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죄와 분별력.천국에서 기억되리 (송태근목사와 이름을 잊어주세요) 서울에는 많은교회가 있지만 특별히 두곳의 교회이기를 나누고 싶다.6.25전쟁중 남쪽으로 피난한 믿는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삶을 갈급하여 세운교회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교회다.1954년 3월1일 청파동에 세운 평양노회소속 삼일교회가 첫째이고 한달차이를 두고 함흥에서 뛰어내려온 이북의 난민성도가 부활절에 노량진경찰서옆 고등공민학교에서 시작한 교회가 강남교회다. 삼일절에 세운 교회라해서 이름이 삼일교회인데 실제로 애국애족하는교회가 창립정신이다. 남쪽 강건너 세운 뜻이 현판에 배인 강남교회는 실제는 강북에 위치하고 있으니 재미있다. 두교회의 유명한 목사가 바로 전병욱과 송태근인데 전자가 93년 삼일교회에 부임하여 2011년까지 80명의 노령성도가 집중된 교회를 16000명으로 부흥시켰다면 장애인목회에 헌신하던 송태근은 94년 역시 안정된 교회였던 강남교회에 부임한다. 두교회가 다 대형교회이고 지적.영적으로 탁월한 두목사는 같은교단 예장합동측교회를 잘 인도했고 신학대학원은 송목사가 7년쯤 선배가 된다. 시간은 흘러 2011년 한국교계를 낯뜨겁게 한 전병욱목사가 성추행문제로 교회를 떠났고 이듬해 6월 평온하던 강남교회 담임목사였던 송태근목사가 삼일교회 담임으로 청빙수락하고 자리이동을 하여 큰 뉴스였고 논란이 되었다. 특별한 이슈나 교회의 양적.질적 문제없이 순항하던 강남교회를 떠나 송태근목사가 선택한 삼일교회行에 교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특히 1년여만 더 봉직하면 송목사는 원로목사자격이 됨에 따라 인간적으로는 노후가 보장되는 안락(安樂) 의 여생을 취할수 있었기에 금방 이해받질 못했었다.그러나 이유는 이렇게 분석한다. 내가 몇차레 사석에서도 목도했던 거칠게 없었던 전병욱의 말투처럼 만육천성도중에 만명이 미혼이고 평균나이가26.9세였던 청년교회 삼일의 신앙구호는 능력있고 힘있는 크리스천의 사회적 영향력 확산 이었다. 쉽게 말해 출세한 지도층이되어 세상을 영적으로 바꾸자는 전목사의 목회철학이고 그는 연약하다는 교회용어를 아주 싫어했다. 사실 사회적 강자가 신실하다면야 신앙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것이 별문제지만 교리는 어딜봐도 세상적 능력과 힘이 만든 하나님세계의 지경이 넓고 깊어진다는 방향으로 강조된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암튼 이런 지적이고 잠재능력있는대다수 청년성도의 신앙적 미래가 염려되던 송태근목사의 청년을 살리자는 믿음의 결단의이 근간의 첫째이고 본래 곽선희목사이후로 강해설교의 대가로 불리는 송목사의 아카데믹 파워 (Academic power)가 신학생들의 절대지지와 선호 1위이고 보면 본시 청년부 목회에 탁월했던 그의 선택은 옳았고 잘된 결정이라는데 두번째 이유를 찾으며 감사한 엄지척을 하늘로 올린다.두목사의 부침(浮沈)을 말하자는것은 아니고 말에 힘주고자 하는 요점은 이제부터다.2012년 6월초 송태근목사는 요란한 송별예식없이 고별설교만하고 강남교회 문턱을 나섰는데 교회갱신협의회 회장다운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는 말씀끝에 이런말을 했다. "사랑하는 성도분들의 마음속에서 교회의 이곳저곳에 담긴 제이름 석자를 잊어주시길 부탁합니다.교회에는 오로지 하나님의 이름만이 있어야 하며 모든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 잊어달라는 말이다. 망각(忘覺)되어야 하고 잃어버려질 사람의 흔적과 이름을 하나님의 존현으로 대신하는 당연한 교회의 제구실에 힘을 준 간절한 고백인데 사실은 쉽지않은 간증이다. 아버지가 직업군인이고 술도 좋아했다는 그의 개인사 고백을 엿보면 모태신앙인지 잘모르나 그의 방대한 저서와 깊이있는 강해설교를 통해 믿음을 손질중인 나는 일면식도 없는 그를 존경하게 됐고 역시 믿던대로 송목사는 근면하고 진솔한 자세로 공부하며 삼일교회의 난제에 질서와 평강을 덧입히신 하나님께 순종했으니 가슴을 쓸어내린다. 뛰어나고 모범적 목회의 모델이라는 이동원.홍정길.옥한흠목사를 뒤를 잇고 유기성.이찬수목사등의 징검다리노릇을 하며 교회갱신에 힘을 쏟는 송목사의 분투에 고마운 기도를 보탠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수많은 선물중에 망각기능(忘覺技能)이 있다. 잊어버리는것이고 기억의 저편을 말하는데 일생 환희에 찬 순간이나 또는 극한고통과 슬픔을 전부잊거나 또는 희석(稀釋)분량으로 남기는 일이다. 잊혀지고 혼동된 기억상태의 오류인 치매에 당하는 불행을 빼면 망각은 소중한것이고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시인 이형기가 낙화(落花)에서 그린 가야할때를 알고 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쓴 표현처럼황홀한 꽃도 지고 거름이 될때 이듬해 꽃을 기약한다. 홍단풍도 떨어져 묻혀 잊혀져야 다시맞는 봄날 새싹이 푸르른 상춘곡(常春曲)을 부를수 있다. 만일 아름다운것 환희의 기억이나 손을 깊게베인 통증을 한오라기도 잊지못한다면 복잡한 희비(喜悲)를 어찌 견디며 얼굴의 표정은 과연 무슨형상이 될까 하면 망각의 생물학적 정신적 선물은 귀하기가 이를데 없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악연과 원은(怨恩)도 용서와 화해라는 수단뒤에 잠재한 망각이 돕지 않으면 같이 살 가족과 친구이웃이 존재하기 어려울게다. 징벌하거나 당한것을 또렷히 기억하여 갚으려 하는 때문이다.과거역사의 실수와 파행을 오늘의 교훈으로 삼는 일 외엔 그다지 오래 기억해야할 일은 성서(聖書)와 창조주 하나님 외엔 별반 없지 싶다. 묻혀지고 낡은 기억을 더듬어 미련으로 집착하는일엔 많은 경우 실수와 무리가 따른다. 몽매의 환각을 되살리 려고 마약을 취하는 일이나 자꾸 옛날에 보기좋은 때에 묶여 미용만을 위해 얼굴에 손을 대는 성형도 중독에 이르면 보기 싫고 심각한 결말에 이른다. 로마황제들처럼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과 몸을 빚고 깍아세운 동상도 어찌보면 유훈(遗訓)의 긍정적면을 넘는 무리한 그림자의 미련이 아닌가도 여겨진다. 송태근 목사의 고별사가 머리에 계속 남는것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역사가 증명하는 일을 몸소 결행한 그의 속내가 단정하고 기독교적인 진리를 담아내고 있어서다. 시대가 지나고 사람이 바뀌거나 하면 동시대사람들의 아련한 추억외엔 잊혀지는게 사람의 인기고 영화(榮華)인것은 아쉬우나 사실이다. 너무 사람의 인생을 폄하무가치하게 여기는 허무주의적 냉소로 아해되지 않길 바란다. 포괄적 대의를 논하고자 할 따름이다. 인사유명(人死留名)이라해서 사람의 생전유적이 이름을 존비의 경중을 가름하는 잣대가 됨은 쾌히 동의하고 후세에 기억됨을 중한경구로 여겨 삶을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경계로 삼아야 함은 이론이 없으나 남길이름을 위해 부득이 모양을 갖추는일은 신앙생활과는 이반(異反)된다. 내가 무엇을 햇고 나로인해 몸담은 공동체가 더 나아졌다는 우쭐함은 제어 되어야 한다. 맡겨진 일에 충심노력하는 책임감은 최고의 가치로 챙겨야 하나 공(功)은 하늘에 돌리는것이 율법과 인본을 경시해야 하는 개신교의 중심철학이 돼야 한다.한시절 쓰임받은 성화와 거룩함(카데쉬)또한 은사요 은혜이니 나는 무(無)요 하늘에 속한 용사인것이다.용사는 전쟁에 쓰이고 생사는 하늘에 주관되는것이다.용사가 생을 다하면 그이름은 하늘에 기록기억될것을 아는것이 기독교적 신앙관이자 종말론적 세계관인것이다. 너무 살벌하고 매정한 표현의 결론인가. 이제 신학은 목회자의 전유물이던 시대가 아니다. 성서를 들여다 볼수록 나는 웬지 작아지는듯 얼핏 섭섭하나 맘은 뿌듯하고 철이드는 느낌이 물씬하다. 성서적 정체성(Theological identity)과 그리스도인의 확신(Status in chritianity)이 어렴풋이 보인다. 내가 잊혀지지 않길 소망하는것은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다.잘해주지 못한것과 존애의 대상에 미달한 아버지이지만 그들의 신앙에 의지된 넉넉한 사랑을 감히 소망한다. 언젠가 나또한 내게 맡겨진 자리에서 물러나 침잠할것이다. 바라고 기도하기는 잘생기고 고맙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나와 이웃의 가슴에 남기는 하되 송목사의 고언처럼 기억의 피안으로 자취를 감추는 이름이 되길 간원한다. 세상에서 받는 박수가 하늘에 새겨져 영원하고 큰상급을 저해하지 않아야 하기때문이다.삼가 조심할 일이다. 성경에 남기신 하나님의 가르침을 대할때마다. 아직 멀었지만.
첫댓글 전가놈 뻔뻔스럽고 부끄러운줄 모르는 이런자가 지도자라니 대한민국 기독교는 끝난기라
이 자 뿐아니라 하나님 팔아 먹고살고 돈벌기위해 갖는직업 ㅎㅎㅎㅎ 가 ㅣ 수 ㅔ ㅋ 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