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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집중 (요8:31~32)
요8:31~32“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서울 마장동에 있는 예인교회(지금은 이름이 바뀜)의 안동천 안수집사님이 계심(당시 장로로 피택 됨), 예수님은 그를 창세전에 주님 안에서 택했지만 주님이 부르시기 전에는 철저한 세상 사람으로 살았다. 시골의 우상섬기는 집에서 태어나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수고래로 살았다. 동네에서 내놓을 정도로 술 먹으면 완전히 이성을 잃을 정도로 먹고 싸우니까 동네 어른들조차 피했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님의 얼굴을 꼴도 보기 싫었고, 교회당의 십자가 탑만 봐도 혈기가 날 정도였다. 시골에서 결혼하고 농사를 짓는데 점점 살기가 어려워서 시골을 포기하고 서울의 마장동에 정착을 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안동천 집사를 향하신 계획이 실행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먼저 그 아내를 부르셨고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서 안동천 집사도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첫발을 디디었다. 그러나 믿음이 없기 때문에 교회만 가면 졸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주일이 지나면 다시 세상에 빠지는 생활이 반복이 됐다. 그러던 중에 ‘축산업 유통용역’이라는 사업을 하기위해서 다시 ‘진천’이라는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됐다. 교회에서 목사님은 아무리 기도를 해봐도 시골에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말렸으나 이미 자기가 결정해 놓고 말씀드린 터라 말릴 수 없었다. 그러나 역시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사업이 제대로 되지는 않고 교회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다시 사업을 정리하고 전북 정읍으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고속도로 건설현장의 노동자를 상대로 하는 한밭식당을 운영하는데 노동자들보다 자기가 먼저 술 먹고 취해 가지고 난리를 피우는 등 나로 포악해져 갔다. 드디어 참으시고 인내하시던 하나님께서 매를 드시기 시작 하셨다. 집 앞에서 놀던 딸이 교통사고로 즉사를 하게 되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찬양도 잘하고 귀염둥이였던 딸이 보는 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고 절망했다. 사업에 실패할 때야 ‘다시 시작하면 되지’했는데, 딸의 죽음 앞에서는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EX) 어떤 일을 당하고 나면 영적이지 못하고 믿음이 약한 성도들은 세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① 아프거나 실패하거나 사건 사고가 나면 ‘우연이겠지 하나님이 그러시겠어?’하고 영적으로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② 자신의 죄나 잘못은 생각도 않고 인정도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③‘이러다 큰일 나지 하나님께 징계를 맞지’하면서도 돌이키지 않다가 무언가 하나님이 경고의 작은 사건을 만나게 되는데,(그때 돌이키면 하나님은 다시 회복을 시켜줌) 그런데 그래도 돌이키지 않으면 돌이키지 않으면 안될 상황으로 몰아가십니다. 안동천 집사는 바로 세 번째의 순서를 받고 있었다. 딸의 죽음 앞에서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니까.... 세 번째의 순서인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을 발병하게 해서’ 하나님은 그가 깨닫기를 원했다. 물 한모금만 마셔도 토하고, 병원에서는 사형선고를 내려다. 그 정도이면 돌이킬 텐데 ‘혹시 낳을까? 하고 점치고 굿을 했다. (점술이니, 역술이니, 하는 것은 귀신의 술책, 내지는 속임수이다. 그래서 점술, 역술의 ‘술’자는 꽤술(術)자를 쓰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담임목사님 내외분이 그 시골까지 심방을 오셔서 ‘다시 믿음으로 살라’고 권면을 했는데도 순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목숨은 끊어지지는 않고 고통만 당함, 왜? 그 병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위한 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한밭식당을 할 수 가없어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마치 룻기서의 나오미의 가족처럼, 남편과 아들들이 죽고 철저히 실패한 모습으로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듯이-- 서울에서 진천으로 , 진천에서 정읍으로 정읍에서 딸이 죽고 병이 드는 철저한 실패 속에서 원위치인 서울의 마장동으로 돌아와서 다시 예인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아내에게 업히다 시피해서 참여한 예배시간에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설교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였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만큼, 말씀이 믿어지는 만큼,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꼭 그만큼, 건강이 회복되어 지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철저하게 망하고 올라 온 터라, 그리고 육신이 병든 터라 생활고가 말이 아니었는데, 조그만 건물의 2평쯤 되는 틈새를 가게로 쓸 수 있도록 주셨는데 그곳에서 유가공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목 좋고 큰 가게들도 장사가 안 된다고 야단들인데도 하나님이 얼마나 역사하셨는지 엄청나게 잘되게 하셔서...
지금은 100평 가까운 육가공 공장을 운영하면서 믿음도 자라서 장로직분까지 피택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이리저리 뛰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육적으로는 병들고, 물질적으로는 실패하고, 영적으로는 강팍해서 철저히 실패하는 인생이 됐지만, 말씀을 듣고, 말씀이 믿어지고, 말씀에 순종하니까 모든 것이 회복됐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말씀에 집중을 하니까 모든 것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잠16: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우리는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고, 기초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말씀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씀에 집중하는 삶이 무엇인가?
1.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이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이라고 했다. 이것은 순종하는 삶이다. 아브라함을 보면......
창12:1~4“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다시 말하면 ‘말씀 안에 들어오는 삶,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며, 여기서 아브라함의 인생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면서 복을 받게 되는데, 아브라함이 어떻게 말씀 안에 들어오게 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순종’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순종하여 말씀을 좇아가니까 ‘마침내 가나안땅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창12:7“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런데 점점 남방으로 옮기다가 땅에 기근을 만나니까 애굽으로까지 내려가 버렸다. 다시 말하면 가나안에 거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거하는 삶에서 불순종하여 애굽으로 떠나니까 그 뒤의 삶이 어땠는가?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기게 되고, 그것 때문에 바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당했다. 말씀에 불순종하니까 자기도 남에게도 못할 짓을 시켰고, 실패하게 된 것이였다. 바로가 무슨 죄가 있어서 재앙을 당했는가? 순전히 아브라함이 속였기 때문이였다. 그러다가 창13장에서부터 아브라함이 다시 말씀에 순종하니까 하나님의 약속대로 믿음의 조상으로 복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요15:3~4“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우리가 성경을 읽고, 예배시간을 통하여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깨닫고 제아무리 결단했어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그 말씀은 헛것이고, 그 예배도 헛된 예배이고, 그 삶이 모두가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삶이라는 사실이다. 아버지 말씀을 들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헛것입니다.
마21:28~31“....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EX) 어느 거부가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며 멋진 낭만을 즐기려고 유명한 설계사에게 배를 설계하게하고 항해기술을 익히고 바다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낚시에 대해서 공부하고 경험자에 대해서 경험담을 아무리 들었어도 마무리 계획을 세우고, 공부하고, 들었어도 배를 만들지 않고 떠나지 않으면 모든 것은 헛것이라는 사실이다.
행함을 다른 말로 말하면 순종이라는 것이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고 했다.
EX)어떤 크리스천 여선생님이 어느 청소년 캠프모임 중에 한번은 강의를 맡았는데, 강의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마음에 떠올라서 진흙길 위에 멈춰 섰다. 그리고 조용하고 작은 목소리의 하나님 음성임이 들려오는데 “딸아, 네 주머니에 무엇이 있니?” “약간의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이라고 대답했다. “네 돈을 길바닥에 내던져라”고 하시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순종하여 주머니에 있던 지폐와 동전을 던지고는 하나님이 그 돈으로 무엇을 하실 지 궁금하면서도 계속 걸어갔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시는 것이였다. “딸아 가서 다시 그 돈을 주워라” 그래서 그 선생은 다시 그 길로 되돌아가서 지폐와 동전들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이상했지만, 실망한 채로 캠프 쪽으로 곧장 되돌아왔다. 그때 그 날 그 여선생님과 상담을 했던 한 소년이 자기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였다. 다시 하나님이 마음속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네 주머니에 있는 돈 전부를 그에게 주어라” 그 선생은 그 십대 소년이 스쳐지나 어두움 속으로 사라질 만큼 오랫동안 하나님에게 물어보며 거부하는 것이였다. 이유는 그 돈을 가지고 그 소년은 술과 담배를 살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소년을 찾아서 자신의 돈 전부를 주었다. 그런데 불빛 아래서 감격으로 가득 차 울기 시작하는 그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소년은 그 선생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는 만약 앞에 오시는 선생님이 제게 돈을 주신다면, 크리스천 소년갱생 보호소로 가겠다고 방금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게 얼마의 돈이 있었는데, 지금 이 돈이 보태지면...”하고 그 소년은 감격하여 울었다. “이 돈은 그곳에 가는 데 필요한 정확한 돈 이예요”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그는 내 곁을 떠났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주머니를 하나님께 기꺼이 허락해 드리겠는가? 이렇게 말씀에 순종이 천하보다 귀한 한생명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순종은 행함을 의미한다.
약2: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믿음이 영혼의 실질적인 집이다. 사실 믿음 속에서 영이 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속에 영혼이 살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 영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엡2:1“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런데 이렇게 죽었다는 것은 영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을 살리는 믿음은 어떻게 해야 생기는가? 말할 것도 없이 말씀에 집중할 때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롬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에는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있다. 말씀에는 몸을 고치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 말씀에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 말씀에는 우리를 승리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EX)이스라엘과 아랍국가와의 1967년6월에 6일 전쟁 때에 이스라엘군을 이끌던 모세다얀 장군이 세계가 깜작 놀랄 만한 선언을 했다. 다얀은 100배의 군사를 가진 아랍과의 전쟁을 하면서 ‘이 전쟁에는 반드시 승리하는 새로운 무기가 있다’고 선언했다. 세계 사람들은 그것이 원자폭탄이나 핵폭탄, 또는 수소폭탄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얀장군은 “우리를 승리하게 하는 신무기는 바로 시121편이다”라고 발표했다.
시121:1~8“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우리는 지금 이세상이라는 혼돈과 갈등, 그리고 사단과의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여기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그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면서 끊임없이 기도를 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유혹을 방어하고, 유혹에 빠졌더라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성령과 말씀에서 오는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강하게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다.
엡6:10~17“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리고 말씀을 지켜야만.... 그 안에 거해야만 참 제자가 된다고 했다.
2. 말씀은 진리이고 진리는 나에게 자유를 갖다 준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증거 한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자신의 말에 거하면 참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앎으로 진리가 그들을 자유케 할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죄의 종이 되어 있는 인간이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죄 씻음을 받아 죄로부터 자유케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포로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케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는 사단의 권세 아래 잡혀 있는 모든 영혼을 자유케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다시 일어나 무덤에서 자유케 되신 사건이 예포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자유케 하십니다.
고후3:17“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는데 사단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없애고 자신의 종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갈2:4“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2. 말씀에 집중을 하면 어떤 유인이 있는가?
1) 올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시119: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EX) 언젠가 미국의 100대 교회에 대하여 읽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규모로 큰 교회를 순위별로 나열한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큰 교회는 ‘레이크 우드교회’입니다. 이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긍정의 힘’이라는 책으로 유명한‘조엘 오스틴’목사님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신학교를 나오지 않은 목사님입니다. 우리는 목사라면 신학교를 꼭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의 길로 가는 것이 꼭 신학교를 나와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강해설교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로이드 존슨’목사님도 의사 출신으로 정식 신학교를 나오지 않은 목사님입니다. 진정한 목사님, 진정한 성도라면 어떤 교육적 틀로 인도받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아야 올바로 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인도를 받아야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육체의 자랑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고전1:26~29) 자기가 조금만 어떤 것을 성취했다면 온통 자기가 한 것처럼 자랑을 하려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지금 혹시 앞이 가로막혀 있는 성도가 있다면 내가 세상의 배경, 돈, 권력, 인간의 방법을 의지하지 않았나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가 목이 있는 사람입니다.
시146:3~5“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한국의 교회 중에서 큰 규모로 부흥을 시킨 목사님들을 보면 가문이나 재물, 학벌 때문에 부흥시킨 목사님들은 거의 없습니다.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목회를 했기 때문입니다. 즉 말씀에서 부흥의 길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큰 기업을 일으킨 재벌들을 보면 처음부터 부자였던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기업을 하다가 체험적으로 얻어진 것에서 길을 찾았고,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길을 찾았고, 지혜에서 길을 찾았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가난해서 못해...나는 학벌이 없어서 못해...나는 약해서 못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절대로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섭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 인생을...내 가정을...내 사업을..간섭하시도록 나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올바르게 나갈 때 정상은 어느덧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것 구하려고 하면 하나님은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요일5:14~15“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2) 위엣 것을 얻을 수 있다. (골3:2“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위의 것을 찾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약에서 대표되는 것이 십계명인데 1번부터 4번까지가 위의 것을 찾으라는 말씀으로 되어 있고, 신약에서 대표되는 말씀으로 산상수훈인데 그 산상 수훈의 중심적인 말씀이 ‘마5:3~12’의 팔복인데...그 팔복이 말씀하시는 내용이 위에 것을 찾으라는 선언적 명령입니다.
마5:3~12“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세상 것은 없고 하늘의 것만 가득,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세상 것이 없어서 애통이 아니라 하나님 것,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위의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창35:1~8’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시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거부가 되어서 돌아온 후, 가장 걱정했던 형 에서와의 갈등이 해결된 뒤로는 세겜에 살면서 자녀들이 타락했습니다. 외동딸 디나는 세속에 물들어서 귀고리 목걸이 장신구들이 날로 늘어났습니다. 급기야는 성적 추행까지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야~ 하게하고 다니니까 당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 오라비들인 시므온과 레위가 하몰과 그 아들 세겜, 그리고 그곳의 남자들을 다 죽이는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야곱의 가정이 세상을 바라보니까 성추행 당하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 집안으로 전락했습니다. 보다 못한 하나님께서 다시 벧엘로 올라가서 위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하고 치장했던 세속적인 모든 것을 다 상수리 나무아래 묻어버리고 위엣 것을 찾으러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단을 쌓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얍복강에서 개명해 줬던 야곱의 새 이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다시 찾아줍니다. 그 의미는 얍복강에서 위엣 것을 찾으며 사생결단의 기도를 하여 응답 받고 복을 받은 야곱이 세겜에 살다가 온 자녀들이 세속에 물들어서 타락하니까 새롭게 바꿔준 이름이 그 의미가 없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벧엘에서 단을 쌓고 신앙을 회복하니까 다시 이름을 찾아준 것입니다.
성도가 위엣 것을 찾아야 하는데 세속에 물들어 땅에 것만 찾으면 성도로서의 지위와 이름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EX) 돼지의 지굴성(地詘性)-돼지는 누워서도 걸어가면서도 하늘을 절대로 볼 수 없는 동물입니다. 돼지는 주둥이로 땅을 파서 땅 속에 있는 고구마나 감자 등을 찾아 먹는 습성이 있다.(해남의 고구마 피해)
그래서 돼지는 목이 땅으로 향해 있기 때문에 목이 굳어서 하늘을 일생에 한 번도 볼 수 없는 동물입니다. 약 15도 각도 밖에 위로 처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쳐들고 위를 바라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을 돼지의 지굴성이라고 합니다. 지굴성은 미래지향적인 세계관, 비전의 퇴화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엣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의 것을 바라볼 수 없이 굳어버린 영적 상태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성도가 땅엣 것을 바라보며 살다가는 지굴성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늘의 신령한 것, 위엣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돼지 같이 비참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고개가 굳어 있는 것입니다. 돼지가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굴러 떨어지든지 넘어져서 다리와 배가 하늘로 향해야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을 당하여 넘어지고, 자빠지고, 실패하여 고통을 당할 때에야 비로소 하늘의 것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 것, 땅엣 것만 찾으면 돌아오는 것은 고난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찾고, 말씀을 지키면 위엣 것을 찾게 되며 회복 된다는 사실입니다.
시119:67“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그릇 행해서 고난을 당했는데...즉 땅엣 것을 찾다보니까 고난이 왔는데...말씀을 찾으니 그 고난이 해결 됐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에서 왔습니다. 그러니 위엣 것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참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시119:98“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주의 계명’ 즉 말씀이 있을 때, 말씀에 집중할 때, 세상 누구보다도 지혜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전7:19“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열 유사, 열명의 세상 박사보다도 더 능력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지혜인 것입니다.
hope is on the w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