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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순례여행(12) - 1월 1일: 영목항에서 배를 타고 대천항으로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시편을 묵상했는데 말씀이 꿀맛이었습니다. 평소에 늘 책을 많이 갖고 다니는데 이 번 여행에는 짐이 많아 성경 외에 읽을거리가 두 권 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로 성경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단순한 생활이 참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단순화시키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모릅니다. 늘 복잡한 생각들이 많이 머무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탐욕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수도자 로렌스 형제는 수도원의 부엌일을 통해서도 풍성한 주님의 임재를 경험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영성수련을 위한 도구들을 준비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결국 영성에 이르지 못하고 인간의 탐욕에 이끌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를 삼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본인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민박집 주인이 떡국을 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시간이 새벽 5시 50분 정도 되었는데 떡국이라니 하고 오해도 했는데 그 때 가야지 떡국을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곳 영목항의 해맞이행사는 꽤 알려진 행사인 것 같았습니다. 영목항구에 가니까 벌써 많은 사람들이 떡국을 먹고 있었고 일부는 떡국을 먹은 다음에 여러 곳에 피워놓은 모닥불을 쪼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볼만한 광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에 있다가 나왔는지 광장에 가득했습니다.
굴을 넣은 떡국인데 떡국이 맛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 굴을 넣은 떡국이 너무나 비릿한 냄새가 나서 힘들게 먹은 적이 있는데 이번 굴떡국은 너무나 맛이 있었어요. 그래서 한 그릇 먹고 한 그릇을 더 먹었습니다. 두 그릇을 먹어서 미안했는데 사회자의 말에 의하면 세 그릇 정도는 먹어야지 제대로 먹는 것이라면서 미안한 마음을 없애주었습니다. 동네 분들이 감사했습니다. 수 천 명에게 떡국을 대접하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먹는 떡국과 떡국 후에 커피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해맞이 행사 개회식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청년회 회장이 개회선언을 했고요. 면장이 태안군수를 대신해서 인사를 올렸습니다. 식후에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작은 동네행사나 면단위 행사로 보기에는 꽤 규모가 있고 갖춰진 행사였습니다.
이곳에서 동쪽은 수평선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천 쪽의 산이 보이기에 아마 태양이 떠오르면 저 산위로 떠오를 것 같았습니다. 풍선을 나눠주면서 풍성에다가 소원을 적어놓으라고 사회자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회자는 태양이 떠오르면 일제히 풍선을 날리라는 것입니다. 나도 풍선에 소원을 적었습니다. "주님, 은총을 베푸소서! 김영근." 그런데 결국은 풍선을 한꺼번에 날리는 시간은 오지를 못했습니다. 오전 7시 45분 정도를 해뜨는 시간으로 잡고 있었는데 흐린 날씨 덕분에 해뜨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꼭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아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 둘씩 풍선을 자기 마음대로 날려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낙심한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심정이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중근동지방의 큰 토목공사로 바벨탑을 쌓아서 하늘까지 높아지려고 했는데 결국은 그 기대가 채워지지 못했지요. 얼마나 실망을 했을까요. 우리들의 인생도 그럴 때가 참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소유하고 싶고 이런 목표도 달성하고 싶고 이런 방면에서 인정도 받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하고 미완성의 교향곡으로 마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에 인생은 과정이 중요하지 목적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란 결국 주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 과정입니다. 이 여행길은 주님과 함께 길가는 자의 행복을 느끼는 시간들입니다. 주님을 떠나서 스스로 바벨탑을 쌓으려고 했던 사람은 결국 실패하고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포도나무가지 같이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으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에 붙어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 귀한 열매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여주셨습니다. 그 열매가 크고 거대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열매는 주님과 함께 벗됨으로 길가는 자가 경험하는 행복입니다.
소원을 빈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은 아예 부적까지 달아서 날려 보냈습니다. 정성은 갸륵하지만 그 부적에 무슨 능력이 나타난다고 믿는 것은 좀 어리석어보였어요. 부적이라는 것도 결국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것이지요. 떠오른 태양을 보지 못해 조금은 실망한 채로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시 잠이 들어서 깨어보니 8시 40분 정도가 되었습니다. 영목항에서 대천항으로 가는 배가 오전 9시 10분에 있는데 그 배를 타기 위해서 서둘러야 했습니다. 서둘러서 항구에 도착했는데 배는 제 시간에 오지를 않았습니다. 거의 9시 25분 정도가 되어서야 들어왔습니다. 배에 올라서 몇몇 분들에 새해 전화를 올렸습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도 장모님께도 전화를 올렸습니다. 어머님은 여행 중에 있느냐고 확인하셨습니다. 걱정하실까봐 알리지는 않았는데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여행길에 평안을 부탁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아들의 새해인사에 고맙다고 화답하셨습니다. 가족은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장모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아내가 신정에 울산에 내려오는 가를 물어보셨습니다.
오랜 만에 배를 탄 것 같았습니다. 갑판의 바닥이 너무나 따뜻했습니다. 온돌방처럼 만들어놓았어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대천항에 도착해서 형제와 헤어졌습니다. 형제는 여러 가지 아픔도 많았습니다. 아쉬운 작별이고 하루 반 만에 이별입니다. 주님의 뜻이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가능하면 다시 만나서 함께 인생의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대천항에서 서로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바울사도가 사도행전 20장에서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함께 나누었던 기도가 생각이 났습니다. 바울사도는 눈물을 많이 흘렸지요. 3년 동안 눈물을 흘리면서 섬겼던 에베소 교회, 정말 감회가 새로웠을 것입니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 언제 만날 것인가요. 또 예루살렘에 가면 좋은 일이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유대인의 간계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헤어짐의 아픔입니다. 그러나 헤어짐은 우리 인간의 모든 만남의 종결입니다. 회자정리입니다. 만남은 반드시 헤어짐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만남을 더욱 가치있게 만들려고 우리들은 최선을 다해야 하며 한 번 만나면 그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대천항에 도착해서 남쪽으로 걷기로 작정했습니다. 항구가 있는 것은 대천해수욕장하고 꽤 멀었습니다. 그 길로 가면 해수욕장 가는 큰 길은 없었고 골목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물어서 골목길을 통해서 대천해수욕장으로 왔습니다. 이곳은 필자가 대학 다닐 때에 고대(高大)영자신문사 활동을 하면서 MT를 왔던 곳으로 부푼 꿈, 추억이 깃든 곳이며 젊음이 있던 곳입니다. 함께 대학영자신문사 기자생활을 했던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찾아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어찌 시간은 그렇게 되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몇몇 분들은 사회에 알려진 유명인사가 되어서 종종 그들의 활동을 매스컴을 통해서 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원한 해변을 거닐면서 1월 1일 새해를 맞이해서 연인끼리 가족끼리 왔던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대천시는 보령시로 바뀌었는데 이곳 보령은 머드축제로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썰물이 되어 물이 빠진 바닷가를 걸었습니다. 너무나 행복한 걷기였습니다. 다시 해변의 인도로 나왔는데 계속 걷다가 길이 끊겨져서 다른 길로 가다보니까 더 잘 정비된 해수욕장이 나왔고 많은 호텔과 위락시설이 보였습니다. 보령시가 많이 발전되었습니다. 여기에 유명한 보령머드 축제가 열립니다. 몇몇 곳을 사진 찍으면서 남쪽으로 길을 재촉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보니까 남포방조제가 보였습니다. 방조제는 바닷물과 민물을 분리시켜서 민물을 모아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로 사용하는 곳입니다. 조금 더 내려가니까 죽도 유원지가 보였습니다. 이곳에서 고구려 공민왕 당시의 한 신하가 중 신돈이 재상이 되는 것을 반대하다가 왕의 미움을 사서 이곳으로 귀양을 왔다고 합니다. 후에 이씨 조선시대에 높은 관직을 제안을 받았지만 고려의 신하가 조선의 신하가 될 수 없다고 해서 이곳에서 숨어서 살았다고 합니다. 선비의 높은 절개가 보여 지는 곳입니다.
걸으면서 새로운 깨달음이 와서 오는 차들을 축복해기로 했습니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줍니다. 때로는 무료하게 보이는 자동차 여행객들에게 작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면서 마주 오는 차를 향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가워하면서 손을 흔들면서 답례해주었습니다. 여행 중에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섬김이라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학교를 오가는 길에 버스를 타고 가는 손님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이 바쁘다 보니 서로에 대해서 무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관심기울기는 작은 부분에서나마 실천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동기생인 이 목사님으로부터 격려의 전화가 와서 감사했지요. 눈이 쌓인 곳도 있었고 눈이 녹아서 질퍽한 곳도 있었습니다. 다니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행복한 걷기였습니다. 찬송을 하면서 걷는 길은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는 행복한 길걷기였습니다. 중간에 갈전교회라는 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가 있어서 그곳에 들어가서 쉬면서 찬송을 했습니다. 간단하게 점심 요기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걷다보니까 어느 새 웅천읍에 도착했습니다. 보령과 서천 사이에 꽤 규모가 있는 읍인데 웅천역의 모습이 고풍스러웠습니다. 이곳에 찜질방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는데 없고 어떤 분이 무창포해수욕장에 가면 찜질방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지나온 무창포로 숙소를 위해서 다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버스를 기다라면서 찐빵을 파는 곳이 있어서 찐빵을 먹으면서 기다렸습니다. 찐빵을 어린 시절에 내가 먹기로 기대했던 가장 추억이 많은 음식이어서 찐빵을 쪄서 파는 곳을 보면 그냥 지나가기가 아깝습니다. 무창포를 가는 차를 탔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까 무창포에는 찜질방이 없다고 해서 다시 대천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대천까지 나가서 찜질방에 하루를 머물고 다시 이곳 웅천으로 와서 서천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대천까지 와서 간단하게 사워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피곤한 몸을 쉬면서 이틀 동안의 여정에 관해서 글을 적는 행복을 누렸습니다. 주님, 이곳에 안식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발에 물집이 또 생겼어요. 요령이 생겨서 바늘과 실을 활용해서 물질을 따고 실을 그곳에 남겨두어 물이 흐르게 했습니다. 하루잠자리, 하루 양식이 그렇게 귀중합니다. 길손의 여행길에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해주었던 모든 분들이 더욱 감사했습니다.
"주님, 당신이 허락한 일용할 양식이 감사합니다. 행복한 안정된 잠자리가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해주세요. 이곳에 쉬면서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세요. 저는 당신의 한 마리의 양으로 남기를 원합니다."
주님, 감사해요.
지나온 걸음걸음 인도해주셨네요.
주님과 함께 길가는 자의 행복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네요.
민초들의 삶을 보게 하셨네요.
부족한 종의 삶도 돌아보게 하셨네요.
이번 여행길이 갈릴리에서의
주님의 여행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을 축복하는 여행길 되게 하소서.
사람들과 아름다운 만남의 여행길 되게 하소서.
당신의 음성을 듣는 시간들이 되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당신은 진정 나의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당신은 진정 나의 생명입니다.
당신의 진정 나의 행복이시고 기쁨이십니다.
첫댓글 복된 새해를 맞으셨군요, 여러번 댓글 시도하다 글올립니다. 함께 하며 기도합니다. 살롬
문목사님, 사모님 감사합니다. 올 한 해 건강하시고 행복한 시간들로 엮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누산교회의 목양사역위에 주님의 풍성한 은총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