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曺 雲 - 작품으로 보여준 현대시조의 거봉
이재창
조운(본명 柱鉉) 시인은 1900년 6월 26일 전남 영광군 영광면 도동리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아버지가 사망했고, 어머니는 기류출신의 소실이어서 정상적 가정이 아닌 빈곤한 살림이었다고 전해진다. 소년시절부터 탁월한 재능과 예술적 감각으로 총명했다 한다. 1919년 공립목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때까지 그는 한문공부와 일본어로 번역된 문학서적을 많이 섭렵했으며, 그때 습작한 자유시가 2~3백편이나 된다고 한다. 3․1운동당시 그가 청년회와 영농회를 주도하여 시위를 벌여 일경의 추적을 받자 만주로 망명해 그곳에서 최서해를 만났다. 서해는 후에 그의 매부가 되었다. 서해와 함께 시베리아, 만주 등 우리나라 곳곳을 유랑했다. 1922년 사립 영광학원 국어교사로 취임한 후 『자유예원』이라는 향토문예지를 등사판으로 발간 했는데, 우리나라 지방문예부흥운동의 효시이다. 또 시조동호회 추인회를 창립 시조창작을 하면서 문맹퇴치, 물산장려, 왜화배척 등의 계몽운동을 참여했다. 추인회 초청으로 이병기 시인이 영광을 방문 교분을 텄고, 결국 추인회는 일경의 탄압을 받고 해체 되었다. 1934년 항일민족자각운동의 일환으로 독서회인 갑술구락부를 조직 각종 문화운동을 주도했다. 1937년 영광체육단 사건으로 체포되어 1년7개월동안 투옥됨. 1949년 그는 가족과 함께 월북 그후 행적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북한『조선문학사』속의 중요문인 50여명 속에 올라 있다.
그는 1921년 동아일보에 시「불살러주오」와 1925년 조선문단에 시조「법성포 12경」을 추천받으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시조의 현대화에 앞장서고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하는 등 가람 이병기와 함께 현대시조의 선구자로 꼽힌다. 1926년부터는 프로문학에 대항해 국민문학을 옹호하는「병인년과 시조」등의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조집으로『조운시조집』이 있으며, 북한에서『조선구전민요집』『조선창극집』등을 발간했다고 전한다.
영광 법성포의 뛰어난 풍광을 노래한「법성포 십이경」과 바다의 뱃놀이를 소재로 한「영호청조」21수는 연작시로서 맹사성의「강호사시가」와 윤선도의「어부사시사」나「오우가」의 연장체 의식을 계승한 시조로 볼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시를 알고 시조를 가락을 터득한 그는 당시대 최고의 시조시인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론보다는 실제 창작으로 몸소 실천한 큰 시인이다. 윤곤강 교수는 조운의 연구에서 인습에 어울려 천편일률성을 시 속에 나타내기 일쑤였던 1930년대 중에 노산이나 가람의 풍을 능가한 표현력은 응당 평가받을 만한 최고의 시조시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가슴.
-「석류」전문
사람이 몇 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劫이나 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江도 바다도 말고 玉流 水簾 眞珠潭과 萬瀑洞 다 고만 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 끝에 이슬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連珠八潭 함께 흘러
九龍淵 千尺絶崖에 함번 굴러 보느냐.
-「九龍瀑布」전문
봄볕이 호도독호독
내려쬐는 담머리에
한올기 菜松花
발도둠 하고 서서
드높은 하늘을 우러러
빨가장히 피었다.
-「菜松花」전문
단시조 명품「석류」와 현대 사설시조의 전범으로 평가되는「九龍瀑布」는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수작이다.「석류」를 보면 열매를 맺는 과정을 통해 한 여인에 대한 그리움의 연상기법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일개의 자연물이 인간으로 거듭나는 시적 형상화 과정은 당시로서는 찾아보기 힘든 작법이다. 투박한 얼굴과 두툼한 입술의 여인, 석류의 생김새는 순박하고 절개있는 전라도 여자를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그 속에 감춰진 열정적인 사랑과 그리움의 표현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결국은 빠개 젖힌 자신의 가슴을 임 앞에 내보이는 그 상상력이 놀랍다. 하나의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비범하고, 한편의 시조로서의 완결된 경지를 보여주는 그의 시조의 재기가 매혹적이다.「菜松花」는 당대의 시인들의 고시조풍의 시조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신선한 감이 넘친다. 대부분의 낱말들이 일상적인 언어를 쓰면서도 우리말이 지니고 있는 특성, 즉 모음의 중요성과 의성어, 중첩어, 상대어를 잘 활용함으로써 긴장과 절제, 압축 그리고 균형과 조화의 미를 유지하면서 현대시로서 시조가 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九龍瀑布」는 금강산 기행 후 3년 후에 발표된 작품이다. 사람이 물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몇 겁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구룡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것은 인생과 우주의 교접현상이다. 깨우침으로서 물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인간 삶이 한 낱 티끌에 불과하듯이, 한 점 물방울로 자연 섭리에 순응하는 것도 인간 숙명이다. 물로 비유한 시적자아의 깨우침을 통해 시인 자신의 인생을 천척절애에서 굴러보고 싶은 것은 어느정도 경지가 아니면 생산해 낼 수 없는 깨달음의 시로 보인다. 그리고 고시조의 사설이 갖는 해학이나 비시적인 형이하학적인 성질, 또는 흔히 평민성으로 불리는 속성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어느 사물에 대해서 끄집어낸 이미저리가 단순하게 유출되어 표현된 것이 아니라, 그의 심상에서 수 없는 여과작용을 거쳐 재구성되어 보다 순화된 것이기 때문에 그 표상에서 내용과 형식의 긴장감과 신축성까지 내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