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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내가 살던 곳은 쀼또市(Puteaux)이다.
쀼또는 파리의 서쪽 외곽인데 중심가에서 지하철 1번선을 타고 약 20분 거리이다. 세느강을 건너자 마자 바로 있다. 그러니까 우리로 따지자면 영등포나 여의도 쯤 되겠다. 쀼또는 라데팡스(La Defense)란 1960년대 말부터 개발된 신시가지를 포함한다. 파리 지역에서는 라데팡스 만이 10층 이상의 "고층건물"을 볼 수 있다. 모더니즘의 시초. 우리 학창시절 명동이나 신촌에 라데팡스란 이름의 국적불명 경양식집이나 옷집이 꽤 유행했는데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라데팡스
서쪽 쀼또가 북쪽 몽마르트르와 함께 파리 인근에서는 유일하게 꽤 높은 언덕이라 - 그래봐야 해발 80미터 남짓 - 옛부터 파리를 방어(디펜스)하는 요충지로서 전쟁도 꽤 많이 했던 모양이다. 아마 대서양에서 세느강을 거슬러 몰려오는 "해적들", 켈트족이나 바이킹족과 돌싸움을 했겠지. 옛날 조선이 왜구에게 부산의 일부를 왜관으로 내주어 살게 했던 것처럼 노르만디 지방도 바이킹족들에게 내어준 땅이다. 이후 그 노르만(North man에서 유래 즉 北쪽 사람)들이 색손을 정복하고 영국의 시조가 된다...
쀼또의 언덕 위에는 옛 풍차가 있다.
쀼또는 반경 1키로미터에 인구수 3만5천명이니 서울에서는 서초구 방배4동 그 크기에 그 인구수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엄연한 市이다. 비록 쀼또도 파리 지역에 포함되지만 엄밀한 파리市는 옛 城內만을 일컫는다. 우리도 예전처럼 서울을 사대문안 만으로 한정했으면 좋겠다. 인구 몇만명 이상 동네는 모조리 시로 만들면 좋겠다. 신촌이나 용산이나 마포나 강남 등등은 신촌시 용산시 마포시 강남시 등등으로 분리 승격 독립을 시켜버렸으면 좋겠다. 주소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123번지 라고 쓰기 보다 대한민국 방배시 123번지라고 쓴다면 얼마나 간단하고 절약인가. 일제의 잔재의식 때문에 市라는 말을 붙이기가 미안하다면 "마을"이나 "골"이란 옛 말을 쓰자.
무엇 때문에 "특별시"도 모자라 "직할시"에다 "광역시"를 만들고 반장 위에 동장, 동장 위에 구청장, 구청장 위에 시장, 시장 위에 도지사처럼 다단계 점조직 반민주주의 체제를 조장하는지 몰라. 서울의 횡포. 서울보다 더 서울이 되고 싶은 인천의 질투. 아예 대한민국 전국토를 서울시로 불러서 마치 쓸개도 없는 저 도시국가 싱가포르나 홍콩이나 모나코처럼 만들려는 수작은 아니겠지. 국민을 시민화하여 나라와 역사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음모일까. 인구의 도시집중은 필연적으로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를 낳는다. 그것이 프롤레타리아를 대량생산한 산업혁명의 진짜 얼굴. 가진 자의 자존심은 없는 자들이 많을 수록 충족된다. 옛날 독재한다고 할 때는 그린벨트라는 것이라도 있더니만. 시골촌놈들 서울내기 만들어 주는게 무슨 큰 선심쓰기라도 되는 듯이 공약을 남발한 결과란...
쀼또는 콜시카 조폭이었던 우익꼴통 체칼디가 지난 30년인가 40년인가 동안 시장을 해먹다가 몇년전 부터 자기 딸내미에게 시장자리를 물려주었다. 혼자서 평생 동네 골목대장 노릇한 것이야 제 능력이니 그렇다손 치지만 꼴값에 세습제까지. 자칭 "만유인권"의 주창자 프랑스의 민주주의 실태가 바로 이런 것이다. 하기야 자칭 "자유민주"의 수호자 미국의 부쉬가 알콜중독 양극성장애 아들을 대통령도 시켜주는 판국이니. 그러니 북한의 김일성이 자기 아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김정일이 또 3대째 황태자를 점지하느니 마느니 어쩌구 저쩌구 전혀 흉볼 일도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서울보다는 대마도에 더 가까운 경상도 문딩이들에게 유린당하고 있듯이,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는 콜시카라는 프랑스 보다는 이태리에 더 가까운 작은 섬 출신 깡패들에게 점령되어 있다. 영화 레옹에도 나오는 것처럼 콜시카의 인간청소업자 (cleaner) 즉 살인청부업자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시칠리아의 코사 노스트라가 조직의 묘를 보인다면, 콜시카의 킬러들은 프랑스 답게 개인기가 뛰어나다고도 하겠다. 쀼또 시장 체칼디는 프렌치 커넥션 마피아 대부 파스콰 옛 내무장관의 심복이었다. 프랑스의 정치 비자금은 모두 킹 메이커 파스콰의 손을 거쳐야만 했다. 파스콰는 레지스탕스 출신이라고 알려졌지만, 그것은 부업이고 실제로 본업은 마피아였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레옹... 쥐박이 좀 염산 통 속에 집어 넣어줄 수 있니?
이차대전이 끝나고 소위 나치 협력자에 대한 대규모 숙청(epuration)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주로 진보 측 사람들은 친일파를 소탕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 때문에 프랑스의 나치 청산을 너무 미화하고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러나 프랑스에서도 친나치들의 청소는 철저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드골 장군을 따라 영국에 망명했던 해외파와, 외국으로 도망가지 않고 프랑스 내에서 레지스탕스를 계속하던 국내파(거의 대부분이 공산당계 빨치산 - partisan)의 갈등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파(김구), 하와이파(이승만), 국내파(박헌영등 남로당), 소련파(김일성)로 나뉘어 복잡하게 싸우던 것과 비교된다. 프랑스에서도 해외파는 국내파를 제거하기 위해 나치 청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사회당의 미테랑 전 대통령은 레지스탕스 출신으로서 드골의 오래된 정적이었다.
우리의 미흡한 친일 청산이 해방 60년을 넘은 오늘날까지 불화의 씨앗으로 남아 있듯이, 프랑스에서도 네오나치 극우파를 탄생케 하는 요인이 된다. 두 나라의 경우 다 친일과 친나치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원인은 바로 뿌리깊은 관료주의 사회였고, 무엇보다 해방이 자신의 손이 아닌 남의 나라 미국에 의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독립이란 글자 그대로 혼자 일어서는 것이다. 남에 의해 세워지는 독립은 가짜의 독립이며, 예전에 이미 쏟았어야 할 피를, 비겁이든 나태이든, 쏟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기필코 그 배의 배로 피를 쏟아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진리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덜 아프다. 대한민국은 역사의 징벌을 영원히 유보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나치 숙청의 실패는 30년후 1970년대 말 바더 마인호프의 테러리즘으로 재발한다.)
파스콰는 해외파와 국내파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와 비자금과 정보의 힘으로 살아남은 전형적인 정치꾼이었다. (우리나라 판사 검사 순사들의 경우처럼 독일 점령하 프랑스 비시 정권의 경찰과 사법부도 해방 이후에 거의 바뀌지 않았다. 파스콰는 레지스탕스 시절부터 경찰 정보망을 장악했던 사람이다. 미테랑 이후 시락 대통령이 사법부 개혁을 선포하였으나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파스콰의 후배이자 내무장관이었던 조폭 변호사 사르코지가 시락을 이어 프랑스 대통령이 되었다. (시락의 정치적 죽음이자 드골주의 즉 보수민족주의의 끝.) 잘되가는 집안이다.
친미 사르코지의 대통령 당선에서 제일 기뻐했던 사람은 당연히 텍사스 양아치 부쉬였다. 참 웃기는 것은 대통령 되기 전 프랑스에 발끝 한번 대보지도 않았던 부쉬가 영어란 한마디도 못하는 사르코지를 좋아한다는 것. 반면 젊은 시절 유학할 때 미국 여학생과 동거까지 했었다는 시락은 부쉬와 이를 박박가는 철천지 원수... (비록 시락도 우파지만, 드골 처럼 반미랄까.) 그러니 영어 못한다고 꼭 "출세"를 못하는 것은 절대 아님. 괜히 어린애들 혓바닥 잘라붙이고 이역만리에 홀로 유학보내 놓고 기러기 아빠로 저녁마다 구슬피 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상이 쀼또와 프랑스의 간추린 정치 사회 역사였습니다~
쀼또라는 이름은 샘(puits)물(eau)이란 어원에서 나왔다고 한다. 16세기에 세워진 우물과 성당. 유럽의 거의 모든 마을은 우물을 가운데 둔 광장이 중심이다. 그 광장을 둘러싸고 한 쪽에는 성당이 있고 맞은 편에 시청 - 마을회관 - 과 그 옆으로 초등학교와 우체국, 반대 편에는 선술집들이 있는 것이 원칙. 그런데 쀼또성당 앞에는 베트남계 중국집과 이태리 피자집이 있다...
쀼또의 중심지에 있는 자동차 딜러. 십여년전 부터 한국차만 취급하고 있다. 처음에는 대우였더니만 몇년전 갑자기 쌍용으로 바뀌었고 요즘엔 현대와 쌍용을 같이 판다. "뉴 섹시 게츠"라는 선전문구가 뽀뽀 무늬에 둘러싸인 것이 보인다. 한국차들은 주로 섹시한 - 섹시하고 싶은 - 여성고객을 노린다... 사오년전 대우 마티즈를 사러 갔다가 - 당시 우리돈 7백만원 - 너무 비싼 것 같아서 15만키로에서 메타가 멈춰버린 중고 뿌조 205를 70만원주고 샀다. 당시 선전문구가 "마떼 마티즈"였다. "마떼"라는 말 또한 응큼하게 여자 가슴이나 엉덩이를 "떡"치도록 쳐다본다 란 뜻이다. 그러니까 마티즈에 일단 타면 섹시하지 않은 여성들도 남성들의 눈초리를 끌 수 있다는 야한 구호가 되겠다. 그런데 한국에는 왜 그렇게 "안" 섹시한 무식하도록 엄청나게 큰 차들만 파는지 몰라...
부모를 떠나면 불효가 후회되고 외국에 살면 고국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한국상품을 보면 반갑고 자랑스럽다. (그러나 이명박 이후에 한국인 임이 부끄러워졌다. 그것이 이명박의 가장 큰 죄이다.) 내게 있어서 또 많은 쀼또사람들에게도 쀼또의 얼굴은 바로 한국 자동차 가게이다. (더구나 쀼또는 20세기초 프랑스 자동차 공업의 요람이었다.)
동네 슈퍼마켓 "모노프리". 서울에도 있었던 "프랭땅" 백화점의 체인. 프랑스의 유명한 재벌은 둘인데 하나는 "프랭땅"의 피노이고 또 하나는 "루이뷔똥"의 아르노란 사람이다. 둘이서 전 세계의 "명품" 브랜드 - 화장품 구두 옷 술 등등 - 를 독점하고 있다. 우리의 재벌이 공업에서 시작했다면 프랑스의 재벌들은 유통 상업에서 시작했다. 슈퍼체인 "까르푸"도 대표적이다. 물론 이들이 재벌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본업인 공업도 상업도 아니고 정치와의 결탁과 부동산 투기. 한국이나 프랑스나 그 어느 나라나 졸부되는 원칙이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먼저 도둑질한 놈(선진국)은 나중 도둑질하는 놈(후진국)에게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며 부패가 어떻다느니 인권이 어떻다느니 떠든다. 근래 우리나라의 "부패지수"가 OECD국가중 하위라는 둥 어쩌니 저쩌니 하는데, 자아비판이야 나쁠 것 없지만. 솔직히 그런 자기비하를 하고 사대주의에 물들려는 반주체적 뒷배경이 무엇인지는 정말 의심스럽다.
마을기차. 여름철엔 인근 쀼또 섬의 수영장(종합운동장)까지 마을기차가 운행한다.
쀼또극장. 파리시내의 오페라 등과 견주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극장"이지만 영화나 연극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동네 노인네들을 위해 흘러간 가수들이나 코메디안들이 와서 공연해주는 곳이다. 가끔 동네 학교들의 학예회도 열린다. 왼쪽 담은 초등학교.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 1층은 카페인데 쀼또에서는 유일하게 저녁때 문을 열음. (저녁 공연이 끝난 다음 출출한 손님들을 위해서 금요일만.) 웬만한 가게들은 7시면 다 문을 닫음.
우리 집 쪽으로 들어가는 길. 우리 집부터 라데팡스 즉 신시가지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 길은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고층아파트와 대조를 이룬다. 저 뒤에 탑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우리 아파트 동이다.
옛 빵집 - 불어로는 "불랑제리"라고 한다. 불랑제리는 바게트빵 식빵등 달지 않은 빵을 만들어 파는 곳이고 "파티스리"는 케이크 과자 - 즉 단 맛의 빵 - 을 만드는 곳이다. 참! 유럽에서는 "단팥빵"이나 "곰보빵"을 여태껏 못봤다. 그런데 한국의 파리바게트에선 단팥빵도 곰보빵도 팔더라. 대부분 불랑제리와 파티스리 같이 겸업. 이 집도 간판 하나는 불랑제리이고 또 하나는 파티스리를 붙여놓고 있다. 그러나 십년 넘게 이 동네 살았지만 한번도 이 집 문열린 것을 못봤다. 망한지 오래된 모양이다. 저 길 끝에 성당 일부가 보인다.
문닫은 자동차 정비소에 그려진 만화와 낙서.
내 단골 호텔 - 친구나 친척이 오면 이곳 신세를 진다 - 과 일층의 피자집. 피자 한판 7.5유로 - 9000원. 재재작년까지만 해도 호텔에 별이 없었고 40유로 받았었는데 내부수리를 좀 하더니만 별 두개로 승격을 하고 60유로를 받는다. 독일계 배낭여행객이나 단체관광객이 주 손님. 시설은 형편 없다. 푹꺼진 침대에 고장난 수도꼭지... 하이야트나 힐톤은 아니니까. 그러나 외국여행을 다닐때는 이런 동네호텔 - 여인숙 - 이 너무 정답기만 하다. 저녁때 아래 식당에 내려와 동네사람들과 잡담을 나누는 것도 진짜 여행의 묘미이다.
호텔 옆 중국사람이 하는 일본식당 "나고야". 무지무지 맛없는 식당. 미소시루(된장국) 외에는 별 입맛에 맞는 것이 없다. 파리 시내의 오페라 근처 정통 스시집의 다수는 재일교포 출신들이 운영한다고 한다. 쌩또노레 라는 보석상 많은 거리에 유명한 라면 가게가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오사카 깡패 출신의 재일교포 무슨 기무라상이었다. 그러나 싸구려 일본식당은 대부분 중국사람들 것이다. 요즘은 초밥집이 체인화되어서 마치 피자처럼 배달이 된다.
옆의 단독주택은 일반의(가정의) 병원이다. 아버지도 마누라도 아들도 의사인 좌파 집안. 우리 말로는 "강남좌파"이고 프랑스 말로는 "고쉬 까비아" - 비싼 캐비어 상어 알을 즐겨먹는 이름만 좌빨이라는 뜻. 지금은 아들 혼자서 병원을 운영. 아버지 의사는 시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보기좋게 낙선. 우리 딸에게 아무 주사나 놓을까 겁도 나고 해서, 연설회에 한번 참석하고 찬조금 이만원인가 뜯겼지...
내 단골 담배가게. 신문도 판다. 하루에 두세갑이상 담배를 피웠다. 1999년 1월 부터 담배를 끊었으니 이제 10년째. 10년은 끊어야만 담배 생각이 안난다고 한다. 담배연기로 날아간 재산이 얼마나 될까? 이 가게에 갖다 바친 돈만 해도 엄청날 것이다.
오른쪽 꽃가게 간판(Fleurs) 바로 위 3층 창문은 단골 치과이다. 자그마한 40대의 베트남계 여의사인데 그렇게 솜씨있고 자상한 치과의사는 처음 봤다. (원래 프랑스 치과의사들은 무식하고 솜씨가 없다.) 한국에서 이빨 좀 치료하려면 배비장 이빨 빼듯 무조건 빼고 비싼 임플란트하라고 강요하는게 겁이 나서 치과도 못가고 끙끙댔는데. 어렸을때 베트남에서 보트피플로 도망온 사람이기에 우리 한국에 대해 동경과 반감이 교차하는 묘한 감정을 갖고 있다... 프랑스인 남편과 사이에 2녀. 이삼년에 한번씩 고향에 가본다고 하고 남편 직장만 생긴다면 고국에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러면 난 이빨 치료하러 베트남까지 가야 되나?
물이 귀했던 옛날 마을의 공동빨래터. 1950년 이차대전 직후까지만 해도 이런 도시형 건물(아파트)에 상하수도가 없는 집이 많았다. 변소는 아래층에 하나. 공중목욕탕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도 70년대까지는 집안에서 목욕할 수 있었던가. 유럽제국! 그러면 찬란한 문명과 도달할 수 없는 동경의 대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불과 십년 내지 많아야 삼십년 차이이다. "유서깊은" 파리의 대부분 건물들이 1920년대 일차대전 이후 건축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70년대 건설의 바람이 불었을때 이미 파리는 "고색창연"한 도시가 되었다. 그러면 우리 서울은 앞으로 2020년에 "고색창연"하고 "유서깊은"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아마 콩크리트 쓰레기에 덮혀서 헤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오늘날의 공동빨래터 - 자동세탁소. 세탁기에 동전 몇개 넣으면 빨래가 된다. 총각시절 많이 이용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집에다 세탁기 사놓고 쓰는 것은 참 불필요한 것 같다. 여자들의 허영심이다. 옛부터 그랬듯이 공중 빨래터나 목욕탕에 가면 이웃을 만나 온갖 수다를 떨 수 있다. 이런 곳에선 자기 팬티까지 꺼내 보여야 하는 상황인 까닭에 무언가 친근한 교감이 생기게 된다. 아파트 생활이 시작되고 샤워와 세탁기가 보급되면서 이웃과의 단절이 시작된다. 도대체 은나노 퍼지 스팀 세탁기를 사놓고 왜 세탁소 배달은 시키노?
자동세탁소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분명히 혼자 살 터이기 때문에, 별 재주가 없더라도 외로운 동네 아가씨도 아줌마도 할머니도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쉽게 "작업"할 수 있다. 빨래 좀 지켜봐달라고 부탁도 하고. 침대카버나 와이셔츠 좀 개켜달라고도 하고. 도와줬으니 고맙다고 차 한잔. 무거운 빨래 집 앞까지 들어다 주기도 하고. 그 집에서 저녁도 얻어 먹고. (그 이후의 전개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김.) 미국의 뉴욕만 해도 자동세탁소가 많은데 왜 우리나라엔 없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폐쇄적이란 반증이 되는 것 같다. 인정이 많은 한국인이란 말은 옛날 이야기 거나 아니면 그냥 꾸며낸 나르시시즘인가 보다.
내가 가는 동네이발소. 요즘은 보기 드문 남자전용 이발소이다. 우리나라에도 있는 작크 데상쥬 같은 남녀 공용 "헤어샵"에서 "커트" 하는데 무려 25유로. 내 단골 집은 8유로인데 주인인 아랍사람이 너무 정이 있어 거금 1유로를 팁으로 남겨준다. 그러면 좋아서 어깨를 툭툭치며 우리 딸 안부까지 물어준다.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에도 항상 나오지만, 이발은 역시 아랍사람 손에서 하는 것이 운치가 있다. 물론 잘깍는다는 보장은 없겠지. 뭐 생긴게 그런데. 털도 없는 주제에 작크 데상쥬에서 깍았다고 내가 졸지에 욘사마가 될 것이냐...
낡은 가죽 의자며 머리감는 세발대며 옛 미남배우들의 흑백사진이며... 이 이발소는 30년도 훨씬 넘은 것 같다. 또 이런 낡은 이발소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이발소 그림"이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서민 동네의 이발소 그림은 그 수준에 맞게 촌스럽기만 하다. 순풍맞은 돛단배나 뭉게구름 아래 먼 산의 모습... 나는 그런 낡은 유치함이 좋다. 또 이런 액자에는 꼭 낯간지러운 金言들이 쓰여있다. "오늘 슬퍼하지 마라 내일 희망이 오려니" 등등. 이런 것을 쳐다보며 낡은 라디오에서 찢겨 나오는 삼류유행가를 듣고 있노라면 괜히 노스탈지에 잠겨만 든다...
내가 가는 터키식당. 케밥 샌드위치가 4.5유로. 메뉴 6.5유로인데 먹을 만함. 원래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특히 2002년도 월드컵 이후 터키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을 너무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남동유럽쪽 - 그리이스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터키 등등 - 사람들이 정이 많다. 아마 못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파리시내 오페라 근처에 한국식당이 하나 있는데 웬걸! 터키사람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우리 말도 너무 잘했다. 아직도 그곳에서 일하는지 모르겠다.
터키사람 그리고 일반적으로 아랍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결국 서구 -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 와 이스라엘의 역사 왜곡에서 비롯한다. 19세기의 제임스 본드, 아라비아의 로렌스같은 영화는 훌륭한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터키의 오스만제국이 동구와 아랍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구 제국주의가 그 힘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날조한 것이다. 소위 십자군 전쟁때 평화를 가져다 준 사람은 영국의 "사자왕"이 아니라, 용맹하고 정의로운 군주 "살라딘"이었다. 십자군이란 당시의 문명국이었던 아랍의 금은보화를 약탈하려고 유럽 각처에서 모집된 도적떼. 예루살렘을 이단자로부터 탈환하겠다는 십자가 깃발 아래 모여든 탐욕한 침략자들이었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여호와는 그들에게 천벌을 내려주기는 커녕 오히려 비호하였다.
그로부터 천년후 민주주의를 전파하겠다는 핑계 아래 부쉬와 블레어가 석유자원을 강탈하러 중동전쟁 일으킨 것과 똑 같다. 욕심은 끊임없고 역사는 반복한다. 살라딘에 의해 관용의 정책이 베풀어졌고 아랍의 수학 과학 철학이 유럽에 전파되었던 것처럼, 적어도 오스만제국의 초기에는 유태교와 기독교를 비롯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이슬람이 한 손엔 코란 한 손엔 칼을 들고 타종교를 야만적으로 억압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물론 인간사회인 만큼 종교단체들 사이에도 알력이야 있었겠지. 아니 고기도 안먹는 중들이 같은 절을 두고 집안 싸움도 하는데. 그러나 종교가 전쟁의 원인은 제공하지 않았다. 탐욕한 자들이 종교를 핑계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이슬람 테러리즘 운운하지만, 침략자 이스라엘의 탱크와 미국의 미사일에 맞서서 아랍인들이 맨 손으로 싸울 수 있다면 그 정신적 힘이 무엇인가. 한줄기 갸냘픈 종교에의 의지 뿐이 아닌가. 싸우다 죽으면 천국이라도 가겠지 하는 믿음이 아니라면, 죽더라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줄 사람이 있겠지 하는 믿음이 아니라면 어찌 적과 싸울 용기가 나겠는가. 아니면 믿음도 소망도 없이 잔악무도한 적 앞에 무릎을 꿇고 노예가 되어야만 한다는 말인가. 여호와나 알라신이나 한 편만을 들지 않는다. 죽음을 앞에 둔 모든 사람을 굽어보신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세계에서) 가장 맛있고 친절한 터키음식점 - 바로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 있는 "파샤"이다. (요즘은 없어졌음.) 특히 아무 것도 안넣은 밀가루 공갈빵이 정말 고소하다... 이국만리 서울까지 와서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음식을 만드는 터키인 요리사를 보면 탄복과 함께 존경스러운 마음이 솟구친다.
절대로 가서는 안될 중국집. (중국사람한테 미안.) 느끼함을 지나쳐 구역질이 난다. 프랑스의 중국음식은 우리와 틀리다. 이상한 열대지방 향료때문에 비위가 쉽게 상한다. 물론 짜장면도 없고. (어딘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직 못먹어 봤음.) 대부분 베트남 캄보디아 타일랜드 등 인도차이나계 화교들의 중국음식이니 북경 상해등 본토음식과도 틀릴 것이다. 무엇보다 너무 지저분하고 불친절한 것 같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지난 봄엔 인천 중국촌의 공화춘에 갔다가 주인과 대판 싸우고 나왔다. 옛날 30년전 공화춘을 생각하고 갔었지...
쀼또의 이 중국식당 이름은 金이 3개가 쌓여있는 한자인데. 어떻게 읽는지는 모르겠다. 女가 셋이면 간사할 姦이고 木이 셋이면 수풀 森이고 車가 셋이면 뭐더라? 교통사고 "꽝"자던가? 金이 셋이면 금덩어리 "똥"자인가 아니면 돈에 깔려 죽을 "꽦"자인지... 간판에 불어로 써있는 것으로 봐서는 金의 山이란 뜻인 것 같은데. 하지만 이처럼 맛도 없고 손님도 뜸한데 어떻게 주인이 金의 山을 이루려는지... 꿈은 쫀쫀하지만 내가 봐도 참 한심하다. 지난 십년 넘게 있어온 식당이지만 그동안 돈벌어서 주인이 쀼또의 재벌이 되었다는 소문은 아직 못들었다.
우리 아파트 정면 입구. 바로 세느 강변. 그래서 아파트 이름이 "벨리브" - 아름다운 강변이란 뜻. 1970년대 초 현대식 아파트 건물이다. 지금 보면 좀 흉측한 닭장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파리지역에서 유일한 고층아파트로 세느강을 끼고 에펠탑을 바라보며 현대적 생활을 갈구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 옆집의 팔십먹은 할머니 처녀도 - 시집을 안가고 평생 혼자 사는 - 그때는 사십대 초반의 멋진 직장여성이었을 것이다. 남들은 시집가서 남편 애들 뒤치닥거리로 그럭저럭 살 때 자기는 대기업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자유를 만끽하며 여성해방을 부르짓던. 그러나 삼십몇년이 지난 오늘날 현대는 과거가 되고 고층 아파트에서 파리시내를 내려보던 우월감은 적막과 고독으로 변하였다...
내가 살던 곳. 우리 집은 60평방미터 약 18평짜리이다. 그래도 거실 하나 방 두개. 거의 삼년 만에 다시 찾는 곳인데도 마치 아침에 잠시 나갔다가 저녁 때 다시 돌아온 것만 같다. 멀리 떠나 있었다는 느낌마저도 전혀 들지 않는다. 마치 지난 삼년의 시간이 멈춰졌던 것 처럼. 마치 그 시간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내가 존재했던 곳은 어디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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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난, 리드미님 글에 한번도 댓글 안달았는데 오늘은 달아야겠다. 게다가 마수걸이아닌가? ㅎㅎㅎㅎㅎ
그래서 느낀점이 뭐요?이건 뭐 완전 일빠다 하는거랑 똑같네.ㅎㅎㅎ
라데팡스....한발 늦었네...그옛날생각나고 즐거워서 나도 처음 달았당....................."그러나 삼십몇년이 지난 오늘날 현대는 과거가 되고 고층 아파트에서 파리시내를 내려보던 우월감은 적막과 고독으로 변하였다..."
정신없이 얘기에 빠져 들다보니 어느새 끝이네요.재밌어서 입에 침이 고였네요.곁들여 주신 사진이랑 노래도 잘 감상했어요.^^
아~ 멋진 프랑스 여행이었어요.. 가이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adme님 글은 항상 빠져들게 만들어요...
쉘부르 오비스캐빈 몽쉘통통..다 생각나는데 왜 라데팡스가 생각나지않지???...혹시 유네스코앞 꽃다방과 명동막국수집 사이의 건물이 아닌가요? 영화배우 신영균씨 소유의 건물인데..옛 증권거래소앞에 있는...라데팡스빌딩이라고 불렀던것 같은데...헌데 재미있는건 어제 저녁 제가 인천 차이나타운 공화춘에 갔다는겁니다...제 절친한 벗이랑 갔는데(가수 소리새라고 요즘 노무현대통령을 기리는데 자주 쓰이는 "아직도 못다한 사랑"을 부른 넘이죠) 이 친구가 공화춘을 가려는 저를 만류하며 공화춘옆집으로 안내하더군요...간단한 코스요리를 먹는데 오랫만에 먹어서 그런지 맛이 기가막혀요..고량주에 아직까지 맛탱이가 가서 헤롱댑니다^^
언제 한번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번개해야 겠네요. 공화춘 보다는 옆의 옆의 자금성?이던가 좋다고 하던데. 공화춘 바로 앞 코너의 약간 반지하 기념품 가게에 보이차 파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중국차를 팔고 있습니다. 주인은 화교인데... 차라든가, 중국에 대해 아는 게 굉장히 많은 사람이더군요. 일년에 두어번은 가서 차도 얻어 먹고 사오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상상의나래로 여행을 다녀왔네욤..ㅎㅎ
음악은 가슴 여며지게 들리고...삶은 외롭고 높고 고독하고(어느 시에서 인용)...세월은 유수처럼 흘러가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리드미님 잘 봤어요. 작년에 다녀온 여행에서 파리 변두리 쪽에 있다 왔는데 생각나네요. 신기했던건 휴일이 일,월요일 이었다는 게 제일 신기했어요.
와우~ readme님의 생생 쀼또와 프랑스의 간추린 정치 사회 역사이야기 너무너무 재미있네요~ 머리에 쏙쏙~ 아~ 저도 그곳의 공동세탁소에 꼭 가보고 싶네요~(작업 기대하며 ㅋㅋ) 으흐흐 ㅋㅋ 아~ 그리고 readme님이 중국집 주인과 대판싸우시는 모습도 궁금하구요~ 와~ 너무너무 즐겁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앙 재밌다~ 감사히 잘보고 갑니다~!!
정치인 얘기가 넘 재밌네요... 상식이 깨지는 재미.. 쏠쏠해요...
일단 그림만 감상하고, 한바꾸 돌고나서 흥미로운 얘기보따리를 풀어볼께여~^^*
라데팡스 ~~20년전 아는언니가 그곳이 살고있어 3달정도 머문적이 있는 곳(유럽여행으로 한달은 보냈으므로 지낸건 두달정도?)으로 언니가 매일아침 일찍 브랑제리가서 사오는 바케트맛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그러나 파리로의 유학의꿈을접고 행선지를 미국으로 바꾼것이 잘 한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파리에 남아있었다면 리드미님을 어디선가 만나서 같은 한국인으로 반가워했을지도..... 지금은 그때 또다른 선택을 했던 제게 운명?처럼 다가왔던 짝을 만나서 또다른 타국에서 살고있고... 인생이란 참 .....
readme님 글을 읽기만해도 프랑스 여행 다녀온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안내를 너무 잘해주시네요. 잘 보고 갑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프랑스의 샹송을 비하하시더니,프랑스의 18평 아파트에 사신 것을 자랑 하시는군요...허긴,뱅기도 아직 한번 못 타본 사람도 많으니 에펠탑이 화려한 프랑스에 오래 사신게 자랑으로 먹혀 들수도 있겠네요...사진으로 찍어 놓으면 다 이쁘고 좋게 보입니다.자신을 굳이 은근하게 자랑하고 뽑내지 않으셔도 님이 높은 인격과 지혜를 가지셨다면 저절로 사람들이 인정 하게 될겁니다.지금 이곳 회원들이 님의 글을 읽고 단순하게 빠져들어 심취된 칭찬과 우러럼을 표현 하는것은,님이 쓰시는 글의 교묘한 테크닉 때문일 따름입니다.군중심리에 노출되기 쉬운 사람들의 반응에 너무 자만하시면 곤란합니다.
글도 사람과 똑같습니다.멋진 옷과 악세사리와 화장과 향수를 뿌리고 거리에 나서면 우선은 보는 사람들이 선망하고 칭찬하지만,그건 일시적입니다.정말 멋쟁이와 고수인간은 꾸미지 않은듯 하면서도 은근하고 편안한,자연스런 기품과 향기가 오래도록 사람들을 사로 잡습니다.글도 그렇게 꾸밈이 앞서면 진실한 생명과 향기가 줄어 듭니다.
감사합니다. 아침부터 프랑스여행을 잘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듯이 글을 쓰신데 넘 읽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로그인을 하게 만드신 방랑시인님 전 글을 읽은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무엇이 화장발인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부탁인데 님께서 화장발 없은 선생님이 살았던 집을 묘사해 주셨으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충분히 글 쓸능력이 있기 때문에 비판을 했으리라 짐작합니다. 꼭 외국이 아니라도 .. 부탁합니다 방랑시인님
ㅎㅎ 반갑습니다.노엘님...제가 애궂게 리드님을 공격한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입니다.즉...'글은 사무침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작가가 하나의 대상을 두고 글을 적을때...과연 그는 무엇을 위해,무엇 때문에 글을 적을까요?(순수한 창작글 일때).바로 그 작가가 삶을 이어오며 경험하고 느낀 것들 중에.세상사람들이 잘 모르고 깨닫지 못한 어떤 진실과 이치를 찾아내어 보여주고 그리고 다음세대의 인간들 행보에 좀더 빠르고 정확한 길을 찾아가는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 큰 부분을 차지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이런 순수하고 진정한 묵적의식을 가진 사람이 글을 적을 때,과연 쓸데없는 꾸밈과 불필요한 단어남용을 해가며 자신을 굳이 높이려는 의도를 할까요?나의 글이 읽는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고 인간적 애정을 나눠 가지려 원하면 그 마음과 생각이 글에 녹아 있어야 합니다.자신의 글이 외국어나 웃기는 전문분야 단어(모두 편리를 위해 대충 만든 낱말들입니다)를 붙여가며 독자들을 현혹하는 글은,자세히 보면 바로 그 ..가장 중요한 글의 생명력과 목적의식/순수한 인간이란 근본이 결여 되어 있을 때가 많다는 겁니다.담담님과 리드님의 글은 글 자체로써는 우수하지만 바로 그 부분이 아쉽다는 겁니다
진정한 글은 자신보다 세상과 사람들을 먼저 앞세워,그들을 진정으로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즉...자신을 버려야 합니다.최고의 카 드라이버는 운전할때 차를 의식하지 않으며,최고수의 검객은 손에 쥔 칼을 의식하지 않는 것 처럼....리드님이 긴 글로 자신이 사셨던 프랑스 집을 소개하며 설명하실 때...그 분이 진정한 작가-고수라면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이 뭔가를 느끼고 공감하고 새로운 사고를 지향할수 있는 글 이어야 한다는 겁니다.겁데기만 화려하고 다양한 묘사의 글은 우선은 그럴듯해 보이지만,본래의 가치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ㅋㅋ 방랑시인님 끔찍하게 깜찍하시당~ ㅋㅋ 웃음 넘버원! ^^ 추카추카~
방랑시인님아! 그넘의 고수 타령은 언제까지 할꺼요? 고수소리 못들어서 한 맺힌거 있소? 글빨은 본인도 나쁘지 않은데 유독 리드미님이 더 인기가 있어서 질투가 나는게요? 유치하게 스리~ㅋㅋ 네~ 당신 글빨도 좋습니다. 인정! 그런데 영혼이 개념차지 못하고 그릇이 작은게 문제지...
흑~흑~(슬퍼서 우는 소리)...그래요 ~ 제 그릇 작은거 어떻게 알았수? 요즘 다이어트 때문에 적게 먹을려고 내가 사용하는 그릇 모두 작은걸로 바꾼거 울 마누라하고 애들 밖에 모르는데...신통하우 ~
readme 님의 글들은 어떤 깨달음 이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냥 자기의 느낌을 표현하기 에 넘 편합니다....읽고나면 아무것도 여운이 남지 않아서 더욱좋습니다...
저한테는 readme 님의 글들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게하네요...사막의 신기루 같은것 일까요...readme 님의 글들을 매일매일 기다리니 readme님 참 피곤하시겠습니다...
제 삶의 여정...40년-50여년 남짓 매일 readme님의 글들을 대하면서 살수있다면 합니다...특별한 이유도 없이...왜일까...
제 삶의 최고로 여기던 샹송을 비판 ? 해도...싫지가않아요...아무리 가공을 한들 불량식품같진 않아요...readme 님의 삶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기만을 바랄뿐입니다...readme 님의 또다른 글을 기다리며...
헉...대단하신 펜입니다. 그래요...좋아 할려면 그 정돈 되셔야지요...사실 ~ 리드님의 글은 대단히 좋은 글입니다.개성도 있고 솔직하고 깊이도 있고 나름의 매력도 있습니다.특히 현재의 한국사회와 정치 그리고 한국인들의 비뚤어진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비판,서술하시는 용기와 필력은 같은 공감대를 가진 저도 가슴이 시원해 집니다.허긴...이곳의 분위기와 추구성에 비춰 볼때 올리는 글 또한 약간은 그에 맞출수 밖에 없는 한계도 있겠지요...리드님 ~ 죄송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