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에서는 한국에 상업 차관으로 1억 5천만 마르크를 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그 돈을 빌리려면 한국은 제3국 은행의 지급보증을 세워야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를 지급보증 해주고 나설 은행은 세계의 그 많은 은행들 중에서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내놓은 궁여지책이 광부 5천 명과 간호원 2천 명을 서독에 파견하는 것이었다. 경제부흥으로 노동력이 부족한 서독에서는 광부나 간호원은 이미 혐오․기피 직종이었다. 더구나 서독에 취업하고 있던 일본 광부들이 1960년까지 완전히 돌아가 버려 그 공백이 컸다. 그런 형편에 서독은 한국의 조건을 안 받아들일 리 없었다. 그래서 광부와 간호원 7천여 명의 3년 간 노동력과 노임을 담보로 서독 은행은 지급 보증을 섰고, 한국 정부는 1억 5천만 마르크의 돈을 빌려가게 되었다.
「애국자? 그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슬프고 비참한 애국자들이지. 돈 때문에 담보 잡혀 있는 목숨들……. 그렇게라도 돈을 꾸어가야 하는 나라……. 이곳은 결국 3년 동안의 유형지인 셈이지. 돈을 벌겠다고 스스로 유형당해 오는 시대……. 어쩔 수 없지. 살아야 하니까.」
박정희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자신의 흠집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경제개발에 주력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인지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원조를 중단해 버리고 맙니다. 궁여지책으로 한일협상을 통해 3억 달러 원조약속을 받은 그는 외국에서 돈을 빌리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갚을 능력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가난한 나라에 돈을 빌려줄 나라는 없었습니다. 결국 독일에 3년 동안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담보로 1억 5천만 마르크를 빌리기로 하였습니다. 아직까지 박정희가 경제개발을 이끈 영웅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은 박정희 개인의 힘보다는 이렇게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우리나라 국민들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여러 번 나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