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마
(愛馬)
나의 애마는 무쏘다. 우리 나이로 16살이다. 그동안 사십만 킬로미터 가까이 달렸으니 지구에서 달까지의 먼 거리를 나와 동행한 셈이다. 독일 벤츠 엔진이 장착되어 백만 킬로미터까지 거뜬하다 하였으니 상당기간 더 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차를 구입하고는 친구들에게 넌지시 자랑을 쳤다. 그 당시, 국산 지프형 차중에 출력도 높을 뿐 아니라 앞과 옆모습은 세련미를 갖추었다. 아울러 사륜구동이었으니 전전후로 사용되었다. 애마는 나이로 치면 나처럼 환갑이 지났다. 옛날 같으면 고려장 할 나이다. 주행거리를 미루어 봐서도 각 부위가 마모되어 생명 다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물이라는 이유로 아무렇게 대할 수 없다. 나와 함께 영남지방 일대를 줄기차게 누볐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것을 가장 잘 이해하는 분신 같은 존재이다. 아내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애환을 함께하였으니까.
주위에서 덜덜 거리는 무쏘를 고물딱지라고 약을 살살 올린다. 죽을 때 같이 묻히지도 않을 걸 만 폐차장에 보내버려라고 비위를 긁어댄다. 많은 정이 들었기에 결단을 유보한다. 그동안 스며든 정, 상기하면서 애마에 얽힌 사연을 들춰보고자한다.
차량을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들과 바다낚시를 갔다. 해변에 주차하고 갯바위 낚시에 여념이 없었다. 갯바위 낚시는 노래미 복어 새끼를 비롯해서 하찮은 불가사리 등 잔챙이가 입질하고 굵은 고기 손맛은 보기 어렵다. 재수가 좋으면 아나고, 열기도 가끔은 올라온다. 큰 고기 맛을 볼려면 무인도나 사람의 인적이 드문곳이라야 제격이다. 말이 낚시지 친구와 소줏잔을 들이키는 것이 주가 되고, 그냥 폼만 잡아 보는 것에 불과하다.
사위가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몰려왔다. 고요하던 바다가 심통을 부린다. 갑작스러운 기상의 변화로 파도가 흰 포말을 그리며 아가리를 벌리고 덤벼들었다. 급히 낚싯대를 거두고 나의 애마에 후진기어를 넣었다. 엑셀레이터를 밟는 순간 바퀴가 모래밭을 사정없이 파고 든다. 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더 깊숙이 빠진다. 일행이 밀고 당기고, 인근에 경운기를 동원해도 속수무책이다. '급할 땔수록 침착하자. 진흙탕이나 모래밭에 빠졌을때 기능을 발휘하는 사륜구도으로 전환 시켰다. 부우웅, 부우웅 애마는 개구리가 땅 위로 점프하듯 모래밭을 박차고 풀쩍 튀어 올랐다. 처음으로 어깨에 힘을 실어준 제1탄이었다.
연말 송연회를 경주 보문단지에서 보내고. 이른 아침 귀갓길이었다. 엄동설한에 뿌리는 눈발은 떨어지기 무섭게 도로에 얼어붙어 버렸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눈은 앞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펑펑 내려 그대로 쌓인다. 앞차들은 갈지자걸음이다. 그러나 나의 애마는 자세하나 흩트리지 않은 체 눈 쌓인 오르막길을 여유롭게 올라갔다. 어깨에 힘을 넣어 주는 두번째 예쁜 행동이었다.
저수지나 강 낚시터 주위는 항상 위험을 안고 있다. 애마는 진흙탕 속에서도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빠져서 허덕이는 차를 여러 번 끌어내었다. 강에서 낚시하다보면 예측하지 못한 기상변화로 낭패볼이리 빈번하다. 그럴 때마다 어려운 일을 훌륭하게 수행해 냈다. 나는 그에게 너무나 많은 희생을 강요하였다. 도로 사정이 열악한 곳에는 언제나 내차가 동원된다. 등산, 낚시, 등 비포장도로도 꾸역꾸역 마다하지 않는다. 때로는 5명 정원에 배 이상 태우는 것은 예사다. 이같이 무리한 요구에도 불평치 않고 순응하면서 나의 자존을 한껏 세워주었다. 나에게 많은 것을 주기만 했던 애마가 요즘 고장이 잦다.노후차량의 취, 등록세 보조가 나를 유혹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구나.
내가 젊었던 시절, 항상 이 년이 되기 전에 신차로 교환하였다. 편의성보다는 과시쪽에 무게를 두었다. 관공서나. 은행권, 거래처에 출입할 때 경비실 안내원은 방문객보다 차량을 먼저 살핀다. 차종에 따라 신분이 정해지고 손님 맞는 자세부터 달라진다.
무릇 인간은 내면은 제쳐놓고 껍데기에 매 달린다. 비록 고물은 되었지만, 애마에 무한한 자긍심을 갖는다. 언젠가 내 품에서 떠나는 날 눈물 한 바가지 쏟아 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