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20. 4. 25.~26.(주말)
- 음력(4. 3.~4.), 일몰 19:16, 일출 05:42
●산행지: 한남정맥 1구간(칠장산-성복역 )
●산행코스: 칠장산-관해봉-도덕산-녹박재/녹배고개-삼죽면사무소-뒷산-국사봉-상봉-가현치-안성추모공원-달기봉-산불감시카메라(컨테이너)-489m삼각점-구봉산-57번지방도(두창리고개)-극동기상연구소-솔바람캠핑장-진등고개-57번지방도(법륜사)-문수봉-바래기산-애덕고개-굴암산-염치고개-무너미고개(45번국도)-함박산-서울공원묘원-하고개-부아산-효자고개(42번국도)-멱조고개/메주고개-석성산-마성IC(작고개)-할미산성/선장산-향린동산-영동고속도로/구성지구-아차지고개-만수정약수터-양고개-신갈분기점-삼막골고개(터널)-소실봉-성복역
●먹거리: 생수1,000cc, 피넛쿠키1, 땅콩샌드1, 앙금빵1, 호떡빵1, 사탕30, 게비스콘2
●준비물: 외투1, 반팔1, 충전지, 연결선,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경광점멸등, 손수건, 머리띠, 귀마개, 수면용안대, 반장갑, 휴지, 물티슈, 부직반창고, 우의, 예비양말, 옷, 팔토시, 무릎보호대, 마스크
●거리: 약 79.75km
●소요시간: 23.44h
●누구랑: 나홀로
●경비: 고속버스6,400, 아침8,000, 편의점3,300, 솔바람캠핑장5,000, 저녁16,000, 숙박2,5000, 아침5,500, 점심10,000
●날씨: 4~18도
●산행경과:
- 08:38 : 칠장사
- 09:06 : 칠장산(492.1m)
- 09:20 : 관해봉
- 09:50 : 도덕산(365.9m)
- 10:18 : 녹배고개/녹박재
- 10:31 : 삼죽면사무소, 편의점(포카리&하드), 식당
- 11:37 : 국사봉(444.5m)
- 11:57 : 상봉(353.6m)
- 12:13 : 가현치, 안성추모공원
- 13:09 : 유형원선생묘
- 13:22 : 달기봉(418.9m)
- 14:03 : 구봉산(466.1m), 전망대
- 15:07 : 두창리고개(매봉재)
- 15:38~15:47 : 솔바람 캠핑장 매점(환타&콜라&망고음료)
- 16:10 : 보개,원삼로사거리, 교회
- 16:57 : 57번 지방도(사암삼거리~법륜사옆)
- 17:36 : 문수봉(403.2m, 앵자지맥분기점)
- 18:04 : 쌍령지맥분기점, 정자
- 18:22 : 망덕고개
- 18:18 : 바래기산(370.5m), 산악기상관측장비
- 18:35 : 굴암산
- 19:40 : 염치고개, 콘크리트옹벽
- 20:50~05:02 : 무너미고개/45국도, (저녁식사 및 숙박)
- 05:44 : 함박산(349.3m), 들머리 망향의동산 공동묘지
- 06:24 : 하고개321지방도/학고개, 직전 공동묘지
- 06:52 : 부아산(402.7m), 정자
- 08:24 : 효자고개(42번국도), 주유소
- 09:05 : 멱조고개/메주고개
- 10:29 : 석성산(471.3m, 통화사)
- 10:59 : 마성IC, 영동고속도로 통과
- 11:14 : 할미산성/선장산(349.7m)
- 11:48 : 향린동산, 검단지맥 분기봉
- 12:45 : 아차지고개/어정고개
- 13:45 : 양고개/용인운전면허시험장
- 14:10~14:50 : 식사(바지락칼국수)
- 15:16 : 청명지맥분기점
- 15:53 : 소실봉(186.3m)/2등삼각점
- 16:25 : 성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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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서정맥: 378.2km (속리산~용당정)
* 금북기맥: 129km (백월산~안흥정)
* 한남금북정맥: 158km(속리산~칠장산)
* 한남정맥: 177.4km(칠장산~문수산), 실거리: 203.1km
- 칠장사~문수봉 32km
-. 칠장사~녹배고개 6.16km
-. 칠장산~가현치 14.2km
-. 칠장사~구봉산 19km
-. 칠장사~두창리고개 24.6km
- 가현치~57번국도,법륜사옆 15.4km
※ 극동기상관측소: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리
- 두창리고개~무네미고개 20.4km
-. 두창리고개~망덕고개 11.7km
-. 망덕고개~42번국도 20.6km
-. 망덕고개~함박산 12.6km
-. 두창리고개~42번국도 29km
- 57지방도 법륜사옆~하고개 21.6km
- 하고개~양고개 25.3km
- 무너미고개~형제봉 44km
-. 무너미고개~선장산 16km
-. 무네미고개~구성 영동고속도로 23.4km
-. 선장산~소실봉 21km
-. 소실봉~형제봉 7km
- 42번국도~지지대고개 44.4km
-. 42번국도~양고개 19.8km
-. 양고개~지지대고개 24.6km
* 사전정보(식수 보충지)
- 칠장사~칠장산: 1.2km
- 삼죽면사무소: 하나로마트, 편의점, 식당
- 국사봉: 100m
- 두창리고개: 직전 글램핑장 수도
- 극동기상연구소 지나 솔바람캠핑장 매점
- 법륜사: 물보충 가능
- 문수봉: 마애불약수터(청미천 발원지)
- 마애보살상: 20m
- 무너미고개: 처인구 중앙동, 식당, 물보충
- 42번국도: 용인 역삼동 주유소
- 석성산: 통화사 물보충
- 아차지고개(어정고개): 밥집
- 양고개: 식사, 김밥집
- 망가리고개: 상현초교 이후 도심
* 서울에서 칠장사가는 길:
- 남부터미널~죽산: 06:30, 1.26h
- 동서울터미널~죽산: 06:30, 1h
- 죽산~칠장사 농어촌버스: 06:30, 09:30, 0.15h
- 죽산~칠장사입구삼거리: 17번버스
- 죽산~칠장사 택시: 0.10h, 14,000
* 서울 오는 길
- 도시철도 신분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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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 중에 대도심을 통과하며 건물과 도로에 제일 많이 망가진 한남정맥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통과하는 지역이 모두 시입니다. 안성시, 용인시, 수원시, 의왕시, 군포시, 안양시, 안산시, 시흥시, 부천시, 인천광역시, 김포시,,,,
용인에서 아파트에 자리를 내주고, 광교산 넘고 의왕, 군포, 시흥을 지나며 도심을 만나고 부천에서 인천광역시를 만나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다 굴포천으로 좌절을 겪고 만신창이가 되어 김포에 이릅니다. 서해와 전방에 가깝다보니 곳곳이 군부대가 점거했습니다. 수원 광교산과 안산 수암봉은 잠깐 변방의 산을 스치고 지나갑니다만 그 도시의 진산에 해당하는군요.
애초 계획은 1구간을 수리산 가까이까지 쭉 빼고 나머지를 두 구간으로 여유있게 하고자 했는데 광교산도 못 넘고 말았습니다. 그 마저도 용인 무네미에서 밤새 진군할 의지가 꺾여 상경할려다 가까스로 마음을 바꿔 용인터미널 근처에서 숙박하고 이었다는... 역시 운동을 멈추니 체력이 딸리네요.
무네미식당에 스틱을 두고와 가지러가는데 경기도 교통 정맥길보다 더 어렵네요.^^
수지구청에서 690번 타고 용인터미널 갈렸더니 어느 방항으로 타야하는지 안내가 없어서 왔다리갔다리 하다가 놓치고 쟈철로 가기로~ㅠ
1-2구간은 발가락도 아프고 발바닥 물집도 생기고 게다가 스틱도 없고 간신히 억지로 한 느낌입니다만 크게 힘들거나 어려운 산은 없었고 도심 속의 등산로라 매우 넓고 걷기에 좋았습니다. 한편으로 어제 계속 진행했더라면 야경도 구경하며 광교산을 훌쩍 넘어갔을텐데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졸린 걸음으로 비몽사몽 어렵게 진행하기 보담은 낫다는 위안도 들었고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게 만족하기 나름이라면 좋게좋게 해석하는게 남는 장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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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남정맥(漢南正脈)개요
한남정맥(漢南正脈)은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황봉(1058m)에서 분기한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안성 칠장산(七長山, 492m)에서 두개의 산줄기로 다시 갈라지는데, 칠장산에서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文殊山, 376m)을 지나 김포반도의 끝인 보구곶에서 그 맥을 다하는 총도상거리 178.5km인 산줄기 이다. 한남정맥이란 이름 그대로 남한강과 한강본류의 남쪽 유역의 분수령으로, 해발 500m 미만의 낮은 등성이의 연결로서 서쪽에 위치한 인천, 시흥, 안산, 수원, 평택, 천안 등 아산만을 중심으로 한 해안평야와 경계를 이룬 산줄기이다. 산경표에 기록된 한남정맥의 주요 산은 칠현산, 백운산, 구봉산, 대소곡두현, 석륜산, 수유산, 부아산, 보개산, 석성산, 객망현, 광교산, 사근현, 오봉산, 수리산, 오자산, 소래산, 성현, 주안산, 원적산, 경명산, 북성산, 가현산, 약산, 문수산 등이다. 그러나, 현대 지형도에서의 한남정맥의 산 이름을 찾아보면 칠장산, 도덕산, 국사봉, 상봉, 달기봉, 함박산, 수리산, 부아산, 응봉, 형제봉, 백운산, 수리산, 소래산, 성주산, 철마산, 계양산, 가현산, 필봉산, 학운산, 문수산 등으로 수도권의 생태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한남정맥을 중심으로 서쪽 해안지방과 내륙의 한강유역권의 생활문화 발달은 예로부터 현격한 차이가 있었고, 같은 경기지방이면서도 국지적 기상변화 등 생활양식과 함께 언어상의 차이점도 있다. 한남정맥 구간은 난개발과 군부대의 주둔으로 인하여 산맥이 절개되어 마루금 찾기가 가장 힘든 곳이다. 특히 굴포천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한남정맥에 대한 또다른 의구심을 갖게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물을 건너되 물을 건너지 않는다는 것이다. 굴포천은 인천과 부천·김포를 북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 인데, 인공적으로 조성된 하천이다. 정조실록에 의하면 굴포천은 고려 고종때와 조선 중종때 소금을 싫어 나르기 위해 운하를 개발하여 배를 띄우려고 시도하였으나, 원통산(현재 만월산)을 관통하는데 실패하였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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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京畿道)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를 둘러싸고 있으며, 북쪽은 황해도, 동쪽은 강원도, 남쪽은 충청북도 및 충청남도와 접해 있고, 서쪽은 서해의 경기만에 면해 있다. 특히 근래에 들어와 수도 서울의 도시기능이 비대해지고, 인천·수원·성남·부천·안양·고양·구리 등 서울 주변의 도시들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경기도 전 지역이 서울과 직·간접의 밀접한 기능적 연계를 맺고 있다.
행정구역은 수원시· 성남시·용인시·부천시·안산시·안양시·화성시·평택시·시흥시·김포시·광명시·광주시·군포시·오산시·이천시·안성시·의왕시·하남시·여주시·과천시·고양시·남양주시·의정부시·파주시·양주시·구리시·포천시·동두천시 등 28개시 3개군 17개구 543개 읍면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청소재지는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이다. 경기만에는 도서가 많은데, 도서를 제외한 남북간의 거리가 약 158㎞이며, 동서간의 거리가 약 130㎞이다. 경기도의 총 면적은 남한의 10%를 차지한다.
♤ 안성시
경기도 최남단에 있는 시로 동쪽은 이천시와 충청북도 음성군, 서쪽은 평택시, 남쪽은 충청남도 천안시와 충청북도 진천군, 북쪽은 용인시와 접하고 있다. 1998년 안성시로 승격되었다.
시의 동부에 비봉산, 마이산, 덕성산, 칠현산 등의 줄기가 뻗어 충청북도와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있다. 정미천과 산맥의 북부 산록지대를 서쪽으로 흐르는 안성천이 도중에 한천을 합치고, 다시 황구지천, 청룡천 등과 합류해서 하천 유역에 넓은 충적평야인 기름진 안성평야를 형성, 농경문화가 발달해 왔고 삼남지방을 잇는 군사, 교통의 요충지이며, 조선시대 3대 시장의 하나였던 만큼 상권이 발달했다. 시청 소재지는 안성시 봉산동이다.
'안성맞춤'이라는 명사를 탄생시킨 안성유기와 쌀, 포도, 인삼, 배, 한우고기는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며, 그 밖에도 다양한 문화유적과 연중 문화예술행사가 열리는 예향의 고장이기도 하다.
삼한시대에는 진한에 속했으며, 그 뒤 백제의 영토였다가 고구려 장수왕 때부터 양원왕 때까지 내혜홀로 불렸다.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16) 백성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 940년(태조23) 안성현으로 개칭되었고, 1018년(현종9) 수주(지금의 수원)에 잠시 이속하였다가 뒤에 천안에 이속하였다.
1236년(고종 23)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죽주성(竹州城)의 방호별감(防護別監) 송문주(宋文胄)가 죽주산성에 웅거하면서 수주일 동안 선전 분투하여 적을 격퇴시켜 남진을 저지하기도 하였다.
1362년(공민왕12) 지군사로 승격되었고, 1366년(공민왕15) 마전, 신곡은 다시 수주로 환속되었다.
조선시대 안성시는 고려 현종 이래 충청도 천안부에 속하였는데 1399년(정종 1) 안성군 양양부곡이 분리되어 양지현(陽智縣)이 설치되었다. 안성시는 고려 현종 때 이래 충청도 천안부에 속했는데, 1413년(태종 13)경기도로 이속되었다. 죽주(竹州)는 이때 죽산현(竹山縣)으로 개칭되어 현감이 배치되었고 1434년(세종 16)경기도에 소속되었다. 죽산의 별칭으로는 음평(陰平)·연창(延昌) 등이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홍언수(洪彦秀, 일명 洪自修)와 경기조방장(京畿助防將)으로 전후 5년간 3,0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적군의 북상진로를 저지하고자 분전하다가 35세로 순절한 그의 아들 홍계남이 있다. 또 홍계남과 같이 기호·호서 지방의 의병으로 싸우다 전사한 이덕남 등 두 의병장의 전첩비가 지금의 미양면 구수리에 있다. 이때 축성한 서운산성(瑞雲山城)이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금남정맥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또 임진왜란 중 경기·충청 지방의 군사를 모집하여 천안군과 양성현 일원에 주둔하면서 공수진퇴(攻守進退)의 전술로 왜장 후쿠지마[福島正則]가 거느린 4,500명의 죽산성 주력군을 상대로 황소를 이용한 복개전차대(覆蓋戰車隊) 공격으로 적진을 교란시킨 변이중(邊以中)의 죽산전투는 특기할 만하다.
1895년 공주부 안성군, 양성군과 충주부 죽산군이 되었다가, 1896년 경기도 안성군, 양성군, 죽산군이 되었다. 1914년 안성군, 양성군과 죽산군의 일부를 병합하여 안성군으로 하였으며, 1931년 읍내면을 안성면으로 개칭하고, 1937년 7월 1일 안성면이 안성읍으로 승격되었다. 1963년 용인군 고삼면이 편입되었고, 1983년 원곡면. 공도읍 일부가 평택군 평택읍으로 편입 되었으며, 1987년 보개면 양복리 일부가 금광면으로, 삼죽면 남풍리, 동평리, 가현리가 보개면으로 편입되었다.
♤ 용인시(龍仁市)
용인시는 '땅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금구음수형(金龜飮水形, 거북이 물 마시는 모습),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 거북이 뻘에 묻힌 모습), 영구하산형(靈龜下山形, 거북이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 부해금구형(浮海金龜形, 바다 위로 거북이 떠오르는 모습), 금구입해형(金龜入海形, 거북이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 금구입수형(金龜入水形, 거북이 물로 들어가는 모습), 구갑주형(龜甲胄形, 거북 등 모양), 금구하전형(金龜下田形, 거북이 밭으로 내려 오는 모습) 등등 여러가지 모습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풍수지리에서 얘기하는 명당보국의 길지로 알려진 곳이 많다. 풍수에서 거북은 부귀와 장수 그리고 번창을 상징한다. 또한 풍수에서 형상이 제일 많은 대표적인 동물이 거북이고, 하늘의 기(氣)을 먹고 사는 영험하고 신성한 동물로 알려진 거북은, 십장생(十長生) 중의 하나로 팔괘를 완성하는데 낙서를 제공한 동물이 거북이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거북을 금구(金龜)라고 부른다. 수지구가 거북이 머리에 해당하며, 용인시청이 있는 곳이 거북이 배에 위치하고 있다 한다. 용인지방의 지리적 특성 중의 하나는 경안천, 탄천, 오산천, 청미천, 진위천, 안성천 등 대소 하천이 모두 용인에서 발원하여 인접 시.군으로 흘러 나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현상은 용인지방이 분지를 형성하면서 인접 시. 군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멸오'나 '용구(龍駒)', '구성(駒城)'이 ‘높다’는 의미에서 표기된 지명이라면, 이미 삼국시대에 이와 같은 용인(龍仁)의 지리적 특성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용인시(龍仁市)에서 '용(龍)'자가 들어가게 된 유래에는 이런 설화가 내려온다. 용인시의 좌측으로는 투구봉이 있고 우측으로는 칼봉이 자리잡고 있는데(봉우리의 형상이 투구와 칼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투구봉과 칼봉 사이에는 넓은 터를 마을 사람들은 '장군대지형의 땅'으로 믿고 있다.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기에 꼭 알맞을 정도의 넓은 지형이다.
옛날에 남씨 문중에서 이곳에 묘를 썼는데, 그후 얼마 안 있어 그 문중 가운데 한 집에서 아기장수를 낳았다. 아기는 낳은지 사흘 만에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났으며, 힘 또한 장사여서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아기장수가 태어날 무렵은 당파싸움이 치열하던 때로, 자신의 가문을 보존하기 위해 서로간에 암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혹여 다른 집안 자제 가운데 훌륭하게 될 소지가 있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는 물론 그 집안 전체를 몰살하였다. 열세에 몰려 있던 남씨 문중에선 아기장수가 태어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될 것이라고 불안해했다. 남씨 문중에서는 전체 회의를 열어 숙고한 끝에 아기장수가 성장하기 전에 처단할 것을 결의하였다. 워낙 힘이 센지라 여럿이 커다란 바위로 눌러 죽였고, 아기를 양지 쪽에 묻어 주려고 땅을 파 보았더니, 거기에서 투구와 칼이 나왔다고 한다. 한편 남씨 가문에서 아기장수가 태어날 때 장군대지형에서 마주 보이는 액교산에 있는 바위에서 용마(龍馬)가 나와 울었다고 한다. 이 용마는 아기장수가 죽자 태울 주인이 없음을 슬퍼하며 성산(城山, 석성산)을 향해 달려 나갔다. 현재 고림리의 액교산에는 용마가 났다는 용마바위가 아직도 전하는데, 용마가 몸부림치며 울부짖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이런 설화가 많다. 「고장군 묘소 전설」, 「아기장수와 용마바위」, 「유방리의 남씨네 아기장수」등이 내용이 비슷하다. 이것이 훗날에 조선시대의 남이장군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이런 전설들이 전해져 삼국시대의 구성현(駒城縣)이 고려초 용구현(龍駒縣)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용인 8경
*제1경. 성산일출 - 육중한 산세,
성산(해발 471.5m)은 용인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매년 용인시민들의 새해 첫날 일출맞이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처인구 삼가동, 역북동과 기흥구 구성동에 걸쳐있으며 석성산, 구성산으로도 불린다.
*제2경. 어비낙조로 유명한 어비저수지
경기도내 최대 규모 저수지, 석양의 감동에 잠긴다. 처인구 이동면 어비리 저수지에 여울진 석양의 낙조이다. 황홀한 감동을 자아내는 장관을 연출한다. 본래 어비리를 지나던 큰 내가 있었고 예전에 이를 장호천이라 했는데 저수지가 되어 마을 명칭대로 어비리가 되었다.
*제3경. 곱든고개와 용담조망 - 못에서 용이 승천 한다.
칠봉산과 문수봉 사이의 곱든 고개(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황금들판 사이로 포근한 어머니의 품속 같은 용담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전형적인 한국의 고향마을 풍경이다. 용인 백옥쌀이 생산되는 곡창지대이기도 하다. 용담저수지는 저수지에 용이 승천하여 예전부터 이곳을 용못 또는 용담이라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제4경. 광교산 설경 - 설산(雪山)의 진수
수지구 광교산(해발 582m)은 처인구 성산과 더불어 용인의 2대 명산이다. 광교산은 용인시와 수원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용인시 관내에는 수지 신봉동, 고기동, 동천동에 걸쳐있다. 광교산의 주봉인 시루봉이 용인시에 속해 있으며. 시루봉 정상에서 보면 수지 일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광교산에 눈이 내려 나무에 수북이 쌓여있는 설경을 일컫는 ‘광교적설’은 이 산의 겨울 절경을 이르는 말로 내려온다.
*제5경. 선유대사계 - 선비, 신선이 되어 시조와 풍류를 즐긴다.
처인구 양지면 제일2리에 위치한다. 신선이 놀던 곳이라고 전하는 선유대는 조선 후기 풍류를 좋아하는 마을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정자와 연못 주변에서 아름다운 사계절의 자태를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시조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제6경. 조비산 - 용인의 가장 아름다운 산.
용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조비산(해발 260m)을 꼽는다.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석천리, 장평리에 접해 있는 해발 295m의 높지 않은 돌산이다. 새가 나는 형상이라 해서 조비(鳥飛)로 명명됐다고 한다. 황금들판 가운데 봉우리가 돌연히 우뚝 솟아 돌을 이고 있는 듯 특이한 형상을 지녔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그 모습의 아름다움과 멋이 다양한 곳이다. 조비산은 산에 얽힌 전설과 이야기도 많다. 다른 산들은 서울로 향하고 있는데 조비산은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 있어 역적산이라고 했다는 속설도 있다.
*제7경. 비파담 만풍 - 비파 소리와 단풍
용인팔경의 제7경으로는 처인구 모현면 갈천1리 파담마을 일대 가을 풍광을 꼽는다. 비파담 만풍은 조선 현종, 숙종 때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 선생이 파담마을에 낙향해 이 일대 빼어난 풍광에 반해 정자를 짓고 비파를 연주하며 풍류를 즐겼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울창한 숲과 백로들이 나는 모습이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제8경. 가실벚꽃 - 호암미술관 가는 길.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에 위치한 호암미술관 가는 길이 가실벚꽃길이다. 미술관 향하는 왕벚꽃나무 터널은 용인시민들이 사랑하는 산책로이다. 세속을 떠나 천상의 세계로 비상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봄철 벚꽃 풍광 뿐 아니라 사철 각양각색 비경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호수에 잠시 멈추어 형형색색 금붕어와 물오리들과도 벗할 수 있는 볼거리 많은 곳이다. 국내 최대규모의 사립미술관인 호암미술관은 한국미술품 1천 2백여 점을 소장(국보·보물 지정 문화재 100여점 포함)한 곳으로 전통한옥 형태 본관, 전통정원 희원, 부르델 정원들로 구성됐다.
♤ 수원시(水原市)
수원지역을 최초로 차지하였던 국가는 백제였다. 백제는 3세기 중엽 고이왕 때에 이르러 급격히 발전하여 4세기 중반 근초고왕 때에, 고대 국가체제를 완성하였는데, 지금의 경기도지역 대부분이 당시 백제의 영토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인해 한강유역과 수원을 포함한 그 주변지역은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이때 수원의 고유지명은 ‘매홀(買忽)’이었다고 한다. 매홀은 물고을이라는 발음의 표기로 추정되며, 여기에서 한자식 지명인 수원(水原)이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 해양교통로의 중심지였던 당항성(현재 화성시 소재)은 삼국간의 항쟁이 매우 치열하였다. 이렇듯 해양활동의 주무대였던 수원지역은 삼국의 각축장으로, 삼국이 번갈아 점령하였는데, 마침내 신라는 한강 하류지역을 차지하고 553년에 신주를, 557년에는 북한산주를, 561년에는 남천주를 설치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9주 5소경의 설치에 따라, 수원은 한산주(漢山州)에 속하였는데,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의 지명을 한자(漢字)로 바꿀 때, 한주(漢州) 소속의 수성군(水城郡)이 되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수주(水州)라 하였고, 1271년(원종 12)에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가 되어‘水原’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수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수원부, 수원군, 수원부로의 변화를 거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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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버스정류장(233m) → (0.2km) → 칠장사(七長寺) → (0.8km) → 한남/한남금북/금북정맥분기점 → (0.2km) → 칠장산(七長山/492.4m) → (0.9km) → 관해봉(觀海峰/457m) → (2.5km) → 도덕산(道德山/366.4m) → (1.4km) → 녹배고개 → (0.9km) → 죽산만남의광장(38번국도) → (1.2km) → 삼죽면사무소
삼죽면사무소 → (3.8km) → 국사봉(國師峰/438.0m)→ (2.6km) → 가현치 → (0.2km) → 천주교수원교구공원묘원 → (3.3km) → 달기봉(415m) → (2.0km) → 구봉산(九峰山/465.1m) → (4.2km) → 두창리(杜倉里)고개(318번도로/160m) → (4.6㎞) → 57번지방도(사암리/沙岩里) → (1.1㎞) → 용인농업기술센터 → (1.8㎞) → 문수봉약수터 → (0.2㎞) → 문수봉(文殊峰/403.2m) → (2.6㎞) → 바래기산
바래기산 → (2.7㎞) → 십자가철탑 → (2.5㎞) → 염치고개 → (3.6㎞) → 은화삼CC정문 → (0.4㎞) → 무네미고개(110m) → (0.5㎞) → 45번국도지하통로 → (2.0㎞) → 함박산(咸朴山/350.5m) → (2.4㎞) → 하고개(220m) → (1.4㎞) → 부아산(負兒山/402.7m) → (3.8㎞) → 42번국도(성산주유소/170m)
42번국도(효자고개/城山주유소/170m) → (1.4㎞) → 멱조(메주고개/160m) → (3.5㎞) → 석성산(石城山/성산/471.5m) → (1.6㎞) → 영동고속도로마성IC(작고개/200m) → (1.2㎞) → 향린동산이정표 → (2.1㎞) → 향린동산서문 → (3.9㎞) → 신릉중학교앞
향린동산서문 → (3.9㎞) → 신릉중학교앞 → (0.6㎞) → 양고개(용인운전면허시험장) → (1.2㎞) → 경부고속도로 지하통로 → (0.4㎞) → 한진교통
한진교통 → (2.5㎞) → 소현중교 → (0.6㎞) → 소실봉(紹室峯/188.7m) → (1.2㎞) → 수지방주교회(수지영락교회/43번도로/77m) → (1.2㎞) → 망가리고개(응골/亡家里고개/90m) → (1.4㎞) → 심곡초등학교(深谷初等學校) → (0.6㎞) → 버들치고개(170m) → (1.8㎞) → 천년약수 → (0.4㎞) → 이의동갈림길 → (0.9㎞) → 형제봉(兄弟峯/44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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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분 강변터미널에서 진천가는 버스로 죽산면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니 07:27분입니다. 칠장사 들어가는 버스는 09:30분, 택시는 14,000원 나온다고,, 일단 아침을 먹고, 알아보니 광혜원가는 버스를 타고 걸뫼고개를 지나 칠장사 입구에서 내려 걸어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차피 걷기로 한건데 까짓... 하며 칠장사로 걷다가 히치하이킹 성공! 3~40분 걸리는데 걸어가시냐며 친절하게 일주문앞까지 태워주시네요. 감사합니다.^^
♤ 칠장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636년(선덕여왕 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그 뒤 고려 초기에 혜소국사(慧炤國師)가 현재의 비각(碑閣) 자리인 백련암(白蓮庵)에서 수도할 때 찾아왔던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7인 모두가 도를 깨달아 칠현(七賢)이 되었으므로 산이름을 칠현산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나한이 된 일곱 도적 이야기] 혜소국사는 왕명으로 1014년(현종 5)에 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 그 뒤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내려오다가, 1674년 세도가에게 산을 빼앗겨 승려들이 모두 흩어져서 잠시 빈 절이 되었던 것을 거사(居士) 초견(楚堅)이 다시 찾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원 전(圓通殿)·명부전·응향각(凝香閣)·천왕문(天王門)·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보물 제203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웅장한 규모, 우아한 조각미와 채색미가 괄목할 만하다. 또한, 천왕문 내의 소조사천왕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비각 내에 보존되어 있는 보물 제488호의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가 있다. 1060년(문종 14)에 건립된 이 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임진왜란 때 적장인 가토(加藤淸正)가 이 절에 왔을 때 어떤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크게 꾸짖자, 화가 치민 가토가 칼을 빼서 베니 홀연히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렸으므로 가토는 겁이 나서 도망쳤다고 한다. 현재 국사의 비신(碑身)은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이 밖에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인목대비(선조의 계비이자 영창대군의 어머니)의 친필 족자를 비롯하여 당간지주, 수많은 부도군(浮屠群)이 있다. 이 중 족자는 인목대비가 이 절에 와서 수양할 때 쓴 것이다. 또한, 절 입구에 있는 14기의 부도와 절 뒤편의 수많은 부도탑은 이 절의 유구한 역사를 일깨워 준다.
특히, 절 입구에 있는 철당간지주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청주 용두사지(龍頭寺址)와 갑사(甲寺)에서만 볼 수 있는 극히 드문 문화재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칠장사의 풍수적 형국이 행주형(行舟形)이므로 이 당간으로 배의 돛대를 상징한 것이라 한다. 그 밖에도 고려 말에 왜구의 피해가 극심할 때 충주 개천사(開天寺)에 있던 사서(寺書)를 이 절로 옮겨서 보관하여 소실을 면한 일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명적암(明寂庵)·극락암(極樂庵)·백련암 등이 있다. 절 일원이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밖에도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가 10살 때까지 칠장사에서 무예를 연마했다고 하고, 조선 중기 명종 때의 의적 임꺽정이 그의 스승인 병해대사를 만나기 위해 이 절을 드나들었다고도 한다. 1723(경종 3년) 증광 문과 병과로 급제해 영조 대에 활약한 어사 박문수의 야사가 전해온다.
3정맥분기점에 다 올라서 찍은 사진입니다.
얼마전에 다시오마 했는데 오늘이 그날입니다.
조팝나무 꽃이 이쁩니다. 칠장산 정상 봉우리는 조금 더 가야 있다지요.
▶ 칠장산(七長山/492.4m)/ 삼면봉 (삼죽면, 금광면, 죽산면)
칠장산에서 서쪽은 안성시 삼죽면(三竹面)·금광면(金光面), 북쪽은 일죽면(一竹面)·용인시 백암면(白岩面)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은 충북 음성군 삼성면(三成面), 남쪽은 진천군 만승면(萬升面)을 바라 볼 수 있다. 충청북도와의 경계를 이루는 차령산맥에는 서운산(瑞雲山/547m)을 최고봉으로 500m 안팎의 산지가 솟아 있고, 이 산맥 중의 덕성산(德成山/519m)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칠현산(七賢山/516m)·칠장산(七長山/492m)·도덕산(道德山/366m) 등이 솟아 있으며, 이들 산지가 형성하는 능선을 따라 안성시는 동서 2개의 지형구로 나뉜다. 죽산면의 대부분이 도덕산(道德山/661m)·칠현산(七賢山/516m)·관해봉(觀海峰/457m)·죽림산(竹林山)·산박골산 등 높고 낮은 산지이고 북동쪽 및 북서쪽 일부 죽산천(竹山川)·장암천(長岩川) 연안과 금강(錦江) 수계에 속하는 칠장천(七長川)·개좌천(介座川)이 이루는 산간 계곡에 약간의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경기도 금광면과 죽산면·삼죽면에 걸쳐 있듯이 경기도 안성시의 동남쪽 칠현산 위쪽에 위치한 산이 바로 칠장산(492.4m)이다. 옛날부터 같은 산줄기로 서로 가까이에 있는 산이기에 칠장산과 칠현산을 혼동하여 함께 칠현산으로 불렀다. 하지만 조선 시대 어느 권력자가 이 산 일대를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후 칠장사 뒤쪽의 산이라 하여 칠장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시대 지리지나 고지도에는 칠장산이란 지명이 나오지 않아 확인할 수 없지만 그 기슭에 있는 칠현산 칠장사(七長寺)라는 사찰에 대해서는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646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칠현산 칠장사는 혜소국사가 일곱 도적을 감화시켜 수도승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사찰이지만 일곱 사람의 힘센 장정이라는 ‘칠장(七長)’이란 의미가 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일곱 사람의 어진 사람이 나왔다는 의미의 칠현산(七賢山)이 되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칠장산(七長山)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금광면·삼죽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가 49.42m이다. 산기슭에 있는 칠장사와 칠장사 주변의 울창한 숲으로 유명하고 칠현산(516.2m)·덕성산(519m)과 더불어 웅장한 산세를 이룬다. 정상에서 칠현산쪽으로 내려오면 세개의 ‘정맥분기점’이라 새겨진 이정표가 있다. 금북정맥은 칠장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로 충남을 가로질러 예산의 가야산을 지나 태안반도의 안흥진으로 이어지는 정맥이다. 한남정맥은 칠장산에서 시작하여 도덕산과 함박산으로 이어지는 13정맥의 하나이다. 또한 칠현산은 한남금북정맥의 끝나는 지점이기에 한남금북정맥에 속한다. 그리고 칠장산은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이 시작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 관해봉(觀海峰, 457.5m)
경기 안성시 죽산면 장계리와 미장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한남정맥상 칠장상과 도덕산을 연결한다. 옛날엔 화목으로 난방을 했으니 일단은 나무가 없는 것으로 가정해 보면 눈을 뜨고 본 것은 산너울이요, 눈을 감고 본 것은 바다였다. 눈으로 보는 망해봉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관해봉이다. 산바다, 산천지를 말하지 않았을까? 요즘은 새해 일출 명소로도 부상하는가 보다.
♤ 도덕산(道德山, 365.9m)
경기 안성시 죽산면 장능리에 있는 산이다. 죽산면(竹山面)은 경기도 안성시 북부, 남동쪽 끝에 있는 면으로 1992년 9월 이죽면(二竹面)에서 죽산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서쪽은 삼죽면·금광면, 북쪽은 일죽면·용인시 백암면에 접하며, 동쪽은 충북 음성군 삼성면, 남쪽은 진천군 광혜원면에 접한다.
옛날 고개 녹박재와 동물이동통로에 있는 표지판 녹박재와는 상이한 장소입니다.
♤ 녹베고개/녹박재
녹박재는 달골마을에서 녹배골마을로 넘어가는 임도고개이다. 예전에는 로프를 잡고 녹베고개에 내려 임도를 건너 가파른 절개지를 올랐다. 185m봉에 올라 오른쪽으로 내려서고 이어 조성중인 임도를 따라 내려 38번 국도에 닿으면 건널목이 없어 차가 뜸한 때를 기다려 중앙분리대를 타고 넘어 무단횡단으로 죽산만남의광장에 들렀다. 하지만 지금은 동물이동통로를 통해 죽산만남의광장을 패스한다.
♤ 죽주산성
경기도 기념물 제 69호인 죽주산성은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안성8경 중 하나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축조한 성곽으로 죽주산성은 1236년(고종 23) 죽주방호별감 송문주가 몽골군과 15일간 전투를 펼쳐서 승리한 곳이다. 이는 6차에 걸친 몽골 침입에서 고려가 승리한 대표적인 전투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도 한양으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되어 지속적으로 산성을 보수하여 활용하였다. 국난극복의 성지로 알려져 산성에 대한 정비가 추진되었고 그 과정에서 2001년부터 발굴조사도 연차적으로 실시되었다. 그 결과 죽주산성은 내성, 중성, 외성 등 3중 성벽으로 구조로 밝혀졌다. 내성은 조선시대, 중성은 신라시대, 외성은 고려시대 등 축조시기도 규명되었다. 전체 둘레는 약 1688m이고 원래 높이는 6∼8m(내성 및 복원 성벽은 2.5m 내외) 정도이다. 죽산(매산리)은 영남대로가 조령과 추풍령 방면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었다.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도성의 방어와 관련하여 중요시되었다. 6세기 중반경 신라가 북진하는 과정에서 서울 지역과 대중국교역항이 있었던 당항진(남양만 일대)으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으로 산성이 축조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중성 북동쪽 2개의 능선과 계곡을 막아 외성을 축조하였다. 축조시기는 출토되는 기와편으로 보아 고려 전기(광종∼현종)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중성을 수축하고 그 안으로 내성도 축조하였다. 그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광해군)로 추정되며 성벽을 겹겹히 두어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치성에는 왜성의 축조 기법을 도입하고 포루도 설치하였다. 죽주산성은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과정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되어 신라의 북진 전개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유적이다. 또한 신라말 지방세력(기훤, 궁예)과 관련되어 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록에도 자주 보이고 있다. 고고학적으로는 각 시대별 성벽 축조 방법과 활용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면사무소를 나와 우회전하면 도로변에 식당과 편의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칠장사에서 삼죽면사무소까지 물 500cc면 가능하답니다.
♤ 삼죽면사무소
삼죽면사무소는 100년이 넘은 곳으로 삼죽면(三竹面)은 경기도 안성시 북부에 있는 면으로 동쪽으로는 죽산면, 서쪽으로는 보개면, 남쪽으로는 금광면, 북쪽으로는 용인시와 접한다. 정맥길은 삼죽면사무소를 통과하여 덕산저수지 방향으로 향한다.
정맥은 국사봉삼거리에서 우틀하여 북진하고 국사봉은 배낭 놓고 100m 다녀와야 한다. 그런데 정상에서 100m쯤 옆에 또 무슨 전망바위가 있는가 보다 만은 거기까지는 시간이 부족하다.
♤ 국사봉(國師峰/438.0m) /삼죽면과 보개면 접경
안성시 삼죽면과 보개면에 걸쳐 있는 국사봉은 비교적 작은 산이지만 옛날옛적에는 국사신앙이 창궐한 곳으로 사찰이 많고 승려가 많은 산이었다 한다. 산 이름 국사봉도 고려 때 도선국사가 미륵사를 세우고 수도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이 산에는 지방문화재급 유산인 오래된 미륵불이 다섯개가 있는데 가솔리의 미륵사터에 두 개(경기도무형문화재 36호)가 있고, 나머지 세 개(향토유적42호)는 정상 부근의 국사암에 있다. 두 곳의 미륵불이 모두 고려 때의 것으로, 가솔리 쌍미륵불은 두 개로 남녀미륵 또는 쌍미륵으로 부르고 국사암에 있는 세개의 미륵불과 관련해서는 태봉국의 궁예와 관련된 전설이 전하는데 내용인즉, 스스로를 미륵의 화신이라고 주장한 궁예가 좌불은 문관, 우불은 무관, 중앙은 궁예를 각각 상징토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왼쪽 미륵은 보검을 들고 있고 우측미륵은 약병을 들고 있으며 중앙의 미륵은 키가 조금 크다. 비교적 흙이 많고 바위가 적은 편으로, 특별한 것이 없으나 정상에 장군바위가 하나 멋있게 생겨서 인상적이다. 가까이에 칠장산이 마주보고 있어 하루 연계산행으로 좋다.
♤ 상봉
덕재고개를 지나 상봉으로 오르는데 반바지님의 상봉표지와 트랭글 뺏지가 들어오는 장소가 약간 다릅니다. 누군가 표지를 옮겨두었으면 좋겠네요. 이후 가현치로 내려섭니다.
♤ 가현치
가치래미에서 삼죽면 배태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가치래미고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산행지도에 표기된 가현고개가 바로 가치래미고개입니다. 가치래미라는 지명은 7개의 암자 가운데 길이 있는 명당이 있다는 뜻의 가칠암(加七庵)과 마을 뒷산에 7개의 바위가 연이어 있다는 뜻의 가칠암(加七岩)에서 유래되었다는 두가지 설이 있다고 합니다.
중앙 좌측 뒤쪽으로 달기봉과 구불구불 구봉산이 보입니다.
♤ 천주교수원교구공원묘원/ 삼면봉(백암면, 삼죽면, 보개면)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보삼로(북가현리)에 있다. 질서있게 깔끔한 묘원의 정상 안내표지에 누군가 가현산(306.6m)이라 적어놓았다.
♤ 달기봉(415m)
가현치를 지나 황새울에서 오른다. 정상이자 가현치와 구봉산의 갈림길이다.
♤ MBC드라미아/ 용인대장금테마파크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골짜기 안쪽으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MBC사극촬영 야외 오픈 세트장으로 한류 테마파크이자 문화체험장이다. 원래 이름은 용인 MBC드라미아였으며, 2011년에 폐장한 <영주대장금테마파크>의 세트장 일부를 옮겨와 <용인대장금테마파크>로 개칭하였다. 주몽, 선덕여왕, 동이, 짝패 등 수많은 사극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가현산 인근 무명봉(345.9m)에서 용인시 백암면에 닿아 시계를 따라가다 달기봉에서 구봉산을 보며 오르는 중간에 안성시 보개면과 용인시 원삼면 백암면의 삼면봉(무명봉)에 닿는다.
♤ 안성시 보개면, 용인시 원삼면, 백암면의 삼면봉
용인시(龍仁市)는 본래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쳐, 용구(龍駒)에서 용(龍)자와 처인(處仁)의 인(仁)자를 따와 용인현(龍仁縣)이라고 칭하다가, 후에 양지군(陽智郡)을 포함해 오늘날 용인시(龍仁市)가 되었다.
산불감시 시설 컨테이너박스에 문이 열린다. 위기시 피난처로도 충분해 보인다.
469m봉 삼각점
♤ 구봉산(九峰山/465.1m)/ 용인과 안성의 경계
경기도 용인시의 동남쪽에 위치한 산이다. 원삼면과 백암면·안성시에 걸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구봉산은 현의 남쪽 30리에 있으며 죽산현에서도 보인다.”라고 하며 관련 기록이 처음 보인다. 「동국여지지」 죽산현편에 “구봉산은 현의 서북 22리에 있는데 병풍을 비껴 세운 것 같으며 꼭대기에 아홉 개의 머리(腦)가 있어 이름도 이에 연유한다.”라고 그 유래를 밝히고 있다. 「택리지」에는 “죽산 남쪽(북서쪽의 오기)에 있는 구봉산은 산이 고리처럼 돌아서 산성을 만들만 하고, 또 경기 호남과의 한길 한복판에 위치하였다.”고 구봉산의 지리적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청미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구봉산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드라미아 세트장과 정배산 아래로 야트막하지만 봉우리가 특이한 조비산이 눈에 뜨입니다.
♤ 조비산(294.5m)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석천리, 장평리에 걸쳐 있는 새가 나는 모습의 조비산(鳥飛山)은 용인8경 중 제6경이다. 나즈막하고 산세는 작지만 황금들판 가운데 아래쪽은 흙산이고 정상부는 거대한 바위로 우뚝 솟은 암봉이 절경을 이루며 용인에서 제일 아름다운 산으로 꼽힌다. 남쪽으로 절벽을 이루며 깍아지른 암봉 아래로 상당히 큰 인공 동굴인 석굴이 있고 암벽꾼들의 연습장으로 활용되는 암장이 있다. 비박테크 시설이 있는 정상 암봉에 서면 주변 평야의 전원풍경과 사방팔방으로 일망무제 펼쳐지는 주변 산군들의 조망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다른 산들은 머리를 서울로 향하고 있는데 유독 조비산만 남쪽으로 두고 있어 '역적산'이라고도 한다. 역적산이란 산이름에 대한 다른 유래로는 조선 초기에 태조 이성계가 서울로 도읍을 옮길 때 삼각산 자리에 산이 없어 아름답고 보기 좋은 산을 이곳으로 옮겨오는 사람에게 큰 산을 내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장수가 조비산을 서울로 옮겨가는 도중 이미 삼각산을 옮겨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나서 석천리에 내려놓고 서울을 향해 방귀를 뀌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들은 조정에서는 불경을 저지른 조비산의 이름을 폐하여 조폐산이라 하고 역적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여기 직전에 좌측으로 50m, 글램핑장 수돗가에서 물을 채울 수 있습니다.
두창리고개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 미봉재/두창리(杜倉里)/ 318번 도로
두창리 유래는 옛 죽산군 원삼면의 두촌(杜村)과 창동(倉洞)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두창리라 하였다. 두촌은 옛날 두견새가 많이 오는 마을이기에, 창동은 옛날 사창이 있기에 유래했다. 두창리의 형성 및 변천은 본래 죽산군 원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두촌·분촌과 자좌리·창동 일부를 병합하여 두창리라 하고 용인군 원삼면에 편입하였다. 2005년 10월 31일 용인시 처인구가 개청되면서 두창리는 현재 처인구 원삼면에 속하는 법정리가 되었다. 두창리 자연환경은 두창리 북쪽 지역은 청미천 상류 지역에 해당되어 제4기 충적층이 넓게 분포하여 평야가 많은 미작 지대이다. 남쪽 지역은 사방이 해발 300m 내외의 구릉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중앙에 두창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다.
사암삼거리에서 미리내마을까지 57번지방도로 아스팔트를 약 1.5km 걸어갑니다. 농촌테마파크 체험마을을 지나 문수봉으로 달라붙으면 왼쪽으로 법륜사가 보이고 오른쪽이 농촌테마파크 체험마을입니다.
♤ 법륜사옆/사암리(沙岩里)/ 57번 지방도
본래 죽산군 원일면에 속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용암리, 사전리, 천곡리 및 내동의 일부와 양지군 주서면 광곡리를 합쳐서 원삼면 사암리로 하였다. 마을의 서쪽으로 문수봉이 있고 곱등고개를 지나 독조봉으로 이어진다. 사암리는 위의 능선이 동남쪽으로 흘러내려 평야 지대와 만나는 기슭에 주로 위치한다. 즉 서북쪽은 호동과 해곡동, 그리고 양지면과 경계를 이루는 산능선이고 동남쪽은 용담저수지와 경작지가 발달되어 있다.
♤ 곱든고개
곱등고개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고개로(57번 도로), 곱사의 등처럼 굽은 고개라는 뜻으로 곱든고개라고 한다. 주로 원삼면 사암리와 고당리, 독성리 일대의 주민들이 용인장으로 갈때 이용되던 고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