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1911년 로마 교황청은 조선 포교지의 조선교구 증설에 따라 1831년 9월에 설정된 조선대목구(Vicariatus Apostolicus)를 두 지역으로 분할하였다. 충청도 이북 지방은 조선대목구를 계승하는 서울대목구 관할로 하고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은 신설되는 대구대목구 관할로 하며, 서울대목구는 조선대목구의 제8대 감목(주교)인 뮈텔(G.Mutel, 閔德孝) 주교가 계속 사목하고 새로 설정되는 대구대목구장은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신부를 주교로 임명하고, 아드라스(Adrasus) 주교의 명의를 부여한다는 1911년 4월 8일자 교황 교서에 의하여 조선남방교구로서 대구대목구가 설정되었다. 천주교회가 개화기의 민중 계몽을 목적으로 1906년 창간한 주간지 [경향 신문](京鄕新聞) 사장이던 드망즈 신부가 1911년 6월 11일 주교로 서품되어, 같은 해 6월 26일 대구에 부임, 조선 천주교회 두 번째 교구의 교구장으로 착좌식이 거행되었다. 새 교구의 관할 지역은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도 그리고 제주도로서 총인구 700만여 명 중 신자수는 2만 6천명, 신부가 주재하는 본당은 영남 지방에 7개 처, 호남 지방에 9개 처, 제주도에 2개 처 도합 18개 처뿐이었으며, 성직자는 프랑스인(파리외방전교회원) 15명(주교 포함), 방인 사제 5명으로 포교의 황무지를 개척할 전교 인력은 너무도 손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신설 교구의 가장 시급한 일은 방인 사제 양성과 교육, 사회 사업에 봉사할 수녀 양성이었다. 서울 용산의 예수성심신학교 다음으로 대구에 유럽식 대학 교육 과정인(중고등과, 대학과, 대학원) 12년 과정의 성유스티노신학교가 1914년 9월 개교되고 1915년 10월에는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이 설립되었다. 1931년에는 관할 구역 내의 호남지구를 분리, 독립 교구 설정 준비로 전라도감목대리구를 설정하였고, 1937년에는 교황청에서 전주지목구(Prefecture Apostolicus)와 광주지목구 두 개의 새 교구를 설정하였는데, 전라북도를 관할하는 전주교구는 본방인 성직자가 자치 사목하는 첫 자치 교구이며 광주교구는 전라남도와 제주도 지역을 관할하며 포교 담당은 아일랜드에 본부가 있는 성골롬반선교회(Mission of Saint Columban) 선교사들이었다. 호남 지구의 분리로 "남방교구"라는 이름은 사용하지 않고 대구대목구의 관리 구역은 경상남북도로 좁혀진 반면 더욱 알찬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대륙 침략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제2대 교구장이 일제의 강압으로 사임하게 되고 제3대 교구장은 일본인 성직자를 받아들여야 했으며, 동양에서 모범적인 신학교로 명성이 높았던 대구성유스티노신학교가 폐교 당하고 신학교를 비롯 여러 곳의 교회 건물과 학교가 일본 군용으로 징발당하였으며 성직자들이 불온 사상, 비국민(非國民) 등 죄목으로 구금, 투옥되었다. 1945년 초부터 병상의 몸이던 제3대 교구장(일본인)이 8. 15 광복 이듬해인 1946년 1월 6일 별세하여 제4대 교구장으로 전주지목구 제2대 교구장이던 주재용 바오로 몬시뇰이 취임하였다. 경제적으로 자립의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조국의 광복으로 이제는 명실상부한 방인 자치 교구가 되어 경제적인 어려움은 많았으나, 구 신학교 교사와 부지를 이용한 대건중.고등학교를 비롯 교구 관내 여러 지방에 중.고등학교를 설립 개교하였다. 1954년 경상남도지역을 분리 독립 교구로 준비하는 경상남도 감목대리구를 설정, 1957년 3월 교황청에서 부산대목구를 설정하도록 하였으며, 46년 간 관리하던 경상남도 지방을 부산교구에 이양하였다. 1958년 안동감목대리구가 설정되어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북도 북부 지방을 안동교구에 이양할 준비를 하였고, 안동교구는 1969년 7월에 발족하였다. 이에 앞서 1962년 3월 교황청은 한국 교회의 교계제 실시를 반포하여 한국 천주교회의 모든 교구는 이제까지 임시적 포교구인 대목구 또는 지목구에서 승격하여 주교구(Diocese)가 되었다. 또한 한국 교회를 서울, 대구, 광주 3관구(管區)로 하며, 관구의 수좌(首座)주교에게는 대주교의 명예가 부여되고, 관구 주교회의를 소집할 권한이 주어졌다. 대구관구는 대구대교구와 청주교구, 부산교구, 마산교구, 안동교구 등으로 편성되었으며 1962년 7월 5일 이후 대구교구장은 대주교의 품계를 갖고 있다.
1. 관할 지역 대구광역시, 경산시, 경주시, 구미시, 김천시, 영천시, 포항시, 고령군, 군위군, 성주군,울릉군, 청도군, 칠곡군(9,128.77㎢)
2. 역대 교구장 안세화 플로리아노(Florian Demange) 주교(파)(1911~1938) 문제만 제르마노(Germain Mousset) 주교(파)(1939~1942) 하야사카 이레네오(Irenaeus Hayasaka) 주교(1942~1946) 주재용 바오로 몬시뇰(1946~1948) 노기남 바오로 주교(1948~1948) 최덕홍 요한 주교(1949~1954) 서정길 요한 대주교(1955~1986)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1986~2007) 최영수 요한 대주교(2007~2009) * 교구장 직무대행: 조환길 타대오 주교(200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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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혁
1831.09.09. |
교황 그레고리오 16세 조선교구 설정 |
1886. |
대구본당 설정, 김 바오로 신부 전교 활동 |
1899. |
현 계산동에 한식 십자형 목조 성당 신축 낙성 |
1902.12.24. |
고딕식 현주교좌 대성당 신축 낙성 |
1911.04.07. |
대구교구가 조선교구에서 분리 설정 |
1911.05.02. |
교황 비오 10세는 한국에 교구 하나를 더 증설할 것을 결정하고 서울교구와 대구교구로 한국교구를 분리시켜 충청 이북 지역은 서울교구가 경상도와 전라도를 대구교구가 관할하도록 하였다. 안 플로리아노 신부를 첫 감목으로 임명 |
1911.06.26. |
초대 교구장 안 주교 대구에 부임 |
1914.10.01. |
성유스티노신학교 설립 |
1915.10. |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설립 |
1931.04. |
전라도감목대리구 설정 |
1933.10. |
전라남도 지구를 성골롬반회에 포교 위촉 |
1937.04.15. |
전주지목구와 광주지목구 설정 |
1938.02.09. |
안 주교 선종 |
1939.05.07. |
제2대 교구장 문제만 신부 주교 서품 및 취임 |
1942.10.25. |
일제의 탄압으로 문 주교 사임. 제3대 교구장 하야사카 이레네오 신부 주교 서품과 취임 |
1945.04. |
성유스티노신학교 서울용산신학교와 합병 |
1946.02.22. |
제4대 교구장 주재용 신부 착좌 |
1948.05.27. |
주재용 신부 교구장직 사임, 노기남 주교 대구교구장 겸임 |
1949.01.30. |
제6대 교구장 최덕홍 신부 주교 서품과 취임 |
1952.07.06. |
왜관감목대리구 설정. 성베네딕도수도회에 포교 위촉 |
1954. |
부산 동래에 가르멜봉쇄수녀원 설립, 연길에서 올리베따노성베네딕도수녀회 부산에 본원 이전, 원산에서 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에 본원 이전 |
1954.06.18. |
경남지구 감목대리구 설정 |
1954.12.14. |
최덕홍 주교 선종 |
1955.07.13. |
제7대 교구장 서정길 신부 주교 임명 |
1955.09.15. |
서정길 신부 주교 서품과 취임 |
1957.03.06. |
부산교구 설정 |
1957.05.30. |
최재선 신부 주교 서품, 경남지구를 부산교구에 이관 |
1957.06.02. |
안동감목대리구 설정 |
1959.07. |
꼰벤뚜알성프란치스꼬회 대구 진출 |
1962.03.25. |
교계 설정으로 대목구에서 주교구와 대교구로 승격 |
1957.07.05. |
서정길 대주교 취임 |
1966.01.07. |
선목중학교(소신학교) 설립 |
1966.01.14. |
선목고등학교(소신학교) 설립 |
1968.06. |
새 교구청 청사 준공 |
1969.06.21. |
안동교구 설정 |
1969.07.25. |
두봉 신부 주교 서품, 경상북도 내 안동시, 영주, 봉화, 예천, 문경, 상주, 의성, 청송, 영양, 안동군을 안동교구로 이관 |
1969.10.07. |
선목중학교 폐교 |
1970.05.31. |
선목고등학교 폐교 |
1972.10.07. |
교황청에서 이문희 신부를 본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 |
1972.11.30. |
이문희 주교 서품과 취임 |
1979.01.30. |
가톨릭병원 착공, 8월 개원 |
1980.03. 6. |
본재단 산하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이 재단법인 천주교 대구성바오로수녀회 유지재단으로 분리 |
1980.08.29. |
효성여자대학을 종합대학교로 승격 |
1981.10. 5. |
이기수, 이명우, 전석재 신부를 몬시뇰로 임명 |
1982.03.03. |
선목신학대학(현 대구가톨릭대학) 개교 |
1984.02.07. |
왜관감목대리구(이동호 아바스) 김천지역(평화, 지좌, 황금, 지례 4개 본당)에 대한 사목권을 대구대교구로 반납 |
1984.05.05.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대구대교구 방문 |
1984.10.06. |
선목신학대학을 대구가톨릭대학으로 교명 변경 |
1985.01.05.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대구대교구 이문희 바오로 주교를 계승권 있는 부대주교로 임명 |
1985.03.25. |
교황요한바오로2세어린이집 축성 |
1985.09.20. |
남산동 관덕정에서 대구순교자기념관 기공식 |
1986.03.01. |
왜관감목대리구 해체 |
1986.07.05. |
이문희 대주교 대구대교구 제8대 대교구장 착좌식 |
1987.01.21. |
성 요한 이윤일 유해 봉안과 순교 120주년 기념 미사 거행, 이윤일 대구대교구 제2수호자로 반포 |
1987.03.07. |
신나무골 이선이 엘리사벳 순교 기념 미사 이문희 대주교 집전 |
1987.04.07. |
제7대 대구대교구장 서정길 대주교 선종,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
1987.12.06. |
이문희 대주교 가톨릭교육재단협의회 이사장으로 취임 |
1987.12.21. |
성 요한 이윤일 유해 봉송(미리내에서 대구 성모당) |
1988.05.01. |
지좌본당 축성식과 견진 이반 디아스 대주교, 이문희 대주교 집전 |
1988.05.26. |
한티 제1차 무명 순교자묘 발굴 |
1988.12.21. |
사회복지법인 서정길 대주교 재단법인 설립 공고 |
1989.05.28. |
교구 성체대회 개최(두류공원 축구 경기장) |
1990.09.30. |
이문희 대주교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 제8차 정기총회에 참석 |
1990.10.28. |
대구가톨릭대학 의학부에 의예과 신설 |
1990.10.31. |
박석희 신부 안동교구장으로 임명 |
1991.01.20. |
성 요한 이윤일 유해를 성모당에서 관덕정천주교순교기념관으로 봉안과 순교기념관 제단 축성식 |
1991.03.01. |
이종흥, 김영환 신부 몬시뇰 임명 |
1991.10.06. |
교구 성체 대회(두류공원) |
1992.09.20. |
순교자 현양 대회(한티성지) |
1994.04.08. |
서정덕 보좌주교 서품 |
1996.03.05. |
매일신문 창간 50주년 |
1996.09.09. |
대구평화방송 개국 |
1997.09.30. |
제1회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대상 시상식 개최 |
1997.11.30. |
교구 시노드 개회미사 |
1999.11.10. |
서상돈 선생 탄생 150주년 기념 행사 |
1999.12.25. |
2000년 대희년 개막식 |
2000.02.17. |
한티 영성관 봉헌식 |
2000.04.18. |
포항장애인종합복지관 개관 및 축복식 |
2000.07.25. |
2000년 대희년 전국 청소년 대회 |
2001.01.05. |
대희년 폐막 미사-계산성당 |
2001.02.27. |
최영수 보좌 주교 서품 |
2001.12.22. |
서정덕 보좌주교 선종 |
2002.02.06. |
성모자애수녀원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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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으로 귀한자료 많은 도움이 되었읍니다 감사합니다.
스마트님
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