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앞두고 학술회의·기념사업 등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가을의 기도〉
'가을'과 '고독'을 유난히도 사랑했던 시인 다형(茶兄) 김현승(金顯承·1913~1975). 평양에서 태어나 목사인 부친을 따라 7살 때 광주 양림동으로 이사와 살았다. 한국전쟁 때는 광주에서 문학잡지 '신문학'을 4호까지 발간했고, 이때 황순원의 '소나기'가 신문학을 통해 발표됐다. 1951~ 1959년에는 조선대에서 가르치며 많은 제자 문인들을 길러냈다. 문병란·손광은·진헌성·이성부·오규원·문순태·이근배·김종해·김종철 등 40여 명이 그의 가르침과 추천 등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시인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그의 문학적 고향인 광주에서 그의 문학사적 족적과 시 정신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 3월 제자들이 참여해 발족한 '다형 김현승 시인 기념사업회'(회장 손광은)가 주축이다. 기념사업회는 오는 28일 광주남구문화예술회관에서 '제1회 다형 김현승 학술발표회'를 연다.
대표 시 '가을의 기도'와 '눈물' 낭송에 이어 문병란 상임고문의 문학연보 소개, 문학평론가 이명재씨의 '다형 김현승의 문학사적 위상'과 이성부 시인의 '김현승 선생과 그 제자들', 이운룡 시인의 '다형의 후기 시와 인간적 고뇌' 등 발표가 진행될 예정이다.
기념사업회 손 회장은 "광복 이후 혼란기에 김기림류의 모더니즘과 정지용류의 감각적 이미지즘에 경도되어 있던 한국 시단에 지성적 감수성을 개척해 새로운 한국 현대시를 개척했던 시인"이라며, "전국 학생문예공모대회와 학술발표회, '다형문학제' 등을 매년 열고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주 양림동에는 김 시인의 생가터가 있으며 무등산 원효사 입구와 호남신학대 교정 등에는 시비가 있다. 김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과 맞물려 '광주문학관' 건립도 추진된다. 광주시는 109억원을 들여 2012년 11월 개관을 목표로 광주문학관을 건립하기로 하고, 현재 타당성 용역을 진행 중이다.
<시인 김현승과 그의 시>
(▶ 시인 소개
‘고독의 시인’으로 불리우는 다형(茶兄) 김현승은 일생을 올곧게 살아오면서 발표작과 미발표작을 합쳐 총 275편의 시 작품을 남겼다.
전북 출신으로 목사인 아버지 김창국과 어머니 양응도 사이에서 1913년 4월 아버지의 신학(神學) 유학지인 평양에서 6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부친이 평양신학교를 마치고 제주도 성내교회를 거쳐 광주로 오게 되자 그는 광주 숭일학교 초등과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중학에 진학하기까지 10년간을 광주에서 살았다. 그가 문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는 1932년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면서부터인데 이 학교에는 양주동과 이효석이 교수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 양주동의 소개로 1934년 5월 25일《동아일보》에 발표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종교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신앙시와 양심의 시를 개척하였는데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관념의 세계를 신앙적 정면 대결 정신으로 극복하였고, 윤리적으로는 인간의 실존적 자아 탐구에 고뇌, 끝내는 신의 절대주의적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의 시의 중심 사상이 된 고독은 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인데 그는 여기에서 절망이나 회의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는 자아 탐색을 통하여 인간 생명과 진실을 노래, 보편적 진리에 도달한 것이다. 특히 그는, 사상이 없는 시는 무정란이라는 시론까지 전개하며 사상과 시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종교와 철학의 추상과 관념을 물화(物化)하여 형이상성으로 시를 감각화했다. 투명한 언어의 엄격성, 함축미, 간결한 정제미 등은 그의 시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 문덕수 외,ꡔ한국 현대 시인 특성론ꡕ, 국학자료원, 2000, pp. 433-434.
(▶ 김현승의 작품 세계
(1) <눈물> 전문과 시평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김현승은 사랑하던 어린 아들을 잃고서 그 지극한 슬픔을 기독교의 신앙으로 견디어 내면서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절대자 앞에서 경건하고자 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이 지닌 욕망과 기쁨 따위가 결국은 일시적인 것임을 깨닫는 일이다. 그러면 이들을 모두 버리고도 남는 것은 무엇인가? 김현승은 슬픔, 곧 눈물이라고 답한다. 사람은 자신의 인간적 한계와 고통을 맛보는 순간에 가장 순수하고 진실하여진다는 것이다. 눈물은 첫째 연이 노래하듯이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며, 가장 진실한 순간에 있어서의 사람이 가진 것의 전부이다. 우리가 신 앞에 드릴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값지고 확실한 것도 눈물이다.
이와 같은 생각의 흐름을 통해 김현승은 눈물이 피해야 할 것이기보다는 신이 사람에게 내려 준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보는 경지에 도달한다. 그것은 마치 나무의 꽃이 시든 뒤에 열매가 열리도록 한 신의 섭리와도 같다. 웃음이 잠시 피었다가 지는 삶의 꽃이라면 슬픔과 눈물은 그 열매에 해당된다고 그는 노래한다. 그리하여 그는 역설적으로 눈물이 오직 사람에게만 주어진 신의 은총이라고 여김으로써 지극한 슬픔을 이겨내는 종교적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기독교적 시 정신이 이룩한 높은 경지의 하나를 본다.
(2) <플라타너스> 전문과 시평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
먼 길에 오를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음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
이 시는 가로수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타너스를 소재로 하여 자신의 고독한 삶의 행로를 함께 걸어갈 동반자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시적 자아는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을 이고 서 있는 플라타너스를 자기 삶의 동반자로 격상시키고 있다. 그것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하찮은 사물이 아니라 시적 자아와 꿈을 나누면서 고독한 삶의 행로를 함께 걸어 왔고 앞으로도 길이 함께 하고 싶은 이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시에 등장하는 ‘플라타너스’는 자신과 함께 살아갈 삶의 반려자가 갖추어야 할 어떤 품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시적 자아의 진술을 가감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괜찮을 것이다. 요란하게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내가 걸어가는 삶의 길을 항상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지켜 보아주는 동반자를 가진다는 것이 더 없는 삶의 기쁨이라는 점에서 동의한다면,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친 채 항상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플라타너스야말로 가장 적합한 삶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자기가 걸어온 길 옆의 대지에 깊이 뿌리박고 서 있는 플라타너스의 넉넉한 자태에서 그와 같은 동반자의 모습을 발견해 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