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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固城] - 튼튼한 성
경상남도의 중앙 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동부는 마산시, 북부는 진주시, 서부는 사천시, 동남은 통영시와 접하고, 남부는 남해의 한려수도에 접한다.
고성 문화관광 http://visit.goseong.go.kr/00main/index.asp
갈천서원[葛川書院] 대가면 갈천리 1146
이 서원은 고려 공민왕때 문신인 문정공 향촌 이암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이암(1297~1364)은 고려 충선왕 5년(1313)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공민왕 12년(1363)에는 1등 공신으로 철성부원군에 봉해지기도 했다. 그는 글씨에 능하여 동국(東國)의 조자앙이라 불렸으며, 특히 예서와 초서에 뛰어났다.
거류산성[巨流山城]
소가야가 신라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쌓은 성이라고 하나 왜구를 막기 위한 용도로도 쓰인 듯하다.
소가야 마지막 왕의 피신처였다는 거류산성이 있는 거류산 명칭에는 전설이 전한다. 저녁 무렵 밥을 짓던 처녀가 커다란 산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부지깽이를 두드리며 “저기 산이 걸어간다”라고 세 번을 외쳤더니 산이 그 자리에 멈췄다고 해서 ‘걸어산’이라 부르다가 ‘거류산’으로 바뀌었단다.
경남고성공룡세계엑스포 http://dino-expo.com
1982년부터 관내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 크고 작은 5,000여 개의 공룡발자국과 공룡알화석지의 가치를 알리고 관광산업을 진흥하기 위하여 경상남도 고성군이 개최하였다.
행사는 당항포관광지 안에 2006년 1월 완공된 엑스포주제관과 상족암근립공원 안에 2004년 11월 완공된 고성공룡박물관 등지에서 열렸다. 내용은 중국 쓰촨(四川)성 쩌궁시에 있는 공룡박물관과 일본의 후쿠이현 공룡박물관, 캐나다의 로열티렐 고생물박물관 등의 소장품을 전시한 세계3대 공룡박물관 교류전, 국제공룡학술대회, 광물화석쇼 등으로 꾸며졌다. (2009년 2회째-3년마다 개최된다) <고성공룡나라축제>
고성공룡박물관 http://museum.goseong.go.kr
고성 덕명리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산지(천연기념물 제411호)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 가면 바다와 연하여 펼쳐진 넓은 암반을 딛고 서남쪽으로 약 300m 전진하면 해안에 작은 산이 내달아 바다에 뻗어 있고 전면 층암단에 깊숙이 암굴이 뚫려 있는데 이곳이 바로 상족암(床足岩)이라 불리는 곳이다.
고성 오광대놀이 http://www.ogwangdae.or.kr/
http://www.ogwangdae.or.kr/sub03/vod_view.asp?number=3&curpage=1&data_id=10
연희는 제1과장 문둥북춤, 제2과장 양반과장, 제3과장 비비과장(양반 아흔아홉 명을 잡아먹은 상상의 동물 비비), 제4과장 승무, 제5과장 저밀주(제밀주, 첩) 순으로 공연한다. <사진:제5과장 큰어미의 상여가 나간다>
‘산대(山臺)’란, 산과 같이 높은 무대 또는 비단으로 장식된 다락무대라는 뜻으로, 고려 때 성행하던 산대잡극이나 나례가 조선으로 계승되어 산대도감에서 이를 관장했다. 주로 명, 청의 사신을 영접하거나 왕실의 각종 제례, 잔치 등 국가적 차원의 여흥 행사였다.
고성자연사박물관 http://dhp.goseong.go.kr
고성탈박물관 고성읍 율대리 650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서기 1670년경 전주 최씨 시조 문성공(文成公) 최아(崔阿)의 16세손이며 임진왜란의 공신 의민공 최균(義敏公 崔均)의 현손(玄孫) 최형태(亨泰)께서 꿈에 하늘에서 학이 내려와 이곳에 알을 품고 있는 현몽을 해 날이 밝아 그 곳에 가보니 필연적으로 세세지장토(世世之庄土)를 누릴 수 있는 명지라 믿고 이곳 지명을 학동이라 지었다고 전해온다.
황무지였던 이곳에 정착하면서 높은곳에는 밭을 일구고 낮은 곳에는 논을 만들었다. 이리하여 남부(낙남정맥의 남쪽) 지방의 하동 금남면 한재(대치)마을과 함께 반촌마을로 알려져 있고 임진왜란 이후 조성된 전국최대 전주 최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학동마을 옛담장의 멋은 한마디로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마을을 조성하면서 생긴 돌과 지천으로 널린 자연석 등을 활용 성을 쌓듯 켜켜히 쌓았다. 지점돌(땅을 파고 놓은 초석)을 놓고 적당한 높이로 강담(돌맹이로만 쌓은 담)을 쌓고 개석(蓋石)으로 마무리한 점이 다른곳에서 볼 수 없는 특색이다
고성 학림 최영덕씨고가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흙돌담 중의 구멍은 사랑채로 드나드는 사람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고 대문채에 있는 돌담 구멍은 가난한 자를 위한 음식을 내어주는 데 쓰였다. 화강암 덮개로 된 우물이 전국에서 유일하여 명물로 일컬어지고 있다 안채 뒤편에 있는 대리석으로 만든 구멍 세(천.지.인) 개의 우물뚜껑도 특이하다. 돌로 만둔 개수대도 특이하다. 사랑채의 유리창은 순수 서울양식이다.
사랑채 건물 정면의 梅史(매사), 안쪽의 鶴林軒(학림헌) 현판에서 역사를 볼 수 있다. 관청에만 붙이던 ‘軒’자가 들어 있는 연유를 물었더니 “임진왜란 때 이 건물을 관청인 동헌으로 사용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기둥이 옛날 관청 건물에만 사용했던 둥근 나무 기둥이다.
학림헌 대청마루 위 천정양식과 축담 돌에 조각하여 만든 세면기와 소피를 보는 돌거북이 이채롭다. 안대문으로 들어서면 높은 토담 내외(담)벽이 있고 안마당에서 색문(塞門)을 지나면 고가의 후원과 우물이 있는데 우물의 품격이 궁궐을 포함한 전국 최고의 현존 우물이라 자랑할 만하다(전국에서 유일한 화강암 우물 뚜껑 3개는 천,지,인을 상징한다), 굴뚝도 낮다(어려운 사람을 고려하였다)
또 500년이나 된 큰 동백나무와 마주 서 있는 모과나무는 400여년이나 된다. 묘한것은 모과나무 줄기와 곁가지를 접을 시켜 가락지 모양의 형태가 눈길을 끌고 선인들의 지혜를 직감 할 수 있다.
조선시대 학동마을이 통영 통제사의 행정관리 지역으로 당시 관청과 먼 거리로 지방의 토호(土豪)세력에게 행정권을 부여하여 향소(鄕所, 지금의 행정 출장소 기능)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된 학동마을은 납작한 판석(기왓장돌)을 층층이 쌓아 만든 돌담길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입니다. 학동마을 옛 담장은 납작돌로만(황토 없이) 쌓아 다른 마을의 담장과는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장마에 대비하여 쌓았다.
당항포국민관광지 http://dhp.goseong.go.kr
이어 2년 후인 1594년 또 다시 31척을 격파시킨 전사 유적지이다. 충무공의 멸사봉공의 혼이 깃든 당항포대첩지를 길이 후손에 전하고자 군민들이 뜻을 모아 1981년 성금으로 대첩지를 조성하고, 1984년 당항항을 국민관광단지로 지정하고 1987년 11월 10일 단지를 개장하였다.
관광단지 안에는 충무공 영정과 위패를 모신 송충사와 높이 20m의 전승기념탑, 현충탑, 기념관 등이 있으며 삼외문과 내외문 등의 문화유적지도 있다. 해전관에는 당시 해전 상황이 모형으로 재현돼 있다. 해전관이 있는 언덕의 아래쪽엔 이순신 장군의 투구를 본떠 만든 충무공 디오라마관이 자리한다. 또 ‘거북선 체험관’에서는 함포 쏘기, 노 젓기, 키 조정을 체험해볼 수 있다.
당항포 해전관 http://dhp.goseong.go.kr
당항포대첩제전 1998년 8월 12일 제1회 당항포대첩제전 때 대첩 재현으로 연례화된 행사이다. 당항포에서 충무공 이순신의 탄생과 당항포대첩을 기념하는 행사이자 당항만을 국민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한 관광축제이다.
문수암
석벽에는 문수(文殊), 보현(普賢) 두 보살상이 나타나 있으므로 문수단(文殊壇)이라 이름지었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석각이고,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은 두자 일곱치 크기의 목각으로 되어 있다.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하고 있다.
의상조사가 남해 보광산(지금의 금산(錦山))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상리면 무선리 어느 촌락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비몽사몽간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서 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 가보라”고는 홀연히 사라져 잠을 깨니 꿈이었다.
날이 밝아 과연 한 걸인이 나타났는데, 급히 밥상을 갖다주며 무이산의 주소를 물었더니 무이산에 간다 하기에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걸인을 따라 무이산 중턱에 오르니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있고,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에 웅장한 다섯 개의 바위가 오대(五臺)를 형성하고 있어 마치 오대산의 중대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때 그 걸인이 중대를 가리키며 "저곳이 내 침소다" 라고 말하자 한 걸인이 또 나타나서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져버렸다.
의상조사는 석벽 사이를 살펴보았으나 걸인은 보이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적인 문수보살상만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의상조사는 홀연히 깨달은 바, 꿈속의 노승이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이 문수와 보현 보살임을 깨달았고 의상조사는 무이산을 두루 살펴보고는 “이곳은 족히 사자를 길들일 만한 곳이며 이곳이야말로 산수 수도장이다” 라고 예찬하고 문수단을 모아서 문수암을 세우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의 문수상이 뚜렸이 나타나 보인다.
상족암군립공원[床足巖郡立公園] 하이면 덕명리 해안
상족암 바닷가에는 너비 24㎝, 길이 32㎝의 작은 물웅덩이 250여 개가 연이어 있다. 1982년에 경북대 지질학과팀이 발견한 이 웅덩이는 공룡 발자국으로 1999년 천연기념물 제411호로 지정되었다.
아득한 옛날에 천상의 선녀들이 이곳에 내려와 돌베틀로 옥황상제에게 바칠 금옷(錦衣)을 짰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입구가 바다와 맞닿은 동굴의 내부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목욕했다는 웅덩이도 있다. 바닷가 절벽은 돌책(石冊)을 켜켜이 쌓아놓은 듯해 전북 부안 채석강을 연상케 한다. 그 앞에는 수백 명이 한꺼번에 앉아 쉴 수 있는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다. 상족암이 유명세를 탄 것은 공룡발자국(5,000여 족) 때문이다. 상족암 위 언덕에는 웅장한 모습의 공룡박물관이 있다.
해식동굴[海蝕洞窟, sea cave ] 해안선 가까이에서 파도·조류·연안수 등의 침식작용이 암석의 약한 부분을 파 들어가면서 생긴 굴.
청소년문화의 집에서 고성향교가 주관하는 서제를 시작으로 남산공원 광장에서 성대한 불꽃놀이를 시작으로 축제가 시작된다.
소가야는 여섯개의 가야 가운데 신라 유리왕 19년(42년)에 경상남도 고성군 부근에 세워진 나라이다. 김수로왕과 함께 구지봉에서 태어난 6명의 동자 중에서 막내인 김말로가 건국하였다. 고성군 일대를 중심으로 사천군에서 통영시 일대에 유적이 발굴되었다.
송학동고분군
이 지역에서 북쪽으로 300m 거리에 기원리 무덤들이 있고, 동쪽으로 300∼400m 거리에 송학동 조개더미가 있어, 삼국시대 소가야국의 자리를 나타내주고 있다.
1호 무덤은 겉모습에서 앞이 네모나고 뒤가 둥근 무덤인 전방후원형 무덤으로 보여지기도 하나, 발굴조사 결과 흙을 쌓아 구릉처럼 만든뒤 돌무덤방을 만든 가야 고유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 7기의 무덤은 1호 무덤인 무기산 무덤과 가까운 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1호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는 딸린무덤(배총)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호 무덤은 좋은 위치와 무덤의 규모 등을 생각했을 때 이 지방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며, 만들어진 시기는 A·D 400년을 중심으로 앞뒤 50년의 범위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홍길전시관
엄홍길(嚴弘吉, 1960년)은 세계의 고봉인 히말라야 8,848m 14좌를 세계에서 9번째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는 박영석에 이어 두 번째로 등정한 산악인이다. 1985년 9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848m) 남서벽 원정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하였으나, 1988년 9월에 다시 도전하여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였고. 2007년 5월 31일에는 로체샤르까지 등정하여 14+2좌를 완등했다
옥천사[玉泉寺] http://okcheonsa.or.kr
육영재[育英齋]
경내에는 당시 학동들이 사용하던 고서(古書) 300여 권이 소장되어 있고, 독립투사 최우순(崔又淳)의 순의비(殉義碑)가 있다.
학동마을 육영재는 문중의 후세를 교육하기 위해 1723년에 마을 옆 서쪽 계곡에 세운 서당으로 한국전쟁 때 이 부근 하일국민학교가 불탔을 때는 초등학교 전교생이 4년간이나 여기에서 공부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사설교육기관은 유일하다. 유치원부터 대학교육까지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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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계승사 백악기 퇴적구조(桂承寺 白堊紀 堆積構造)
절 입구 왼쪽 요사체 앞 너른 암반에는 연흔(漣痕:물결자국)이 있다. 이곳의 연흔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가로 13.5m, 세로 7m 정도 되며 보존 상태도 우수하다. 또 옛 대웅전 뒤쪽에는 우흔(雨痕:빗방울 자국)이 남아 있는데 그 무늬가 너무나 선명하여 마치 금방 생긴 자국처럼 또렷하다. 물결의 파장과 파고는 각각 4mm 정도이다. 그 뒤쪽 약 50㎡ 정도 되는 암반에는 공룡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용각류(네 다리로 걷는 초식공룡)의 발자국이 7개 있는데 각 발자국의 평균 크기는 각각 67㎝, 90㎝ 정도이다. 그밖에 이 지역에는 퇴적구조 층리와 수각류(두 발로 걷는 육식공룡)로 추정되는 공룡발자국 화석 등이 다양하게 나타나, 고환경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곳의 암석과 암벽은 모두 백악기의 퇴적구조로, 퇴적층이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2006년 12월 5일 천연기념물 제475호로 지정되었다
동진대교(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2개 코스로 된 동해일주도로의 총 길이는 36km로서 일주하는데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며, 특히 동해일주도로 주변에는 옛 소가야 유적지 고분군과 낚시터, 해안절벽, 모래사장 등이 곳곳에 있어 역사탐방코스로서 뿐만 아니라 피서지로도 최적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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