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주와 관상은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라는 문제 부터 생각해 보자.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할 수도 없고 100% 맞다고 하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거의 믿지 않는 편이고 어떤 경우는 맞을 수도 있어도 그렇다고 사주와 관상을 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선 사주는 생년원일시를 가지고 판단한다. 극단적으로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가 같다고 해서 운명이 같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소리다. 그러나 모든 생명 체는 음양의 기운을 받아 살아 가는 것이니 그런 점에서는 같은 날 같은 시기에 태어난 사람은 신체적 조건이 약간의 유사성은 있을 수 있다. 극단적으로 그 시기에 못된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었다면 같은 시기에 태어난 사람은 같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런 우연 정도의 유사성을 가질 것이다. 사람은 엄마 아빠를 많이 닮는다. 아무리 같은 시기에 태어 났어도 엄마 아빠가 다르면 신체적 조건이 다르고 요즘으로 말하면 경제적 조건이 다른에 어찌 운명이 같을 수 있겠는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아도 맞을 확률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사주는 매우 신빙성이 낮다고 본다.
인생이란 잘되거나 못되거나 그저그렇거나의 3 분류로 나눌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운명은 셋중에 하나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 하면 3분의 1은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사주를 안보고 발바닥을 복 이야기 하거나 머리카락을 보고 이야기 하거나 주민등록 번호를 보고 지껄여도 이정도는 맞출 수 있다. 특히 점괘는 맞추면 용하다고 하고 틀리면 별로 시경쓰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맞춘 경우만 사라들이 이야기 하여 마치 사주가 용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관상이다. 나는 굳이 사주와 관상 중에 어느 거시 더 정확히 사람의 팔자를 알수 있냐고 물은다면 당연히 관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관상은 결국 생긴 모습과 표정인데 이는 사람의 내면적인 감정과 생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 대한 마음 가짐과 마음씨 까지도 인상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상가는 많은 사람을 보아 왔기 때문에 숙달이 되어 사람의 얼굴을 보고 삶의 질을 판단하는데 다른 사람보다 능숙할 것이다. 장사를 오래 하다보면 저 손님이 물건을 살것인지 안살 것인지를 들어 오는 모습만 보아도 안다고 한다. 바로 관상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어디에 무슨 점이 있으면 팔자가 어떻고 하는 것은 좀 웃기는 것이고 관상도 형식적인 외모나 구조적인 틀보다는 그 사람이 풍겨 내는 이미지나 느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선한가 악한가는 골격이나 생긴 모습보다는 눈동자나 눈모양 입모양, 말 소리 느낌이 더 중요할 것이다. 눈빛이 안좋고 말을 방정하게 하면 이건 다른 사람으로 부터 인정받기 어려운 사람일 것이고 출세는 이미 튼 사람이다. 보통사람도 인상을 보고 사람을 판단해 보라고 하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한 80%는 맞추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의 70-80%정도는 대게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맞출 확률이 매우 높다. 즉 관상은 상당히 일리가 있으나 꼭 전문가라야 잘 맞추는 것은 아리라고 본다. 보통사람 보다 약간 잘 맞출 것으로 보인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 사 잘되고 못되는 것은 실력보다 운으로 좌우된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틀린 경우보다 맞는 경우가 더 많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7이라는 숫자가 3이라는 숫자보다 크기는 한데 꼭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 7인 운은 결국 통제 불가능한 숫자다. 운은 알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도 없다. 대응책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당신은 교통사고가 날 운명이나 집안에 틀어 박혀 있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집에 있으면 병들고 집이 내려 앉을 지 누가 알 것인가? 결국 운칠기삼의 운칠은 아무 의미가 없는 uncontrollable한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인생을 제대로 살려면 기삼에 집중해야 한다. 기삼은 통제 가능한 것이다. 나의 노력에 의하여 달라질수 있는 것이다. 큰 숫자와 중요한 숫자는 다르다. 7은 크지만 중요하지 않고 3은 작지만 중요한 것이다. 인생을 대책없는 운을 바꾸려고 허튼 노력이나 수작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대책을 세우고 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기에 처 가치를 두고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길이다.
사주나 관상을 지나치게 믿는 것은 남에게 내 인생을 맏겨 보는 것이나 같다. 사주 관상을 보는 사람을 믿고 세상을 살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고 땀흘리며 열심히 살면 운명이 바뀌게 되어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노력한 만큼 행복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타고난 운만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굳이 자신이나 남의 운명을 알고 싶으면 본인의 사주나 관상보다 부모 형제나 가정 환경, 학교 성적이나 적성 검사표를 보고 그사람 본인의 사고 방식을 알기위한 대화를 하면서 미래를 점쳐 보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할 것이다.
2015년 7월 18일 조현익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