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비는 고려 충열왕때 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다녀온 공으로 시종보좌이등공신에 녹선되고 判事宰寺事를 역임하였다.
그의 9세손 卓이 봉순대부로 해남감무를 역임하던중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나주에 정착하게 되어 본관을 나주로 하였다.
초월읍 도평리에는 탁의 13세손인 하(字 世論)가 숙종 42년(1716년생) 들어와 세계를 이어옴으로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정선전씨(旌善全氏) - 중부면 상번천리
정선전씨의 도시조 全 은 백제 건국에 공을 세워 환성군에 봉해졌으며 섭의 8세손 선이 신라 내물왕때 백제로부터 大光公主를 배행하고 신라에 들어와 봉익대부로 副知密直司事를 지냈으며 전법판서에 올라 정선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선을 시조로 받들고 정선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면서 우리나라 모든 전씨의 연원을 이루었다.
섭의 42세손 龍이 조선조 공신으로 용의 6세손 순한이 중부면 상번천리에 세거를 열기 시작하였다.
경주정씨(慶州鄭氏) - 남종면 수청리
우리나라 정씨의 시원을 이룬 경주정씨는 진한국 사로의 6촌중 취산진지 촌장 지백호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
서기 32년(신라 유리왕9) 그의 현손대에 와서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사성받을 때 본피부로 개칭되면서 정씨의 성을 하사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 법흥왕때 문화로 시호를 받았고 656년(태종무열왕3)에 감문왕에 추봉되었다.
그후 경주정씨는 시조의 후대로 내려오면서 문헌공파. 양경공파. 월성위파. 평장공파등 크게 4파로 갈라졌고, 지손계통에서는 30여본으로 분적되어 우리나라 모든 정씨의 대종을 이루었다.
양경공파의 광시가 남종면 수청리에 세거를 열어 이곳에 그 손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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