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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30 ~ 31일.
지리 반야봉 넘어 묘향암, 함박골, 뱀사골, 반선.
습하고 후끈한 여름날 어느참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원주에 사는 자칭 멋쟁이라는 사람이다.
날 겁나게 뜨건날 지리를 가느라 기차를 탔는디 마침 익산역을
지나고 있단다.
화대를 할려고 나섰다는데 일행이 더 있다면서 한 분씩 전화기를
바꿔준다.
그 앨행들의 면면을 확인하니 전화기에서 술냄시가 실실 나는듯 하다.
'날 뜨건디 화대는 무신 화대여.노고단에서 즐겁게 한 잔 하고
담날 좋은 골짝이나 찾아서 오붓하게 시원한 계곡산행이나
하시지 않구선..'
속으로 요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내 그래도 꾹 참았다.
세 양반들 등에는 술병이 가득 실렸을테고 또 그 양반들 술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워낙에 독실한지라 등에 업은 술병들이 아무리
등짝을 찍어눌러도 뱃속으로 옮겨담아 없어질때까지 달리 처분하지는
못하는 분들이라 그 술짐을 지고 화엄사에서 코재까지 오를때 느끼는
고통을 대충 짐작을 하면서 혼자 지리를 그려보다가...
문득 '올 여름엔 지리산에 한 번도 들지를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온 머릿속에 그득해진다.
집으로 와서 부리나케 짐을 꾸린다.
기본 비박장비와 대충 몇 가지를 챙기고 택시로 익산역으로 고고..
15시 51분 구례구행 무궁화를 타고 꾸벅꾸벅 졸다보니 17시 30분 조금
못 되어서 구례구역에 당도하여 역전 슈퍼에서 술하고 먹을거리 좀 사고
슈퍼 쥔장에게 성삼재 버스시간을 물으니 빨랑 택시타고 구례 터미널로
가면 17시 40분 막차를 탈 수 있을 것이라 해서 터미널까지 6000원에
택시를 탄다.
터미널에서 막 출발 하려는 버스를 타고 한숨을 놓는데 신나게 달리던
버스가 멈추더니 어떤 양아치 같은놈이 버스에 올라서 돈을 달랜다.
문화재구역 입장료라나..
예전엔 문화재 관람료였던 것이 이젠 개명을 했드만.
참말로 천은사 중놈들은 중이라고 할 수가 없어.
그 놈들은 도적놈중의 상 도적놈이여.
뻗쳐오르는 열을 식히느라 창문을 활짝열어 재쳤드만 버스기사가 혼자 웃는다.
사실 요놈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었는데 결국엔 요놈을 만나고 하산을
해야했다.
성삼재 오르는 버스에 붙어있는 운행시간표.
18시 20분에 성삼재에 도착한다.
이제는 성삼재의 상징으로 굳어가는 라푸마 성삼재 매장.
신발끈을 매고 성삼재 적외선 인원계수기를 통과한다.
공단에서 많은 돈을 들여서 설치한 저 계수기는 사실 그 돈만큼
효용가치가 있을지 의문이다.
전문가의 견해를 듣자면 사람이 스틱을 지니고 지나가면 스틱도
별도로 계수가 되어버린다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싶다.
정확도가 50%도 안된단다.
그 수치를 근거로 그네들은 탐방객 수를 산출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올라간다.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한바탕 할 기세로 먹구름이 인상을 쓰고있는 모습에
나도몰래 발걸음이 빨라진다.
코재 모퉁이 질러가는 계단을 만나니 얼추 노고단 대피소에 다 왔다는
안도감에 일단 마음이 놓이면서 강한 시장기를 느낀다.
배낭은 무겁지만 얼른가야지 비도 안맞고 화대팀 만나서 맛난것도 얻어묵지.
마지막 돌계단 오르면서 땀을 한 바가지 쯤은 쏟아버리고 대피소를 향하는데
눈에익은 뒷태를 보이는 저 까만옷 입은 아자씨..
아니 형님,
화엄사 출발한지가 언젠데 이제야 노고단 도착해서 아직 상도 안차리시고..
이래가지고 어느 천년에 대원사 가실랍니까?
오늘 꼽사리 좀 끼겠습니다.
밥하고 찌개 끓이고 고기굽고..
판을 벌이니 여기저기서 술병들이 나오고.
마침 취사장에 사람들도 별로 없고 해서 잔잔하게 마시면서 산 야그 하면서
하다보니 빈 술병들이 하나씩 늘어가고..
두루형님,멋쟁이님,전서방형님.
배낭속에 있던 이슬이들이 덥다고 아우성이길래 시원하게
목간도 시켜주면서..
전이 무르익어가니 옆 테이즐 모르는 아자씨들도 합세하여 주거니 받거니
산이야기 인생이야기에 오늘밤 잠자기는 물건너 가는구나.
왼쪽에 흰머리나신 분과는 담날 아침 사람들 다 떠나고 나서도 한 판 더 벌였다는..
그 해장술이 아주 치명적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가신 분들은 알랑가 몰라.
오줌싸러 간다고 나가더니 들어오질 않아서 나가보니 그 술기운에도 딸래미들에게
멋쟁이아빠 노릇을 하고있는 원주멋쟁이님.
땡겨서 한 장 더.
취사장에 누군가가 놓고 간 깔판 두 장이 있길래 대피소 처마밑에 깔고
이 곳에서 마지막 입가심을 하고 딴 사람들은 대피소로 들어가고 나는
얇은 침낭만 꺼내 누워서 하늘을 보니 구름 사이로 뭔가가 언뜻언뜻 비추긴
하는데 아 글쎄 저놈이 달인가 별인가...
아침에 느즈막히 눈을 뜨니 다들 챙겨서 제 갈길들 갔구나.
그래도 형님들이 내 해장하라고 그릇에 밥 담고 코펠에 찌개까지 이쁘게
담아놓고 가셨네.
허 참! 이 고마운 마음을 어찌 전해 드려야 하나..
밥을 먹을려는데 어젯밤 흰머리 아자씨께서 술 병을 들고 웃고 계신다네.
오메 죽겄네.
그래도 나보다 어른이 주시는걸 거절하는 그런 무례한 놈이 아니라서
감사히먹겠습니다 하고 마시고 빈잔을 드릴 수는 없을 터.
그러다 보니 비록 구름속이지만 해는 중천에서 우릴 내려다 보고..
저 라푸마는 도데체 공단에 알마나 퍼 주고 있길래 국립공원 산중을 라푸마
플랜카드로 도배를 하는것일꼬..
어쨌거나 일단 노고단 고개로 올라간다.
아무 계획도 아직 안 정했다.
그냥 지리에 가자고 출발했고 지금 지리에 서 있으니 일단 목적은
달성했으니 앞으로 어디로 가든 후회는 없을 것이다.
노고단 고개에 올라보니 안개로 인해 뵈는건 하나도 없고 주위에 사람도
한 명 없다.
일단 주능선 따라가자.
임걸령까지의 유순하고 참한 길을 사부작사부작 걷는다.
걷다보니 간간히 이슬비도 내리고, 그 이슬비 속에 여러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는 모습이다.
철늦은 엉겅퀴가 등로 옆에서 하늘하늘..
약간 너덜길도 걷다가..
또 요렇게 보드라운 길도 걷다 보면,
이렇게 방긋 웃고 있는 둥근 이질풀이 나타나 그냥은 못 지나치고
쪼그려 앉아 한참을 낑낑대며 사진 한 장 담고..
그렇게 걷다보니 비에 젖은 참취가 나타나네.
그 모습이 이뻐보여 또 낑낑대며 한 방 박고..
등로 옆에 무성해진 철쭉이 터널을 이루었구나.
그 많은 잎에 빗물을 흠뻑 머금고 있다가 스치고 지나는 산객에게
시원하게 뿌려주니 마치 옷입고 샤워하는 형국이다.
이제 여름의 끝자락인가 싶다.
산오이풀 이질풀들이 군락을 이루며 빗속에서 올 마지막 여름을 즐기고 있다.
아 근디 이 망할놈의 비는 올려면 시원하게 쏟아부어버리던지 아님 확실하게 좀
참아주던가.
부슬부슬 왔다리갔다리..
올 여름이 제아무리 뜨겁네 어쩌네 해도 자연의 섭리는 거스를수 없는 법.
흔히들 가을의 전령사라 부르는 쑥부쟁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돼지령을 지나니 안개구름은 더욱 두터워지고 사람 한 명 없는 산길을 터더터덜
걸으며 빨리 술 좀 깨어났으면 하는데 깨기는 커녕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파온다.
피아골 삼거리에서 잠시 망설인다.
피아골 가 본지도 오래됐는데 간만에 피아골 산장에 가서 함 할아버지
채취나 느껴볼까 하다가 그냥 임걸령으로 향한다.
가을 색이 좀 더 짙어지면 그 때나 한 번 가볼란다.
요즘 비 좀 내렸나보다.
임걸령 샘 파이프가 힘차게 물을 토해내는 모습에 일단 배낭 내리고 머리에 물 좀
끼얹고나서 배가 터지도록 물을 마시고 수낭에 물을 담고 길을 나선다.
노루목 삼거리.
갑자기 반야가 보고싶었다.
올라간다.
오르면서 생각하길,반야 오르면 그냥 중봉 넘어서 봉산골로 해서 쟁기소로
빠지던가 아님 심원으로 해서 노고단 옛길이나 걸어볼 요량으로 가보자 하며
반야를 향해 오른다.
잠시 멈추었던 비는 또 다시 시작되고 '그래 내릴려면 내려라' 하면서
걷다보니 빗물에 젖은 구절초 한 송이가 보인다.
지리는 이제 가을인갑다 하고 사진 한 장 찍고 오르다 보니..
빗물에 헝클어진 산오이풀도 보이고,
쑥부쟁이가 지천으로 널린 모습에 힘든줄도 모르고, 비내리는데 용감하게
카메라 꺼내들고 요리박고 조리박고..
꽃과 함께 하니 힘든줄도 모르고 반야봉 비알길을 오른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야 철계단.
그 때깔이 많이도 바랜 모습이다.
투구꽃.
마타리.
노루목에서 예까지 오는데 한시간은 걸린것 같다.
힘든 몸뚱이 끌고 꽃놀이하며 오르다 보니 30분 거리를 한 시간이나 올랐으니..
배낭 내리고 잠시 쉬면서 쵸코파이 두 개를 억지로 밀어넣고 물 한 모금 마시니
이제야 술도 좀 깨는 느낌이 든다.
이슬비 왔다갔다 하는 반야에서 한참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다시 배낭을 맨다.
금줄.
넘는다.
수리취.
요놈 잎을 단오 즈음에 채취를 해서 떡을 해 먹으면 맛있다는데
내 아직 그 맛을 못보았구나.
내년 봄에는 그 맛 한 번 봐야겠다.
안부 헬기장.
이 곳을 지나며 혼자 웃는다.
몇 년전 겨울날 몇 몇 사람들과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다가 가지고 온
복분자주 댓병이 터지는 바람에 주변이 온통 뻘건 복분자 피바다가 되버렸던
생각이 문득 떠 올라 입가에 웃음이 그려진다.
송이풀.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놈이라서 반가운 마음에 내리는 비를 피하며
잽싸게 찍는다고 찍었는데 수전증이 심했나보다.
꽃잎도 많이 달리고 해서 찍었는데 이놈의 손모가지가 덜덜덜..
풀섶에 숨어있는 동자꽃 한 장 담고 가다보니,
중봉 헬기장이네.
이 좋은 곳에 누워 계시는 연안김공은 죽어도 죽은것이 아닐것이여.
오히려 삶 때 보다도 더 행복할수도..
조상 묘를 이렇게나 좋은 곳에 쓴 그 후손들은 정승판서 자리에 올라서
자손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릴것이여.
야생화가 만발을 했구나.
참 나..
이 곳에서 또 생각이 바뀌네.
봉산골이나 심원을 생각하고 넘어왔는데 묘향암이 나를 유혹하는구나.
그래 마음 꼴리는대로 가는거지 뭐.
묘향암 들렸다가 이끼구경이나 하면서 내려가자 하는 생각으로 갈길을
잡고 친절한 두개의 안내판 사이의 길로 스며든다.
비가 많이 내려 함박골이나 폭포수골로 하산을 못한다면 묘향암 처마밑에서
비를 피하면 될것이고 배낭에 먹을것도 충분하겠다 뭐 별 걱정없이 묘향암으로
향한다.
내려가다가 만난 아주 건강한 주목.
갑자기 뱃속에서 신호를 보낸다.
예비신호도 없이 급작스럽게 받는 신호라서 비에 젖은 흙바닥에 얼른 배낭 내리고
저만치 숲속으로 들어가서 근심을 해결하고 묘향암을 향한다.
묘향암 삼거리.
오랜만이다.
기둥이며 지붕빛이 점점 바래가는 모습을 보인다.
스님이 어디 출타를 하셨나.
인기척을 느낄 수가 없다.
밖에서 헛기침도 해보고 발소리도 크게 내보고 했는데도 말이다.
일단 샘으로 가서 달디 단 석간수를 배부르게 마신후 여기저기 돌아보며
사진도 찍고 하는데 다시 비가 시작된다.
처마 밑에 앉아 낙숫물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오늘 내려갈까 아님 여기서
하룻밤 유하고 내일 깔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린다.
한 삼십분 졸았을까 눈을 떠보니 여태 내리던 비는 그칠 기미를 안보이고 해서
이 곳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는데 한참만에 비가 멈출 기세를 보인다.
하늘이 조금 밝아지는듯 해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쉬운 마음
조금이라도 덜 들게끔 다시 한 번 묘향암 구석구석 돌아보고,
돌로 쌓은 좌선대에 내려가 절집 전경을 다시 한 번 보고,
예전에 없었던 코끼리상도 한 장 담고 묘향암을 뒤로 하고 함박골을 향한다.
올해는 너무 더워서 그러는지 채소밭의 작황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구나.
이 곳에서 우측으로 내림길을 잡고 지능선을 타고 한 참 내려가면 함박골
본류에 다다른다.
이끼폭포.
이 곳 까지 내려오면서 지난 비로 인해 상당히 불어난 계곡수로 인해
조금 위험한 곳이 두어군데 있었으나 나름대로 조심을 하면서 내려오면
큰 문제는 아닌데 함박골 그 수많은 폭포들을 보고 내려오면서 그놈의
비 때문에 사진 한 장 담지 못한게 많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이끼폭포는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끼폭포 앞에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다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자 얼른 몇 장 찍고 해 떨어지기 전에 반선까지
내려갈 욕심으로 빠른 걸음으로 뱀사골을 향한다.
조금 무리해서 걸었더니 뱀사골 본류에 당도 한 이후에도 아직 해가 많이 살아있다.
뭐 여기서부터는 함박골에 비하면 고속도로 수준이라 거의 뛰다시피 내려간다면
잘 하면 반선에서 전주가는 막차를 탈 수 있을것 같아서 씩씩하게 내려갔지만 결국
30분차이로 막차를 놓치고 만다.
어쩔수 없이 인월까지 택시를 타고 그 곳에서 전주행 버스를 타야한다.
어차피 택시를 타야 한다면 좀 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반선 화장실로 간다.
요즘 화장실 장애인칸을 보면 그 공간이 아주 넓은데다 내부에 세면대가 설치되어
요령껏 대충 씻기에 적합하다.
코펠을 가지고 들어가서 훌러덩 다 벗고 세면대 물을 퍼서 간이 샤워를 하고나니
세상이 다 달라보인다.
개운한 기분으로 인월까지 15,000원주고 택시를 타고 전주행 20시10분 막차를
타고 전주터미널에 당도하여 마중나온 마누라 차타고 익산으로 향한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향했던 지리산.
반가운 분들을 만나서 즐겁게 마셨던 술 맛도 좋았고 가을로 접어드는 시점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야생화도 좋았다.
종일 비를 쫄딱 맞으며 했던 산행이지만 특별히 어디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아니하고
마음 내키는대로 산길을 걸었던 산행이라 이 번 지리산행은 더 오래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첫댓글 멋진 사진속에서 야생화도 즐감하며 많이 배우고 갑니다.
언제나 즐거운 산행이 계속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