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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협회 합평회 <족구왕>1부 참석자: 정재형, 민병선, 양경미, 안숭범, 이수향, 성진수, 윤성은, 박평식
날짜: 2014년 10월 27일
참석자: 정재형, 민병선, 양경미, 안숭범, 이수향, 성진수, 윤성은, 박평식
민병선: 오늘 씨네토크 합평회는 <족구왕>입니다. 첫 번째로 정재형 교수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정재형: 예, 정재형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봤냐하면요, 신자유주의에 종속된 어떤 젊은이들의 현실이 이 영화에 잘 드러난다, 이렇게 봤습니다. 주인공이 군대에서 제대를 하죠. 그리고 그때의 그의 표정을 보면 대단히 아쉬움이 넘쳐요. 사회에 복귀하기 싫은 그런 눈칩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풍자적이긴 하지만, 지금 군대가 마치 족구로 낙을 삼는 그런 군대처럼 보여져요. 전쟁의 긴장감도 없고, 유희의 공간이죠. 할 일이 없는 사회, 상대적으로. 사회라는 게 할 일이 없습니다. 나오면 실업자가 되고, 굉장히 살기 어려우니까. 제대해 봤자, 희망이 없는 사회가 주인공에게는 절망의 표정을 짓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군대에서 나가기 싫은 표정을 보여주죠. 그가 복학을 합니다.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는 족구의 열망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족구장이 폐쇄됐고, 선배는 족구를 멀리 하라고 하죠. 대신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라고 강조합니다. 또 같은 방의 두 후배가 선배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지키는 그런 로봇같이 그려지죠. 자, 이 모습들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안전한 직장으로 떠오른 공무원 시험, 이 학과 이름이 식품영양학과죠. 식품영양학과와 상관없이 직업은 다 공무원입니다. 한국사회가 굉장히 획일화되어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고요, 젊은이들은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 되요. 흔히 공무원을 영혼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 되요.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 겁니다. 낭만이나 모험, 이런 것들이 아예 사라진 그런 청춘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 네. 짧게 했습니다.
민병선: 네, 정재형 교수님이 말씀해 주셨고요, 민병선 말하겠습니다. 뭐, 그 저는... 그... 이제 웃긴 말부터 잠깐 하자면, 이제 보는데, 이제 그것을 TV로 보는 데, 조금 있다 한참 있다 어머님이 들어오셨어요. 눈만, 뭘 하다가, 잠깐 한 5분 보더니 저한테 하는 말이 “야, 너 왜 북한 영화를 보냐?” (좌중폭소) “야, 이거 북한 영화 아닌데?”
(웃음) 아, 역시 또 히트를 남겼네. 아, 5점! 5점!
민병선: “아, 이게 왜 북한영화냐” 그랬더니, 일단 말투가 함경도인가 평안도 말투라고.
‘뭐 뭐 해서 그랬습니다.’, ‘이게 그게 아니지 말입니다.’ 뭐 그러니까. 그리고 화면이 북한영화 같다고.
정재형: 맞아요. (다른 분들도 동의)
민병선: 그리고 주인공이 다...
성진수: 북한영화를 보셨어요, 어머니가?
민병선: 어쨌든, TV 드라마를 보다가 <족구왕>을 보니까 북한 영화로 보이는 거죠.
정재형: 소박하죠.
민병선: 아, 그럴 수 있겠구나. 이게 되게 거칠고, 좀 이게 비어있고, 좀 뭐... 그래서 그냥 ‘이게 돈이 없어서 그런 거다.’라고 그랬더니, ‘한국 영화 말투가 저러냐.’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이제 하여튼 <족구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남성의, 청년기의 남성의 판타지가 있잖아요. 판타지가 몇 가지가 있는데, 예를 들어, 성적 판타지가 있고, 그 다음에 이제 뭐랄까 공동체 사회라고 그럴까, 여기로 다시 들어왔을 때에 갖는 판타지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군대라는 곳에서 이 사회라는 공동체로 들어왔을 때에, 예를 들어, ‘절세 미녀가 나를 좋아해준다.’ 그런 판타지가 있고. 두 번째는 공동체로 들어왔을 때, 내가 왕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친구들이 나를 리더로 추앙한다는 그런 판타지들이 약간 남성들이 갖는 게 있거든요? 근데 이제 그런 판타지를 원초적으로 가는 면이 좀 있어서 처음에는, 이거는 그냥 ‘무난한 영화다.’ 그렇게 생각 하면서 이제, 그 안나라는 여자가 정말 연인이 되면, 그냥 무난한 영화다, 좀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판에 그 뽀뽀타임인가 거기서 딱 꼬잖아요, 아 그럴 때, 아... 좋은 영화다. (웃음 ) 뭐 그런 어떤 내러티브적인 생각도 했고, 뭐 그런 의미론 적으로는 정교수님이 말씀하신 그런 의미로 해서, 아 참... 지금 이 시대를 잘 반영한, 좋은 영화다, 그런 생각을 일단 했습니다. 일단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정재형: 예, 짧게 짧게 하시죠.
안숭범: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민병선: 예, 다음은 안숭범 선생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안숭범: 저는 족구의 진리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족구는 프로 세계가 없는 스포츠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서 보면, 뭐 축구 국가대표 출신 모델 강민이 나오고, 그의 이제 경쟁하는 입장에서 홍만석이 등장하는데, 홍만석은 족구고, 거기는 이제 축구, 프로세계가 있는 축구잖아요? 알고 보면 또 족구는 테니스장에 밀려있어요, 군대 갔다 와 보니까. 테니스도 프로세계가 있는 곳이죠. 근데 대학생의 지위가 이 족구랑 비슷해요. 왜냐면, 직업세계가 프로세계라 한다면 오늘 날의 대학생은 전부 다 이 프로세계로 진출하기 위한, 또 프로세계에 의한 그런 문화로서의 대학생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니까. 사실 이 족구를 가지고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기엔 아주 적합한 소재다. 그래서 그런 면에서 아주 좋은 소재 선택이었던 것 같고. 그냥 순수한 즐김의 세계로, 스포츠가 그냥 그 목적인 종목으로서의 족구인데, 이게 이제... 그냥 이해타산 따지지 말고,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어떤 사회적인 질서나 또 직업적인 위계나, 직업안정성이나 이런 것들을 연연하지 말고, ‘그 자체를 즐겨라’라고 하는 이 단순 메시지를 전하기에 아주 좋은 종목이었다. 이게 하나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구요. 두 번째는 이 영화가 일본의 재미있는 코믹한 성장드라마, 예를 들면 <워터 보이즈>같은 걸 보면 그런 어떤 익살스러움들 있잖아요, 그런 영화나, 아니면 주성치 영화. 직접적으로 뭐 패러디한 것도 있더라고요.
이수향: (동감하며) 주성치 영화와 되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안숭범: 그러니까요. 그런 영화들이 갖고 있는 만화적 상상력 같은 게, 이 영화 속에도 드러나는데, 제가 한 번 생각해 봤어요. 만화적 상상력이라는 게 쉽게 쓰는 말들인데, ‘어떤 어떤 근거들로 우리가 만화적 상상력이라는 용어를 쓰는가.’라는 가를 생각해 봤더니, 먼저 첫 번째 캐릭터의 과장성이나 익살성이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서도 보면 홍만석, 서안나, 강민, 임형국, 고운, 미래, 창호 이런 애들이 다 굉장히 독특한 개성을 부각시킨 반면, 보편적인 어떤 인간이 갖고 있는 부분들은 다 탈각시켜서 굉장히 캐릭터화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만화적 상상력에 부합됐고. 또 하나는 시각적인 비약성이 있어요. 예를 들면, <소림축구> 장면이라든지, 과 깃발장면 같은 것 있잖아요. 뭐 이런 걸 보면, 그 과장된 리액션이나 이런 거. 그래서 만화가 갖고 있는, 실사영화가 구현할 수 없는, 어떤 그 시각적인 비약성이 있고. 또 하나는 재미를 핍진성보다 중요시 생각하는, 그래서 이거는 그냥 인도 발리우드 영화처럼, ‘지금부터 판타지야’라고 합의하고 재미로만 보는, 그런 측면들이 많이 있어서 ‘이 영화가 만화적 상상력이 굉장히 강하다.’라는 느낌을 받았고, 또 그게 미덕인 것 같구요. 마지막으로, 그... 요즘 청년들을, 대학생들을 향한 그 처세에 대한 책들이 많이 있잖아요. 전부다 이 20대들을 ‘아, 너희 힘들지?’ 막 그러면서 위로하거나, 아니면 그들에게 뭔가 기성세대가 조언해주는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는 책들이 많고 유행하는데, 사실 20대니까 그들 책들에게 쓰는 전복적인 편지 같은 대사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학교를 졸업하면 네 청춘이 네 뒤통수를 칠거다.” 이런 거 있잖아요? 이거는 제가 보기에는, 20대가 자기처세, 조언, 막 해서 낙관적인 전망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기성세대의 화법에 대해서 20대가 던지는 반론 같은 거. 그런 것들이 이 영화가 또 재치 있게 느껴지는 그런 부분이 있지 않나... 전체적으로는 영화가 만듦새는 좀 허접하고, 여러 면에서 그런 부분들이 있지만, 그래도 진정성 있다 느껴지는 것은, 지금까지 말한 것들, 이런 부분들의 미덕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상입니다.
이수향: 네, 저는 이수향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재밌게 봤는데, <10분>, 저번에 저희가 했던 <10분>이라는 영화와 비교해 본다면, ‘그 영화가 더 나았다.’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오히려 이 영화를 <10분>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주목을 하고, 뭐 ‘최고의 영화다.’라고 치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구요.
안숭범: 파워 블로거들 아니예요? (일동 웃음)
이수향: 그래서 봤어요. 열심히 봤는데, 재밌는 장면이 한 네 장면정도 있었어요. 간단하게 얘기를 하자면, 가장 재밌는 건 이건 것 같아요. 저희가 족구라는 것이 농구나 축구의 하위처럼, 관심도 없고, B급 정도의 그런 스포츠로 생각했는데, 그 족구라는 용어를 거기서 욕이랑 기묘하게 연결을 시키잖아요. “족구하고 있네.” 계속 이렇게 얘기를 하잖아요? 이런 어감이 주는 재미 같은 게 있어서 그런 어떤 B급 정서를 기반으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다음에 이들이 사회로 나아가기 직전에 머물러 있는 그런 상태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재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또 흥미로운 것은 이 족구라는 것이 정말 아무런 스포츠도 안되고, 일류 선수도 될 수 없는 정말 재미, 잔재미만을 주는 그런 스포츠인데, 이것이 조롱을 당하잖아요. 그래서 재미가 조롱을 당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의식이 이 영화에는 분명히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우리가 뭔가 성공적으로 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어떤 생산적인 일이 아닌 것에 대해서 굉장히 조롱하는 현재의 세태가 분명히 있다고 보고, 그것이 개인의 취향이든, 개인의 감수성이든, 그것을 굉장히 무시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통쾌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훌륭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하나 제가 재밌게 봤던 것 중에 하나는, 굉장히 다정한 말투로 말을 건네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굉장히 비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과사 직원이 막 “아, 누구 학생, 그랬어요, 저랬어요.”라고 얘기를 하지만, ‘어, 너 돈 안냈으니까 등록 안돼.’라는 얘기를 결국 전하고 있을 뿐이고, 독촉하는 은행원도 “어, 누구 고객님.” 너무너무 친절하고, 너무너무 막 살갑게 얘기를 하지만, 사실 그 안에 담긴, 친절 속에 담긴 내용은 굉장히 날카로운 거죠. 굉장히 괴로운 통보를 해서 나락에 떨어트리는 거구요. 이게 현대사회가 보여주는ㅡ 사근사근, 뭔가 겉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제스처, 교양 속에 들어있는 날카로운 속물의식 같은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물론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어떤 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잔재미를 또 하나 지적하자면, 저는 과들을 보여주는 엠블럼이 되게 재밌었어요. 저는 너무 재밌었어요. 그러니까 계산기는 수학과고, 식품영양학과는 밥 공기로 되어 있고, 그리고 통계학과는 뭐 이상한 나사같이 된... 그런 것들이 되게 작은 건데도 영화에 재미를 좀 더해줬구요. 그 다음에 저는 제일 많이 웃었던 거는 이거였어요. 다시마 남(男), 그 친구 있잖아요, 창수가 “전 다시마만 먹어요.”라고 계속 다시마만 먹잖아요.
안숭범: 초식남 같은 캐릭터...
이수향: 네, 물도 다시마 물만 먹고, 다시마를 그릇에 싸가지고 다니고. 그게, 뭐 어떤 스토리적인 깊이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가 너무 웃겨서 재밌게 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가 굉장히 훌륭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비판적으로 제가 본 점이 있다면, 첫 번째는 사실 보는 내내 이게 제일 걸렸는데 좀 다소 이상화된 주인공이라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주인공이 약간은 괴짠데, 그게 이 영화에서는 되게 자기 주체성이 있고, 재미를 확실히 추구할 줄 알고 그런 굉장히 호의적인 시선을 깔고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계속 진행을 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영화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이 영화가 깔고 있는 대 사회적인 비판의식과 대비해서 봤을 때 다소 이상화 되어 있어서 저는 쪼금 공감이 안 갔어요. 네, 그래서 좀 그랬고... 재미냐, 인생이냐, 직업이냐, 뭐 남들이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그런 것들 아무것도 고민 안하고 족구만 몰입하고, 내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집착하고, 어떻게 할 거야.’라고 얘기하는 그런 게 되게 영화적으로 보면 이상화되어 있어서 멋있지만 그렇다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그 선배를 마냥 그렇게 비호의적으로만 볼 수 있느냐라는, 이 영화가 아예 그런 문제의식이 없는 영화라면 상관없는데, 약간 그런 문제의식을 깔고 있는 영화니까 그런 면에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이건 뭐 필연적으로 보이는 영화적인 헐거움들이 있어요. 여러 가지 부분에서 보이는데, 스토리라인이 굉장히 전형적이죠. 저도 안숭범 선생님 말씀처럼, 이런 소규모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런 아기자기 하면서도, 과장되면서도, 만화적이면서도, 이런 부분이 재미도 있지만, 그렇게 굉장히 독특하거나 창의적이다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구요. 배우들이 가지는 약함이 전 쫌 있었어요. 이게 ‘제대로 만든 상업영화가 아니구나.’라고 느낌이 드는, 예를들어 총장이나, 공무원 준비하는 선배나, 여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어떤 분위기나, 포즈나 텐션이나 이런 게 너무 정말, ‘독립영화구나,’라는 느낌이 있어서, 전문적인 느낌이 저에겐 조금 덜했고... 그리고 음악이나 이런 것도 영화적으로 헐겁다는 느낌을 받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춘이라는 소재, 청춘이 가지는 재미, 그 자체를 굉장히 긍정하잖아요, 특히 고기집 여주인의 말로 “야, 니네 뭐 있냐? 그 시기 잘 즐겨라.”라고 얘기를 하죠. 그게 이 영화의 핵심 줄기이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데, 저는 그런 소재가 주는 한계성이 있다고 봐요. 아까 안선생님도 잠깐 지적을 하시긴 했지만, 저는 입장은 조금 다른데요. 이게 어른들이 얘기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얘기하는 게 왜 거슬리나하면, 자기들은 그 시기를 지나 왔으니까 ‘너네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거야,’라고 얘기를 했을 때 정말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다기보다는 허울 좋은 말로 그들이 그냥 ‘야, 그렇게 힘든 게 당연한 거야.’라고 얘기를 하는거죠. 그들과 분명히 달라진 사회경제적 상황의 어려움이 있고 그들의 개개인의 삶을 일반화시키기 어려운데도, 용기를 북돋는 것처럼 보이면서 기실은 기성세대가 일정 부분 나누어야 할 고통의 분배대신 그런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거죠. 제가 싫어하는 논법이기도 해한데, 그런 부분이 이 영화에도 약간 보이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성진수: 제 생각도 앞에서 말씀하셨던 내용들하고 크게 차이 없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얘기를 들다가, 내가 준비해 온 이야기를 다시 어떻게 바꿔서 이야기를 할까 생각을 해봤어요. (웃음) 비슷한 얘기들이라... 근데 저는 아까 안승범 선생님이 만화적 상상력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저는 좀 장르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하고 싶은데, 지금 이수향 선생님과 안숭범 선생님이 얘기했던 그 두 가지. 만화적 상상력에 기반했다는 것과 이상화된 주인공. 굉장히 평면적인 인물이잖아요, 모든 인물들이? 심지어는 주인공인 만섭이 같은 경우에는 너무나 평면적일뿐더러 살아있는 생명력을 가진 인물로 보이지 조차 않아요. 그리고 이 인물이 “나는 미래에서 왔다”고 계속 얘기를 하고, 중간 중간에 마치 <소림축구>의 장면을 약간 가져다 쓰는 것 같고, 엔딩장면에서도 고속도로에 벤츠를 타고 가다가 저 멀리서 ‘뽕’하고 사라지죠. 멀리서 번쩍 하잖아요? ‘저거는 무슨 미래에서 온 진짜 슈퍼히어로 영환가?’, 이런 느낌이 들게 해주는, 만화적인 요소가 많은 영화죠. 그러면서, 동시에 이수향 선생님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떻게 보면 마치 <10분>이라는 영화처럼, 우리나라의 현실의 어떤 발언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 현실 참여적인 그런 영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두 가지 영화, 즉 하나는 사회문제 영화라고 불리고, 하나는 완전한 판타지라고 불리는 두 영화가 섞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저는 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한 가지 장르에 일단 집중을 해야 그 영화가 완성도가 높아지고 성공가능성도 더 높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비례를 1:1로 섞어버려렸죠. 그 판타지적인 요소와 현실 지향의 <10분>같은 영화가 가지는 느낌을 거의 1:1로 섞어버리는 바람에 영화가 계속 맥이 빠진다는 생각이 중간에 들고, 몇몇 설정들, 특히 초반에 이 만섭이라는 인물이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데 이자가 연체되고, 또 총장과 대화 장면에서 총장의 발언 내용, 마치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것 같은 그런 발언, 다시마 남(男)이라고 이수향 선생님이 말했던 인물, 그 사람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하고 똑같이 사회의 시선에 맞게 살을 뺀 사람 이잖아요. 이런 인물과 상황 등의 설정이 너무도 작위적이라는 인상이 들었어요. 그런 이유가 재미와 올바른 관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 결과라는 생각을 합니다.
일본영화나 만화에 주로 많은 그런 어떤 하나의 소재를 편집증적으로 관찰, 현미경적인 그런 관찰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영화들이 있잖아요. 만화책이긴 하지만 <초밥 왕>같은, 아니 면은 이타미 주조의 <담포포> 같은 라면 세계를 그린 영화라든지, <해피 플라이트>같은 공항의 세계에 대해 파고드는 영화들과 같으거요. 이 영화도 족구의 세계에 대해서 그렇게 더 파고들어가 줬으면 만화적인 상상력의 재미가 더 극대화되지 않았을까. 인물을 이렇게 평면적으로 그리지 말고 입체적으로 그리면서, 직접적으로 한 발언들을 인물의 캐릭터에 입체화하는 방식으로 풀어냈으면 영화가 직설적이지 않으면서도 더 여운이 있어서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지점이 이 영화는 어쨌든 끝나고 나서 굉장히 많은 발언을 했지만, 그냥 판타지 힐링영화로 보이는 측면이 사실은 없지는 않거든요. 이상적인, 우리 현실에 살 것 같지 않은 만섭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놓고, 그 인물에게, 아까 정재형 선생님이 말씀하신 신자유주의라는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 잃어버린, 향수어린 그 인물에게 모든 이상향을 부여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영화로 읽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서 그게 이 영화의 좀 맹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병선: 네, 윤성은 선생님 말씀이 있겠습니다.
윤성은: 네, 저도 뭐... 할 얘기는 앞에서 많이 나왔는데, 저는 다른 분들이 하신 이야기를 좀 듣고 말씀을 드리자 면은, 일단 앞에 성진수 선생님께서 하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좀 다른 시각으로 봤거든요? 뭐냐면 전제는 이거예요. 이 영화는 그냥 이런 종류의 영화예요. (웃음) 이 영화는 어떤 다른 장르에 포함시키거나, 이걸 어떤 상업영화 내지는 독립영화의 자본의 비중으로 보자면 그렇게 분리는 할 수 있겠지만, 이건 뭐 ‘상업적으로 만들었다. 아니면 뭐 굉장히 비주류 영화로 만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런 종류의 영화를 만든 거죠, 이 사람이. 저는 이게 어떤 지금의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 중에 굉장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식의 영화를 계속 만든다면, 이 감독이, 그냥 이 사람은 이런 세계를 추구하면서 ‘이런 류의 영화에 있어서의 어떤 장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정말 주성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정말 한 줄 ‘주성치 영화와 비슷하다.’라는, 그 한 줄의 코멘트만 듣고 이 영화를 봤는데, 주성치 영화보다는 물론 훨씬 너무도 순화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주성치와 비교 되려 면은 더 찐하게 가야되는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실망스럽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런 결을 가진 영화들을 좋아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일단 이런 전제를 하고나서 말씀을 드리자면 어떤 시대반영적인 측면, 어떤 현실참여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또 그것을 굉장히 이 사람이 부각시키고, 그것을 이 영화의 주제로 내세웠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렇게 치자면, 아까 전에 현실참여적인 부분과 어떤 판타지의 1:1 정도로 섞여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치자면 저는 판타지 쪽이 훨씬 더 가깝다고 생각을 해요, 이 영화가.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이 만섭이라는 캐릭터는 그냥 판타지예요, 그 자체로. 근데 저는 그게 매력이 있었어요, 너무. 그리고 그 캐릭터가 ‘너무 살아있지 않다.’라고도 느끼지 않았고, 굉장히 현실에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저는 더 매력적이었고, 더 정이 갔고, 더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이 캐릭터에. 그래서, 이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이 영화는, 만섭이에게는 그 어떤 단점 내지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그런 찌질함 이라든가 아니면 우울함이라든가 이런 것들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인물이죠, 되게 뭐라 그러죠? 흠이 없는 그런 인물이죠. 그렇지만 이 영화 자체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 저는 현실에 대한 핍진성이라든가 현실 참여적인 그런 부분들 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고, 그리고 그런 생각도 한번쯤 해볼 필요가 있다, 라는 그런 측면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미래에서 와서 자기의 인생에 대해 돌아봤을 때, 정말 공무원시험이나 준비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나도 하지 못했던 그런 것에 대한 후회? 저는 그래서 이 시대에 신자유주의나 뭐 이런 것들을 지금 세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주성치 영화가 가지고 있는 테마처럼, 되게 시대초월적인 그런 하나의 인생을, 후회 없이 살게 하는, 그런 어떤 테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모습, 지금 학생들이 취업준비하고, 이렇게 자기 본인의 살길을 찾아가는 이런 것들이 물론 부각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 70년대 영화를 봐도, <바보들의 행진> 뭐 이런 영화를 봐도 취업 때문에 고민하고, 뭐 먹고 살래 이런 고민해요. 이거는 단순히 우리 시대의 고민만이 아니고, 뭐든지 그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와도 맞닿아있는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거는 그냥 어떤 측면에서 사회를 비판한다거나 아니면 이런 부분에 있어 진정성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그런 거랑은 좀 다르게 생각을 해봐야 된다는 생각을 했구요, 그래서 그 주성치 영화의 맥락에서 이 영화가 좋았던 점은 이 영화가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그 사랑하던 여자의 모습, 그런 게 이제 주성치 영화의 특징이죠. 뭐냐 하면, 모든 것을 얘가, 삽질을 다 해가지고 뭐든지 다 기초공사를 끝내 놓으면 자기가 잘되는 게 아니고 남이 잘되요. 그리고 자기는 그냥 되게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면서 떠나죠, 혼자. 어떤 이런 거, 이런 게 저는 찰리 채플린이 보여주는 페이소스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고, 이 영화에서도 만섭에게서 몇 군데에서 약간 그런, 굉장히 우울하지만 그저 웃으면서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어떤 표정들을 몇 번은 본 것 같구요, 만섭 뿐만 아니라 미래라는 캐릭터, 정말 뚱뚱한 그 여학생이라든가, 그 다시마 남(男)에게서도 그런 모습들을 조금씩 봤구요, 이 영화는 정말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명작이 아니죠. 이런 영화를 명작이라고 할 수 없고,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도 없고, 이 영화가 뭐 작품성이 뛰어나다 이렇게 말할 수 절대 없지만 그냥 이 영화는 이 나름대로의, 다른 영화와의 차별화된 어떤 지점을 갖고 있고, 명확한 색깔을 갖고 있는 그런 영화로써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이 영화에서 저는 이제 근데 한 가지가 좀 걸렸는데요, 이거를 긍정적으로 봐야 될지, 부정적으로 봐야 될지 모르겠는 측면이 뭐였냐면, 얘가 이제 등록을 못하잖아요, 등록을 못하는데 그 외국인 회화수업에서는 기회를 줘서 그냥 한 번 해봐라, 준비해 왔으니까, 그래서 얘가 그 자기고백을 하게 되는데 이... 저는 그게 족구시합까지 영향을 미칠 줄 알았거든요? 얘는 지금 등록된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우승을 하든, 뭘 하든 시합에 참가할 조건조차가 안 되는 그런 걸로 그렇게 연결이 될 줄 알았는데, 그런 부분은 없었어요. 그래서 이것이...
이수향: 그런데 등록하고는 상관이 없지 않을까요?
윤성은: 등록이랑 상관이 있죠. 학생이 참가를 해야 되는 부분이니까...
이수향: 아니 근데, 예전 기억으로 대학교에서 총장배 체육대회 같은 걸 하면, 축구 같은 건 인원 부족하고 그러니까 군에서 잠깐 나온 선배나 휴학 중인 애도 그냥 막 같이 뛰고 그러잖아요?
민병선: 그래도 그 학과는 같지 않을까요?
윤성은: 아무튼 말을 맺으면요, 어쨌든 저는 그게 연결이 안 되가지고, 이게 그냥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런 연결되는 이 내러티브는 굉장히 뻔한 거라서, 일부러 이 사람이 넣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은 이게 그 부분이... ‘등록을 못했다’라는 것이 굉장히 크게 작용할 필요는 없는 부분인데, 이 시나리오에서는 이 인물이 가난하고, 지금 등록도 못하고 있는 고학생이라는 점을 강조 하고 있어서 이거를 신선하다고 봐야 될 지, 아니면 조금...
이수향: 그러면 공무원 선배도 사실 말이 좀 안 되는 거죠.
윤성은: 조금 부족하다고 봐야 될지...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이수향: 공무원 선배도 등록했겠어요?
윤성은: 4학년이라고 나왔어요, 그 영화 속에. 4학년 아직 졸업 못했다고. 예, 그렇게 나왔어요.
민병선: 3년 간 꿈을 못 이뤘다고.
이수향: 아니 저는 그냥 공무원 준비한다 길래...
성진수: 선수 자격 논란
윤성은: 예, 그러니까 저는 그렇게 나올 줄 알았거든요?
민병선: 그런데 영화는 그런 현실과는 다른 거니까요.
윤성은: 예, 그런데 그런 것은 말하지 않아서 좀 애매했습니다. 이상입니다.
민병선: 다음은 양경미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시겠습니다.
양경미: 저는 오늘 처음 참여를 하는데요.
이수향: 떨지 마시고.. (웃음)
양경미: 네, 좀 떨리긴 하네요.
정재형: 떨어요, 떨어요. 막 떠는 게 좋아요. (웃음)
양경미: 앞서, 여러 선생님들께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제가 생각했던 부분과 많이 겹치기도 하는데요, 이럴 때는 마지막 순번이 좋지만은 않네요. (좌중 웃음)
안숭범: 할 말이 없죠.
양경미: 예
안숭범: 그런 단점이 있습니다.
양경미: 작품에 대한 평가는 윤성은 선생님과 생각이 같습니다. 저도 이 작품의 수준이 대단히 높은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예술성을 지향한 작품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재미있게 만들려고 노력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안숭범 선생님이 말한 만화적 상상력과 핍집성 보다는 재미를 추구한다는 의견에도 같은 생각이고요. 그런데요,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현실과 거리가 멀다(?)”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에 대한 부분을 많이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 영화가 지극히 영화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면 안나와 만섭의 사랑이 이루어졌겠지만, 현실에서는 어디 그렇습니까? 잘생기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한데 말이죠, 여자라면 좀 있어(?)보이는 강민을 선택하는건 당연하죠, 이 부분에서 민병선 선생님은 영화의 결말이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좋다’라는 표현보다(웃음) ‘영화적이지만은 않다, 혹은 현실적이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영화는 코믹과 판타지를 섞어서 보여주고 있지만 그 인물들의 대사는 때로는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대학교의 운영 실태와 사회구조에 관한 문제, 젊은 대학생과 청년들이 겪고 있는 고민 등은 젊은층에게 잘 어필 될 수 있었던 요소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가벼운 듯 가볍지 않고, 무거운 듯 무겁지 않은, 웃기면서도 안타까운 현실, 뭐 이런 형태의 재미가 젊은 사람들에게 어필한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영화는 ‘후회 없이, 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정말이지, 저도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습니다. 진정으로 본인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희생‘이 아닌 ’행복‘을 느끼고 있는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남들이 살고 있는 삶, 그것을 획일적으로 따라가는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다보고 후회하고 심어지 나이 들어서 일탈을 하죠, 영화 속 만섭도 죽음의 문턱에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때로 돌아가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해보려고 노력합니다만, 같은 학과 선배는 자신이 좋아하는 족구도 포기하면서 여자 친구가 원하는 목표(기준)에 맞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데, 그게 행복해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영화를 전공했는데요, 사실 우리학과도 취업과는 거리가 좀 멉니다. 친구 중에는 10여 년 넘게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본인은 나름대로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며 살고 있는데, 남들 보기엔 그 나이에 번듯한 직장 하나 없이 허송세월 보내는 한심한 백수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주변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그 일을 즐겨요, 언젠가 자신의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질 날을 고대하며 비록 경제적으로는 힘들다 해도 말이죠. 처음에야 저도 한심하게 생각 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래, 이게 행복이구나.” 싶더라고요, 다만, 최저 생계비만 보장되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겠대요,
이수향: 슬퍼지려고 그래요.
양경미: 네. (웃음) 그래서 이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했고 공감이 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만섭이 그토록 좋아하는 족구를 발톱이 빠지도록 했어도 그에 대한 보상은 뭐 없잖아요, 그에 반해, 마지못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더라도 합격하면 그에 대한 보상은 더 큰거고... 결국, 우리 사회는 ‘과정’보다 ‘결과’ 인거 같아요,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해도 결과가 안 좋으면 과정은 의미 없고, 결과가 좋으면 다 용서되잖아요. 영화 마지막 신에서도 점프가 돼서 과정은 생략됐지만 벤츠 탄 만섭은 어찌됐던 결과적으로 성공했음을 암시해요, 이것도 결과만 보여주잖아요,
지인의 얘기를 또 하는데요, 집안 좋고, 학벌 좋은 소위 스펙이 좋은 사람이 전문직도 마다하고 그냥 대학교 교직원으로 들어갔거든요.
윤성은: 요즘 교직원 들어가기 얼마나 힘든데요.
이수향: 국립대 교직원은 공무원이야.
양경미: 그 친구한테는......
윤성은: 그 사람에게는 교직원이 별거 아닌 건가요?
양경미: 그 집안 식구들은 무척 한심하게 보더라고요, 스펙도 좋은데 모두 접고 학교로 취직을 해버렸으니까요. 그 부모에게는 무슨 직업을 갖느냐, 어떤 회사냐 등 결과가 더 중요했겠죠, 전 그 친구가 의식이 있다고 봐요, 자신의 삶을 누가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닌데, 본인 스스로가 편하고 행복하면 그게 옳은 선택 아닌가요? 영화에 대한 주제와 의미를 생각하다보니 다른 길로 많이 빠지게 됐네요. (웃음)
성진수: 저는 지금 양경미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지점에 대해서 영화가 좀 이율배반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면 족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족구를 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의 경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그 사람의 이상인지 좋아서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공무원이 되면 되잖아요. 과거에 그 인물의 사연으로 봐서는 족구 때문에 여자 친구한테 버림을 받은 그런 사연이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의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생길 수도 있는 거니까요. 아니면 열심히 해서 여러 가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성취하는 캐릭터가 다양하게 나왔으면 좋았겠는 생각을 너무나 많이 했어요. 근데 이 영화는 이분법적으로 청춘을 즐기고 사랑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선한 것,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거나 스펙을 쌓거나 하는 것은 악한 것,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오히려 구도화하고 있죠. 그것은 영화가 가진 주제하고 이 영화가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내용하고는 다른 것이죠. 그래서 이율배반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수향: 저도 이 영화가 위로를 하고 싶어 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쪽인 청춘에게 ‘갇히지 말자, 메여있지 말자’라고 하는 건 알겠는데, 사실 요즘 제일 힘든 청춘은 족구를 하고 싶은데 족구장이 안 생겨서 힘든 청춘이 아니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분들이 더 대다수 아닌가요? 그게 더 일반적인, 더 괴로울 수 있는, 그 괴로움의 정도가 더 깊을 수 있는데, 말씀하신 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사람은 진짜 선하고 이상화된 사람이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D-day 며칠 써 놓은 인물은 모든 자기의 욕망을 억제하면서 가식, 가식은 아니지만 어쨌든 뭔가 그런 걸 감추고 사는 인물로 보는 거 같아요. 사실 더 위로를 해줘야 되는 쪽은 후자 쪽이고, 그 쪽이 더 일반적인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저는 그게 좀 씁쓸했어요.
윤성은: 저는 근데 그걸 그렇게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보진 않았는데 왜냐하면, 족구... 글쎄요. 저는 만섭이가 이상적으로 그려진 것 맞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공무원 시험 공부하는 그 선배를 잘못됐다라고 이야기하거나 이 영화가 비난하거나, 정말 뭐라고 해야 하지, 불쌍하긴 하지만 어쨌든 불쌍해서 되게 찌질 하게 만들어버리거나 이러려는 의도는 없었고, 또 그렇게 보이지도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 공무원 선배도 사실은 족구를 하고 싶은데 그 여자 친구와의 어떤 상황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거니까 괴로운 거잖아요, 지금. (웃음)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맨 마지막에 또 이제 다시 족구장으로 돌아오게 되는 그런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해요.
양경미: 그렇죠, 맞아요, 공무원 선배는 몸과 머리는 책상위에 있지만 마음은 족구장에 있잖아요, 타인에 의해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려는 건데,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잖아요? 결국 족구장을 찾아왔고, 영화의 메시지가 먼가요?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이잖아요.
이수향: 그러니까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 영화에선 이렇게 됐는데, 사실 이 영화가 아예 그 문제의식을 안 드러냈으면 그 자체로 되게 재밌고, 차라리 족구를 깊게 판다거나, 뭔가 덕후적으로 했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은데, 약간 발을 걸치면서 그런 식으로 하니까 사실 문제시 될 수 있는 거죠.
양경미: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재미만 추구한 게 아니라 현실적인 이야기도 한다는 거예요,
이수향: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족구를 하고 싶은데 하기 싫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은 그게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나락에 떨어진 심경으로 하는 건데, 그걸 이렇게 족구를 하고 싶은데 잠깐 여자 친구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린다면, 이 영화가 대사회 의식이 전혀 없으면 차라리 괜찮은데 있는데 실제 상황과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숭범: 근데 저는, 이게 재밌는 것 같은데, 저는 여성분들이, 여성 평론가들이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을 많이 할 줄 몰랐어요. (웃음)
민병선: 저두요. (일동 웃음)
이수향: 아니요, 이거 지금 약간 뭐, 우리처럼 이중 포인트를...
정재형: (웃음) 여자들이 너무 좋아하네.
이수향: 아니요, 안 좋아해요. (일동 웃음)
안숭범: 이 영화는 단적으로 이렇게 봤어요. 이 영화는 IMF시절 안팎에 대학생활을 한 30대 남성들의 자기 과거를 치유하는 영화예요. 전 그렇게 봤어요. 왜냐면, 지금 직업전선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30대 남성들, 지금 홍만섭이 미래에서 왔잖아요. 지금 그 시선이, 그 시선의 시작점이 지금 직업전선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남성들이 자기가 잃어버린 대학생활, 자기는 뭔가 진짜 즐겨보지도 못했고, 낭만적인 연애, 용기 있게 진짜 예쁜 여학생이 수업에 들어왔으면 진짜 고백도 해보고...
윤성은: 저도 여자지만, 그게 되게 와 닿았어요.
안숭범: 그러니까요. 그렇게도 해보고 뭐 해봤을 텐데, 잃어버린 과거거든요, 지금. 그 잃어버린 과거를 아주 덕후적으로 재현해 놓은 놓고, 이거는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한테 자기가 잃어버린 과거에 대해서 약간 묘미를 주는 그런 제스처가 있는 재밌는 영환데.
성진수: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잃어버린 과거를 현재시점에다 갖다 놓고 있기 때문에요. 실제로 이 영화에 중앙대학교가 나와요. 중앙대학교가 나오고, 그 총장하고 이사장 얘기를 계속 하잖아요. 영화에서 총장이 ‘뭐 그래, 나도 취업률 이렇게 올릴 수 있어. 그런데 그렇게 해서 대기업을 끌어들이면, 대기업이 먹어버려.’ 이런 말 직접적으로 하잖아요. 이렇게 현실 상황을 직접적으로 갖다 놨는데, 그게 말씀하신 것처럼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향수적인 시선이 있다’라는 거예요, 그게 굉장히 이율배반적으로 영화에서 부딪히게 되는 것 같아요.
안숭범: 저는 이제 이 영화는 영화평론가들이 필요 없이 그냥 만든 영화여서 우리들이 대화를 하는 거에 그 감독이 깜짝 놀랄 거예요. (일동 웃음) 그런 영환데 (다들 인정) 근데 저는 굳이 이 영화에......
이수향: 아니, 그런 걸 넣지를 말지. 왜 넣었냐고. (일동 웃음) 대 사회의식을 왜 넣었냐고.
안숭범: 문제점이 뭐냐면 마지막에 왜 홍만섭이 벤츠를 타는가. 저는 그게 이상한거예요. 홍만섭이 벤츠를 타는 이 시점에서 이 영화가 이상해진 거죠.
성진수: 어, 맞아요. 그러고 보니까 30대에 벤츠 타고 과거에 내가 꿨던 족구의 꿈을......
윤성은: 혹시 그 <백 투 더 퓨처>에 벤츠가 나오지 않나요? 아니, 벤츠가 나오냐고 물어 보는 거에요. (웃음)
안숭범: 아니, 이 영화는 사실 마지막 장면이 어디로 점프 컷을 해야 되냐면, 어디 시장의 생선가게 정도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나름대로 그 안에서는 자기만족을 하면서 살고 있는 홍만섭이 나와야 돼요. 이 영화의 앞의 그 박력은, 그 활기는 사실 거기에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