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주 찾아가는 팔공산 동화사 비로암 3층 석탑에는 권력 싸움에 죽은 신라왕의 극락왕생을 비는 염원이 서려
있는 역사를 안내드립니다.
비로암은 동화사 시설지구인 서쪽문으로 들어가면서 큰 연못을지나 바로 주차장이 나오는데 바로 밑에 있는 집이 비로암이고3층 석탑은 이곳에 있습니다.
이 암자에는 비로나자불을 모신 비로전이 있고 바로 앞 마당에 3층으로 된 아담한 석탑이 있는데 이 석탑을 보수하면서
신라 44대 임금 閔哀王을 위하여 세운 석탑이란 글이 나왔습니다. 민애왕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읍니다.
제 42대 흥덕왕은 완도의 장보고에게 1만의 군사를 주어 남해안의 해상로를 확보하게한 임금으로 잘 알려진 임금입니다.
문제는 후사없이 10년만에 죽으면서 叔姪간에 왕위쟁탈전이 벌어졌는데 金明(후에 민애왕이됨)이 金佑徵과 함께 죽은왕의 조카를 왕으로 추대하니 이가 僖康王인데 그이듬해( 837년) 金明이 왕을 도로 죽게하고 자기가 왕위에 오르니 곧 민애왕입니다.
하나 金愚徵이 같이 거사를 하였는데 金明이 왕위에 오르니까 그를 치기로하고 청해진으로 가서 장보고의 도움을 얻어 그의 군사를 이끌고 실라의 땅으로 쳐들어와 팔공산에서 민애왕의 군사를 무너뜨리고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신무왕입니다. 장보고는 이때 세운 공으로 자기 딸을 신무왕의 며느리로 보내기로 약조하였는데 신라 조정의 반대로 허사가 되고 오히려 신라 조정에서 보낸 자객 염장이라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고 해상 제패의 꿈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장보고와 결탁한 신무왕에게 죽은 민애왕을 신라 왕실은 애도하게 되었으며 48대 경문왕은 민애왕을 기리는 탑을 세워 명복을 빌었습니다.
팔공산은 그후 왕건과 견훤의 싸움으로,6.25때도...... 팔공산은 약사여래불의 성지로서 풀뿌리 민초들의 기도처로서 명성을 떨치고 후세에 국운을 건 또 다른 싸움판이 없도록 빌면서 가시는길 비로암에 들려 보시도록 안내합니다.
첫댓글 깊은 역사가 숨어있는 것도 모르고 수박 겉핧기 관광만 했으니.... 이제 다시 가봐야 겠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