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his blindness
실명(失明)의 노래
When I consider how my light is spent
내가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음을 생각하니
Ere half my days in this dark world and wide,
이 어둡고 넓은 세상에서 내가 살 날의 반도 아직 지나지 않았구나.
And that one talent which is death to hide
그리고 숨겨두면 죽고 마는 한 재능이
Lodged with me useless, though my soul more bent
나와 함께 쓸모없이 머물고 있다. 나의 영혼은
To serve therewith my Maker, and present
그 재능으로써 창조주를 섬기기를 열망한다.
My true account, lest He returning chide;
그분이 돌아와 나의 삶을 꾸짖는 일이 없도록.
"Doth God exact day-labor, light denied?"
"하나님은 나를 앞 못보게 하시고는 낮의 노동을 강요하시는가?"
I fondly ask. But Patience, to prevent
나는 어리석게 묻는다. 그러나 인내는
That murmur, soon replies, "God doth not need
나의 불평을 막으며 이내 대답한다.
Either man's work or His own gifts. Who best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나 재능을 원치 않으신다.
Bear His mild yoke, they serve Him best. His state
그분의 순한 멍에를 가장 잘 견디는 자가 그분을 가장 잘 섬기는 것. 그분의 나라는
Is kingly: thousands at His bidding speed,
장엄하도다. 천천의 천사들이 그분의 명령을 받들어
And post o'er land and ocean without rest;
육지와 대양으로 쉬임 없이 내달리고 명령을 전하거니와,
They also serve who only stand and wait."
그저 묵묵히 서서 기다리는 자들 또한 그분을 섬기는 이들이다." (박상익 옮김)
해설
존 밀턴(1608-1674)은 1644년부터 왼쪽 눈이 서서히 안 보이기 시작했고 1652년에는 완전실명하게 된다. <밀턴평전>(푸른역사, 2008)과 <언론자유의 경전, 아레오파기티카>(인간사랑, 2016)에도 나오지만 이혼문제를 둘러싼 논란의 와중에 청교도혁명의 동지인 장로파의 '배신'에 따른 충격이 실명의 주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실명의 노래'는 그의 23편의 소네트 중 한편으로, 그가 완전히 시력을 잃은 후 쓴 시로 보인다.
밀턴은 반생도 되기 전에 앞을 못보게 된 것을 생각하며 불평하고 있다. 그것은 육적인 것 이상의 영적인 죽음까지 의미했다. 그는 마태복음 25장 14~30절을 인용해, 달란트 곧 그의 문학적 재능이 시력 상실과 더불어 땅에 묻혀 쓸모없게 되었기 때문에 괴롭고 슬프다고 한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은 나를 앞 못보게 하시고는 낮의 노동을 강요하시는가?"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다. '낮의 노동'이란 밀턴이 가진 문학적 재능을 발휘한 창조적 활동을 뜻한다. 그래서 그는 절망속에서 절규하며 하나님 앞에 대든다. 이때의 밀턴은 구약성서의 욥과도 같다.
그러나 이때 그의 내면에서 음성이 들린다. 그것은 절망의 끝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계시요, 암흑의 심연에 비치는 하나님의 빛이다. 즉 하나님은 인간의 재능이나 업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증거로 행위나 업적을 내세울 수 있지만, 그것이 구원의 보증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절대자 앞에서 피조물이 이뤄야 얼마나 이루겠나. "그저 묵묵히 서서 기다리는 자들 또한 그분을 섬기는 이들"이라고 한 것은, 우리의 구원이 행위나 업적 아닌 믿음에 의한 것임을 말해준다.각자에게 주어진 순한 멍에를 잘 견디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