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 규업 (바오로마리아) 창설 신부님 ***
- 1970.5.17 (성령강림대축일) : 성서형제회 창설
- 1983.5.29 (삼위일체대축일) : 남미 에콰도르 선교지 빨마성당 주임신부로 임명됨
- 1992.12.8 : 성서형제회(F.B) 교회 인준을 받음 (에콰도르 과야킬 교구 / 후안 라레아 올긴 주교님)
- 2009.6.17 : 성서형제회(F.B) 교회 인준을 받음 (전주 교구 / 이 빈첸시오(병호) 주교님)
- 2023.7.8 : 현재 에콰도르에서 선교활동 중임
*********************************************************
남미 에콰도르 진출 25주년 선교활동 보고서
( 1982 ~ 2008 )
최 규업 바오로 마리아 신부 (Fr. Kyu- Up Choi)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형제인 최규업 신부는 주님의 이름으로 Ecuador 에서 여러분에게 문안드립니다.
지난 2007년 5월 13일에 저의 사제서품 25주년은 감사미사로 잘 지냈었지요.
축하와 기도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사제로서 3번째이자, 마지막 사목계획을 정했습니다.
제가 사목하고 있는 “Palmar 본당 전체를 하느님의 사랑의 힘으로 하늘나라로 올려가기!” 이는 제가 Palmar 본당의 주임 신부로서 갖게 된 사목계획이고, “온 세계를 하느님의 사랑의 힘으로 하늘나라로 올려가기!" 는 예수마리아의 사제로서 갖는 사목계획입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한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저의 본당교우 수는 2만3천명) 구원될 수 있을까’ 가 저의 기도 제목입니다.
아예 저는 주님의 법도에 따라 부족하지만, 시인(poet)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시인은 진리만을 선포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저의 본당에서 170쌍의 부부들을 결혼시켰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의 사목계획의 실천은 가정성화에서부터 이뤄져야 된다는 확신 때문에 저의 노력을 완전 가동시켜가고 있습니다.
이곳 선교지의 습관은 혼전결합, 민법결혼들만 선호하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 저의 본당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은총과 저의 노력의 결과이나, 오랜 시간 동안의 Christian 삶을 준비시켜온 결과라 사료됩니다.
조당에 걸려 있는 부부들 외엔 거의 다 교회 결혼을 하는 추세가 이루어져가니 감사할 일입니다.
저의 사제로서 첫 번 사목계획은 제가 25년간 사목해 오고 있는 Palmar 본당의 초대 주임신부로 임명되던 날(1983.5.29. 삼위일체 대축일) 저의 장상께 제가 몇 년간 이 본당에서 일하기를 바라시냐고 물었더니 “아마 20년”이라 답하셔서, 저는 20년간 수행할 사목계획의 원칙을 정했더랍니다. :
(1) 하느님 말씀의 생활화
(2) 성체성사께 대한 큰 신심 앙양하기
(3)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키워가기 등이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성서형제회 (Fraternidad Biblica : 제가 1970.5.17에 한국에서 창립하여, 1992년 12월 8일에 교회인가를 받은 하느님 말씀의 생활화에 투신하는 신심단체)를 저의 본당의 사목의 주춧돌로 하였고, 지금은 본당 안에 200여개 팀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한국 103위 순교성인 기념순례성당 (1986.9.18.축성)과 파티마 성모기념순례성당을 포함하여 12개의 성당을 개축하거나 신축하였고, 대주교님의 교회법적 허락을 받아 감실을 설치하여 지속적 성체조배가 이루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10년 간 기도와 내적 준비(신자들)와 3년간의 건축으로 파티마성모 기념순례성당을 2000년 대희년 12월8일에 축성해서 남미 500주년 복음 선포기념과 새복음화를 위해 봉헌했는데, 그때 평화신문은 “한국 선교사상 최고의 금자탑”이라 격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파티마 성모님의 메세지를 전하고 살아가도록 할 책임을 생각하면 이 Shrine (순례성당)은 저의 사제로서의 삶을 한마디로 말해 준다고 믿습니다.
저의 사목생활이 20년의 사목계획에 따라 끝나던 2003년부터는 두 번째의 사목계획으로
(1) Vatican Ⅱ의 가르침을 공부하여, 생활하도록 돕고
(2) 종말론적 믿음을 고취시켜 하느님나라 건설에 전적인 투신을 하기로 정하여 살아오다가, 저의 사제서품 25주년 기념일을 시점으로, 저의 대주교님과 상의하여 저의 세번째 사목계획을 확정했습니다.
저의 사목활동은 전적으로 “저의 일생계획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일생계획’ 은 제가 전주고등학교 1학년(16세) 때 기도한 후 정했었는데, 저는 이 ‘일생계획’에 따라 살아왔고, 남은 여생도 계속 저의 ‘일생계획’에 의해 살아가게 되겠습니다.
제가 16세 때 정했던 저의 ‘일생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예수님의 제자로서 선교사가 될 것
(2) 예수님처럼 일생을 독신으로 살것
(3) 좌우명으로는 루가 9, 23-24
(4) 다음 학문 분야의 권위자가 될 것 : 신학, 철학, 농학, 문학 혹은 교육학, 의학
(5) 세상에 빛을 남기는 사람이 될 것
저는 영문학으로 문학사 학위를 받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교직 과목을 이수하여 중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아 5년간 고등학생들을 가르쳤읍니다. (살레시오 고등학교에서 4년, 그리고 세종 카톨릭 고등학교에서 1년간)
저는 요한복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아 저의 어머님(류기효)께 그의 사랑 때문에 드렸습니다.
저는 또한 남미 철학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아 저의 아버님(최남열 / 요한)께 그의 긍정적 삶의 방식을 살아가도록 저를 교육해 주신 극성 때문에 드렸습니다.
저는 토마토 연구로 농학박사 학위논문을 제출해 놓고 있고, 2008년 1학기나 2학기에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인데, 저의 할아버지 최 병우와 안씨 할머니께 그들께서 저를 행복한 가정에서 살 수 있게 해주셨고, 농업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주셨기에 이 학위논문을 드립니다.
그분들은 대지주이셨는데, 소박하고 관대하셨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농학박사과정을 끝냈었는데, 종합시험을 보러 귀국하기가 여의치 않아 이렇게 학위수여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일생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권위자’는 박사학위 소지자 정도로 생각했었으나, 어린 제가 정했던 것이기에 학문 기준을 그대로 인정해 주기로 했었습니다.
저의 ‘일생계획’은 하느님의 성소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의 성소로서 인류 구세사의 맥락 안에서 저는 하느님의 특별하신 간섭으로 세 번의 창립을 완성했습니다.
(1) 성서형제회 (Fratermidad Biblica)의 창립은 Valican Ⅱ의 정신에 따라 하느님말씀의 생활화를 위한 신심단체입니다. (아나윔 영성을 살기)
(2) 예수 그리스도 남녀 수도회 (La Comunidad de Jesucristo)의 창립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성모님의 아기 예수 봉헌 영성으로 ‘온세계를 그리스도께 봉헌’하는데 투신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이 수도회의 카리스마입니다.
(3) 성 마리아 선교회 (La Socicdad Misionera de Santa Maria)의 창립은 Secular Institiate 로서 성모님의 영성에 따라 세계의 복음화에 투신하게 됩니다.
저는 사목활동과 사제직 수행을 통하여 사랑은 배우는 것이고, 참된 자아(true self)로 되어가는 과정이며,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육은 각 개인이 갖고 있는 독창성을 잘 개발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하느님의 선물로서 삶을 최선을 다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있도록 산 제물로 만들어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랑의 노작임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Vatican Ⅱ를 통하여,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읽으면서 Ecurtenism을 위해 투신하는 것이 저의 특별한 성소임을 확인하고, 수도생활 차원에서 ‘기도 공동체’ - 관상, 은둔, 활동생활 -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Ecuador에서 가난과 폭력의 땅으로 이름이 나있는 Malvinas 빈민 지역에서 저의 대주교님의 요청으로 4년간 겸임 사목을 했던 경험을 통하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임을 확인하면서,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현실화된 현존이 절실함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통을 저의 육체가 김당해야 됨을 배웠었지요.
Malvinas Mission은 배가 고픈 사람들의 땅, 화장실이 없는 불결한 환경, 그 곳에서 미사를 드릴 때마다 이 미사가 이 땅 위에서 마지막 미사일 수도 있었기에 저의 생명을 다해 바치는 미사이곤 했습니다.
저의 전임자는 프랑스 신부님으로 이 지역을 다스리는 일종의 정치폭력단의 우두머리 변호사와 불화한 사정이여서 생명이 위태로웠고, 그리하여 그는 아마존강 밀림지대로 가면서 저에게 Mission 집밖을 다니지 말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이 우두머리 변호사는 그 당시 두명의 Ecuador 정치 지도자들을 Malvinas에서 처형시켰습니다.
경찰차가 다니지 못하는 특별지대였습니다.
저는 저녁에 폭력이 만연한 지역을 누비며 다녔고, 한가정 가정을 방문해서 친구를 만들어가도록 했었지요.
병원을 개원하는데 이 우두머리 변호사는 자기 이름을 병원이름으로 할 것을 저에게 요청해 왔었지만, 저는 다음에 보자는 식으로 그를 설득시키고, Ecuador의 시골처녀 ‘복녀’(Narcisa de Jesus)로 간판을 달았습니다.
이 두목의 비서들(12명 정도로 기억됨)은 제 mission의 협력자들에게 권총을 드리대곤 했답니다.
4년이 지나는 동안 저는 이 변호사를 저의 친구가 되게 했고, 그리하여 그는 제 앞에 무릅을 꿇고 강복을 청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는 것이였지요.
그러는 중에 저의 건강이 좋지 않아 Palmar 본당과 겸임이 어렵다는 (차로 3시간 거리) 대주교님의 판단에 순명했습니다.
저의 선교사의 삶을 불타게 한 사목이었고, 그곳 인구는 약 20만 명 이었습니다.
이 두목 변호사는 제가 그곳을 떠날 때 좋은 침대를 선물로 주더군요.
아마도 그 변호사는 그가 강제로 소집하던 주민회합 전에 저의 Mission에 들려 저와 따뜻한 커피를 마시던 기억을 할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저의 미사에 오던 신자들이 그 폭력적 회합에 제가 나타날 때 얼마나 안도의 숨을 쉬었던가를 기억합니다.
제가 마음으로 존경하는 분께 이 선교보고서를 드리면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얼마만큼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리고 선교사로서’ ‘일생 계획’에 충실하게 살았는지 저 자신에게 질문해 볼 때, 좀 더 근원적 지평에서 철저한 카리스마를 항구하게 살지 못했기에 ‘제3의 사목계획’ - ‘Palmar 본당 전체를 하느님의 사랑의 힘으로 하늘나라로 올려가기!’, 그리고 ‘온세계를 하느님의 사랑의 힘으로 하늘나라로 올려가기!’ - 에서 저 자신의 성소의 정체성 구현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그래서 2008년도의 저의 일기장의 제목을 다음과 같이 잡았습니다. :
‘하느님께서 주신 나의 카리스마에 감사드리고, 그 카리스마를 나의 사랑하는 예수님, 성모님, 그리고 신자들과 정직하고 인간적으로 실현시키기’, 저의 중학교 1학년 때의 일기장의 제목은 ‘일지를 던져서 진리를 찾자’ 로 되어 있군요. 2007년은 ‘예수님과 성모마리아를 철저히 본받아 사는 사제가 되겠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13세) 때부터 지금까지 써온 일기장을 저의 침대 머리 쪽에 간직해 놓고, 제가 그린 세계 속에 주님의 강생의 신비를 대입시켜나가고 있답니다.
저는 후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하느님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저의 신자들을 위한 강론 준비에 바쳤는가 생각해보니, 부끄럽기 끝이 없군요.
소박한 저의 신자들은 저를 잘 보아주면서 ‘사는 것을 이야기한다’, 즉 자기 식으로 해석하면 ‘제가 사는 것이나 살기로 고뇌하는 것을 복음과 독서에서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역부족을 절감합니다.
저는 서품식 때 교회가 저에게 명하신 바를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강론한 것을 살라는 권고입니다.
그런데 저의 삶의 최우선권은 사실 미사 (misa)를 봉헌하고, 이를 살아가는데 있어요. 저의 사제직의 정상은 미사입니다. 저의 하루는 “기리에 엘레이숀” - 주님의 자비를 청하는 기도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미사성제의 신비를 요한복음은 13장1절에서 훌륭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고 사료됩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사실 저는 전례 중에서 듣고 읽은 하느님의 말씀을 저의 신자들 안에서, 그들과 더불어 구제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예물 준비로서 고백성사와 면담, 어린 애기들과의 만남 - 저는 제 mission의 애기들을 만나면 저의 차를 세우고 강복을 주는 습관이 있음 - 노동하느라 지친 손길, ‘수 많은 군중 속에서도 외로움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Albert Schweitzer), 그리고 복음선포에 열정을 쫒는 사람들, 찬란한 색깔로 제가 그린 하느님의 나라에 진입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 등을 주님의 제단에 봉헌하며, 주님의 간섭을 사정없이 청해 새로운 창조를 이루시는 주님의 일에 협력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례 중에 축성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하였듯이, 저 자신을 남김없이 주님과 모든 이를 위해 드리는 사랑으로 하루를 온통 채우려 고뇌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마지막 소원으로 이 세상에서 숨을 거둔 후에도, 제 마음과 눈이 성체를 흠숭할 수 있게 – 가시적으로 – 처리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27세 정한 영적 program : ‘1분 1초라도 예수 마리아를 생각치 않고는 보내지 않겠다’ 는 (저의 영신지도자의 허락으로) 지금도 유효하고, 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사를 살기 위해 여기에 이렇게 서 있답니다.
미사는 저의 전부일뿐입니다.
그래서 미사는 ‘하느님 사랑의 완성’이라 믿고 있습니다.
제가 사제서품을 받을 때, 저의 품에 간직된 봉헌서는 소년같은 열망이 넘쳤던 흔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자비로운 사목자, ‘예수사건’을 상기시키는 사목자, 그리고 첫영성체의 결심, 즉 성인이 된다는 의지적 결단을 다시 한번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사제의 가장 소중한 사명은 어떤 사업들을 성취하는 것 보다는 성덕 완덕에 이르는 데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선교사로서, 그리고 본당 신부로서 어떠한 경우이든 영적 물질적 도움을 청해올 때 주님의 자비 때문에 한 번이라도 거절한 기억이 없군요.
당장에 도울 돈이 없으면 기다렸다가 꼭 줄 수 있었던 풍요로움을 체험했는데, 이는 이 보고서를 받는 당신이 해주신 것입니다.
저는 저의 사제서품 25주년을 지나면서, 제가 받은 주님의 크신 은총은 당신의 기도와 관대함 때문인 것을 확인하고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의 선교활동에 어떤 선한 것이 있다면, 바로 제가 아끼고 기뻐하는 당신 때문에 주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나누라고 주신 것임을 확신합니다.
저는 제가 창설한 ‘예수그리스도 수도회’ 의 중요한 영성인 하늘나라행 순례에서 끝자리에 서서 모든 사람이 구원되어 가는 것을 돕고, 구원 될 때까지 저의 생명을 내놓는 사랑의 기적을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 현실을 매일 아침 다지기 위해 성당의 마지막 끝자리에 앉아 묵상하는 것이 하나의 상징적 도전이 되어오고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당하는 어려움 - 문화적 차이, 음식, 환경조건의 어려움, 사고방식의 차이점 – 이 사실은 저에게는 ‘성화에의 길’로 매진할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하느님의 은총 때문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사제가 되기 위하여 서울 카톨릭대학과 광주 대건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여 - 라틴어과 1년은 입학 때 시험을 치뤄 면제 받음 - 신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저의 영신지도자이자 고백신부님이셨던 Fr. Vincenzo Donati,S.D.B의 권고에 따라 남미에 도착하여 Berriardino Cardenal Echeverria Ruiz 추기경에 의하여 부제품과 사제품을 받았었습니다.
박 정일 주교님께서 저를 추기경님께 추천하셨습니다.
저의 영신지도자께서는 “Paolo, 네가 남미에 가서 훌륭하신 주교님을 만나면 너의 이상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라 하셨던 말씀은 모두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제가 왜 16세 때 정했던 대로 의학을 공부해야 되는지 기도와 고뇌에 잠겨있을 때 Fr. Mario Ruzedldu.S.D.B 관구장 대리께서는 “너는 사제-의사 성소가 있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저희 대주교님 (Mons. Juan Larra Holquin)께 말씀드릴 때는 University of San Francisco of Quito 의과 대학 본과에 입학하여 등록과 수강신청까지 한 상태였는데, 대주교님께서는 좀 기다리라 하셔서 순명하였고, 사실 3년간 full time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양자 물리학에 근거한 의학을 생각하다 보니, 한의학과를 먼저 공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덕망있는 Fr. Mico, S.J 는 저의 의학 program을 전적으로 지지해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이 거룩한 사제의 의견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읽고 있습니다.
저의 의학 학위는 인류공동체에 평화를 위해 바쳐지겠습니다.
저는 의사가 되더라도 교황성하의 허락이 있어야 의료활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혹은 의학을 연구하는 것으로 저의 일생계획을 대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쩠든 의학문야는 많은 말이나, 강론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게 될 저의 사목분야의 마지막 단계를 의미합니다.
저의 어머님과 마지막 걸으면서 대화를 한 것은, 제가 전주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바갓집에서 해변가에 있는 안집(7채의 집이 campus 안에 있었음)으로 가면서 였습니다.
약 4Km의 길을 거닐면서 어머님은 제가 의사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고, 세상에 빛을 남기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던 말씀이 유언이 되어 버렸어요.
어머님은 안집에 오셔서 몇 일 안 되어 갑자기 아프셨고, “규업아, 물 안 먹히는 약!” 이라 신음하시던 밤, 의사의 왕진이 있었지만, 저는 저녁 내내 4Km 떨어진 병원에 가서 약을 다시 가져오곤 하다, 소식을 전하러 오는 사람이 어머님의 죽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16세까지 한 번도 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듣지 않고, 어머님의 미소와 온화하신 얼굴을 늘 대해 왔었지요.
저의 어머님의 시신은 두 번의 이장을 거쳐, 마지막으로 저의 증조부이신 ‘통정대부’(일반적으로 왕이 자기 장인에게 준 벼슬) 최상수의 묘 바로 아래에 묻혀 계시기에 사제인 제가 일시 귀국할 때마다 그 묘지에서 미사를 드린 후 저는 “어머님, 당신의 아들이 인류공동체에 빛을 남기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곤 머리 숙여 말씀드립니다.
저는 사제로 서품되던 날과 어머님이 돌아가시던 날 밤을 눈을 감지 않은 채,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저는 저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와 인류공동체에 속할 ‘사랑에 절인 제물’이 될 것이라는 저의 성소를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의 이 목마름이 오늘까지 저에게 인류공동체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어야 한다는 사명을 가능케 해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저의 요한복음 박사학위를 어머님께 드린 것은 저의 어머님이 행하신 희생과 기도, 대지주 가문의 여주인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그처럼 조건 없이 도와주시던 관대함에 감사드리기 위함이었지요.
“당신께서 제 마음을 넓혀 주셨기에 당신의 계명의 길을 달립니다” (시편 119, 32)
저는 저의 형성기간 중에 늘 외우면서 기도하던 이 시편의 말씀이 저의 삶을 더욱 의미있게 해주었다고 고백합니다.
제가 만난 수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들의 현존이 저를 용기있게 삶을 선택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그리움을 느낄 수 있고, 그리스도의 현존을 쉼없이 느낄 수 있어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부탁하신 숨겨진 삶을, 그리고 그 침묵을 확실히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16세 그렸던 ‘행복한 삶’, ‘사랑의 삶’을 유치하고, 속이 차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느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신 현실 속에 정착시켜 보려 했지요.
저는 확실히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기로(루가 9,23) 했던 저의 일생 좌우명을 처절할 만큼 저의 성소로 받아드렸지요.
이젠 제가 할 일은 저의 제 3의 사목계획을 찬란하고 하늘스런 색깔로 -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잘 단장하여 사랑, 믿음, 그리고 희망을 통하여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와 함께 하늘나라로 들어올려지는 현실을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저의 ‘삶의 계획’은 제가 소박한 ‘시골본당 신부’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기에 계속 실천해가겠습니다.
작년 10월부터 Ecumenical Community 는 예수그리스도 수녀회의 ‘기도의 집’을 가동시키게 되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은둔 생활, 관상 생활이 주축이 되는 ‘기도의 집’에서는 노동(경작)을 하면서 교회의 일치 (Ecumenism)을 위해 기도하게 되겠습니다.
‘기도의 집’을 여는 일은 잘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mission 지역에 설립 예정인 ‘빨말 대학교’ - 농과대학과 교육대학으로 시작하려 준비 중이나, Ecuador의 정부가 ‘새로운 대학인가를 전혀 주지 않는다’는 방침을 Ecuador 현 대통령이 발표를 했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새로운 대학인가 심사권을 가진 Ecuador의 대학총장 연합회(Conesup) - 최종인가는 국회가 하게 됨 – 로 부터 어떠한 좋은 설립 목적을 가졌더라도 새로운 대학을 현 정부는 원치 않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어요.
국민투표를 거쳐 현 정부는 헌법을 새로 만들고, 사회주의 경향으로 치닫고 있으며, 장기 집권을 시도하기 때문에 저희 대학교 설립인가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목 25년을 통해 재확인한 교육의 중요성에 또한번 찬 시리를 맞은 듯하군요.
대학설립준비로는 농과대학교수 요원을 확보하기 위해 3명의 Ecuador의 농학도들을 Honduras의 Zamora 농대에 유학을 시키고 있으며, 금년 말에는 그들 중 1명이 강원대학교 농대에 가서 석,박사 과정을 임춘근 교수님의 배려와 총장님의 도우심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이 장학금 혜택이 주어지겠어요.
새 대학을 위해 부지가 확보되고, 설계도도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저희 대학교 설립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이사진으로 들어와주셨던 여러분들게 - 특히 Dr. Gustavo Noboa, 전 Ecuador 대통령, 김기현 교수님, 오해수 교수님, 임춘근 교수님, 민경석 교수님, 허장현 교수님, John Marialty 몬시놀, Thomas Red 변호사(NJ), Dr. Carinern Trivino 교수님, 감사를 드리며 죄송함을 금할 수 없군요.
그리고 설립준비기금을 주셨던 박기호 회장님, 안 Francisco 형제님, 최기봉 형제님께 그 기금을 돌려드리게 됨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빨말대학교(가칭)가 지향하는 이상은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마태오 5, 9)의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려는 것입니다.
이 대학은 이 시대를 위한 새로운 영성을 창출할 것입니다.
저희 대학설립을 도우시겠다고 Ecuaclor 국회의장께 추천서를 써주신 강원대학교 박용수 총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대학인가 심사권을 가진 Ecuator의 대학교 총장연합회(Conesup) 회장님에게 저희 새 대학 설립을 위해 돕겠으니 속히 인가해주도록 추천서를 써주신 북미 한인 대학교수협회(The Korcan-Amcrican University Professors Association) 박윤식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나아가서 저의 ‘일생 계획’ 중에 제가 원했으나 못다한 것도 있습니다.
우선 제가 연세대, 고려대, 서울대의 졸업생이 되었던 추억은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한때 동양사상으로 박사과정을 공부하다가 대건신학대학으로 돌아가 사제가 되기 위하여 신학공부를 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지금도 선교지에서 원효대사 전집(6권), 보조국사, 서산대사, 도덕경, 인도 불교 등을 계속 읽고 있답니다.
그리고 Boston College로부터 Ph, D in Religious Education 전 장학금을 받고도 - 그 때 John Mcdash 교수님은 저를 포함한 21명이 이 장학금을 받으려 하니, 빨리 오라고 했어요. - 저의 Palliar Mission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Boston으로 가지를 않았었어요.
그후 저희 대주교님의 허락으로, Loyola College in Maryland의 Pastorial Counseling Program (Ms & PhD tracks)을 공부하다가 mission의 사정 때문에 저의 결정으로 - 그때 대주교님께서는 계속 공부를 하던지 돌아오든지 ‘네가 결정하라’고 하셨어요. - Ecuador 행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Loyola에서 Robert Wicks 교수님의 영향을 받았고, 현재를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웠어요.
참으로 그 comriunity 의 성숙성과 사랑은 대단했었어요.
저희 mission에 저의 선교 초창기에 설립했던 ‘바오로 마리아 신용 협동조합’ - 주민들이 제 본명을 따라 명명했었어요. - 이 두 번 실패를 한 이유는 조합원들의 신용문제였고, 3번째 재기하려 하니, 제가 그들의 밥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확신이 필요하더군요.
사실 변호사를 통해 법적으로 수금이 완전히 가능했었으나, 저는 저의 신자들을 데리고 법적 대응을 하지 않기로 했었고, 2000년 대희년에는 그들이 대출하고 환수되지 않은 금액 전체를 당감해 주는 일종의 ‘자비를 베푸는 연습’도 해보았습니다.
그 외에는 저의 일생 중 하기로 하고, 하지 못한 일이 생각되지를 않습니다.
이 선교 보고서는 여러분을 위해 쓰여지지만, 저 자신을 돌아보는 중요한 시간들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Ecuador에 와서 처음 주어진 소임은 교황청의 주선으로 미국교회에 다니면서 Guayaquil 대교구를 위한 Mission Appeal 이었는데 약 4개월 정도, 주로 토요일과 주일만 영어로 강론을 하고 나면 미국 신부님들은 훌륭한 강론이었다고 위로해 주시는 친절을 베푸셨습니다.
저희 교구가 준 자료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던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소임이 빨말본당 주임신부, Malvinas Mission 겸임, Guayaquil 대신학교 성서학 교수 및 고백신부 겸임 발령으로 25년을 살았습니다.
의료사업은 저의 사목 중에서 소중한 몫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선교지 주민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씀드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모범적 의료원입니다.
영양식으로 저의 Mission의 14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영양식을 제공하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반 사막 지대인 저의 mission 지역에 10개의 샘을 시추해서 절반이 성공을 하여 식수난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엘리뇨(비가 많이오는 현상) 때 제가 약속했던 대로 182채의 집을 건축해서 집 잃은 이들에게 주었습니다.
Agape Escuela(사랑의 학교) Program을 통해 유치부 어린이들 교육에 도움을 주었습니다(14개교).
이 모든 program들은 여러분들의 기도와 도우심 때문에 가능했기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선교지의 식량난 해결을 위해 한국농촌진흥청 대관령 시험장에(1990년) - 6개월간 손님이 되어 감자 재배, 병충해 방제 방법, 무균 씨감자를 (6개 품종) 조작하여, Ecuadlor 에 가져와서 산간지역에서 2년간의 적응시험을 거쳐 더운 저의 Mission 지역에서 적응시험을 몇 년간 더하여 ‘대지 품종’이 적합하다는 연구결과를 갖고 있으나, 농부들에게 줄 무균씨 감자를 유전공학처리로 만들어 낼 Lab 실험실 건설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실험연구소의 설계는 원광대 농대, 방극수 교수님과 그의 연구팀이 해줄 수가 있다고 하나, Lab시설을 갖추는 데는 시설비용이 필요한 처지입니다.
저의 꿈은 더운 지역에 감자를 재배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이 귀중한 감자 품종을 주셨던 농촌진흥청 관계자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 나름대로 더운 지역에서 재배할 수 있는 Ecuador의 감자 품종에 대한 고무적인 연구결과를 갖고 있습니다.
새 감자 품종을 만들어내기 위한 project는 10여 년간의 연구기간이 필요하게 되겠습니다.
현재 생각하고 있는 선교지에서의 project는 파티마 의료원(일반진료, 조산원) 외에 에이즈 환자들과 에이즈(VIH)에 감염된 어린아이들을 위한 ‘에이즈 예방치료 Center’ 를 설립하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시설이 Ecuador에 대단히 필요한 실정입니다.
병원시설뿐 아니라, 어린 아이들을 위한 교육도 겸해야 되니, 24시간 이 어린아기들을 돌볼 인적자원이 절실하게 요정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그리스도 수녀회가 이 시설을 맡아 운영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10~15년 내에 노력하지 않는다면, 국민 4명 중 1명이 에이즈 환자가 된다는 보고가 있어요.
다음 파티마 성모님 기념순례성당 - The Shrine of Our Lady of Fatima - 에 속할 ‘피정의 집’ 건축이 꼭 필요합니다.
파티마 성모님 메시지의 전달과 생활을 위하여, 그리고 젊은이들의 형성을 위해 ‘피정의 집’은 필수적 요청입니다.
Vatican Ⅱ 의 정신에 따라서 제가 설립하여 교회의 인가를 받은 ‘성마리아 선교회’ (La Sociedad Misionera de Santa Maria - The Mission Society of St. Mary) 안에 평신자들, 특히 부부 선교사들의 사도직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성 마리아 선교회’ 는 Secular Institute 이기에 회원은 가난, 정결, 순명을 시원하고 있는데, Roma 교황청은 부부 회원들에 대한 서원은 ‘매우 신중하게 선발’하도록 요청하고 있읍니다.
저로서는 결혼하신 부부들도 선교사로서 서원(가난, 정결, 순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선교활동을 극대화하는데 꼭 필요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초대교회 공동체의 정신을 구현하는 길들 중에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성 마리아의 아기예수 봉헌’은 인류구원의 시작이고, 또한 끝으로서 하느님의 사랑이 인류공동체를 통치하게 되는 하느님의 때의 충만함을 선포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봉헌 행위는 지금도 예수 마리아 요셉께서 인류 공동체 안에서 계속 현동화(actualization)시키고 있고, 여러분 한분 한분을 이 봉헌에 초대하고 계십니다.
‘성 마리아 선교회’ 회원은 가정에서 생활할 수도 있고, 공동체를 이룰 수도 있으며, 직업을 갖고 그가 처한 곳에서 복음화에 투신하게 됩니다.
이 선교 보고서를 받으시는 한 분 한 분께서는 이미 이런 의미의 선교사로 세상 안에서 사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축하를 드립니다.
시간을 갖고서 독신이시든, 부부이시던 간에 이 성소에 대하여 대화하시고, 서로 동의 하시는 점이 나타나거든 저에게도 알려주어 함께 기뻐할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렇게 초대교회(원시교회) 공동체의 정신을 우리의 현재 속에 현동화시키기로 해요.
따라서 Vatican Ⅱ 의 가르침은 우리 크리스챤, 예수님을 추종하는 제자들은 바로 예수님의 정신을 따라 우리의 현실 안에 하느님의 말씀이 육화되는 과정이 영속화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교회에 관한 고의 현장’ (Lummen Gentium)에서 평신도의 특별한 성소를 접합니다. : 평신도는 ‘성세성사’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하게 됩니다.
평신도의 특별한 성소는 현세적 일에 종사하며,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찾는 것이라 했습니다(n.31).
평신도는 ‘그리스도께 봉헌된 자들이며, 성령으로 기름 발린 자들이다’는 것입니다.
평신도 각자는 세상에 대해 주 예수님의 부활과 생명의 증인이 되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n.38).
우리 뜻을 모으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어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끝으로 성서형제회(Fraternidad Biblica) 안에 설립된 아나윔(anawim / 야훼의 가난한 자들) 모임의 활성화 문제입니다.
이 공동체는 성서형제회의 발전을 위해 투신하게 되며, 아나윔의 영성 (가난, 순명, 겸손)을 살아가며 독신생활을 영위하게 됩니다.
제가 아나윔 공동체를 설립한 이유는 성서형제회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생활화하는데 밑거름의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아나윔 공동체는 수도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의 제3의 사목계획서는 ‘빨말 본당 전체를 하느님의 사랑의 힘으로 하늘나라로 올려가기’와 ‘온 세계를 하느님의 사랑의 힘으로 하늘나라로 올려가기” 가 성실히 실행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위해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저의 사목활동은 주님의 사랑과 성부의 자비, 그리고 성모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부족하지만, 좋은
결과가 주어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의 선교활동은 기도와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여러분과 선교현장에서 저와 함께 뛰고 계시는 예수그리스도 수녀회 수녀님들의 기도와 투신 덕택에 좋은 열매를 맺어가고 있기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아껴주시고 지도해주시는 저의 장상 주교님들과 늘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신 동료 및 선.후배 사제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늘 저의 선교활동을 위해 지원해주시는 평화신문과 중앙일보, 뉴욕 Catholic 방송, 경향잡지, MBC-TV방송, 카톨릭신문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저를 신뢰하고 함께 새 복음화에 뛰어든 저의 본당 교우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온 세계를 위하여 “기리에 엘레손”으로 주님의 자비와 용서를 청하면서, 파티마 성모님께 의탁하여 주님의 강복을 청합니다.
사목 성찰 (Pastrol reflection)
저는 저의 ’일생 계획‘에 따라 지금까지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역부족을 절감합니다.
저의 영신 지도자이신 원선오(Fr. Vincenzo Donati) 신부님은 제가 ’성덕은 노력‘이라고 까지 확신하도록 가르쳐 주셨고, 이 확신이 저의 영적 삶의 근간을 이루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을 늘 성령께 진솔하게 여는 기도가 저의 찬미와 감사의 은총이 합쳐지는 삶이 되도록 해왔으나, 사실은 인간적 노력까지도 주님의 은총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완덕에 이르는 공식을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즉, 완덕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주님의 은총을 통하여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여기에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말씀이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교황께서는 ’성덕이란 기쁨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사랑은 ’하느님의 말씀‘ - 육화되신 말씀과 성경의 말씀 - 에 따라 사는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기도는 사랑하는 삶을 충실하게 영위하는 것이라고 믿어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매일이 예수님께서 탐내실 수 있는 노력과 은총의 시간들이 되도록 극성스럽게 좋은 동기부여를 하면서 자비스러운 사목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선교 보고서”는 하느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 그리고 성모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저의 성소를 완성시켜나가는 성취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만, 이 성취는 예수 마리아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저와 저의 신자들을 사용하신다는 증거라 믿습니다.
이러한 성취가 갖게 되는 의미를 ’예수님 사건‘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사목계획‘은 ’예수 사건‘을 현실 안에 번역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소박하고 자비로운 ’시골 본당 신부‘로 사는 것이 저의 궁극적인 소망인 데, 그러기 위하여 저의 사목활동은 신뢰와 존중, 즉 사랑이 그 핵심을 이루어야 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부족하고 연약하기 끝이 없는 저 자신을 인정하면서, 창립의 성소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명령을 완성시키고 싶습니다. :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또한 저는 사제로서 늘 ’온 세계를 그리스도께!‘ (The whole world to Christ ! ; Todo el mundo a Cristol !) 라는 저의 사명을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이 삶의 슬로건은 저의 ’일생 계획‘이 설정된 후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설정된 내용인데, 이는 저 자신과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께 봉헌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재 인류공동체가 절실하게 예수님의 애제자들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참된 평화이심을 사도 바오로와 함께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Ecumensism과 세계 종교간의 대화 (Inter-religious Dialogue)의 과제를 놓고 기도하면서 고뇌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5년 10월 28일자로 ’비그리스도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 다음과 같이 대화의 필요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비그리스도교에서 발전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 것도 배치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과 행동양식뿐 아니라, 그들의 규율과 교리도 거짓없는 존경심으로 살펴본다.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요한 14,6) 그분 안에서 사람들이 종교생활의 풍족함을 발견하고, 그분 안에서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과 화해시키셨음을(2고린 5,18-19) 교회는 선포하고 있으며, 또 반드시 선포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타종교 신봉자들과 더불어 지혜와 사랑으로 서로 대화하고 서로 협조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생활을 증거하는 한편, 그들 안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윤리적 선과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긍정하고 지키며 발전시키기를 모든 자녀들에게 권하는 바이다.”(2항).
저의 ‘사목 성찰’을 마치면서, 다시 한번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여러분이 저에게 베풀어주신 친절과 사랑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애자들이신 여러분들과 함께 오늘 “기리에 엘레숀”을 함께 노래하면서 주님의 제단으로 나가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계시는 예수님과 성모님께 찬미와 영광을 나답게(trueself) 드리기로 해요...
2008년 3월 23일. 부활 대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