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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남편?
선덕여왕의 남편에 대한 설은 떠도는 말들이 많지만 사실상 학계에서 선덕여왕의 남편으로 보고 있는 인물은
창녕조(曺)씨의 시조 '조계룡'이다. '화랑세기 필사본'에 의하면 3명의 남편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화랑세기 필사본이라는 책은 여러 논란속에 역사학계에서 공식적인 역사서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삼국사기는 선덕여왕의 남편을 '음갈문왕(飮葛文王)'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역사학계에서는 음갈문왕(飮葛文王)을 '조계룡'으로 보고 있다.
조계룡 : 진평왕의 사위로, 부마도위이며 태사와 부원군을 지낸 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 부원군 : 갈문왕을 후대의 명칭으로 바꾸어 부른 것이 됨.
< 飮[마실]갈문왕 = 金인평 = 曺[마실]갈문왕 = 曺계룡 >
※ 선덕여왕의 남편이 조계룡이라고 결론되어지는 근거가 바로 음갈문왕의 음(飮)자가 되는데, 이는 조계룡의 조(曺)와 같은 소리로서 통하게 되어 조계룡이 곧 음갈문왕이며 본명이 '인평'임이 드러나게 된다.
(음갈문왕의 飮자의 훈이 [마실]이며, 조계룡의 曺가 [마실=마을]로서 같은 소리로 적은 글자가 되는데, 이를 부정하고 조계룡이 飮갈문왕이 아니라는 결론은 飮자의 이두식 표기를 무시한 것이 된다.
특히 신라시대에 해당하는 기록을 해석하려면 이두에 밝아야 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완전한 뜻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이두식으로 풀이하여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 삼국유사왕력보를 적을 당시에 왜 [마실]갈문왕에 해당하는 글자로 [飮]갈문왕으로 적고 [曺]갈문왕이라고 적지 않았느냐라고 의문을 품는다면, 이는 [曺]갈문왕으로 적으면 [曺]는 이미 성씨의 하나로써 일반적으로 [조]로 읽게 되므로, [마실]의 소리로 읽으라는 의미에서 [飮]갈문왕으로 적은 것이 된다.
김인평(조계룡)의 나이 약17세가 되는 서기587년경에 진평왕이 등용하여 벼슬길에 올라 자를 인경이라 하사 받았고, 약8년후 25세가 되는 서기595년경에 진평왕의 장녀 덕만공주(당시 약16세)와 혼인한 것이 된다. 이때 曺를 [마실]이라 읽고 있었으므로 [마실]갈문왕이 된 것이다. 갈문왕은 소왕(小王), 비왕(裨王), 보왕(補王), 한(韓)의 뜻이 있고 고려, 조선시대의 부원군과 통한다.
[조계룡의 생애]
-서기588년경 18세경 외조부 한림학사 이광옥이 진평왕에게 외손자 김인평(조계룡의 본명이 됨)을 천거하여 등용케 하고 이에 진평왕은 김인평에게 자를 인경(鱗卿)이라 하사하고 궁에서 지내게 함.
-서기595년경 25세경 진평왕이 약16세의 장녀 덕만공주와 혼인시켜 부마로 삼음
-서기615년경까지 사이에 5남2녀를 둠
-서기620년경부터 덕만공주가 정치에 뛰어들기 시작하고 김용춘, 김유신, 김춘추, 소알천 등을 측근에 둠. 조계룡이 김유신과 김춘추 등 왕실의 스승(태사)이 됨. 김용춘은 서기578년생, 소알천(알천공)은 서기577년생, 김유신은 서기595년생, 춘추는 서기603년생.
-서기631년 2월 진평왕이 61세 부마도위 김인평(조계룡)에게 성명을 조계룡이라 하사함. (曺[마실]=飮[마실]). 삼국유사 왕력보에 조계룡을 [飮갈문왕 인평]이라 적음.
- 조계룡은 서기전571년생이 되니 알천공보다 6세가 많은 것이 되고, 김유신보다는 24세가 많은 것이 된다.
서기615년에는 덕만공주는 이미 35세가 되며 자녀를 약20세부터 낳았다라고 하면 7남매를 약15년간 두었으니 약35세경에 다 둔 것이 되어 타당하게 된다. 이후 덕만공주는 알천공, 김용수, 김용춘 등을 사신(私臣=개인비서)으로 삼고 김유신, 김춘추 등을 측근에 두면서 후계작업을 성공적으로 행한 것이 된다. 이로써 덕만공주는 나이가 들어 남자의 기상을 가지고 언행을 하다보니 남자처럼 비유되어 남편이 없는 여자로 와전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조계룡이 서기 631년까지는 김인평이라는 이름으로, 그 후에는 조계룡이라는 이름으로 특히 김유신과 김춘추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등 대들보 같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 된다.
<U>그외 기록들</U>
지선록 초(知先錄炒) 성을 조, 이름을 계룡이라 하사하였고, 자라남에 진평왕이 장녀를 베필로 삼은 즉 선덕여주이다. 동사(東史)를 보건대 당나라 태종이 조서에서 선덕과 부공(夫公)이 함께 나라일을 다스리다 하였으나 조서에서 부공의 성명을 말하지 아니한 것이 가히 안타깝도다.
권근소기(權近所記) 태사공 창성부원군 조계룡의 어머니 예향(禮香)씨는 신라학사 이광옥(李光玉)의 딸로써, 질병으로 화왕산 용담에서 목욕(재계)하다 용자(龍子. 용의 아들) 옥결과 서로 만나 아들을 낳으니, 겨드랑이에 용조(龍曺)라는 글자가 있어 이에 성을 조, 이름을 계룡이라 하였고, 진평대왕의 딸을 상(尙)하였으니 또는 선덕여주 덕만이라 한다.
[출처];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http://gall.dcinside.com/list.php?id=yowon&no=45384&page=1&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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