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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점포 기준 매출 세계 1위인 이세탄 신주쿠 본점>
도쿄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유동인구가 어지간히 많은 곳에는 반드시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은 백화점의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렇게 많은데도 장사가 될까 싶기도 하다. 특히 역사가 오래된 쇼핑가인 긴자와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역이라는 신주쿠역 주변은 대형 백화점의 경연장 같다. 크고 작은 10여 개의 백화점이 밀집돼 있다.
같은 상권에서 경쟁을 하다 보니 백화점의 희비도 뚜렷하다. 어느 곳이 장사를 잘 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쉽게 비교가 된다. 특히 최근 백화점간의 승부는 생존의 문제가 됐다.장기불황에 일본의 내수가 크게 위축돼‘백화점 매출’이라는 파이 자체가 작아졌기 때문이다.지난 1991년 9.7조 엔에 달했던 업계 매출액이 지난 2006년에 7.7조 엔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이런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도 홀로 승승장구하는 백화점이 있다. ‘15년의 장기불황 기간동안 70% 성장’이라는 실적을 올려’일본 백화점업계의 신화’로 불리는 이세탄(伊勢丹)이다. 신주쿠 본점의 경우 1년에 무려 3천 만 명이 방문하고,연간 매출은 2569억 엔에 달한다. 단독점포 기준으로는 세계 1위다.덩치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뛰어나다.1㎡당 390만 엔의 매출로 업계 평균치의 배가 된다고 한다.
더욱이 다음달 일본의 최고(最古) 백화점인 미쓰코시(三越) 백화점과 경영통합을 하고,매출액 1조 5800엔으로 업계 1위(현재는 5위)에 올라설 예정이다.말이 경영통합이지,이세탄이 사실상 미쓰코시를 합병하는 형태다. CEO가 이세탄의 무토(武藤) 사장이고,통합비율도 이세탄이 1이면 미쓰코시는 0.3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은‘질과 양 모든 면에서 이세탄이 드디어 업계 넘버원이 된다’라는 평가를 아끼지 않으면서 각종 특집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세탄에 대한 찬사는 일본 업계의 호들갑만이 아니다.오히려 우리 백화점업계에서 이세탄 열풍은 더욱 거센 듯 하다. 현직 롯데 백화점 대표가 이세탄 백화점의 성공비결을 분석한 일본책을 직접 번역하고 직원을 파견해 벤치마킹에 적극적인가 하면,신세계 백화점은 스스로를‘한국의 이세탄’ 이라고 자처하고 있다.또 현대백화점은 임원이 이세탄 백화점을 방문했을 때 겪은 일화와 감동을 자체 인터넷망에 올리고‘이세탄을 배우자’며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도대체 이세탄은 어떤 점이 다를까? 일본 언론과 각종 경제연구소가 첫번째로 꼽는 성공열쇠는 한결같다.바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독특하고 철저한 고객 중심주의’다. 너무 교과서적이고 당연한 말이다 싶어 맥이 풀리지만,구체적 사례들을 하나하나 들어보면 저절로‘끙~’하고 신음소리를 내게 된다.“정말이지 이런 지독한 놈들~!”이라고 말이다.
<다양한 백화점이 모여있는 신주쿠역 주변...신주쿠 산쵸메역 광고판>
언론에 소개된 사례 몇 가지를 들어 보겠다. 먼저 닛케이(日?)비즈니스 10월 호에 나온 일화다. 거래처 직원의 실수로 세일 전단지에 나온 여성복의 한 품목을 기한보다 뒤늦게 대게 됐다.옷은 아직 중국 공장에 있는 상황이다.보통 백화점이라면 상황을 설명하고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말았을 것이다.그러나 이세탄 백화점은 그 제품을 찾은 손님 모두에게 자택과 백화점사이의 왕복 교통비를 계산해 지급했다고 한다.일본의 살인적인 교통비를 계산할 때 물론 상당한 액수였다.그리고 담당 직원은 즉시 중국 공장으로 날라갔다고 한다.’손님을 배신하는 것은 가장 큰 죄’라는 소신 때문이라고 한다.
현대 백화점의 한 임원이 직접 겪은 일화도 우리 백화점에서는 쉽게 찾기 어려운 사례다. 이 임원이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에서 사람을 만나기로 했는데,약속장소가 엇갈리면서 만날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 백화점측에 안내방송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세탄에서는 안내방송은 물론이고 직원이 직접 약속장소에까지 나타나 함께 기다려줬다고 한다.그 직원은 잘 만났는지를 확인한 뒤에야 돌아갔다고 한다.저녁 8시가 되면 흘러나오는 백화점 폐점 안내방송도 다른 곳과는 정반대다.”폐점시간이 됐습니다만 고객 여러분께서는 차분하게 쇼핑을 즐겨주세요”라는 식이다. 모든 고객이 쇼핑을 마칠 때가 폐점시간이기 때문이란다.
이런 고객 중심주의는 지난 96년 이세탄이 만든 '조어(造語)’인‘오카이바(お買い場)’ 라는 말에 집약돼 있다. 백화점은 기존의 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뜻의‘매장(賣場)’이 아니라,손님이 물건을 사는 곳인‘매장(買場)’(오카이바)로 불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단어 하나까지 철저히 손님 입장에 서는 마음가짐을 갖겠다는 것이다. ’손님은 신’이라는 일본식 상술의 극치가 응축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주말 이세탄 신주쿠 본점 내부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핵심 요소일까? 아니다.서비스로만 이세탄의 성공비결을 이야기하는 것은 뭔가 부족하다.사실 이세탄의 가장 큰 장기는 정확하고 치밀한 고객 분석력이다. 그리고 끝내는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상품을 기획해 진열대에 올리고 마는 무서움이다. 모든 회사들이 항상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말처럼 쉽지 않은 이런 능력을 이세탄은 철저한 시장조사와 오랜 기간 축적된 고객정보,그리고 자신들의 독특한 분석 노하우로 정밀도를 끌어 올렸다.
닛케이 비즈니스에 실린 중국 스촨성(四川省) 청두(成都)점 오픈 당시 한 사례는 이세탄 특유의 고객 분석력이 어떻게 발휘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중국에는 가 본 적도 없고 중국어는 한 마디도 못하는 시타다(下田) 과장은 어느날 청두점 숙녀복 매장 오픈을 책임지라는 인사발령을 받고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매장 오픈까지는 1년. “중국인,아니 청두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장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던 시타다 과장이 택한 방법은 무작정 거리에 나와 지나가는 청두 여성들의 사진을 찍는 것이다.처음에는 일본여성과 아무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사진이 점차 쌓여가면서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바로 90%의 여성이 청바지를 입고 있다는 것. 이 단서를 시작으로 추가 시장조사를 벌인 끝에 확신을 갖게 된 시타다 과장은 과감하게 숙녀복 매장의 상당부분을 여성 청바지 코너로 꾸민다. 새것을 유독 좋아하는 청두인의 특성을 감안해 브랜드 수만 5백가지를 갖췄다. 이중에는 일본에서도 찾기 어려운 브랜드도 있다.물론 일본 내 다른 이세탄 백화점에는 이런 매장구성이 없다. 철저히 청두인의 입맛에 맞추는 현지화 전략을 구사했고,그래서 성공한 것이다. 이를 위해 시타다 과장이 길거리에서 찍은 중국여성의 사진은 5천장이 넘었다.
이 사례는 노력과 직관이 강조됐지만,사실 이세탄의 시장과 고객 분석 체계는 치밀하고 유기적이다.우선 POS(판매시점 정보관리)시스템과‘아이(I) 카드’라는 회원관리 시스템이 있다.두 가지 시스템을 조합해 언제,누가,어디서,무엇을 구입했는가에 대한 정보를 입체적으로 파악한다.그리고 이 정보를 토대로 최종적으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유행을 예측하고 구체적인 판매계획 지침을 마련해주는 자체 유통 연구소가 있다.
<젊은층에게 인기가 높다...'패션은 이세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이런 시스템 자체는 새롭지가 않다. POS와 회원관리 시스템은 조그만 슈퍼마켓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을 만큼 일반화돼있고,연구소도 웬만한 백화점이면 다 갖추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30여년 전부터 사실상의 POS 시스템을 구축해 데이터를 축적해왔고,매상고의 50% 이상을 거뜬히 올려주는 충성도 높은‘아이카드’회원이 160만 명이 넘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VIP회원을 우대하는 고객 성향 분류도 이미 60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또 지난 1967년에 설립된 유통연구소는 분석과 예측의 정확성에서 타의 주종을 불허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특한 하나가 더 더해진다.그것은‘고객을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손님들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고객의 소리,현장의 소리에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브랜드를 구입하던 고객이 갑자기 다른 브랜드를 사기 시작했다면 왜 그 물건으로 바꿨는지 분석에 들어가고,판매원들은 실시간으로 고객의 소리를 바이어에게 전달하는 습관이 몸에 베어 있다고 한다.
이런 전사원의 위기감은 이세탄의 역사와 관계가 깊다고 한다.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일본 백화점의 상당수가 주둔군인 미군에게‘접수’됐는데,이 가운데 이세탄의‘접수해제’기간이 유독 늦어져 1953년에야 영업을 재개했다고 한다. 영업을 못한 8년 동안 직원들은‘다시 장사하고 싶다’는 열망과‘손님들이 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동시에 느꼈다고 한다. 더욱이 당시에는 신주쿠역 주변에 지금처럼 거대한 상권이 형성돼지 않아 유동인구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다 신주쿠역에서 이세탄으로 오려면 반드시 당시 최고의 명문 백화점인 미쓰코시 백화점을 지나야 했다고 한다. 직원들이 애를 쓰지 않으면,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없으면 손님들이 굳이 이세탄 매장을 찾아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세탄의 슬로건인’하루하루가 새로운 패션의 이세탄’도 새로운 화제나 상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손님들이 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이런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세탄의 슬로건인 '하루하루가 새롭다.패션의 이세탄'>
그래서 어떤 전문가들은 이런‘위기감’이 오늘날 이세탄과 미쓰코시의 운명을 가른 중요한 차이라고도 말한다. 이세탄은 직원들이 항상 위기의식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반면,미쓰비시는 과거의 영화에 젖어 몰락해 갔다는 것이다.
합병되는 신세지만,사실 미쓰코시는 대단한 백화점이다.1905년에 설립된 일본 최고(最古)의 백화점으로 대부분 일본인들은 백화점하면 미쓰코시를 떠올린다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1673년에 개업한 에치고야(越後や) 포목점까지 올라가며,당시 에치고야는 모든 종류의 천을 구비해두고 파는 백화점식 경영을 처음 도입해 대성공을 거뒀다고 한다.현 미쓰이(三井) 그룹의 모태도 미쓰코시 백화점이라고 한다.또 최초로 세일을 실시했다고 한다.
<전통의 미쓰코시는 여전히 노년층에 인기가 많다...긴자 미쓰코시점>
그래서 어떤 전문가들은 이세탄의 부상(浮上)보다 미쓰코시 몰락(沒落)에 더 놀라고 그 원인에 주목한다. 그리고 현장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전형적 대기업 병이 가장 큰 병인(病因)이라고 진단한다. 하루종일 임원회의를 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무책임한 분위기가 이어지고,현장과는 동떨어진 대책이 남발된 것이 병을 키웠다는 것이다. 세일중지로 단골고객마저 떨어져 나가게 하고,지나치게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심각한 사기저하를 불러온 것이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그래서’책상 위의 전략가’로 불리기까지 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그렇지,왜 일본 최고의 명문 백화점이었던 미쓰코시가 이세탄과 사실상 합병되는 '굴욕'을 택했을까? 삼성경제연구소는 안팎으로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미쓰코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6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부채가 1700억 엔이나 남아있지만 여전히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고,특히 최근 급속한 백화점간의 재편 회오리 바람 속에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다이마루와 마쓰자카야의 통합,한큐와 한신이 통합하는 등 업계가 합종연횡을 가속화하는 분위기속에서 생존을 위한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10년째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일본 백화점업계...시부야 도큐 백화점>
미쓰코시가‘생존’을 입에 올린 만큼 힘든 것이 요즘 일본 백화점 업계다.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글 초반에 잠시 언급한 백화점 매출 자체의 감소다.10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장기 불황을 거치면서 백화점의 주고객인 연 소득 6백만 엔 이상 중 상류층 자체가 줄어들었고,또 각 부문별로 강력한 경쟁자들이 나타나 고객이탈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가전이나 가구는‘요도바시 카메라’같은 대형 전문점에서,패션용품은‘롯본기힐스’나‘도쿄미드타운’에서,유명 브랜드는 아예 대형 직영점에서 사는 식인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백화점이 외국계 펀드의 좋은 먹이 감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백화점 대부분이 대도시의 노른자위 땅에 위치하고 있어 최근 지가상승으로 자산가치는 크게 올랐지만,매출이 부진해 주가가 떨어지면서 끊임없이 경영권 상실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고 한다.규모의 경제에 따른 효율을 위해,또 외부의 적에 맞서기 위해 백화점끼리 뭉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음달 새로 출발하는 이세탄, 정식명칭‘미쓰코시 이세탄 홀딩스’도 업계 1위가 됐지만 여전히 이런 안팎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더욱이 업계 4위와 5위의 비슷한 몸집,그러나 전혀 다른 기업문화를 융화시켜야 하는,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고민도 안고 가야 한다.장사를 잘 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능력이 요구될 것이다. 시너지를 낼지, 아니면‘불행한 동거’가 될 지는 올 하반기쯤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출처: http://ublog.sbs.co.kr/youp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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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봣습니다.
잘 봤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