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3.4.13~14(1박2일)
행선지 :수안보 미륵사지
주소 : 충북 청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떠난사람 : 정세호, 박득자, 이영옥, 박영옥, 류경자, 임윤경, 금강덕, 채희동 .
주관 : 울산불교청년 한마음회 일원
제목 : 13년 4월 10대명찰 사찰순례 7번쨰 수안보 미륵사지
목적 : 불자들간의 신심을 쇄신하며 부처님의 법을 따라 올바른 신심을 찾아가고 더 나아가 친목을 도모하는 행진
행동 : 108배
죽비 : 정세호 염주 : 류경자
촬영 : 채희동
경전기도 : 박득자
이동수단 : 스타랙스 12인승 1대 (운전 정세호 부회장)
절 입구 모 폔션에서 07시30분 출발 미륵사지에 도착하니 가랑비가 운치있게 내렸다.
우산을 펼처들고 108배를 세게사 법당에서 실시 했다. 필자는 이때 108배가 끝나갈 무렵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기도 삼매경에 몰입 되어 그만 촬영을 하지 못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조부인 작제건(作帝建)이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던 중 이곳에 절을 창건하여 머물다가 갔다고도 전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주변에 산재한
덕주사(德周寺)ㆍ덕주골 등 마의태자 일행과 관련된 명칭으로 보아, 이 절의 창건이 마의태자와 관련된 것이 분명하다.
보물 제96호인 괴산미륵리석불입상과 보물 제95호인 괴산미륵리오층석탑은 마의태자가 일행과 함께 건립한 것이라
전한다. 현재 사지(寺址)에 산재되어 있는 석불ㆍ석탑ㆍ석등ㆍ귀부(龜趺) 등의 문화재로 보아 당시에는 규모가 매우
큰 가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192년(명종 22) 원명(元明) 등이 금당(金堂)을 중수하였고, 1254년(고종 41) 몽고병란으로 소실된 뒤 고려 말 조선 초에
중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18세기경에 중건하였으나, 1936년의 폭우로 산사태를 만나 사찰이 매몰됨에 따라
폐사가 되었다가, 6ㆍ25 이후에 조그만 요사만을 지어 세계사라고 불렀다.
최근까지 이 절의 원래 이름이 알려지지 않다가 1977년 청주대학교의 발굴조사팀에 의하여 미륵당초(彌勒堂草)라고 새긴
명문와(銘文瓦)가 출토되어 미륵사지임이 확인되었고, 현재 중원문화권의 개발에 힘입어 복원이 계속되고 있다.
첫댓글 미륵사지 미륵불님을 뵈올때마다 그와 같은 모습이 되고 싶은 맘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