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나총례를 시조로 하고 나채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금성나씨는 고려 전기에 삼한공신(三韓功臣)으로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에 봉해진 나총례(羅聰禮)를 시조로 받든다. 이후 11세손에서 기준으로 충절공익희파(忠節公益禧派)·부호군공언파(副護軍公彦派)·영도첨의공순파(領都僉議公珣派) 등으로 분파되었다. 금성나씨에서 분관되어 11세손 나천서(羅天瑞) 후손이 안정나씨로, 나문서(羅文瑞)의 후손이 군위나씨로, 15세손 나광우(羅光佑)의 후손이 수성나씨로 갈라졌다.
[입향경위]
여수 입향조는 나채성(羅采成)이다. 그는 아우 나현성(羅顯成)·나효성(羅孝成) 등과 함께 1850년경 전라북도 임실에서 출향하여, 나현성은 여수시 소라면 후산마을에 정착하고 나채성과 나효성은 여수시 여천동 대통마을에 입향하여 터전을 잡았다. 이들은 시조 나총례의 30세손이며 청백리 나은제의 12세손이다.
[현황]
입향조 삼형제의 후손은 여수시 여천동 대통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으나 현재는 외지로 분산되어 얼마 거주하지 않고 있다.
첫댓글 좋은 자료를 주셨습니다. 대동보에 수록이 되었는지 파악하고 우리가 작성하고 있는 주소록에 수록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