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잘 다녀왔습니다.
얼마나 많이 우려하셨습니까?
'저거 못 가면 어째?'
그러나 아주 잘 다녀왔습니다.
군산과 부안. 새만금 방파제로 이어지는 땅이지만 역사나 문화적으로는 공통의 것이 그리 많지 않은 두 고장을 1박 2일로 다녀왔습니다.
여행의 테마도 확연히 다르게 잡았습니다.
군산에서는 역사 유적 사이를 거닐고 부안에서는 태고적에 생겨난 절경을 감상했습니다.
'1930년대 시간 여행'
이건 군산 시내에 걸려있는 프랭카드 문구입니다. 1930년대 일제가 자국으로 쌀을 실어나르기 위한 수탈 항구로 조성한 군산시내의 신흥동 월명동 일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때의 식민지 흔적이 오늘날은 모두 근대문화유적이 되어 군산의 관광 효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일제의 적산가옥으로서 등록문화재가 된 가장 대표적인 곳, 바로 신흥동일본식가옥입니다. 문화재가 되기 이전에는 히로쓰가옥 혹은 김혁종가옥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문화재적인 가치 말고도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 수없이 많은 영화가 촬영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군산에서 돈을 많이 번 일본인 히로쓰 게이사브로는 이 집에서 대대손손 살려고 했나 봅니다. 아래층 위층에 방이 하도 많아서 해설사에게 물어보니 자식들을 모두 데리고 살려고 이렇게 많은 방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군산 월명동, 신흥동 일대에는 수없이 많은 일본식 가옥이 남아 있다보니 거리 풍경 자체가 일본풍입니다. 문화재도 아닌 '보신탕 전문, 늘푸른 가든'도 집모양이 이런 식입니다.
1930년대 당시의 일본식 가옥을 문화재로서 보존하는 것을 넘어, 아예 일본식 건물을 지어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기까지 합니다.
'고우당'
숙박과 커피점, 우동집, 사케주점까지 겸한 이곳은 작년 11월 개장 당시만 해도 곱지 않은 시선이 꽤 있었다고 하던데, 아 글쎄 이눔이 그만(?) 대히트를 치고 말았습니다. 이국적이고 깨끗한 시설에 저렴한 요금까지… 지금은 최소 한 달 전에는 예약해야 이용이 가능합니다. 자 한번 둘러 보실까요?
카페지기도 '여유있게' 2주 전에 예약 전화를 했습니다.
'9월 7일에 스무 명 예약하려고요!'
'9월 7일은 남은 방이 하나도 없습니다. 요즘은 한 달 전에는 예약하셔야 돼요.'
휴가철 지나면 조금은 사정이 나아질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꿩 대신 닭'으로 택한 곳이 전통을 자랑하는 항도장여관.
1970년대에 군산을 찾은 VIP들은 항도호텔에서 묵었다고 합니다. 건물 내외부에는 아직도 그때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어느덧 여관으로 간판을 바꿔달았습니다. 물론 요금도 여관 요금입니다. 오래된 향나무가 호텔의 내력을 말해줍니다.
문득 '눈높이를 낮춰야 먹고 산다'던 그 분의 목소리가 스칩니다. 아 왜 있잖아요? 눈 작고 목 쉰… 마 '그 분'.
GoldStar 마크가 선명한 구식 에어컨은 디스플레이인가 봅니다. 바로 위에 새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근대역사박물관에 있는 이발소 연출… 이 아닙니다!
지금도 운영하는 이발소입니다. 항도장에서 숙박하면 아래층 목욕탕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데 목욕탕과 연결된 공간에 이런 이발소가 있습니다. 목욕하다 순서가 되면 타올 하나만 살짝 걸친 채 저 의자에 앉아 머리를 깎습니다. 진짜 70년대 풍경 그대로입니다.
지은 지 100년 된 역사와 전통의 임피역.
지난 2008년 이후엔 이규석의 노랫말마따나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입니다. 역으로서의 기능은 하지 않고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그냥 등록문화재일 뿐 간이역도 아닙니다.
특이한 건 역사 옆에 있는 재래식화장실도 함께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점입니다. 문화재이므로 사용하지 말라는 간판이 있는데도 누군가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제가 분명 확인했습니다. 저건 일제시대의 그것(?)이 아닙니다.
역 주변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는데 채만식의 소설을 형상화한 1:1 사이즈의 청동상이 설치돼 있습니다. 딤플 님 내외와 한잔 했습니다.
군산의 마지막 코스는 군산수산물종합센터입니다. 우리 회원들 여기서 '한 쇼핑'했습니다.
카페지기가 커미션 받고 이리로 몰고 온 거 아닙니다. ^^
군산에서 3끼를 먹었습니다. 먼저 전라도 반찬으로 꾸민 이북 음식점 '압강옥'
자, 이렇게 방짜유기 찬그릇에 반찬이 깔리고…
저 차림표의 것들을 차례대로 먹습니다.
먼저 복튀김 되시겠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이집 음식맛이라기보다는 재료맛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복어를 제대로 튀겨놓으면 당연히 맛있지요.
요건 진짜 맛있습니다.
일단 고기가 상품이겠지요.
은은한 숯불향이 기가막힙니다.
체인점으로 흔히 볼 수 있는 광릉불고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맛은 비교가 안 되지요.
대표적인 이북 음식, 어복쟁반.
떡과 만두가 섞여 있습니다.
국물 맛이 깔끔합니다.
이북 음식점에 왔으니 아무리 배가 불러도 냉면은 먹어줘야지요.
'근데 평양냉면은 아무리 먹어도 아직 입에 안 붙더라고요.'
메밀에 고구마전분을 혼합해 놓은, 당면 비슷한 면발입니다. 냉면 좋아하는 사람 중에 압강옥 냉면 매니아도 꽤 됩니다. 암튼 저는 아직 평양냉면을 논할 수준이 못 되는지라, 흠흠!
압강옥의 '압강'은 압록강을 말합니다. 주인이 압록강변 출신이랍니다.
아침으로 먹은 일해옥의 콩나물국밥. 시원한 멸치국물 맛입니다. 다른 분들은 북어국물 맛이라데요.
메뉴는 이거밖에 없고요, 새벽 4시부터 낮 3시까지만 영업한데요. 예약은 안 받아요. 아니 못 받아요.
군산의 마지막 식사는 빈해원에서 짬뽕, 짜장면, 탕수육으로 했습니다.
일정표를 보시면 알겠지만 진주집의 고등어김치찜을 먹으려고 예약했었는데, '가던 날이 장날' 진주집의 사적인 사정으로 대신 선택한 곳이 빈해원입니다.
음식 사진 안 올린 이유 아시죠? 비주얼이 그냥 누구나 알고 있는 짬뽕, 짜장면 그대로입니다.
맛도 평범합니다. 그래도 짬뽕은 국물맛이 칼칼하고 개운한 것이 먹을 만했지만 이 큰 홀을 모두 채우고 줄까지 서는 이유를 '진정'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짐작을 하자면,
이거!
드라마 '빛과 그림자' 무대가 빈해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1930년대를 표방하는 군산시내 음식점답게 그 많은 계산을 모두 주판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카드는 돼요.' ^^
'이성을 잃어버린 빵집'
제 표현입니다. 어찌 빵집이 이럴 수가 있답니까? 이름하여 이성당.
타이틀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국 3대 빵집이라고 칭해놓은 안동의 맘모스제과, 대전의 성심당도 이렇게 줄을 서지는 않습니다.
이게 아침 7시 30분 풍경입니다. 정확히 문 여는 시간.
예전 초등학교 때 우표 사려고 새벽부터 우체국에 줄 선 적은 있지만 빵집 문 열릴 때 줄 선다는 얘기는 들은 적도 없고 본 것도 처음입니다.
이성당의 최고 인기 메뉴는 앙금빵(단팥빵)과 야채빵, 그리고 팥빙수입니다. 빵 나오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는데 콘서트장에서나 볼 수 있는 줄까지 쳐집니다. 1인당 살 수 있는 구매 개수도 제한합니다.
군산 인구의 절반이 일본인이던 1920년대, 그들이 좋아하던 단팥빵을 만들어 팔던 이즈모야제과가 생겨났고 패전과 함께 일본인 주인은 부랴부랴 가게를 처분하고 본국으로 도망갔다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그래서 간판에는 'SINCE 1945'라고 적혀 있는가봅니다.
1930년대 시간 여행, 군산.
고우당에서 숙박 못 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자 이제 부안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아, 졸려! 내일은 출장 가야 하니 이만 자야겠습니다.
국립공원 변산반도의 절경을 감상한 부안 여행 후기는 주말에 올리겠습니다.
COMING SOON!
첫댓글 기어이^^ 다녀오셨군요.. 날씨가 좋아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는데, 뭐 그리 걱정안해도 될 만큼 잘 다녀오신것 같습니다.. 가기전 구성 멤버를 보니 딤플님 내외분을 제외하곤 거의 뉴페이스시던데.. (오송댁도 날아^^ 가시고. ㅋㅋ) 언제 한번 산살구 여행 동창회? 하면 인원 제법 되겠습니다.. ㅋ
드림패밀리 고우당 한번 다녀오셔서 숙박체험기 올려주세요. ^^
네~~군산이 이렇게 이국적인 도시인줄 정말 몰랐습니다. 군산이 아닌 1박2일동안 일본을 다녀온것 같습니다. 암튼 잘먹고. 잘 보고. 잘 자고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아차! 줄 서는 빵집 이성당을 빼먹었당. 주말에 보충할게요. 주말 바쁘네 ^^
멋지네요 ㅜㅜ 여긴 진짜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욤
줄서는 짬뽕집 복성루는 아예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제프 님이 군산 사람들은 여기 안 간대요.
군산 여행 대박을 축하드립니다..부럽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