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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의 보람과 봉사인의 자세
― 수필가 김남식의 작품 세계
문학평론가 리 헌 석(李憲錫)
(대전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
1. 김남식 수필가 살펴보기
김남식 수필가는 1942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나 성장한다.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 교육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으로 평생을 일관한다. 초등학교 교사, 교감, 장학사, 교장, 장학관, 교육장 등을 역임하고 정년을 맞아 퇴임한다.
그는 빈한(貧寒)한 가정에서 성장하였기에 스스로 노력하여 극복하려는 성품이 형성된 듯하다. 특히 학업 성취에 대한 의지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강렬하였다. <텅 빈 교실에 혼자 앉아 계신 선생님 앞으로 달려가, 여자에게 2등으로 밀려난 월말고사 성적표를 던지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한 것으로 보아 그러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부재(不在)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한다. 이로 인해 어머니와 누나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 성장하는 시기를 지냈으며, 임시교사로 근무하다가 사임한 후에 잠시 방황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자성(自省)의 기회를 갖는다. <편모슬하에서 늘 기가 죽어 살아서인지 겁 많고 숫기가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해병대에 지원하여 입대한다. 고된 훈련과 병영 생활을 마치고 전역하는데, 후일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의 바탕에는 해병 정신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
평생을 교육자로서 봉직하고 퇴임하여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그가 다시금 새로운 일을 찾아낸 것도 꺼지지 않는 도전 정신에 기인한다. 교육계 경험을 살려 ‘대덕대학’의 외래교수로 후진을 양성하는 것이 첫 번째 도전이다. 그래도 남는 시간을 뜻 깊게 보내기 위해 농사일을 시작한 것이 두 번째 도전이다. 그리고 장애인을 찾아 봉사하는 일과 선교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일이 세 번째 도전이다. 그리고 마지막 도전은 수필가로서의 등단이며, 멋진 수필을 창작하는 일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 농사를 시작한다. 늦깎이 농부들의 특징은 수확보다 투자가 많은 점이다. 그러면서도 행복에 젖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농심(農心)」에서 <늦깎이 농부가 된 터여서인지 세월이 갈수록 고추 한 개 배추 한 잎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밥 한 알을 만들기 위해서는 150여 명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써 붙였던 학교 급식실 표어가 생각난다.>고 밝힌다. 땀 흘려 가꾼 수확물을 사랑하는 이웃이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으로 최상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는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성심을 다한다. 작품 「작은 선교」에 그 기쁨이 담겨 있다. <아내는 조금만 젊었다면 외국어 공부를 더해서 선교사로 나가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하나님 뜻대로 선하게 살며 그 분 말씀을 땅 끝까지 전하는 일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중요하면서도 기쁜 일일 것이다. 나도 그 일이 하고 싶고 은근히 기대도 된다.>면서 선교에 앞장을 선다.
봉사활동에 나선 그는 <내 손을 한동안 꼭 잡고 놓지 않던 그 할머니 손길이 다시금 따스하게 느껴온다. 사랑스런 손길들과 소박한 얼굴들이 나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다. 내년에도 할머니들이 고대하며 기다릴 그 곳을 다시 또 찾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인간적 바탕에서 김남식의 수필 작품을 감상하기로 한다. 그의 작품에는 그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을 것이며, 그의 철학이 오롯하게 담겨 있을 것이라는 추정(推定) 아래 간단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그의 수필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기 때문에 분석적으로 해석하기보다 감상문 형식을 취한다.
2. 교육자로서의 자세와 보람
수필은 삶의 진실이 담긴 글이다. 수필은 소설과 같은 산문이면서도, 소설의 허구(虛構)와 수필의 사실성 차이 때문에 수필이 주는 감동은 더욱 절실하다. 소설 역시 허구적 진실을 담보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에 바탕하고 있는 수필에 있어서의 진실만큼 절실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그래서 수필에는 수필가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게 마련이고, 수필을 읽으면 필자의 삶을 낱낱이 알 수 있게 된다.
김남식 수필가는 어렸을 때부터 학습에 대한 의욕이 높았다. 「빨간 동그라미」에서 그는 담임교사로부터 사랑 받은 사실을 밝히고 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기도 하고, 공부 잘한다고 껴안아도 주셨다. 당신을 유독 따르는 내가 아버지가 안 계신 가난한 집 아이인 줄을 아시고 더욱 관심을 가져주셨나 보다.> 이러한 사랑과 관심에 의하여 모범생으로 성장한 그는 초등학교 교육에 평생을 바친다.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의 수필 곳곳에 드러나 있다. 여러 작품 중에서 교사시절에 대한 회고를 담고 있는 「제자들의 사랑 고백」에서 <선생님이란 참 좋은 직업이다. 고사리 같은 어린 손을 잡아줄 때는 아릿한 정을 느낄 수 있어 즐겁고,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이며 제 잘못을 스스로 알고 겸연쩍어 하는 모습을 대할 수 있어 기쁘다.>고 술회한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남보다 먼저 승진을 하게 되고, 중간 관리자와 최고 경영자의 위치에 오른다. 40여 년을 봉직한 교직에서 물러나서 제자들을 만날 때에 더욱 큰 보람과 자부심을 갖는다. <지난날과 오늘을 넘나드는 소설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선생님이 아닌 누가 들을 수 있으며, 그런 흐뭇함을 그 누가 느낄 수 있단 말인가>라며 스승으로서의 긍지를 감추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선교에 열중하는 제자 수녀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수필로 빚기도 한다. 「복 터진 날」에서 그는 제자를 만나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머리에 미사 보를 쓰고 몸에는 까만 복장을 한 안나 수녀가 환하게 함빡 웃으며 나타났다. 주위 사람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덥석 손을 잡고 어깨를 안았다.> 이렇게 만나서 식사도 하고, 다른 제자들과 더불어 드라이브도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이와 함께 <건강하고 밝은 사람보다 힘들어서 찡그린 얼굴들을 훨씬 많이 대하며 하루 여섯 시간 이상을 기도로 생활한다는 그가 성스러워 보였다.>고 제자 수녀의 희생과 봉사에 대한 외경심도 표현한다. 그래서 <오늘은 복을 많이 받은 날이다. 제자가 먼 곳에서 찾아와 반갑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제자를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밝히며 사도(師道)의 보람을 되새긴다.
교육 현장에서 그는 최선을 다하는 스승이었고, 교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제자들과 만나 기쁨과 보람을 나누며 살아간다. 또한 대학에서 새로운 제자들을 만나 교육자의 사랑을 베풀고 있으니, 삼락(三樂)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복 받은 교육자라 하겠다.
3. 가족에 대한 희로애락
수필은 사색과 철학이 녹아 있는 문학이다. 사소한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그 속에 철학을 담고 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터이다. 즉, 철학적이지 않은 글이면서도, 그 속에 철학이 담겨 있다면 최고의 수필이 된다. 중수필에 해당하는 철학적인 글에서도 구성과 표현의 멋에 의해 새로운 감동을 생성한다면 수필의 문학적 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김남식 수필가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훌륭한 교육자가 되어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귀감(龜鑑)이 되는 인물이다. 어렸을 때에는 형언할 수 없는 가난 속에서 살았다. 「한 점 고기」에서 그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산골 다랑이 논 너더댓 마지기에 어머니는 힘겹게 농사를 지으셨다. 남정네가 없어 퇴비도 마련을 못하고, 돈이 없어 비료도 구할 수 없어서 농사가 시원하지 않았다.>고 가난했던 환경을 있는 그대로 고백한다.
<아침에는 고구마가 더 많이 섞인 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점심은 거를 때도 많았다. 저녁에는 뚝뚝 수제비, 아욱죽 등으로 해결하는 때가 많았다.>고 회상한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호박을 썰고 조개를 넣어 끓인 맛깔스럽다는 칼국수도, 가을철에 문 걸어 놓고 몰래 먹는다는 아욱국도 싫어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대하는 보리밥이나, 노란 조밥 그릇에도 숟갈이 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전복죽, 고기죽 등 아무리 맛있는 죽이라도 별로 달갑지가 않다는 것이다.
가끔 고깃국을 끓일 때면, 그의 어머니는 고기를 한 점 떼어 입에 넣어 줌으로써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셨다. 그 사랑은 아들의 나이가 오십이 훌쩍 넘을 때까지도 지속되어, 며느리가 고깃국을 끓일 때에도 국솥을 열고 고기를 떼어서 아들의 입에 넣어주셨다. 어느 사이에 배웠는지 그의 아내도 고깃국을 끓일 때면 고기 한 점을 떼어 그의 입에 넣어준다. 그래서 그는 <고기 한 점을 씹을 때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 생각에 슬프다.>고 작고하신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그리움은 아버지의 부재(不在)에 기인한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을 하는 관계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시다가 가끔 집>에 들르는 분이셨다. 어린 시절에 그의 부친은 아들의 춤 솜씨에 대한 소문을 어디서 들으셨는지 사립문 뒤 모퉁이에 그를 붙잡아 놓고 춤을 추게 하셨다고 한다. 무명 바지저고리에 남색 인조 조끼를 입은 자신이, 빨간 주머니를 빙빙 돌려대며 춤을 추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이런 나를 껴안고 볼을 비비며 너털웃음>을 웃으셨다. 그는 <아마 아버지의 품에 안긴 것은 이것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었을 성싶다.>고 할 정도로 편모슬하에서 외롭게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별다른 말도 없이 훌쩍 떠난 후로 영영 돌아오지 않는 남편 생각이 날 때면, 녹음테이프처럼 그 장면을 들려주며 눈물>을 흘리셨다. 소식이 끊어진 남편을 평생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 생각을 하노라면, 지금도 그는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저절로 솟구친다고 밝힌다.
그는 어머니와 닮은 아내를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든다. 「만학도(晩學徒)의 소망」에서 그의 아내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오다가 이제는 작심을 한 모양인지 마침내 책가방을 메고 용감하게 배움의 길>에 나선다. <어렸을 때 배우지 못한 것이 평생토록 가슴에 응어리>가 되었다면서, 아내는 기어코 대학까지 졸업을 하고야 말겠다며 벼른다.
그는 성치 못한 아내의 몸이 염려되기도 하고, 앞으로 자신이 겪을 시집살이가 은근히 걱정되기도 하지만, <늘그막에 모두 다 내려놓아야 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 나도 욕심을 부려본다. 좋은 글을 쓰게 되는 어엿한 작가가 되고, 아내는 대학을 졸업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내 여생의 꿈이고 소원>이라고 생심(生心)이다.
노년이 되어도 쉬지 않고 정진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노년기를 맞아서도 지치지 않는 삶은 많은 독자들에게도 용기를 북돋우는 좋은 사례가 되리라 믿는다.
4. 수필 창작의 과정과 성취
수필은 예술 작품이다. 진실어린 이야기를 글로 풀어놓았다고 하여 훌륭한 수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과 표현을 통하여 새로운 감동을 주는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수필의 특성을 무형식성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형식과 구성이 자유스러울 뿐이지, 수필만이 갖고 있는 특성을 살려야 뛰어난 작품이 된다. 또한 언어로 빚는 문학작품이기 때문에 표현의 멋을 살리는 것이 필수 요건이다.
김남식 수필가는 청소년기부터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였다. 「빨간 동그라미」에서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춘원 이광수 선생의 「흙」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밤새워 읽은 후로는 시장 골목에 있는 헌 서점들을 드나들며 「유정」 「무정」 등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 시작하면서 문학청년의 꿈을 가꾸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그 때 문학에 소질이 있는 급우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 친구의 권유로 문예반에 참여하여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에 대한 그의 평가는 냉정하리만큼 준열하다. <3년간 줄곧 애를 써 보았지만 글다운 글 한편을 만들지 못했다.>고 겸양지덕(謙讓之德)을 보인다. 그 이후로도 소월의 시, 정비석의 소설작법을 독파하면서 문인으로서의 희망을 간직하고 노력한다.
그러나 교육자로서의 과중한 업무, 교직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의욕에 의해 문학 창작은 후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그러던 중에 정년퇴임을 하게 되고, 이 시기를 맞아 다시금 창작의 불길이 솟아올라 삶의 진실이 담긴 수필을 빚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을 갖지 못한다. <벼르고 벼르다가 모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마음에 두었던 공부를 시작했으나, 글 쓰는 능력이 부족해서 암담하기만 하다. 역시 식견이 부족하고 감정이 순화되지 못한 때문인 것을 절감>하였다고 실토한다. 그러던 중에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사범학교 때 이 과목을 담당하셨던 스승님께서 가끔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그 분이 원로 수필가 원종린 선생이시다.
<수필은 소설처럼 재미있게 써야 독자들이 읽어 주게 마련이지. 그래서 어떤 이는 수필 대신 소필(小筆)이라고도 하지 않았는가. 더 재미있게 써서 독자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네. 꾸준히 읽고, 쓰고, 다듬게. 목공예를 다듬고 또 다듬는 심정으로 말이지. 수필은 한방의 탕약처럼 문학성으로 뭉친 짧은 글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네. 또, 철학적이지 않으면서도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하는 법도 배워야지.>
이처럼 열심히 가르치는 스승과 열심히 배우는 제자가 되어 아름다운 문학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힘쓴다. 그리하여 문학전문지 《문학사랑》 수필부문 신인작품상에 당선, 이어 《수필문학》에 작품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한다. 등단한 제자에게 스승은 <이제 정식으로 등단을 했으니 홀로 서보라>고 권면한다. 이러한 권면과 지도에 힘입어, 그는 표현의 멋과 철학이 담겨 있는 훌륭한 수필을 창작하여 왔고, 현재도 쉬지 않고 창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좋은 수필을 지속적으로 창작하리라 믿게 한다.
5. 김남식 수필가 다시 보기
김남식의 수필 작품은 멋진 표현과 눈물이 날 정도로 절절한 감동을 담고 있다. 「찢어진 사진」은 친척에 대한 회상이 중심을 이루는데도 표현이 뛰어나다. <오늘은 오랜만에 보문산에 올랐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은 서로들 자기 자랑을 늘어놓느라고 여념이 없고, 나무들은 물이 올라 연두 색깔을 온 산에 뿌린 듯하다. 모두가 활기차고 생동감에 불타오르는 느낌이다.> 이러한 서경묘사에서 자연과 합일하는 그의 아름다운 내면을 만날 수 있다.
「현충원(顯忠園) 소묘(素描)」에서도 묘사를 통해 형상화된 절실한 슬픔을 맛보게 한다. <실바람은 묘비들 뒤에 숨어 있는 마음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 사이를 짓궂게 뛰어다니며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다고 묘사한다. 이어서 그는 <소복을 한 여인이 하염없이 묘비를 더듬는다. 어깨가 잔잔히 흔들리는데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 줄기는 하얀 옷깃을 적셔댄다. 등에 업힌 아기는 겁에 질린 얼굴로 엄마를 따라 울어댄다. 정문 쪽에서 느닷없이 현충원이 떠나갈 듯한 통곡 소리가 들린다. 등 굽은 노파가 묘비를 부둥켜안고 몸부림을 치는데 남편은 장승처럼 서서 눈만 껌벅거린다.> <멀리 내팽겨진 빨간 보따리와 밤색지팡이도 덩달아 훌쩍거리는 기색이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머리를 풀어 헤치고 부르르 떨고 있는 것 같고, 땅 위의 소나무도 제 그림자와 함께 흐느끼는 모습으로 비춰진다.>라고 묘사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눈물을 짓게 하는 마력을 보인다.
그의 수필 중에서 애상적 정서를 강렬하게 환기하는 작품은 「거기, 그 곳」이다. 어머니의 산소 옆에 아들의 산소가 나란한데, 자신과 아내가 찾아가서 느끼는 오열(嗚咽)은 비할 바가 없을 듯하다.
<가파른 비탈길을 숨차게 오르는데 꿩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 날아간다. 왜 이제 왔냐며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진달래는 삐죽삐죽 울음을 머금은 듯하다. 어머니에게 먼저 다가간다. 눈물이 나오려는데 울먹이는 아내를 쳐다보려니 더욱 서글퍼진다. 호미로 봉분 속에 깊이 뻗은 아카시아 나무뿌리를 캔다. 가시달린 나무가 어머니 마음을 상하게 할 것 같아 뿌리까지 후벼 파서 뽑아낸다. 아들에게 간 아내의 울음소리를 듣노라니 가슴이 미어진다. 어머니 앞에 털썩 주저앉으니 하염없이 눈물이 나온다.>
이러한 슬픔을 감내한 김남식 수필가는 장애인을 위한 봉사에도 앞장서서 인간승리의 표상으로 자리한다. 「따스한 수영장」에 들어선 그는 <탈의실에서 옷을 벗으면서 ‘나는 남에게 도움만 받아왔지 도와준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이제부터 작은 일이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목욕탕에 들어서자마자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
장애인 수영장에 들어오는 것이 처음에는 서먹서먹하고 어려웠는데, <지금은 이곳에서 목욕도 하고 수영도 하며, 불편한 사람들의 몸을 씻겨 주게 되어 기쁨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이곳에 올 때마다 생생한 삶의 감동을 맛보며 보람되게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고 봉사의 기쁨을 밝힌다.
이처럼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김남식 수필가는 앞으로도 새로운 감동을 생성하는 수필을 수없이 빚을 것 같다. 어떠한 일에든지 최선을 다하는 그의 성품에 따라 진정으로 가치 높은 작품들을 빚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이러한 믿음으로 작품 감상을 맺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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