더위를 피해 자리를 옮기면서 내 말을 더 들으려 한 그들은 전적인 공감은 물론 자신의
자전거 타기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고 실토하고 먼저 출발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었으나 그늘이 없는 수변공원 쉼터를 나도 떠났다.
여느 날이라면 가다가 저물면 그 곳이 목적지가 되지만 오늘은 다르다.
내일 목포 C의 영접을 받으려면 몽탄대교 까지는 가야 하는데 22km를 남겨둔 현시각은
10시 20분이므로 여유롭기는 했지만.
어처구니없는 이정표
죽산보를 떠나 얼마 가지 않아서 공산면(公山) 땅에 들어섰고 곧(죽산보에서 2km쯤되는
지점) 황당한 이정표 앞에서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산강하구둑77km, 담양댐52.5km'표지판이라면 광주광역시 서창을 떠나 승용교 이전
어느 지점에 서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반대로 영산강하굿둑52.5km, 담양댐77km 이정표라야 한다.
그런데도 하굿둑을 52km남긴 지점의 길 양쪽에 같은 내용이 서있기 얼마나 오래인가.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길을 만드느라 383억원을 쏟아부었는가 거금 들여 누구도
관심갖지 못하게 길을 만들었는가.
영산강이 범람하거나 역류할 리 없는 하찮은 일인가.
그렇다면 없어도 되는 이정표들을 왜 너절하게 세웠는가.
육로는 해로나 공로와 달리 형체가 있다.
그래서 육지의 이정표는 바다의 등대에 다름 아니다.
얼마나 더 참아야 이 이정표들이 제 자리로 돌아가게 될까.
살인적인 더위를 잠시 피한 곳은 신곡리 봉곡마을(新谷鳳谷/공산면)의 금강정(錦岡亭).
산자락 높은 곳에 세워진 광산김씨 정자로 시원할 뿐 아니라 전망이 일품이다.
강 건너 고막원천(古幕院川)이 합류되는 석관나루터 절벽위 승지(勝地)에 있는, 영산강
제3경이라는 석관정(石串亭)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다.
석관정은 이조 11대중종 중엽(1530년?), 석관 이진충(石串李盡忠)이 자기 증조(李克諧)
가 지은 정자(仁壽亭)를 보수, 개명하고 후손들을 가르쳤다는 정자다.
고막원천은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태청산에서 발원, 함평을 거쳐 영산강에 합류하는
국가하천이다.
다시면의 서쪽 위아래는 모두 함평땅이라는 뜻이다.
석관나루의 이름은 석관정에서 비롯된 듯.
일하던 이들의 점시심사 후 쉼터가 된 듯 많이 몰려와서 걷기를 다시 시작했다.
신곡들의 영산강 수문 공사중인 사람들(금강정에 올라온?)도 워낙 더워서 일하러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나.
그늘나무 한 그루 없는 긴 강둑길에 넓게 조성한 지붕 없는 데크 쉼터는 있으나마나다.
더위가 늙은이의 한계를 테스트해 보려는 듯한 날씨에는.
죽산보 이후 영산강은 완전히 지그재그다.
저편은 함평에서 무안으로 바뀌고 동강면(洞江)에 들어선 자전거길은 영산강 저지대로
났으며 고문산자락 영산강을 끼고 도는 데크다리로만 통과할 수 있다.
홍수때 우회로에 대한 안내를 하지 않는가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가.
홍수로 밀려온 오물들이 다리 난간(handrail)에 어지러이 걸려있다.
방부목 상판도 많이 뒤틀려 이미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자전거 1대가 달릴 뿐인데도 지나가는 탱크의 굉음으로 들릴 정도로.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하려는가.
더위에 둔한 편인 늙은이가 덥다면 무더운 날이다.
지열이 가장 뜨겁게 느껴지는 시간이라는 오후 2시.
몽탄대교도 그리 멀지 않아 운산리(雲山) 초입의 지붕 있는 정자에서 모처럼 쉬려 했다.
마루 아닌 맨땅의 긴 통나무 의자에 반드시 누워보는 순간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정에 말벌집이 있고 드나드는 말벌들에 혼비백산, 달아났으니까.
말벌집을 건드렸다가 그들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 이야기가 떠올라서 그랬는데
늙은이가 오래 살고 싶은가.
맥이 빠지는 듯 한데다 시장기까지 왔다.
오늘은 아직 아무 것도 먹지 않았으니까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운산리 이후 동강교를 지날 때 까지는 강에서 조금 멀찌기 떨어져서 가야 한다.
동강교를 통과해 양지(良池)와 월송리(月松)를 지날 때 뒤에서 오는 경찰순찰를 세웠다.
단지 식당 있는 곳을 물으려고 그랬을 뿐인데 내가 몹시 시장해 보였는가.
식당에 모셔다 드리겠다며 타라는 그들.
언제나, 어데서나 경찰과의 인연은 왜 이렇게 해피(happy) 일관일까.
일부 권력지향의 상층 해바라기 외의 수만 경찰은 늘 민중의 지팡이다.
'폴리스'와 '네띠앙'의 합성어인 '폴네띠앙 닷컴'에서 수시로 확인한다.
경찰을 욕되게 하는 것은 탁수(濁水)하는 일어(一魚)가 있기 때문일 뿐임을.
느러지 전망 관람대는 으뜸 전망대
그들이 내려주고 간 곳은 나주쪽 몽탄대교 옆 몽탄마을 대교식당 앞.
주인의 추천에 따라 보신탕으로 힘을 회복한데다 배낭을 맡겨 놓고 맨몸으로 나섰으니
비록 늙은이지만 날쌘돌이 뺨치게 민첩해졌다.
목표는 비룡산(동강면 옥정리) 정상의 느러지 관람대.
강물이 흐르면서 모래가 쌓여 길게 늘어진 모양을 순 우리말로 '느러지' 라 하며 한반도
지형의 느러지를 관망할 수 있는 남도지역 유일한 위치라는데 어찌 빼놓겠는가.
몽탄대교 입구에서 화정(花亭/玉亭里)마을을 거쳐 느러지 관람대로 갔다.
하굿둑에서 담양호로 올라가는 코스다.
느러지 전망 관람대 인증센터 부스, 곡강정(曲江亭), 관람대가 차례로 서있다.
곡강(曲江),곡천(曲川),곡포(曲浦) 등 지명은 다 물결 굽이치는 영산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며 느러지 곡강의 정자는 내가 올라오기 불과 11일 전(7월 15일)에 세웠단다.
15m높이의 철골구조 관람대도 나주시가 국비 4억원을 끌어다가 작년 6월에 완공했고.
인위(人爲)가 아닌 절로 생성된 한반도 지형의 영산강 느러지(물돌이?)는 영산강 8경중
하나라지만(2경) 과연 최고로 장관이고 관람대 위치 또한 명당이다.
교통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영산강 자전거길은 이른바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고, 나주시는 비룡산 정상에
관람대를 세워 자전거길을 돌려놓았고, 동강면은 이 일대를 반도공원으로 조성한 것.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었다.
도취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허겁지겁 내려왔으니까.
식당 주인이 걱정되어 찾아나서려 했다잖은가.
천막집 지을만한 곳 찾으면 없을까 마는 무안땅으로 건너가고 싶었다.
해가 넘어가는 시각에 떠나는 늙은이 배낭에 방금 삶은 옥수수 2개를 넣어주는 주인녀.
나주의 마지막 인정이 배낭 무게만큼 묵직하게 느껴졌다.
몽탄대교를 건넜다.
나주시 몽탄마을(夢灘/동강면옥정리)과 무안군 명산마을(明山/몽탄면명산리) 사이를
연결하며 49번도로가 통과하는 다리다.
예전, 다리가 없던 때는 나룻배를 이용하는 주민이 매일 300~500명인 큰 규모의 몽탄
나루가 활황이었으나 몽탄대교의 개통으로 죽었단다.
흥미롭게도 지명 몽탄은 시군이 함께 사용하는데 나주는 작은 마을이고 무안은 면이다.
시와 군의 차에서 비롯되었을 리 없고 왜 그리 되었을까.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사람 이름처럼 지명에도 내력이 따른다.
나주시의 몽탄마을과 무안군의 몽탄면에도 사연이 있을 듯 한데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꿈 여울'이라는 의미의 몽탄이 금성(나주)을 놓고 벌인 견훤과 왕건의 일전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것만 잘 알려져 있을 뿐 아쉽게도 내 궁금증은 풀지 못했다.
단지, 옛 나루터 이름이 양쪽 다 몽탄나루였던데서 비롯되었을까.
나주시사(市史)에도 무안군지(郡誌)에도 답이 없다.
새해부터 유목적 거점기거의 방식을 취해 보려는 이유에 이 아쉬움도 포함된다.
무안땅 명산마을에 정자가 있을 듯이 보였는데 없단다.
영산강을 따라 일로읍 쪽으로 가야 한다는 마을 초로남의 근심어린 안내.
지금 연꽃축제가 진행중인 곳까지 가야 하는데 깜깜한 밤길을 노인이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된단다.
밤에는 걷지 않겠다고 무수히 다짐두건만 또.
내일의 하굿둑 길을 단축하게 되므로 손해보는 일은 아니지만 약한 손전등 하나로 사람
없는 허허한 강둑을 마냥 걷는 일이 용이한 일인가.
2km남짓 이후의 강둑길은 영산강을 벗어나 당호리(唐湖) 당호교를 U턴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탈 없이 왔으나 당호교를 건넜을 때는 이미 칠흑이 되었고 용산마을 불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길 도움을 청하려 했으나 하나같이 대꾸가 없으니 어쩌해야 하는가.
명산 초로남의 설명으로는 10리쯤 남았을 길이다.
용산마을(당호리)에서 강둑을 포기하고 차로를 따라 걷는 중이었다.
농촌에도 농사용 차가 많아서 낮에는 차량 통행이 잦지만 차량의 불빛이 그리운 밤이다.
차를 세워 물어보는 수 밖에 없으니까.
모처럼 맞은 편에서 오는 차를 세워보려 했는데 트럭이 스스로 정지했다.
나 때문이 아니고 자기의 귀가길 도로를 바꿔 타기 위해서 였다.
무안군 몽탄면 당호리 갈산마을에도 늙은 길손을 도울 사람이 대기하고 있다니.
내 연배로 보였으나 막 70을 넘어섰다는 운전자는 차를 돌려 나를 태웠다.
그는 한창 진행중인 연꽃축제장 입구에 나를 내려주고 갔다.
살만한 세상 아닌가.
이 영감도 내가 사는 이유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2013년 무안연꽃축제는 덤인가 나도 모르게 예정된 코스였는가
연꽃축제 답게 연등이 석존탄일을 무색하게 휘황하고 읍민이 다 모인 듯 시끌벅적하는
중에도 분위기가 최고로 고조되고 있는 곳은 역시 먹거리집.
축제장은 저만큼 떨어져 있고 거나한 남녀노청들이 큰 가건물 안팎을 지배하고 있다.
마치 한 해에 단 1번 만나는 견우직녀에 다름 아닌 사람들처럼.
설마, 매년 7월 이 무렵에 열린다는 연꽃축제가 저들의 오작교는 아니련만 그리 반갑고
사연이 그리도 많을까.
막걸리 1병을 마시고 정자를 찾아나섰다.
일로읍 복용리 회산마을(伏龍回山)은 정자 마을인가.
10만여평 백련제(白蓮堤) 주변 곳곳에 있는 정자중 맘에 드는 집을 골라야 할 정도다.
내가 고른 정자는 축제장 무대가 지호지간인 백련제 도로변(邊) 높은 위치의 1.5층.
최고의 명당에서 2013년의 무안련연꽃축제를 감상하는 행운의 주인이 되었다.
불과 30여분 전과는 극과 극으로 달라진 늙은 나그네의 위상.
엉뚱하게도 미당의 시를 대입해 보기도 했다.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내리고"(국화옆에서)
일로의 백련꽃 축제로 안내하려고 긴 밤길을 걷게 했는가.
2013년 무안연꽃축제는 덤인가 나도 모르게 예정된 코스였는가
밤9시가 넘은 시각,
정자에 집을 지은 후는 몽탄마을 식당에서 준 옥수수를 먹으며 축제분위기를 관망하고
조금 전에 들은 불평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저들에게는 분명히 이유 있는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주민의 눈과 귀는 날로 높아가는데도 축제 프로그램은 해가 바뀌기를 거듭해도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이니까.
100% 지당한 불만이다.
디지털시대의 아날로그 축제라는 표현도 진부하다.
저들의 불만은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성이 아니고 변화와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선미가 없고 진부하다는 것.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계속해서 먹으면 신물이 나게 되는 것처럼.
그러니까, 매년 한번씩 초대하는 주인이 1년 전에 먹던 음식을 냉장고 안에 넣어두었다
꺼내어 다시 식탁에 올려놓는 격이라 할까.
초대받은 손님의 입장에서는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매우 기분 나쁠 것이다.
더구나 그 사이에 온갖 진미를 먹어본 게스트의 입장에서는 더욱.
안이하게 안주하고 있는 당국에 대한 질타에 다름 아니다.
이 늙은이의 눈귀에도 스마트폰 시대, 문화의 전달 속도가 의미없는 글로벌 동시생활권
시대에는 낡은 프로그램이다.
24일~28일, 5일간의 다른 프로는 어떤지 모르지만 이 밤의 행사는 그랬다.
1997년에 시작했다면 이미 노하우(knowhow)가 축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진부하다면 머리가 없기 때문이다.
보다 알차고 지속적인 활성화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머리를 바꿔라.
바꿀 머리가 없다면 어느 전직 대통령의 말처럼 빌리기라도 하라.
이 정도면 연꽃축제 무료관람하고 위치 좋은 정자에 묵는 나그네의 도리는 되지 않을까.
섬진강에 비해 길은 안전하고 편해도 마음은 더 무거운 영산강길 마지막 밤.
소음이 멎고 불도 꺼지고 차들도 빠져나간 백련제가 적막해 갈 때 나도 자리에 누웠다.
<계 속>
첫댓글 건강하시지요? 외국 여행기보다 더 놀라운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