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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영양군과 봉화군 및 안동시의 덕산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2년 07월 17일 (제헌절인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점심때 전후로 약간 햇살이 비췄으나 대체적으로 흐리고 고온다습했으며 흐렸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21도에서 영상 32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위동재(935번 임예로 2차선 포장도로, 312미터 수준점, 312.2미터의 위동재 종이코팅지)-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396.6봉(무영객님 띠지와 선답자들 띠지들)-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좌측)-
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우측 능선진입)-잡풀 무명묘지-353 무명봉(J3 띠지, 우측 조망)-무명묘지-무명안부-325.3 무명봉(비실이님 띠지)-사유지 출입금지 경고판들(장뇌삼과 특용작물 재배
사유지)-323.2봉(무영객님과 선답자들 띠지들)-이장된 묘터-무명묘지-무명묘지(진행방향 조망)-305.3 무명봉(소나무와 밑둥봉, 좌우측 조망)-321.5봉(무명객과 금곡님 띠지)-335.5 무명봉(J3
띠지와 무명묘지)-359.9봉(이정판과 띠지들)-안개속 임하호 조망-무명묘지(진행방향 조망)-무명묘지-벳티재(비포장임도와 신수)-무명묘지-334.6 무명봉(백운회 띠지와 이장묘터)-366.4
무명봉(신산경표 띠지, 398.9봉 갈림삼거리)-멧돼지 목욕탕-346.6 무명봉(굵은 소나무봉)-바위암릉-371.2 무명봉(소나무에 백두사랑 띠지)-수렛길 등로-농장 철문(우측 우회통과)-농장 내
밭경작지 등로(안개속 임하호와 영등지맥 조망)-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비포장임도-농막 철조망 우회등로-능선진입(가시잡목과 급경사 오르막 등로)-시멘트 포장도로-374
삼각점봉(이정판, 예안314 삼각점)-시멘트 포장도로(편백나무 조림지)-그물망과 철망 과수원(감나무)-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금댕이재(사월큰길 2차선 포장도로)-잡목능선진입-
사과과수원 철망 우회-전주유공 묘지-사과과수원 철망 통과-사과과수원 시멘트 포장도로-이동통신탑(사과과수원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임하호와 영등지맥 조망-농막과 사과과수원-
399.6 무명봉(물탱크와 산악기상관측장비)-399.7 무명봉(벌목 후 편백나무 조림지와 주위 조망)-벌목 후 편백나무 조림지 능선등로(임하호와 안동호 조망)-395.7봉(무명묘지와 공터봉)-벌목지
비포장임도-능선진입(띠지들)-무명묘지-소나무 등로-368.3봉(무명객님과 선답자들 띠지들)-소나무등로-지독하게 우거진 등나무등로-282.3봉(무명객과 금곡님 띠지)-멧돼지 목욕탕-282
무명봉(소나무에 노란띠지)-진성이공 부부묘지-우거진 등나무등로-261.6 무명봉(빛바랜 띠지)-안전철봉 갈림삼거리-254 잡목 무명봉-통정대부 진성이공 묘지-땅골재(가느레이설길 2차선
포장도로, 땅골 버스정류장)-땅골길 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콘테이너박스, 광산김씨와 부인안동김씨 묘지알림 표지석)-그물망 비포장임도-239.9봉(금곡님 띠지)-비포장임도-능선
진입(법광님 띠지)-257.4봉(무명객님과 선답자들 산행띠지들)-소나무와 잡목등로-286 무명봉(여영님 띠지)-277.4봉(선답자들 산행띠지들)-비포장임도 안부-불난 흔적-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건능골 고개(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능선진입-남계선생 김공묘지와 가족묘지들-무명안부(묵은 비포장 임도)-253.3 무명봉(굵은 소나무와 백건회 띠지)-수렛길 등로-
무명묘지-253.8봉 갈림삼거리-의성김공 묘지-무명안부-비포장임도-출입금지 플랭카드3개-새마을재(시멘트 포장도로)-275.4 무명봉(노란띠지)-무명안부-275.9봉(금곡과 여영님
띠지)-잣나무 등로-비포장임도-265.5봉(무영객님 띠지)-무명묘지-비포장임도-바리실재(광산재, 천천광산길 1차선 포장도로, 235미터 광산재 종이코팅지)-능선진입-277.6 무명봉(띠지들,
좌측조망)-사부란재(이정판)-비포장임도-13번 송전탑-멧돼지 목욕탕-273.7 무명봉(굵은 아카시아나무)-315.5 무명봉(싸리나무)-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좌측)-조망(무명묘지들)-묵은 비포장
임도 갈림사거리 안부-우측 민가에서 식수 보충-능선진입-280.5 무명봉(한전 붉은띠지)-무명안부-소나무 등로-322봉(플라스틱 물통)-조망(인동장공 묘지2기)-수명재(노천길 비포장 임도,
공사중)-옹벽넘어 능선진입-조망-비포장임도-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우측)-우거진 칡넝굴과 잡풀등로-381.6 삼각점봉(이정판, 예안311 삼각점, 산불감시초소)-잡풀과 칡넝굴 등로-무명
안부(개복숭아)-375.5봉(이정판) 전망대 이정표(삼거리 392 m, 산불감시초소)-371.2 무명봉(굵은 참나무와 소나무, 고사목)-갈림삼거리(우측) 삼거리 이정표(당나무골 393 m,
전망대 392 m, 자연대2호관 1443 m)-MTB 등로(등로 훼손)-성황당 안부(신수) 당나무골 이정표(정상 186 m, 전망대 785 m, 미술학원 1400 m)-337.1봉(돌탑) 정상 이정표(용상과
석동, 미술학원 2045 m, 당나무골 186 m)-무명안부-우거진 잡풀등로-시멘트 포장도로-가티고개(관재, 1차선 포장도로, 매점은 휴업중)-능선진입-다라골길 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 갈림삼거리(좌측 밭경작지)-무명안부-삼거리 이정표(현대아파트, 안동대 뒷산 석동가티, 송천향교)-300.9봉(이정판)-비포장임도 복귀-사각정자와 운동기구-삼거리 이정표(산불초소
감성골 250 m, 정상 1120 m, 안동대 뒷산 석동가리 1680 m)-332.6 삼각점봉(이정판, 예안11 삼각점)-갈림삼거리 복귀-갈림삼거리(우측)-321.5 무명봉(산불감시초소, 출입금지)-비포장
임도 접속-휴그린 골프장 출입금지 안내판-무협산 숲길 안내판과 이정표(정상 무협산입구 1920m, 문화관광단지 800m)-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우측)-보도블록 등로-사각정자와
운동기구-갈림삼거리(우측 비포장임도)-감성골1길 1차선 포장도로(이동통신탑과 리첼호텔)-갈림사거리(좌측 경상북도 문화관광공사 북부지사, 감성골 이정판, 홀스파크민박 안내판)-
사각정자와 쉼터-안전목책 갈림삼거리-능선진입-241.8봉(금곡과 준희님 띠지)-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삼거리(좌측)-6차선 포장도로(유교랜드)-묵은 잡풀지대 통과-관광단지로 6차선 포장도로-
소천 권태호음악관-능선진입-마루금 접속-234.5 무명봉(백두사랑 띠지)-시멘트 포장도로 무명안부-비포장임도-민속촌길 1차선 포장도로-잡풀등로-물탱크-252.6봉(무영객님 띠지, 벤취쉼터와
사각탁자)-갈림사거리 이정표(성곡동, 개미골, 민속촌)와 유가전통건강숲 이정표(체력단련기구와 활인심방체험장, 약용숲과 사색의숲, 동산서원)-243.9 무명봉 이정표(동산서원과
체력단련기구)-활인심방 비포장임도-불노정 사각정자와 운동시설-능선진입-무명묘지 2기-243.2봉(이정판)-송전탑-비포장임도(밭경작지 그물망)-평화사 안내판-밭경작지 그물망-용신각과
팔각정-용신북길 2차선 포장도로-용신북1길 1차선 포장도로-호반나들이길 안내판-안동호반나들이길 표지석-법흥교 통과-강변천로(운동장)-낙동강 주차장-낙천교 통과-낙천공원-반변천
합수점(반변천과 낙동강 합수점)-산행종료
산행거리 : 35.82 Km (위동재에서 반변천 합수점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14시간 54분 (04시 29분부터 19시 23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전날 19시 30분 세종에서 일 마치고 안동시 용상동 상문장모텔 투숙(40,000.-원)
모텔 근처의 순대국집에서 순대국으로 저녁식사(10,000.-원) 후 산행 시 필요한 식수와 빵 및 아침식사 구입 (18,500.-원)
03시 00분 알림소리에 기상 후 어제 저녁에 준비한 누룽지와 햇반 및 김치로 아침식사
03시 35분 모텔 출발해 낙동강 주차장으로 이동
04시 29분 카카오택시로 산행 들머리인 위동재로 이동해 곧바로 산행 시작 (39,600.-원)
올때 - 19시 23분 반변천 합수점에서 덕산지맥 산행 종료 후 세종으로 출발
20시 30분 세종에서 일이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에 다시 집으로 귀가
22시 30분 귀가 해 저녁식사 후 곧바로 취침
덕산지맥이란 ???
백두대간 매봉산에서 부산 몰운대로 가는 낙동정맥이 칠보산(974봉) 남쪽 2.2 Km 지점 무명봉 직전에서 서남쪽으로 가지를 쳐 일월산 서북쪽 2.4 Km지점에서 일월지맥 산줄기 하나를 떨구고 남서진하여 동화재, 덕산봉(690봉), 논골재, 정갈령, 벳티재, 금댕이재, 사부란재, 관재를 지나 반변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안동시 용상동 법흥교앞에서 그 맥을 달하는 도상거리 73.1 Km되는 산줄기를 덕산지맥이라 칭한다.
이 산줄기 우측(북, 북서)으로 흐르는 물은 안동호로 들어 낙동강본류가 되고 좌측(남, 남동)으로 흐른물은 임하호로 흘러 들어 반변천이 되어 낙동강에 합류한다.
고도편차가 적고 등로가 좋아 산행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날파리의 습격과 무더운 초복 더위에 넉다운되어 두번이나 오수를 즐기며 느릿느릿 힘들게 덕산지맥 산행을 마무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덕산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상북도 영양군과 봉화군 및 안동시 그리고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네이버의 지식백과,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몇 년만에 지방으로 내려 가 일에 파묻혀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지내며 주말과 휴일도 잊다 보니 이번 주 산행은 꿈도 꾸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한가닥 기대를 가지고 배낭과 등산복을 애마에 실고 세종으로 내려 가 주말까지 일을 하지만 결국 문제해결이 쉽지 않아 귀가길에 오르는데 집에서도 편히 쉴 수 없을 것 같아 진행하다 중단된 덕산지맥 마지막 구간이라도 짧게 진행하다 여의치 못하면 일찍 귀가하기로 하고 안동으로 내려가는데 마음이 무거워 산행이나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다행히 일요일 오전에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저녁에 시운전과 샘플링 작업까지 가능하다는 희소식에 기분 좋게 덕산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기로 하는데 생각보다 등로는 좋았지만 무거운 식수와 무더위에 몇번인가 낮잠을 청하며 힘들게 마무리하고 저녁 늦게 귀가하며 세종에 들려 일도 마무리하고 올라 올 수 있어 두마리 토끼를 잡았던 기분 좋은 휴일을 보내게 되어 다행이었다.
다음주에 계획된 일월지맥 산행은 미루고 한여름 더위가 꺽일 때까지 잠시 지맥 산행을 접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듯 싶은데 그것이 가능할지 기다렸다 마음이 가는대로 산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오늘 산행은 좌측의 임하호와 우측의 안동호를 사이에 두고 이름없는 나즈막한 능선 등로를 타고 큰 고도차이 없이 진행되기에 조망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읽어보니 나뭇가지에 막혀 생각보다 풍경이나 조망이 없어 지루한 산행이 이어진다고 알고 올랐는데 그것을 느끼기도 전에 안개로 인해 초반부터 조망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지난 주 식수로 고생을 했기 때문에 4.5리터의 식수를 짊어지고 출발하니 초반부터 고온다습한 날씨로 온 몸이 굵은 땀방울로 흥건히 젖어들기 시작하고 지난주 만날 계획이었다가 만나지 못한 금댕이재 지나 사과과수원을 따라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며 등로 좌측인 남동 방향을 보니 새벽보다는 조금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임하호 뒷편으로 솟아 있는 영등지맥 상 아기산 안개속에 숨어 숨박꼭질을 하고 있어 오늘 산행중에 얼굴이나 볼 수 있을지 아쉬움이 묻어나는 시간이었다.
사과과수원을 완전히 벗어 나 거대한 물탱크과 산악기상과측장비가 보이는 무명봉으로 오르니 진행 방향으로 거대한 벌목지가 펼쳐지는데 자세히 보니 벌목 후 어린 편백나무들을 조림한 식재지였다.
뜨거운 태양이 떠 있었으면 진행이 거의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벌목 후 조림지 능선을 따라 흐린 날씨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도상 395.7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마루금 넘어 드디어 안동호가 제대로 된 모습으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곳 역시 박무가 드리워져 있어 시야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산행 날머리인 반변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 근처의 낙동강주차장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카카오택시를 부르니 5분도 되지 않아 도착하고 산행 준비 후 배낭 둘러메고 들머리인 위동재에 도착을 하니 새벽 4시 25분을 지나는데 홀로가는 산객이 걱정되는지 몇번이나 안전하게 잘 산행하고 돌아가라는 당부를 남기고 택시가 떠나가니 적막강산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다.
지난 주 식수와 음료수를 숨겨놨는데 누군가 더 급한 분이 사용을 해 금댕이재까지 가지 못하고 중단했던 위동재에서 산행 준비하며 사진 몇장 남기고 수준점과 반바지님이 걸어 둔 종이코팅지까지 확인한 후 남쪽 방향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덕산지맥 마지막 구간을 출발하는데 초반부터 고온다습한 날씨로 인해 온 몸은 물먹은 솜처럼 늘어지기 시작하며 오늘 하루 산행이 쉽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다.
위동재(312m, 935번도로)는 안동시 예안면과 임동면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서 임동면 위리에 있으며 대곡천이 마을을 가로질러 남북으로 흐른다.
임하댐의 건설로 인해 마을의 일부가 수몰된 위리의 자연마을로는 상산마을과 새터 등이 있는데 상산마을은 윗골과 인접한 상산골이라는 곳에 터를 잡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새터는 윗골에서 살던 주민들이 이주하여 새로 개척한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신기라고도 하였다.
위리는 원래 임하현에 속하였으며 마을이 위쪽에 있다고 하여 윗골과 위곡 및 위동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혁에 의하여 임하현에서 안동군 임동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기를 병합하여 위동이라고 하면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데 그 위동에 있는 고개라서 위동재라 불리는 듯 보인다.
현재 위리는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된 지역에서 이주한 주민들이 새로 형성한 1리와 기존의 자연마을로 구성된 2리로 나뉘어져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출발하니 산판도로 특유의 꼬불꼬불 이어지는데 일부는 포장이 되어있다가 곧이어 다시 비포장임도로 바뀌기를 몇번인가 반복하고 그렇게 한동안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마사토 등로가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그냥 비포장임도를 따라 진행을 해도 결국 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에서 만나는데 중간에 지도에 표기된 오늘 산행 중 최고봉인 396.6봉을 지나치게 되기에 우측 능선으로 진입을 해 정상 마루금을 따라 진행을 하기로 한다.
약간의 잡목들과 잡풀들이 보이지만 생각보다 등로 상태는 좋아 굵은 땀방울을 등로에 쏱아내며 전진하니 몇개의 무명봉을 차례로 통과한 후 드디어 굵은 참나무들이 보이는 396.6봉에 도착을 하는데 기대했던 이정판은 보이지 않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만 나뭇가지에 매달려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자세히 보니 금곡님은 고도표기를 하기 전 지나갔는지 깨끗한 상태이고 무영객님의 띠지에만 이곳이 396.6봉임을 알리는 고도 표기를 해 둬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띠지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는 396.6봉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방금 전 헤어졌던 비포장임도와 다시 만나는데 몇발자국 더 걸어가니 좌우측으로 갈리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확인을 해 보니 뚜렷한 비포장임도는 우측으로 보내고 잡풀이 무성한 직진의 좌측으로 이어지는 묵은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풀섶에 내려앉은 이슬이 등산화와 등산복을 축축히 적시기 시작하고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는데 안개가 심해 온 세상을 수묵화로 만들어 놨다.
그렇게 한동안 더 묵은 비포장암도를 따라 진행하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비포장임도는 좌측 아래로 내려가고 우측 소나무들이 보이는 능선 방향으로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능선으로 들어가니 이슬이도 사라지며 고온다습한 공기가 숨통을 막으며 초반부터 쉽지 않은 산행임을 알려주고 있다.
약간의 굵은 소나무 아래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잡풀이 무성한 무명묘지 지나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371.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는데 오늘은 바람 한점 불지 않아 벌써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물기가 등로로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 넘어 평이한 소나무 능선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우측으로 약간의 조망이 열리고 처음 만나는 조망에 살펴보니 안동호 방향인 남서 방향으로 400미터대의 무명봉이 솟아 있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덕산지맥 방향으로 안개속에 파묻힌 섬처럼 보이는 봉우리들이 보이는데 어느 봉우리인지는 알 수가 없다.
사진에 담고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348.6 무명봉 넘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제는 진행방향인 남쪽 방향으로 올망졸망한 덕산지맥 마루금이 좌우측에 거대한 임하호와 안동호를 두고 묘기를 부리듯 이어지는 모습이 안개속에서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보는데 좌측으로 보여야 할 임하호가 안개속에 숨어 아쉬움도 남긴다.
이름도 없고 큰 고도차이도 없는 덕산지맥 산줄기이지만 그 마루금 좌우측으로 거대한 임하호와 안동호를 두고 끊어질듯 이어지는 풍경에 감탄하며 완만하게 내려가니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무명묘지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는데 갑자기 갈림삼거리가 나타나 확인해 보니 좋은 등로를 따라 우회하는 삼거리이기에 직진의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생각보다 등로가 잘 나 있어 손쉽게 다시 우회등로와 만나는 297.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그 무명봉 지나 조금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비실이님의 띠지가 걸려있는 325.3 무명봉 넘어 약간의 노간주 가시나무와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사유지 출입금지라는 경고판과 함께 장뇌삼과 특용작물 재배지라는 안내판이 연이어 나타나고 능선 등로를 따라 가느다란 노끈이 길게 설치되어 있어 가을철 진행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그렇게 한동안 더 노끈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전진하니 도상 323.2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이정판은 보이지 않고 고도표기를 한 무영객님 띠지 주위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띠지들만 걸려있는 323.2봉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묘비는 남아있지만 이장된 듯한 묘지터가 나타나고 우측인 서쪽 방향으로 휘어져 내려가니 다시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난다.
묘지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참나무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무명봉 넘어 무명묘지가 다시 나타나는데 안개속에 시야가 제한되어 있지만 그래도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 와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제일 먼저 진행 방향인 남쪽을 보니 잠시 후 만나야 할 321.5봉 뒤로 359.9봉 그리고 우측으로 이어지며 안개속으로 숨어버린 뱃티재 건너 366.4 무명봉이 길게 이어지는데 좌측으로 보여야 할 임하호는 안개속에 숨어 아직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무명묘지에서 진행 방향으로 아름다운 조망을 즐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능선등로를 따라 전진하다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넘어 온 마루금 뒤 저 멀리 지난 주 만났던 한바위앞산 좌측인 서쪽으로 마루금에서 벗어난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후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와 고사목 주변으로 잡목들이 보이는 305.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안개속에 아쉽지만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확인도 해 본다.
제일 먼저 우측으로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 마을이 짙은 안개속에 묻혀있고 좌측으로는 조만간 만나야 할 영등지맥 마루금이 구름과 안개속에서 해메고 있는 강렬한 햇살 아래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저곳에서 이곳을 바라볼 땐 좋은 풍경으로 남아 있기를 희망도 해보는 시간이다.
등로 좌우측으로 임하호와 안동호흫 기대하며 살펴보지만 역시나 물이 많아서 그런지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워져 풍경과 조망은 아쉬움만 남기는 안동이다.
방금 전 지나 온 방향과 진행해야 할 방향을 사진에 담으며 키 작은 억새 능선등로를 따르니 좌측으로 우회등로가 뚜렷하게 나 있는 봉우리로 올라 선답자들의 산행띠지 두어장만 걸려있는 도상 321.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살펴보니 금곡님과 무영객님 띠지인데 무영객님이 고도 표기를 해 놔 감사한 목례를 하고 곧바로 출발한다.
이정판도 없이 달랑 산행띠지 두장만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321.5봉 지나 평이하게 이어지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에 묶여있는 노란띠지가 눈길을 잡는 309.8 무명봉 넘어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생각보다 좋은 능선 등로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전진하니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묘지 위 소나무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335.5 무명봉도 통과한다.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마루금이지만 습도가 높고 기온이 빠르게 오르는지 식수를 마시는 속도도 빠르고 마신 물이 곧바로 땀방울로 배출이 되는지 온몸을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은 준비한 수건을 흥건히 적시지만 멈출 기미는 전혀 없는 듯 하다.
잠시 후 오늘 처음 만나는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과 그 옆 소나무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359.9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잠시 서 있는 시간에도 굵은 땀방울은 얼굴을 타고 내려가 등로를 적시기 시작한다.
흐르는 땀방울 닦아내고 식수 한모금 더 마신 후 우측인 서쪽으로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풍경과 조망이 열려 살펴보니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 마을을 흐르는 대곡천이 임하호로 유입되는 초입 뒤로 거대한 임하호가 펼쳐지는데 그곳은 여전히 짙은 안개로 인해 온전한 모습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이렇게나마 내려다 보며 사진 한장 남길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다.
임하호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과 임동면에 걸쳐 있는 호수로서 건립 경위는 생활 및 공업과 농업 용수의 공급과 전력생산 및 홍수조절을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으며 임하호 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의 고건물들은 이전하여 지례예술촌을 형성하였다.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와 임동면 망천리 사이의 반변천 협곡에 높이 73m와 길이 515m 규모의 다목적 인공호로 건설된 임하호는 1984년 12월 착공하여 1993년 12월에 완공되었다.
총 저수량은 5억 9500만t으로 유효저수량은 4억 2400만t이나 만수위 저수량은 5억 4800만t인 임하호는 안동시와 대구 및 구미 등 경상북도 내륙 공업도시의 생활 및 공업 용수와 낙동강 하천 유지 용수 등에 필요한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안동시에서 영덕군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고 북서쪽으로 안동호와 가까이 위치해 있는 임하호는 반변천과 용전천의 물이 유입되며 하루 40만t의 물을 영천댐으로 공급하고 있다.
현재 임하호는 수상 레저와 낚시 장소로 애용되고 있으며 주변에는 백운정 유원지, 동암정, 봉황사, 수애당 등의 문화 유적지가 있다.
오늘 덕산지맥 마지막 산행을 하면서 계속 살펴보게 될 임하호이지만 안개로 인해 그 모습이 시시각각 변하기에 이 모습은 이 시간이 마지막이란 마음으로 정성을 드려보지만 모바일 폰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드ㅡㅇ로 좌측으로 제대로 된 임하호를 처음으로 대면하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이제는 진행 방향인 남서 방향으로 잠시 후 만나야 할 덕산지맥 마루금이 박무속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그 흐름도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아래 잘록한 비포장임도가 지나는 뱃티재 넘어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들게 오른 380봉이 사진 정중앙으로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안개속에 숨어 있는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398.9봉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안도감을 주고 좌측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며 이어지는 덕산지맥 마루금이 몽환적인 풍경으로 이 산객을 홀리고 있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임하호와 진행방향으로 약 380 무명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확인하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상석이 땅에 묻혀있는 묘지 한기 지나 진행 방향으로 뱃티재 넘어 올라야 할 마루금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다.
곧이어 무명묘지 한기를 더 지나 내려가니 비포장임도가 지나고 굵은 신수 두그루가 보이는 도상 뱃티재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며 살펴보니 좌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는 잘 관리되고 있는 듯 보인다.
뱃티재(수렛길 안부)의 베티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으로 옛날 이 마을의 미내산에 절과 미륵부처가 있었는데 손님이 찾아왔을 때 절의 스님이 주문을 외우면 국수가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 후 절과 미륵불이 없어지고 국수가 나오는 영험이 없어지자 사람들은 성현이 변했다고 해서 별티라고 불렀다가 이 음이 변하여 벼티 또는 베티로 되었는데 그 베티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고개이름이다.
신수가 있고 비포장임도가 지나는 벳티재 안부 지나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넓은 수렛길 같은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한동안 뚜렷하게 이어지는데 오를수록 경사도가 가파라지며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들게 오르는 시간이 되었다.
한동안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며 두어번을 쉬어 오르니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다시 꾸준히 오르니 이장된 묘지터 옆 나뭇가지에 백운회란 띠지가 걸려있는 334.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식수 한모금 마시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잠시 쉬어간다.
이제 경사도가 완만해진 잡목 등로를 타고 오르니 바위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380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우측 옆으로 보이는 도상 398.9봉을 다녀올까 고민을 하다 무더위에 포기하고 지맥 산행에 집중하기로 한다.
마루금 우측으로 벗어 나 있는 398.9봉 갈림삼거리봉에서 이제 등로는 남쪽으로 바뀌어 이어지는데 굴곡진 소나무 아래 사초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더 편안하게 전진하니 잘린 소나무 고사목이 쓰러져 있는 무명봉 넘어 등로 옆으로 커다란 멧돼지 목욕탕 2개가 보이는 지점에 도착을 하는데 주위 나무들이 멧돼지들이 문지른 흔적들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그 멧돼지 목욕탕을 지나서도 등로는 크게 변하지 않고 굴곡진 소나무 아래 파란 사초들이 자라고 있는 걷기 좋은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두개의 멧돼지 목욕탕을 지나 소나무 아래 사초가 깔려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키 작은 잡목들이 간간히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한동안 편안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바람 한점 없는 한여름 무더위 산행이 참으로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더 느끼는 시간이다.
잠시 후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던 바위들이 나타나고 짧은 바위암릉을 통과하니 소나무 아래 사초들이 깔려있는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나타나고 바위암릉을 우회하며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안개속에 파묻혀 있는 사월리 마을이 희미하게 보이고 곧이어 커다란 분재형 소나무에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371.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무명봉 지나 넓은 수렛길 같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고 금곡님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넘어 약간의 잡풀들이 보이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진행한다.
한동안 더 비포장임도 같은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하루살이와 날벌래들이 모여들어 진행에 상당한 방해를 받다 보니 그것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우거진 잡풀들이 보이는 등로 지나 조금 더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녹슨 철망과 철문이 보이는 농장 입구에 도착을 하는데 어느 선답자가 문을 열고 진행을 했다는 소식에 문을 열어 보지만 굳게 닫혀 열리지 않기에 우측 잡목속을 찾아 보니 선답자들이 진행한 흔적이 보여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공사하다 멈춘 포크레인이 보이는 밭 개간지에 도착을 해 조심스럽게 그 밭 경작지를 따라 진행을 하는데 구름이 낀 흐린 날씨에 햇볕이 없어 그나마 진행이 수월해 감사한 마음이다.
나무들이 모두 사라진 새로 개간된 밭경작지를 따라 남쪽 방향으로 걸어가며 등로 좌측을 보니 드디어 임동면 중평리 마을과 밭경작지 아래로 임하호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아직도 안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몽환적인 풍경을 선물하고 그 위에 건설된 임동교 넘어 조만간 다시 만나야 할 영등지맥 상 589.3미터의 아가산이 수줍은 듯 안개속에 숨어 있다.
아가산 좌측으로는 영등지맥 마루금 상 고산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좌측으로 영등산을 찾아 보지만 능선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등로 좌측으로 임하호와 영등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이어지는 새로 개간된 밭경작지를 따라 걸어가며 혹시 주인장에게 들켜 진행에 어려움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하며 전진하니 진행 방향 저 멀리 민가처럼 보이는 건물과 창고들이 보여 더욱 긴장감이 높아지고 그 민가 우측 뒤로 둥그런 374 삼각점봉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보기와는 달리 저 삼각점봉으로 오르는 등로는 참으로 오르기 힘든 가파른 사토등로로서 한바탕 진을 빼고서야 오를 수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개간지를 타고 좌측을 확인하며 걸어가니 좌측 마을 방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는 갈림사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걱정과 근심 가득한 얼굴로 민가 방향으로 조심히 올라 가 본다.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 안부를 지나 비포장임도를 타고 민가 방향으로 오르다 등로 좌측 뒤를 보니 영등산이 보일듯 한데 짙은 안개가 가득해 전혀 보이지 않기에 아쉬운 발길을 돌리니 드디어 철망과 철문이 굳게 잠겨 있는 민가 앞에 도착을 하는데 민가는 비어있는지 조용하기만 해 한시름 놓고 마음 편히 민가를 좌측에 두고 묵은 밭경작지 지나 잡목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어렵게 진행을 이어간다.
그곳에서 잠시 지나온 방향인 우측을 살펴보니 새로 개간된 밭경작지 끝 저 멀리 포크레인이 서 있고 그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덕산지맥 마루금이 벌써 고운 추억이 되어 가슴속으로 쌓이고 있다.
잠시 더 철망 우측 옆으로 우거진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걸어가니 드디어 철망이 끝이나고 밭경작지가 나타나더니 등로는 곧바로 우거진 아카시아 나무 군락지 속으로 이어지고 있어 힘들게 그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굵은 참나무들이 보이는 가파른 능선 등로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갑자기 희미해지는 등로를 찾아 살펴보니 많은 선답자들이 우측으로 크게 우회하며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삼각점봉으로 오른 흔적들이 보이는데 직등으로 올라도 삼각점봉으로 오를 수 있을 것 같아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마사토가 쉽게 흘러 내리고 그 위에 낙엽꺼지 덮혀 있어 괜시리 고생을 하는 듯 했으니 거리가 짧아 금방 우측에서 올라 오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몇걸음 오르니 드디어 예안314란 삼각점과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374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어렵게 374 삼각점봉을 확인하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니 도로 양쪽으로는 벌목 후 어린 편백나무들이 식재되어 있고 곧이어 굵은 활엽수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산림 사이로 도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나즈막한 안부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도로 우측으로 그물망이 설치된 감나무 과수원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 저 멀리 사과과수원 정상부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바로 앞 묘지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이어지며 전체적으로 남쪽과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임하호가 지척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우측으로 펼쳐진 과수원을 살펴보며 진행하니 갈림사거리 지나 진행 방향으로 금댕이재 지나 사과과수원이 펼쳐진 풍경들도 보이면서 드디어 지난주 계획했다 만나지 못한 사월큰길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금댕이재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며 무더위를 식혀본다.
금댕이재(2차선도로)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 있는 금당마을에서 유래된 듯 보이는데 금당은 마을 안에 아름다운 못이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발전하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사월큰길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금댕이재에서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 좌측 사과과수원 방향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을 해도 되겠지만 무더위에 도로를 걷는것이 부담이 되어 높은 콘크리트 옹벽 넘어 가시잡목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니 드넓은 사과과수원이 펼쳐져 있는데 그 과수원 방향으로는 철망이 설치되어 있고 철망 바로 옆으로는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우측 사월큰길 도로 가까운 곳 사면 능선으로 어렵게 전진하니 관리되지 않는 전주유공 묘지가 나타난다.
이곳 사과과수원이 있는 사월리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리로서 임하댐의 건설로 인해 일부가 수몰되었으며 자연마을로는 새마을, 베티, 중벵이, 금댕이, 낙수골 등이 있어 지금까지 진행하면서 들어 본 지명들이라 반갑기도 하다.
묘지를 지나니 우측 아래로 우회하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지만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내려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고 좌측 옆으로는 나즈막한 철망 넘어 주먹보다 작은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드넓은 사과과수원이 보여 조심스럽게 철망을 넘어 사과과수원 가장자리를 따라 조금 전진하니 개가 짖기 시작하며 주인장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살펴보니 도로 건너 주인장이 밀집된 사과들을 솎아내며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제지하고 있어 인사 드리고 다시 만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며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드넓은 사과과수원 뒤 저 멀리 물탱크와 산악기상관측장비들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사과과수원 내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를 만나 좌측으로 걸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도로 좌측 옆으로는 드높은 이동통신탑이 서 있는데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보면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 진입로를 통해 우회하며 오르다 보면 정면으로 보이는 통신탑이 바로 이 탑인 듯 보인다.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따라 다시 우측인 서쪽 방향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우측 사과과수원에서는 주인인 듯 보이는 아주머니 한분 역시 과밀된 사과들을 솎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 인사 드리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도로를 따라 오르며 좌측을 보니 벌목지 위에 키 작은 아카시아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하며 그 아래 임동면 수곡리 마을의 건물들과 임하호 그리고 그 임하호에 건설된 수곡교가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로는 여전히 짙은 안개속에 파묻혀 얼구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 영등지맥과 아기산이 궁금증만 더해가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임동면 마을과 임하호 그리고 영등지맥 마루금과 아기산을 확인하며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수곡교 우측 뒤 저 멀리 호수처럼 생긴 임하호 중앙부가 살짝 보이고 그 뒤로 보여야 앟 영등지맥 주산인 영등산을 찾아 보지만 아기산과 마찬가지로 안개속에 숨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파란 물탱크 2개가 보이는 곳에서 사과과수원은 끝이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또 다른 사과과수원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넝약을 치는지 요란한 기계음 소리가 들리면서 진행 방향 저 멀리 제법 큰 농막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조용히 농막을 지나쳐 오른 언덕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398.9봉에서 철문이 있던 새로 개간된 농장 지나 374 삼각점봉과 지붕으로 가려진 금댕이재 넘어 사과과수원을 타고 이곳으로 올라 온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와 잠시 추억이 되어 버린 시간들과 풍경들을 감상해 보는데 구름으로 날씨가 흐려 다행이지 뜨거운 햇살이 비췄다면 이곳에서 탈진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도로를 따라 사진을 남기며 주위에 펼쳐진 풍경들을 구경하며 오르니 일을 하던 농부가 멀찍이 이 산객의 동향을 살피더니 자주 봤던 등산객임을 알았는지 하던일에 집중하며 신경도 쓰지 않아 편안하게 걸어 오른다.
위로 오를수록 새로 벅목 후 키 작은 사과묘목들을 식재한 후 지지대를 설치한 풍경들이 자주 나타나고 좌측으로도 드넓은 산림들이 완전히 벌거벗긴 상태로 펼쳐져 있어 편백나무를 조림하던지 새로운 과수원을 조성하려는 듯 보이는데 그 넓이가 상상을 초월하는 넓이이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며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을 사진에 담으며 오르니 드디어 커다란 물탱크 하나와 전봇대 그리고 철망으로 보호되고 있는 산악기상관측장비들이 보이는 395.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커다란 물탱크와 산악기상관측장비를 지나자마자 새로 개간한 듯한 비포장임도 지나 바위들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살펴보니 벌거벗은 드넓은 벌목지가 눈앞으로 펼쳐지는데 오룩스 맵의 고도로는 399.6미터를 나타내는 벌목지 바위 무명봉으로 그곳에서 살펴보는 풍경과 조망 역시 일품이라 한동안 머물며 간식도 먹고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으며 구름속에 숨어 있는 햇살이 고맙기만 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바람 한점 없이 높은 습도에 기온까지 빠르게 오르면서 잠시 쉬고 있어도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은 닦아도 금새 얼굴을 흥건히 적시고 있어 참으로 쉽지 않은 여름 산행임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시간이다.
허기를 달래고 충분한 물까지 마신 후 진행 방향인 서쪽으로 펼쳐진 드넓은 벌목지 능선 뒤로 솟아 있는 395.7봉과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확인하고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 없기에 약간의 산불 흔적이 남아 있는 벌목지 능선을 따라 눈 앞으로 보이는 395.7봉을 향해 출발한다.
불난 흔적이 있는 벌목지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우측에서 내려오는 비포장임도를 만나 능선 위로 조성된 비포장임도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가며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지도로 확인하며 즐겨 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며 등로 우측 앞으로 보니 드디어 잠시 후 걸어 만나야 할 덕산지맥 마루금 넘어 저 멀리 임동면 마리 뒤로 낙동강에 조성된 거대한 안동호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주위 산줄기에 막혀 호수같은 느낌보다는 일반 낙동강의 한 줄기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몇장의 사진에 담고 더 진행하니 이제 등로 옆으로 노란 원추리가 활짝 펴 계절의 흐름을 알려주고 이제 등로 좌측인 동쪽을 보니 여전히 임하호 뒤로 영등지맥의 아기산이 보이는데 아기산은 안개속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
햇살이 구름속에 숨어 조금은 편안하게 벌목지 능선 비포방임도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가며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나즈막한 안부 지나 395.7봉 정상으로 오르니 잡풀이 무성한 묘지 뒤로 나무들이 모두 잘려진 벌목된 공터봉이다.
그곳 395.7봉 정상에서 잠시 전 머물다 내려 온 산악기상관측장비가 있던 무명봉 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벌목지 능선 비포장임도를 따라 지나 온 마루금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 몇장에 남겨 본다.
벌목 공터봉인 395.7봉 역시 풍경과 조망이 뛰어나 많은 사진들을 남기고 지도를 펴 살펴보니 제일 먼저 진행 방향인 북서쪽으로 여전히 벌목된 능선등로가 붉게 드러나 있고 그 좌측으로 흐르면서 벌목지가 끝이나며 보통의 등로 풍경으로 바뀌고 있다.
그 좌측 뒤 멀리 임동면 마리마을 뒷쪽으로는 제법 호수의 모습으로 내려다 보이는 거대한 안동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 산행은 등로 양쪽으로 가깝게 임하호와 안동호를 두고 걸어가는 특이한 산줄기 산행이 되고 있다.
안동호는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 와룡면, 임동면 및 임하면에 걸쳐 있는 낙동강 상류 수계에 있는 인공호로서 유역 면적은 1,584 Km2이고 만수위 때의 수면 면적은 55.2 Km2이며 저수지 면적은 51.5 Km2이다.
안동댐 주변의 미관 증진 및 환경개선 사업으로 생태공원 조성 사업을 하기도 하였는데 소나무와 박태기 등을 식재하고 부레옥잠과 연꽃, 꽃창포, 마름 등의 수생 식물이 살고 있으며 수생 동물류는 붕어와 우렁이, 황소개구리, 청거북 등이 조류로는 산비둘기와 오색딱따구리 및 박새 등이 있다.
1971년 10월 와룡면 중가구리로 흐르는 낙동강의 협곡에 높이 83m에 길이 612m의 다목적 댐인 안동댐이 건설됨으로써 낙동강 수계의 최대 인공 저수지가 되었는데 안동댐이 1976년 10월 28일 준공됨으로써 안동호가 탄생하게 되었다.
안동호의 총저수량은 125억 톤에 달하며 하류 지역의 연례적인 홍수피해를 줄이고 생활 및 농업과 공업 용수 공급과 전력 생산을 위해 조성된 안동호는 연간 9억 2,600만t에 달하는 각종 용수를 공급함으로써 구미와 대구, 창원, 부산, 울산 등지에 그 혜택이 널리 미치게 되었다.
연안 일대의 도산 서원을 비롯하여 석빙고 등 각종 문화재가 산재하고 주변의 깊은 계곡과 함께 경관이 빼어나 호반 관광 명소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안동호와 진행방향을 확인하고 눈을 돌려 지나온 북동 방향과 동쪽 그리고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지금까지 진행하면서 바라봤던 임하호와 영등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고 서쪽으로는 안동호와 낙동강이 보이는데 모두 비슷한 모습들이라 사진에만 담고 조금 더 휴식을 취한 후 우측인 북쪽 방향으로 틀어 벌목지 능선을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넓은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고 그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며 진행 방향을 보니 바로 앞으로 우회 등로가 갈리는 378 무명봉이 보이고 좌측 뒤 저 멀리로는 잠시 후 만나야 할 368.3봉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두 눈에 들어 와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능선 비포장임도를 타고 378 무명봉으로 오르니 우측 소나무 가지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원 마루금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좌측 비포장임도도 결국 무명봉 직전에서 원마루금과 합류되기에 편안하게 비포장임도를 따라 우회한 선답자들도 꽤 있어 보인다.
고민하다 나중에 우회될 듯 싶어 우측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들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생각보다 뚜렷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잠시 후 잡풀들이 보이는 무명묘지 지나 굴곡진 자연 그대로의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는데 아무 표식도 없고 띠지 한장 걸려있지 않은 길주의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으로 꺽어 어렵게 산행을 이어간다.
그곳 무명봉 지나자마자 소나무 아래 사초들이 하늘거리는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자리펴고 앉아 준비한 빵과 물로 허기를 달래는데 그 빵속에 있던 크림이 잘못되었는지 진행하다 속이 거북해 어려운 시간도 있었기에 여름철 먹거리 준비도 조금 더 신경이 쓰이는 산행이다.
허기를 달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소나무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져 방향만 보고 찾아 걸어가니 노간주 가시나무에 선답자의 산해이지가 걸려이는 무명봉을 지나고 다시 등로가 뚜렷하지며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한동안 관목의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 몇그루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어 지도를 확인해 보니 도상 368.3봉인데 실제 정상은 우측으로 조금 더 진행된 곳처럼 보여 올라가 보지만 굵은 소나무에 노란 띠지 한장이 걸려있는 것이 전부이기에 다시 내려 와 띠지들을 사진에 담으며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남쪽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도상에 표기된 족보있는 봉우리조차 이정판 하나 제대로 걸려있지 않아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368.3봉을 출발해 남쪽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나무들이 사라지며 등로 좌측으로 시원한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에 담으며 그 이름들을 확인해 본다.
등로 좌측인 동쪽과 남동 방향으로 방금 전 지나 온 소나무 등로 뒷쪽으로 벌거벗은 벌목능선이 사진 좌측 뒤로 펼쳐져 있는데 좌측 뒤로 물탱크와 산악기산관측장비가 보이는 무명봉과 잘록한 안부 지나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던 공터무명봉인 395.7봉이 보이고 그 가운데 앞쪽으로는 능선으로 진입하며 진행을 한 378 무명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사진 우측 뒤로는 드디어 임하호 뒷쪽으로 솟아 있는 589.3미터의 영등지맥 상 아기산이 머리에 쓰고 있던 짙은 안개를 완전히 벗겨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멀어지는 이 산객을 배웅하듯 솟아 있는데 저 아기산은 또 언제나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한 시간이다.
등로 좌측인 동쪽과 남동 방향으로 지나온 마루금과 영등지맥 상 아기산을 확인하고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무명안부 지나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 찬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후 소나무가 빼곡한 주능선에 도착을 하니 고사목들이 등로에 널려있고 곧이어 잘 보이지 않던 바위암봉이 나타나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니 다시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 사이로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날 수 있는 뚜렷한 능선 등로가 길게 펼쳐져 있다.
다시 썩어가는 고사목들이 쓰러져 있는 무명봉 넘어 전진하니 잘 보이지 않던 잡목들이 조금씩 늘어나더니 갑자기 눈 앞으로 거대한 등나무 줄기들이 우거져 등로 자체를 완전히 집어 삼키고 있는 지점에 도착을 해 난감해 하며 살펴보니 우거진 등나무 줄기 사이로 지나간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여 줄기를 들어 보니 지나갈 수 이는 공간들이 생긴다.
힘들게 우거진 등나무 줄기들을 헤치며 그늘속으로 들어가니 여전히 등나무 줄기들이 보이지만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어 나무들을 헤치며 전진한다.
그렇게 잠시 더 전진하니 이제 등나무보다는 잡목들이 더 보이기 시작하고 조심하며 걸어가니 등나무 줄기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어 넘어지기 쉽기에 조심하며 진행하니 갑자기 잡목 사이로 금곡님 띠지 한장이 보여 트랙을 확인해 보니 도상 282.3봉으로 금곡님 띠지 뒷쪽으로 무영객님이 띠지에 고도 표기를 해 뒀고 그 옆으로도 몇장의 선답자들 띠지들이 더 보여 사진에 담고 이제 북서쪽으로 크게 휘어져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도상 282.3봉에서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을 확인하고 북서 방향으로 걸어가니 굵은 소나무 사이로 제법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흙탕물과 주변으로 고사목들이 흩어져 있는 멧돼지 목욕탕을 만나는데 이곳 주변의 굵은 소나무 몇그루도 멧돼지들이 몸을 문질러 죽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멧돼지 목욕탕을 지나 잠시 편안한 소나무 능선 등로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에 노란띠지가 걸려있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들이 적혀있는 282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그곳에서 다시 좌측인 남쪽으로 크게 방향을 바꿔 이어지고 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 등로가 잡목들로 바뀌면서 진성이공묘지 2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으로 마루금을 확인하고 통과하니 잡목 지대 지나 소나무 등로가 다시 이어진다.
한동안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우측 옆으로 나즈막한 산줄기 넘어 안동호가 보이고 안동호 뒤로 나즈막한 461미터의 와룡산이 솟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안동호와 그 뒤로 솟아 있는 와룡산을 확인하고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안전철봉이 설치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아래를 확인해 보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등로와 함께 따라 오고 있다.
그 갈림삼거리 지나 묘지지대를 통과한 후 오르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보이는 25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가니 조선시대 문신정3품 상계인 당상관을 지낸 통정대부 진성이공 묘지가 보인다.
묘지 지나 바위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넘어 내려가니 가느래미설길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도로 옆으로는 땅골 버스정류장이 서 있는 땅골재에 도착을 하는데 땅골재(가느래미설길 2차선 포장도로와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땅골 버스정류장)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리에 있는 자연마을인 땅골에서 유래된 고개 이름으로 땅골은 깊은 골짜기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고 또한 이곳을 가느래재라고도 하는데 가느래는 마을 앞에 폭이 좁고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세천이라고도 한다.
땅골재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고 다시 물 한모금 마신 후 도로 건너 보이는 땅골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낡은 건물 앞으로 고철들이 썩어가고 그 바로 뒷쪽으로 콘테이너 박스 2동이 보인다.
그 콘테이너 박스 2동을 지나자마자 도로 좌측 옆으로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묵은 비포장임도가 갈리는데 그 묵은 비포장임도 방향이 마루금으로서 그 입구 우측 옆으로는 광산김씨와 부인 안동김씨 묘지로 갈 수 있다는 표지석이 서 있다.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를 우측으로 버리고 좌측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묵은 비포장임도 방향으로 오르니 임도 좌측으로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어 내려다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민가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 민가에서 특용작물을 재배하며 설치한 듯 보인다.
잠시 더 그 묵은 비포장임도에 우거진 잡풀들을 헤치며 오르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열리고 살펴보니 임하호 건너 솟아 있던 영등지맥의 아기산과 그 주변의 산줄기들이 이제 제모습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간다.
등로 좌측으로 영등지맥과 아기산을 조망하고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좌측으로 묘지들이 보이면서 민둥의 능선 등로가 나타나는데 이제 뜨거운 햇살이 잠시 두꺼운 구름을 뚫고 나와 대지를 데우기 시작하고 직사광선에 온 몸은 금새 화상을 입을 듯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재빨리 능선으로 들어가 전진하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사이로 뚜렷한 비포장임도가 펼쳐지고 생각보다 좋은 등로 조건으로 무더위에 어려움은 있지만 진행 자체는 큰 문제 없이 순조롭게 진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한동안 특이할 것 없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가니 고도표기가 없는 금곡님 띠지 한장이 걸려있는 도상 239.9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지도상에는 분명 족보가 있는 239.9봉이지만 봉우리 정상에는 이무 표식도 없는 금곡님 산행 띠지 한장만아 걸려있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등로는 여전히 넓은 비포장임도로 이어지고 있어 산행 자체는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잠시 후 묵은 비포장임도 입구에서 봤던 광산김씨와 부인인 안동김씨 묘지 방향을 알리는 표지석 지나 한동안 걸어가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묘지지대 지나 저 멀리 임하호 건너편으로 솟아 있는 아기산과 영등지맥 마루금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눈 앞으로 오랫만에 법광님의 산행띠지가 걸려있어 확인해 보니 이곳이 바로 갈림삼거리로서 지금까지 걸어 온 비포장임도를 좌측으로 내려 보내고 우측 잡목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을 해야 할 길주의 지점이다.
서남쪽으로 흐르는 비포장임도와 헤어져 계속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등로를 타고 오르니 이곳 역시 빼곡하게 들어 찬 소나무 사이로 뚜렷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제선충 방지용 나무 더미 지나 우측인 북쪽 방향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관목의 잡목등로를 타고 빠르게 전진하니 여러 나뭇가지에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분산되어 걸려있는 도상 257.4봉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무영객님이 산행띠지에 고도표기를 해 둬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에서 등로는 방향을 좌측으로 크게 꺽어 북쪽에서 서쪽으로 이어가야 할 길주의 지점이었다.
다시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소나무 능선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 아래로는 제선충 방지용 나무더미들이 자주 눈에 들어 오고 키 작은 싸리나무들이 등로를 숨기고 있지만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한동암 특별할 것 없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지루하게 진행하니 작은 잡목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무명봉 넘어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도 통과하는데 그 무명봉을 지나니 조금 더 굵은 소나무 등로가 무더위에 지친 산객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있는 듯 보인다.
다시 북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 아래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고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28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는데 등로는 이곳 무명봉에서 다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남쪽으로 진행을 해야 할 길주의 지점이다.
무명봉 지나 남쪽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 진행하니 조금 더 뚜렷한 능선 소나무 등로가 길게 열리고 편안하게 걸어 전진하니 관목의 활엽수와 잡목들 사이로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띠지들이 보여 살펴보니 만산동호회에서 이곳을 239.9봉으로 표기를 해 놨는데 지도 상 이곳은 277.4봉으로서 239.9봉은 땅골재에서 올라 와 처음 만난 봉우리이기에 잘못 걸어 둔 듯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지금까지 만났던 소나무들은 사라지고 관목의 활엽수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새롭게 보이는 등로이다.
도상 277.4봉 지나 계속 이어지는 남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갑자기 등로 우측과 우측 전방으로 나무들이 사라지고 민둥의 키 작은 잡목들이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등로 우측과 우측 전방을 살펴보니 사진 좌측 뒤 저 멀리 남서 방향으로 몇년 전 홀로 걸었던 갈라지맥의 기룡산과 갈라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측 앞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덕산지맥의 마지막 무협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일듯 사라지는 모습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정확한 마루금은 분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산세가 부드럽고 특출난 길라잡이도 없으니 더욱 분간하기 힘들어 보인다.
등로 우측 전방인 남서 방향으로 생각지도 못한 갈라지맥의 기룡산과 갈라산을 확인하고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덕산지맥 마지막 산줄기도 살펴보며 출발하니 갑자기 황톳빛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는데 최근에 새로 개설된 듯 보이는 비포장임도 안부로서 좌측으로는 임천면 망천리와 우측으로 임하면 천전리를 이어주는 안부이다.
비포장임도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제한된 능선 부근으로만 산불이 았던 흔적들이 남아 있는 능선 등로가 이어지고 검게 타 죽어있는 소나무들을 살펴보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지금까지도 매쾌한 냄새가 나는 듯 코끝이 간지럽기 시작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다행스럽게도 정상 부근의 능선부만 좁게 불이 났었는지 그 아래로는 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었다.
불난 지역의 무명봉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불이 났던 지역은 금새 끝이나고 다시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 사이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ㅅ초 등로가 이어지고 있어 편안하게 진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한동안 소나무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갑자기 비포장임도 안부가 나타나고 그 임도 건너 능선으로 들어가니 소나무가 줄어들면서 잡목들이 조금 더 자주 많이 눈에 들어 온다.
세르파님의 옛날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넘어 좌측으로 내려가니 지도에는 표기가 없는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더 전진하니 건능골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이곳을 건능재라 표기해 놨고 옛날 국토지리원 지도에도 건능골이 표기되어 있는데 건능골은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이겠지만 지금은 그 이름 자체가 사라져 헷깔리게 만드는데 너욱이 건능골은 안동호 건너 와룡면 지내리에 같은 이름이 있어 그곳에 관한 자료들만 보일 뿐이다.
건능골재에서 직접 능선으로 오를 수 없어 좌측으로 도로 따라 몇걸음 걸어가니 우측 능선 방향으로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져 있지만 선답자들이 오른 흔적들이 보여 어렵게 진입하니 희미한 족적들은 보이지만 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이 힘들기만 하다.
온 몸에 흥건한 땀방울로 젖어 올 쯤 주능선인 마루금에 도착을 하고 곧이어 남계선생김공 묘지와 많은 묘비들이 보이는 지점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잡풀들이 우거진 묵은 비포장임도가 다시 나타난다.
이곳 역시 천전리 마을에 있는 무명안부로서 천전리를 찾아보니 천전리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리로서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일부 지역이 수몰된 마을이고 서녁은 서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장구날은 장고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빗골은 대개 여기에서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여 내 앞 본동으로 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구묵골은 마을의 골이 좁아서 항상 구름이 끼어 있는 것 같이 어둡게 보인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며 모실은 부근에 띠(모)가 많이 난다 하여 붙은 명칭이다.
광산은 철분이 많은 땅이고 검은 색깔의 토질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두무골은 두태농사를 주로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며 반시는 옛날 시장터가 있고 장이 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니 약간의 미풍이 불어 와 그마나 지금까지 진행하던 조건보다는 가끔 시원함을 느끼며 힘들게 가시잡목 절개지를 타고 올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백건희란 띠지와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253.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한다.
무명봉 지나 능선 등로를 따르니 다시 소나무 사이로 뚜렷한 능선 등로가 열리고 약간의 미풍이 불어 와 자리펴고 배낭을 베고 누워있으니 졸음이 밀려 와 나도 모르게 한시간 가까이 꿀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가벼워져 있고 개운한 느낌으로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세종에서 설치하던 기계에 문제가 생겨 어젯밤 이곳 안동으로 내려 와 일요일인 오늘과 내일 저녁때까지 미국과 시차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는데 한국에 들어 와 있는 외국 기술자와 국내기술자가 몇가지 확인 사항이 있다며 공장으로 들어가 점검을 했는데 다행히 간단한 문제로 오전에 해결이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고 저녁 늦게 제품 테스트를 한다기에 일찍 산행이 마무리가 되면 잠시 들려보고 늦으면 보고만 받기로 하고 급하지 않게 여유롭게 걸어 볼 계획으로 다시 출발한다.
잠시 후 무명묘지 지나 무명봉을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니 또 다시 무명묘지가 보이고 별 특징없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가 서 있는 무명봉 지나 의성김공 묘지를 다시 통과한다.
묘지를 지나자마자 움푹 패인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뚜렷한 안부 모습과는 달리 그 기능은 상실한지 오래되었는지 잡풀만 무성하다.
잡풀만 무성한 무명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관목의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새로 개설된 듯한 뚜렷한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아주 편안하게 진행하는데 전체적으로 등로 조건은 산행하기 좋지만 한여름 무더위에 지치고 많은 땀을 흘리다 보니 오늘 이 산객만 어렵게 진행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이 꾸준하게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커다란 플랭카드가 걸려 있는데 개인 사유의 임산물 재배지이니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보인다.
그 임도 좌측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민가 한채와 창고 2동이 보이면서 과수원도 펼쳐져 이는데 주인과 마찰이 있을 수 있어 조용히 통과하니 같은 내용의 플랭카드 2개를 더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새마을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새마을재는 새마을 뒷쪽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새마을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이며 안동댐 건설로 인해 사드레와 사월마을이 수몰되자 옛날 성황당이 있었다는 서낭댕이골 기슭에 새마을을 개척하였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새로 만든 마을이라는 의미로 새마을이라고 하였으며 옛날 수해로 피해본 강변에 있던 마을 주민들이 형성하여 강변마을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새마을재를 건너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사초가 깔려있는 부드러운 소나무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기분 좋게 전진하니 우거진 잡목가지에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275.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무명봉 넘어 곧바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관목의 활엽수 아래 사초가 하늘거리는 뚜렷한 무명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 건너 다시 오르니 이번에는 굵은 참나무가 홀로 서 있는 272.1 무명봉에 도착을 해 주위를 살펴 보지만 나뭇가지들에 막혀 풍경이나 조망은 전혀 없다.
무명봉 넘어 참나무와 잡목들이 적당히 혼재되어 있는 파란 사초 등로를 타고 빠르게 전진하니 좌측으로 우회하는 뚜렷한 비포장임도가 지나고 우측 위로 잡목가자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몇장이 걸려있는 도상 275.9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긴다.
단지 선답자의 산행띠지 2장만이 정상을 지키고 이는 275.9봉 지나 좌측의 무명봉은 우측 사면 등로를 통해 통과하니 관목의 잣나무 군락지가 짧게 나타나는데 이곳에는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다.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관목의 활엽수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한동안 편안하게 등로 따라 걸어가니 햇살이 나면서 가장 무더운 오후 1시를 넘기면서 약간의 미풍이라도 불어주니 기온은 최고조이지만 흐르는 땀방울은 조금 덜 흐르는 시간이다.
가끔 시원함을 느끼는 미풍이 불어오는 지점에서는 발걸음 멈추고 풍욕도 즐기면서 진행하니 도상 265.5봉에 도착을 하는데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 지점으로 유일하게 무영객님만이 띠지에 고도 표시를 한 후 걸어 둬 목례를 하고 통과한다.
무영객님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265.5봉 지나 잡풀이 무성한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는데 뜨거운 태양열이 몸을 비추면서 무더위가 극에 달하는 느낌으로 재빨리 그늘속으로 숨어 드니 그래도 그늘속은 견딜만 하다.
하지만 천전광산길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바리실재 일명 광산재가 가까워지며 햇볕에 노출된 비포장임도가 자주 나타나고 무더위에 그늘을 찾아 재빨리 몸을 피하며 걸어가다 보니 드디어 바라실재 직전 지독하게 우거진 칡넝굴지대에 도착을 해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임하호가 이제 반변천으로 변해 지척으로 흐르고 그 뒤로 잠시 후 만나야 할 영등지맥의 마지막 산줄기와 지난해 만났던 구암지맥 그리고 우측 뒤로 갈라지맥이 펼쳐지며 몇 겹의 산그리메를 만들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 반변천과 갈라지맥 및 문수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도상 바리실재 또는 광산재라 불려지는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며 자꾸만 그늘을 찾아 가는 시간이다.
광산재(바리실재, 천전광산길 2차선 포장도로)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의 자연마을인 광산에서 차용된 이름이며 포장도로에서 천전2리로 넘어오는 고개로 천전1리 주민들은 비리실재라고 하고 천전2리 주민들은 광산재라고 한다.
광산마을은 천전2리에 속한 마을로서 임하보조댐을 조금 지나 왼쪽에 난 길을 따라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철분이 많은 땅이고 검은 색깔의 토질이 많으며 옛날에 연쇠를 채취하여 팔았다고 하여 마을 명칭이 유래되었다.
당일 산행을 한 선답자들은 이곳에서 제4구간을 끊어 진행을 했기에 제법 넓은 도로라 생각했는데 실제 도착을 해 보니 대형 버스는 올라오기도 벅차 보이는 1차선 좁은 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이다.
이곳에서 천전광산길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니 우측 돌담에 반바지님이 걸어 둔 235미터의 광산재란 종이코팅지가 보이고 그 아래 우측으로는 산행을 이어갈 비포장임도가 보인다.
바리실재 일명 광산재 1차선 포장도로 건너 비포장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다시 등로 주변으로 묘지들이 많이 보이고 곧이어 소나무에도 붉고 노란 띠지들이 붂여 있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묘지지대가 보이고 그 묘지 위에 서서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반변천이 흐르고 좌측 뒤 저 멀리 영등지맥 상 아기산과 그 우측으로 우뚝 솟아 있는 약산 그리고 우측 뒤 저 먼곳으로는 갈라지맥의 산줄기들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영등지맥과 갈라지맥 사이 사진 중앙부 우측 뒤로 구암지맥 산줄기도 박무속에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묘지 위에서 멋진 조망을 즐기고 많은 사진에 담은 후 우측으로 휘어져 소나무 능선으로 들어가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나뭇가지에 걸려있어 살펴보고 이어지는 소나무 능선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사부란재에 도착을 해 좌우측을 살펴보니 뚜렷한 임도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 기능이 상실되는지 잡풀들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사부란재는 천전리의 광산마을 뒤쪽에 있는 고개로서 이 고개를 넘으면 노산리가 나타나는데 즉 천전리와 노산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노산리는 원래 안동군 동후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초현동과 석동동 및 임현내면 반시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노산동이 되었다가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노산리의 일부 지역이 수몰되었고 1974년 월곡면이 폐지되면서 노산리의 남아있는 지역은 임하면으로 편입되었다.
노산리의 명칭은 마을이 노산(盧山) 아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것으로 노산촌이라고도 하였다.
노산리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마을로는 현재 수멜과 샛터 및 궁구리 등 3개 마을이나 수몰되기 전에는 꽃골과 반제자 2개 마을이 더 있었다고 한다.
안부 양쪽으로 뚜렷한 고개 흔적들이 보이지만 오랫동안 그 기능을 상실한 듯 지금은 지나다닌 흔적이 전혀 없는 사부란재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넓은 비포장임도 위에 활엽수 낙엽이 두껍게 깔려 마치 부엽토처럼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더 지루하게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13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이제 북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풍경과 조망이 전혀 없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걷다 보니 등로 옆으로 물이 고여있는 멧돼지 목욕탕이 다시 나타나는데 주위 나무들은 죽을 듯 껍질이 벗겨져 있다.
다시 이어지는 평이한 비포장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니 어느 순간부터 굵은 아카시아 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언덕같은 무명봉 넘어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오르니 키 작은 아카시아 군락지를 지나 잡풀들과 싸리나무가 무성한 315.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잡풀들과 싸리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으니 등로는 다시 북쪽에서 서쪽으로 휘어지고 곧이어 갈림삼거리가 보이는 곳에서 좌측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등로는 남서 방향으로 반 원형을 그리며 이어진다.
잠시 더 전진하니 등로는 이제 우측인 서쪽으로 방향을 다시 바꾸고 곧이어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묘지들이 나타나는데 그 묘지 위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진행하며 만나야 할 덕산지맥 마루금이 올망졸망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와 몇장의 사진에 담고 산행을 이어간다.
진행 방향을 살펴보고 다시 묘지 위 능선 등로를 따라 몇걸음 걸어가니 이제는 등로 좌측으로 제한된 시야 사이로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이 펼쳐져 있어 잠시 더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니 반변천은 바로 앞 능선에 막혀 보이지 않고 그 반변천 건너 안동시 남선면과 임하면 방향의 마을들 뒤로 구암지맥이 좌측으로 약간 보일듯 말듯 펼쳐져 있고 사진 정중앙 뒷쪽으로 갈라지맥의 기룡산과 우측으로 갈라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옛 추억을 들려주며 환상을 노래하고 있어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본다.
이제 너무 많은 지맥 산행을 진행해서 그런지 기억도 예전만키 못하지만 가능하면 기억하려 노력하다 보니 2년 전 겨울의 길목에서 찬바람에 고생하며 걸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 오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묘지 위에서 진행 방향과 좌측으로 갈라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조금 더 전진하니 무명봉이 나타나고 그 무명봉 넘어 남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수풀과 칡넝쿨이 우거진 지점을 지나 나즈막한 안부에 도착을 한다.
그 안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묵은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 아래로 민가가 보여 잠시 내려 가 식수를 보충하고 진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오늘 준비한 식수가 약 5리터쯤 되는데 벌써 4리터 가까이 마셨으니 남아 있는 거리와 마신 식수량을 생각하면 최소 1리터는 더 준비를 해야 마음 편히 진행이 가능할 듯 하다.
이제 시간이 오후 2시 20여분이 지나면서 오전까지 구름속에 숨어 있던 한여름 태양이 점심을 넘기면서 중천에 떠 서쪽으로 넘어가며 하루 중 가장 무더워지기 시작하고 나무 그늘 하나 없는 잡풀이 무성한 비포장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가니 우측으로 작은 밭경작지를 돌아 내려가는 모습으로 민가 전에 황토로 만든 창고 건물이 나타난다.
그 창고형 건물 앞에 수도가 보여 틀어 보니 물이 나와 우측 위 민가로 가 주인장을 찾아 보지만 농사일로 외출을 했는지 보이지 않아 다시 수돗가로 내려 가 세수와 머리를 감고 시원한 물로 빈통 2개를 채워 배낭에 넣고 500미리리터 쯤 마시고 나니 정신이 들기 시작해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 조금 더 힘을 내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임하면 천전리와 노산리의 경계를 이루는 무명안부 옆 민가에서 충분한 식수를 보충하고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해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굵은 소나무 아래 키 작은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붉은색 한전띠지가 걸려이는 280.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무명봉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고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는 우측인 북쪽으로 휘어져 오른다.
잠시 더 아름다운 오르막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빈물통 하나만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도상 322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빼곡한 관목의 소나무들 이외에 그 흔하던 산행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아쉬움만 남기고 사진 한장 담은 후 곧바로 출발한다.
도상 322봉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북서에서 서쪽으로 다시 남서쪽으로 이어지고 수종은 소나무에서 참나무 다시 아카시아나무로 바뀌고 있다.
남서쪽으로 진행하니 불탄 흔적이 있는 나무 밑둥들이 보이고 곧이어 좌측으로 묘지 2기가 보이는 곳에서 살펴보니 남쪽 저 멀리 갈라지맥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니 한창 공사중인 수명재가 보이는데 드높은 옹벽건설은 끝이났는데 도로를 새로 포장하려는지 파헤쳐 놔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는 수명재이다.
수명재(水明, 수멜, KT통신탑)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노산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수명마을에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수명은 약 200여 년 전에 장성추(張星樞)라는 선비가 개척하였다고 하며 반변천(半邊川)의 물이 맑아 수명과 수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수멜은 노산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인동장씨가 모여사는 동성마을로서 모두 16가구가 살고 있는데 그 중에 인동장씨가 14가구이다.
수명재 정상에서 옹벽이 높아 직접 오를 수 없기 때문에 우측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옹벽이 낮아진 부분이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니 공사를 하면서 나무들이 벌목된 민둥의 능선이 이어진다.
그 능선으로 오르며 등로 좌측인 남쪽을 보니 길안천 주변으로 형성된 임하면 마을이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구암지맥 마루금 근처의 계명산과 갈라지맥의 황학산 방향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갈라지맥의 기룡산과 갈라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옛 추억을 들려주며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는다.
갈라지맥을 확인하고 잠시 힘들게 통과한 수명재를 내려다 본 후 이제 남동쪽을 살펴보니 적산지맥 마루금에서 분기한 무명의 산줄기가 반변천 방향으로 길게 내려가고 그 넘어 저 멀리 뾰족하게 솟아 있는 구암지맥의 마지막 지점 가까이 보이는 582.5미터의 약산이 군계일학처럼 보이고 그 좌측으로 영등지맥 사이에 솟아 있는 와룡산이 보이는데 아기산을 찾아 보니 아기산은 보이지 않는다.
그 약산 우측으로는 갈라지맥의 높은 봉우리들인 금학산과 황학산 주변의 봉우리들과 산줄기가 올마 전 만났던 추억을 소환하고 있어 잠시 상념에 잠겨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공사중인 수면재 건너 능선으로 진입하기 전 황톳빛 능선에서 등로 좌측으로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을 확인하고 그 이름들을 불러준 후 너무 뜨거워 나무 그늘로 빠르게 걸어 오르니 이곳 역시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 사이로 넓은 비포장임도가 길게 이어지고 있어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한동안 특이한 모습없이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면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올라 야생화가 피어있는 무명묘지를 통과하니 갑자기 칡넝굴이 우거져 있고 키가 큰 잡풀들이 등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등로 위 저 멀리 산불감시초소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사진에 담고 칡넝굴을 조심하며 잡풀들을 헤치며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의 나뭇가지를 타고 오른 칡넝굴 사이로 안동호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여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담고 다시 잡풀들을 헤치며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381.6 삼각점봉으로 오른다.
안동호를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칡넝굴과 키가 큰 잡풀들을 헤치며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다 보니 드디어 예안311이란 삼각점이 박혀있고 산불감시초소 철대에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381.6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산불감시초소 위를 살펴보니 계단 이외에는 발을 디딜 장소가 없어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전체 모습만 사진에 담는다.
하늘엔 다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하며 뜨거웠던 태양빛을 감춰주니 살것 같아 잠시 여유를 부리며 주위 풍경과 조망도 즐겨본다.
2층 높이의 산불감시초소로 오르면 안동호 방향은 볼 수 없기에 이정판과 삼각점 그리고 산불감시초소를 사진에 담고 남동쪽으로 돌아가니 오늘 산행을 하면서 아침까지는 안개로 보지 못하고 안개가 걷힌 점심때부터 아쉬운 모습으로만 바라 본 임하호 넘어 영등지맥 상 아기산이 사진 좌측으로 보니고 그 끝자락에 임하호와 반변천 방향으로 영등지맥 날머리가 가라 앉는데 그 우측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구암지맥 상 약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마치 하나의 산줄기로 이어진 듯 펼쳐져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 사이에 임하호와 반변천이 두 산줄기를 가르고 있다.
그 약산 우측 뒤로는 구암지맥에서 벗어나 있는 계명산과 구암지맥의 노래산 방향의 산줄기가 희미한 모습으로 옛 추억을 들려주지만 뚜렷하지 못하니 아쉬움도 남는다.
다만 그 뒤 저 멀리 낙동정맥 상 주왕산 부근이 보여야 하는데 거리도 멀고 박무로 인해 뚜렷하지도 못해 상상만으로 만날 수 있어 아쉬움이 더욱 크게 다가 온 시간이었다.
이제 산불감시초소 뒷편인 북동방향으로 가 살펴보니 천전리와 노산리 마을 지나 안동호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지난 3주간 만났던 덕산지맥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고 그 우측 끝자락에 잠시 후 만나야 할 일월지맥의 주산인 일월산이 드높게 솟아 있어야 하지만 그곳 역시 거리감도 있고 박무로 인해 볼 수 없으니 다시 아쉬움만 남긴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등로 좌우측으로 임하호와 안동호 그리고 최근에 걸어 만났던 지맥 산줄기들과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그 이름들을 불러 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남아 있는 지맥 산행을 완성시키기 위해 힘든 산행을 이어간다.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381.6 삼각점봉을 지나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진입하니 굵은 소나무 아래 뚜렷한 내리막 등로가 열리고 편안하게 진행하니 갑자기 굵은 소나무 등로는 동일하지만 그 아래 펼쳐진 키가 큰 잡풀들과 잡목들이 등로를 완전히 뒤덮어 초록의 세상을 만들고 있어 걱정하며 걸어가니 생각보다 등로는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잠시 잡목과 잡풀들을 헤치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우거진 칡넝굴 지대가 앞을 가로막아 근심어린 생각으로 접근하니 초입부분만 우거진 칡넝굴로 등로가 보이지 않다가 들어가니 다시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다시 굵은 소나무 아래 사초들이 한들거리는 등로를 타고 무명봉 넘어 내려가니 잡풀들이 우거진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한쪽에는 제법 굵은 개복숭아들도 열려이어 하나 따 먹어보니 아직 영글지 않아 식물 특유의 비린내가 난다.
안부 지나 여전히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 아래 푸른 잡풀들이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도상 375.5봉에 도착을 하는데 굵은 소나무에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고 그 앞에 전망대라는 이정표가 보이는 공터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이정표와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공터봉인 375.5봉 지나 굵은 소나무 아래 키 작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잡목들이 우거진 무명안부가 나타나고 어렵게 그 잡목의 무명안부를 통과해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고사목이 쓰러져 썩어가고 등로 양쪽으로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호위를 서듯 보이는 무명봉을 넘는다.
무명봉을 넘으니 빼곡하게 자라는 소나무 아래 파란 사초 등로가 열리고 등로 주변으로는 가끔 재선충 작업을 한 나무 더미들도 보여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이제 등로는 서쪽에서 북서 방향으로 한동안 이어지고 그렇게 전진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삼거리란 이정표가 보이고 그곳에서 우측의 뚜렷한 등로를 타고 여전히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오른다.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방향을 보니 자연대 2호관이란 지명이 보여 지도를 확인해 보니 바로 좌측 아래로 안동대학교가 자리해 있어 안동대학교 자연대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임을 알 수 있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아래 약간의 잡목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무명봉 넘어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는데 등로가 깊게 패여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방금 전 오토바이가 지나는 굉음이 들리던데 아마도 이곳을 통과한 듯 보인다.
산악오토바이인 MTB 등로로 이용되는 깊게 패인 내리막 등로를 따라 참으로 힘들게 내려가니 굵은 신수가 보이고 당나무골이란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는데 옛날 시골에서 봤던 서낭당 또는 성황당고개처럼 보이는 지점이다.
좌측으로 안동시 송천동과 우측의 임하면 노산리를 이어주는 성황당고개는 뚜렷한 비포장임도가 지나는데 지금도 제법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이용을 하고 있는지 좌우측으로 뚜렷한 등로가 보인다.
등로 우측의 노산리 방향으로 샛터와 신기마을이 있어 샛터고개로도 불리는 듯 보여 찾아 보니 샛터와 신기(新基)마을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노산리에 있는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샛터는 수멜에서 북쪽으로 3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새로 개척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신기라고 하는데 현재 여러 성씨 7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수멜에서 샛터로 갈려면 선녀재라는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선녀재 아래에는 덕량골 또는 득량이골이라고 부르는 작은 골짜기가 있으며 여기에 1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다만 이정표에 명기된 당나무골이란 지명에 대해 찾아 보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어디에서 온 이름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성황당 안부이자 샛터고개인 당나무골을 지나 오르니 소나무 아래 깊게 패인 MTB 등로가 길게 이어져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지만 그곳을 지나니 다시 평이한 등로가 이어져 속도를 내 본다.
하지만 아점으로 먹은 크림 빵에 문제가 있었는지 속이 편하지 않아 고생하다 보니 남아 있는 곰보 빵도 겁이나 먹지를 못하다 보니 허기가 지고 체력적으로도 어려움을 느끼는 시간이라 준비한 누룽지 사탕만 축내다 보니 정상 이정판과 이정표 및 돌탑이 서 있는 공터봉인 도상 337.1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는데 왜 이곳을 정상이라고 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정상 이정표와 이정판 그리고 돌탑 앞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이제 북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잡목과 잡풀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며 무명봉 넘어 재선충 방지용 나무 더미들이 자주 보인다.
제선충 방지용 나무 더미를 지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원 마루금은 우측으로 진행해 무명봉을 넘어야 하지만 좌측으로도 뚜렷한 우회 등로가 발달되어 있어 편안하게 좌측 우회 등로를 따르니 이중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무명안부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등로를 따라 잡풀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폐가들이 보이면서 폐가 앞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서는데 진행 방향으로는 반듯한 민가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석동길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가티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은 자연마을의 이름을 차용해 관재라고도 불리는 듯 보인다.
가티고개(관재, 석동길 1차선 포장도로, 다라골)는 안동시 석동동에 있는 마을로서 가티(갈현)마을은 칡덩굴이 많은 자연마을로서 이런 이유로 갈현이라 불렀던 것이 음이 변하여 가티라고도 부르는데 진천송씨들이 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우측으로 가게가 보여 문을 두드려 보지만 농사일을 나갔는지 대답이 없어 시원하ㅣㄴ 음료수와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진행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니 더욱 차가운 음료수가 간절해진 시간이었다.
가티고개 일명 관재에서 1차선 포장도로 건너 잡풀들이 우거진 나즈막한 능선으로 치고 오르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다라골길 1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고 살펴보니 가티고개 석동길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 고갯마루로 올랐으면 이 다라골길 포장도로 진입로를 만나 편안하게 진행이 되었을 것 같았다.
이제 다라골길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우측으로 커다란 물탱크 하나가 보이고 도로 가드레일이 설치된 곳을 따라 계속 도로 좌우측으로 우거진 잡목들을 살펴보며 전진하니 반사경이 보이는 지점도 통과한다.
반사경이 있는 지점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이제 다라골길 1차선 포장도로를 우측으로 올려 보내고 좌측 밭경작지 방향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밭경작지를 관통하며 산행을 이어간다.
이곳 역시 야생동물들로 인한 피해가 심한지 밭경작지마다 높은 그물망들을 튼튼하게 설치하여 농작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여념이 없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측에 밭경작지와 그곳을 보호하려는 그물망을 두고 좌측을 보니 칡넝굴이 무성하게 자라면서 대지를 완전히 뒤덮어 마치 멀리에서 보면 콩을 심어 놓은 콩밭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몇장의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가니 그 칡넝굴 상단부 좌측으로 약간의 공간이 열리면서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확인해 보니 안동대학교와 반변천 넘어 갈라지맥을 이루고 있는 기룡산과 갈라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들이 펼쳐져 있다.
뜨겁던 햇살도 다시 두꺼운 구름속으로 숨어 밭경작지 가운데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면서도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어 다행이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잠시 더 그물망을 따라 전진하니 밭경작지가 끝이나며 능선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계속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묵은 밭경작지에 우거진 잡풀들 넘어 다시 밭경작지들이 보이고 이제 언덕을 넘으니 등로 좌측으로 나무들이 사라지며 하얀 개망초가 넓은 언덕에 가득 피어있어 잠시 어린시절 추억도 소환하는 시간이다.
별 특징없는 산판도로 같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사진을 담으며 전진하니 날파리들이 달라붙어 사진 한장 남기는 시간조차 쉽지 않게 만들고 흐르는 땀방울을 연신 닦아내며 걸어가다 보니 굵은 아카시아 나무들이 자주 눈에 들어 온다.
조금은 지루함을 느낄쯤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갈림삼거리 안부를 통과하는데 한쪽에 오래된 이정표가 서 있어 살펴보니 좌측으로 송천향교로 내려갈 수 있는 방향 표시가 보이는 송천향교 갈림삼거리이다.
안동향교(송천향교)는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향교와 교육시설로서 고려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및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하였다.
1567년(명종 22)에 지금의 안동시 명륜동에 중건(重建)되었는데 그 규모가 성균관(成均館)과 동일하여 영남지방에서 가장 컸으나 6·25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고 1983년 향교복설추진위원회가 발족되어 지금의 위치인 송천동에 터를 잡고 영가지(永嘉誌)를 참고로 1986년 다시 중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규모는 1곽 6동인데 6동은 정전(正殿)인 대성전과 명륜당,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청아루(菁莪樓), 부엌을 뜻하는 주사(廚舍)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생들의 교육에 힘써 온 기관으로 많은 유학자들을 배양하였다.
지금까지도 안동 지역의 유학교육과 보급에 힘쓰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중국의 위대한 유학자를 배양하여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5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어릴적 시골에서 살던 시절 잠시 서당에서 공부를 한 경험이 있는 산객으로서는 남다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향교이기에 자료를 찾아 보고 갈림삼거리 지나 여전히 뚜렷한 아카시아 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이곳 역시 날파리와 하루살이들로 인해 사진 찍기는 고사하고 코와 귓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할 정도이다.
잠시 발걸음 멈추고 날파리들을 잡고 무난하게 전진하니 등로 우측 굵은 아카시아 나무 주위로 우거진 잡목속에 선생님의 이정판과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300.9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낸 후 곧바로 출발한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300.9봉을 지나니 등로는 여전히 넓은 비포장임도처럼 잘 정비되어 있어 가끔 동네 주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교행하면서도 예전과 달리 마스크에 큰 신경을 쓰지 않으니 다행이지만 변이 코로나19가 새로 유행한다고 하니 조금은 걱정도 되는 산행이다.
그래도 굵은 소나무 아래 잡목들이 우거진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수렛길 같은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걸어가다 보니 등로 좌측 옆으로 사각정자와 운동기구들이 나타나 잠시 쉬어가려고 올라보니 주민 두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다시 한동안 멋진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마루금은 우측이지만 좌측 가까운 곳에 332.6 삼각점봉이 있고 그 봉우리 지나 먼곳으로 321.3미터의 무협산도 보여 잠시 다녀오기로 하고 좌측 등로를 따르니 좌측으로 정상까지 1120m라 적혀있는 이정표와 벤취쉼터가 나타나는데 붑가 쉬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재빨리 통과하며 무협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무협산 갈림삼거리 벤취쉼터에서 쉬고 있는 부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배낭을 벗어 나무 뒤에 숨겨 놓고 모바일 폰과 스틱만 들고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뚜렷한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지는 곳 우측으로 잡풀들이 무성한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고 그 묘지 뒤 우거진 잡목 속에 도상 332.6 삼각점봉이 표기되어 있어 오르니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과 예안11이라는 1등 삼각점이 박혀있는 332.6봉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그곳 정상에서 국토지리원 지도를 확인해 보니 무협산으로 알려진 321.3봉은 아무 이름도 없이 그저 평범한 321.3봉 봉우리로 표기되어 있지만 다음지도를 확인해 보니 그곳에는 고도표시 없이 무협산이라 표기되어 있어 잠시 고민하다 거리를 보니 아직도 꽤 먼 거리이기에 오늘 산행을 생각해 과감하게 321.3봉은 포기하고 다시 갈림삼거리로 복귀를 결정한다.
도상 332.6 삼각점을 다녀 와 벗어 숨겨둔 배낭을 찾아 갈림삼거리로 복귀하니 벤취쉼터에서 쉬고 있던 부부가 떠나 잠시 그 벤취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며 빵과 식수로 허기를 달래며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이제 남아 있는 거리도 멀지 않고 식수도 충분하기에 오늘 중 덕산지맥 산행을 마무리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하니 가능하면 어둡기 전 반변천 합수점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겼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기 시작하니 더 이상 휴식을 할 수 없어 배낭 메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이다.
편안하게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 우회 등로를 따라 진행해도 될듯 싶지만 우측 언덕 위에 무엇인가 있을 것 같아 우측으로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데 이곳은 초소 주위로 접근을 막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초소 앞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해야 하는 321.5 무명봉이었다.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321.5 무명봉에서 등로는 다시 북동에서 서쪽 방향으로 크게 틀어 내려가고 잠시 후 좌측으로 우회ㅘ는 뚜렷한 등로르 만나 우측으로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서쪽에서 북쪽으로 크게 휘어져 이어진다.
이제 다시 빼곡하게 보이는 소나무 아래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전체적으로 등로는 북서 방향으로 향하고 그렇게 별 특징없이 한동안 무심으로 걸어가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안내판과 이정표가 보이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휴그린골프장에서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과 무협산 숲길 안내도 및 우측으로 문화관광단지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표시가 보이는 지점이다.
그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의 문화관광단지로 갈 수 있는 도로를 버리고 직진의 비포장임도를 따르며 지도를 확인해 보니 등로 좌측으로 드넓은 안동문화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듯 보인다.
잠시 후 갈림삼거리를 다시 만나는데 우측 감성골1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조금 더 자주 산책나온 동네주민들을 만나고 조심하며 전진하니 도로 좌측으로 사각정자와 운동기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호젓한 산책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1차선 포장도로로서 도로명은 동일하게 감성골1길로서 좌측으로 꺽어 진행하니 승용차들이 이곳까지 올라 와 주차되어 있다.
감성골1길이라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 옆으로 높은 리첼호텔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의 성곡동과 우측의 석동동의 경계지점으로 좌측으로는 거대한 안동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사거리 옆으로는 홀스파크 민박이라는 안내판도 서 있어 확인하고 사거리 도로를 건너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인 산책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좌측으로 사각정자와 벤취쉼터들이 보이고 곧이어 좌측 아래 멋진 건물 하나가 세워져 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안동관광단지 내 유교랜드 건물로서 모양을 보니 조선시대 대감들이 집안에서 상투를 가리기 위해 쓰던 방건이나 동파관을 닮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게 보여 홀로 웃어 보는 시간이었다.
잠시 후 좌측 안동관광단지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는 안전목책이 설치된 갈림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등로가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니 도상 241.8봉인데 잡목속에 금곡님과 준희선생님 띠지 두장만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도상 241.8봉 정상부를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다시 좌측으로 우회하는 감성골길 산책로를 만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시멘트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따라 좌측으로 꺽어 진행하니 드넓은 공터 넘어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유교랜드 건물이 시선을 잡아 자료를 찾아 보니 안동문화관광단지(유교문화체험센터)는 안동시 성곡동(안동댐)일원에 조성된 안동문화관광단지로서 경북 북부지역의 유교문화권 체류형 복합휴양단지이며 다변화된 관광객 욕구를 충족시키고 새로운 관광수요를 창출하고자 조성되었다.
유교문화자원 전시와 체험시설인 유교랜드, 힐링 식물 체험시설 온뜨레피움, 대규모 야외 골프장과 2개소의 관광호텔이 들어서 있다.
유교랜드는 경상북도 안동시 관광단지에 있는 테마파크형 체험 전시 시설로서 한국 정신문화의 뿌리인 유교 문화를 중심 주제로 하는 테마파크형 체험 센터이며 안동 문화 관광 단지 내에 있다.
유교랜드는 유교의 근본 사상인 충효와 인, 의, 예, 지, 신을 재미있게 즐기면서 전하고 배울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화하여 테마파크형 전시 체험 시설로서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에듀테인먼트 공간을 제공하여 어려운 유교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2010년 5월 25일 유교랜드 신축공사를 착수하였고 2010년 12월 7월 전시물 제작설치를 착수하였으며 2013년 4월 16일 안동문화관광지 관리운영을 위수탁 협약을 체결(안동시 위탁, 경상북도관광공사 수탁)하고 2013년 6월 1일 유교랜드를 개관하였다.
대지 면적은 14,650.00㎡, 건축면적 4,339.03㎡(연면적 13,349.23㎡) 규모이고 지하 2층부터 지상3층의 철골철근콘크리트구조 건물이며 최고 높이는 29.5m이다.
전시 체험관에서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데 소년선비촌의 성인 통과의례 코너에서는 15세의 통과 의례였던 들돌들기 체험을 하고 중년선비촌의 진주성을 사수하라 에서는 성벽 쌓기 체험을 하며 노년선비촌의 풍류 자연에 젖다에서는 시조 짓기를 하고 참선비촌의 가문세우기에서는 가훈 짓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부대시설 중 원형무대와 기획 전시실 및 세미나실은 대관이 가능하고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5시까지 입장해야 한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이며 전체 관람 소요 시간은 평균 약 2시간이며 원형입체영상관 상영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상영하고 있다.
공터를 지나 유교랜드 건물을 정면에 두고 걸어 내려가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는 드넓은 초지지대처럼 보이는 풀밭이 펼쳐져 있는데 계절별로 다양한 꽃들을 재배하던 곳처럼 보이는데 축제들이 사라지며 방치된 묵은 땅이 된 듯 보인다.
잠시 후 유교랜드 건물로 진입할 수 있는 진입로와 붙어 있는 신설된 4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유교랜드를 살펴보니 건물 앞으로 옛날 대감들이 집에서 상투를 숨기기 위해 머리에 착용했던 정자관 모양의 구조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교랜드를 좌측에 두고 갈림삼거리 도로를 지나 우측으로 펼쳐진 드넓은 초지지대를 가로 질러 관광단지로 6차선 포장도로를 건너니 다양한 조형물들과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앞 공터에서 음악가 몇명이 음악들을 연주하고 있어 잠시 구경한 후 우측 능선으로 오르며 마지막 산행을 이어가는데 그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소천권태호음악관이 있는 지점이다.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무더위에 너무 많은 땀을 흘리며 부실하게 먹다 보니 체력적으로 방전이 되었는지 높지 않은 고도를 오르는데 두어번을 쉬면서 어렵게 오른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니 관목의 참나무들이 보이는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뚜렷한 등로를 따라 우측으로 완만하게 오르니 참나무 가지에 선답자들의 빛바랜 띠지들이 걸려있는 234.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무명봉 넘어 잠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묵은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성곡동에 있는 무명안부로서 왜 무슨 용도로 이 산중에 사용되지도 않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생겼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성곡동은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동으로서 조선 후기 안동부 동부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상동(龍上洞)에 편입되었으며 1947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용상동 일부를 분할하여 성곡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성곡동이 되었는데 성곡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용상동 관할하에 있으며 성곡이란 지명은 기산성 밑에 있다는 데 연유한다.
개미골(일명 의곡), 남산(南山), 당밭골, 압시골, 엄달골, 자두골(일명 척후곡), 황새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개미골마을은 지형이 개미처럼 생겨서 황새골마을은 지형이 황새처럼 생겼다는 데 명칭이 연유하며 자두골마을에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옥척형(玉尺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 때의 시인인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의 시비 육사시비가 있으며 박물관으로는 안동민속박물관이 있는데 규모는 부지 17만 2630㎡이다.
유적으로는 묘인 옥척형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안동 석빙고(보물 305), 선성현객사(경북유형문화재 29), 월영대(경북유형문화재 22), 안동 사월동 초가토담집(경북민속자료 14), 안동 의촌동 초가도토마리집(경북민속자료 6) 등이 있다.
성곡동에 있는 시멘트포장도로가 지나는 무명안부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넓은 비포장임도가 펼쳐지고 한동안 편안하게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묘지들이 나타나는데 그 묘지 뒤 저 멀리 갈라지맥 마루금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 와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진행을 이어간다.
묘지지대를 통과하니 넓은 비포장임도는 끝이나고 굵은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더니 다시 소나무 아래 잡목들이 우거지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등로는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이제 등로는 방향을 바꿔 남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민속촌길이란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 건너 높은 콘크리트 옹벽을 타고 오르니 넓은 잡풀지대가 펼쳐져 있어 잠시 배낭 내리고 물 한모금 마시며 우측 아래 과수원에서 제초잡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쉬어간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일어 나 잡풀등로를 헤치며 완만하게 오르니 철망으로 보호되고 있는 커다란 물탱크 하나가 보이는데 그 철망에는 많은 선답자들이 걸어 둔 띠지들이 보이고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뚜렷하게 나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숨가쁘게 오르다 잠시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다시 힘을 내 어렵게 오르니 넓고 뚜렷한 능선 등로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넓은 비포장임도 우측 옆으로 무명객님이 산행띠지에 고도 표시를 해 둔 도상 252.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살펴보니 띠지 뒷편으로 사각탁자와 벤취쉼터들도 보이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낙엽들만 수북히 쌓여 있다.
도상 252.6봉 정상부를 사진에 담고 좌측 넓은 비포장임도로 내려 와 다시 우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걸어가니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유가전통건강숲이란 이정표가 서 있어 살펴보니 우측으로 동산서원 하산 갈림삼거리이다.
동산서원은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의 고가옥박물관 내에 있는 서원으로 1961년 3월 안동시 용상동에 있는 사암 천만리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인데 2002년 성곡동 고가옥박물관 내로 이건하였다.
건물은 강당인 상의당, 사당인 충장사, 동재 원선재와 서재 과의재 그리고 유정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의당은 10간에 팔작지붕이고 충장사는 3간에 맞배지붕이며 동재는 1간, 서재는 2간에 맞배지붕이다.
이 지역 유림들의 의견에 따라 1962년에 준공되었으며 영양 천씨 종회 소유이며 천만리는 조선 중기에 명나라에서 귀화한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이끌고 참전하여 큰 전공을 세운 인물이다.
갈림삼거리를 지나자마자 또 다른 갈림사거리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사진에 담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우측으로 동산서원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 지나 등로는 북서 방향에서 남서 방향으로 꺽여 완만하게 내려가고 내려가며 등로 좌측을 보니 평화로운 안동시 성곡동 개미골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성곡동 개미골마을을 내려다 보며 몇장의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에 자라고 있는 잡풀들을 살펴보며 진행하니 다시 좌측으로 분기하는 임도가 보이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마루금은 좌측 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우측 직선 등로를 따라 이어진다.
잠시 더 직진의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약간의 조망이 열리고 살펴보니 정중앙부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를 중심으로 제법 장쾌한 산줄기가 보여 확인해 보니 중앙부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문수지맥의 870미터인 학가산으로 좌측으로는 642.6미터의 보문산 줄기가 우측으로는 634.5미터의 조운산 줄기로 이어지는 모습이 한눈에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등로 우측으로 생각지도 못한 문수지맥의 학가산과 그 주위 봉우리들 및 산줄기를 살펴보고 평이하게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전진하니 진행 방향 저 멀리 칡넝굴이 우거진 풍경도 눈에 들어 와 어릴적 뒷산에서 죽마고우들과 뛰어놀던 시절을 잠시 회상도 해 본다.
그렇게 한동안 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우측으로 불노정이라는 6각정자와 벤취쉼터들이 보이고 곧이어 등로 옆으로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아 먼지만 수북히 쌓여있다.
다시 비포장임도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우측 능선 방향으로 선답자의 산행띠지가 걸려있어 지도를 확인해 보니 우측으로 도상 243.2봉이 보여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우측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잡풀들이 우거진 무명묘지 2기 지나 잡목속에 준희 선생님의 때묻은 이정판이 걸려있는 243.2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좌측 우회 임도 방향으로 내려간다.
도상 243.2봉을 사진에 담고 다시 우회등로로 내려가니 번호 확인이 어려운 송전탑 하나를 통과하고 다시 한동안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마지막 힘을 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우거진 칡넝굴 위 저 멀리 갈라지맥이 여전히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걸어가니 진행 방향으로 나즈막한 봉우리가 보여 그곳으로 오른다고 생각했는데 등로는 그 봉우리 직전 좌측 밭경작지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등로 우측 앞을 보니 낙동강 위에 새로 건설중인 교각이 보여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으곳 역시 그물망이 설치된 밭경작지 사이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봉우리 바로 앞에서 등로는 좌측 밭경작지 사이로 보이는 수렛길 같은 등로로 이어지고 진행 방향 앞을 보니 평화사가 지척으로 다가오는데 등로는 그 평화사로 내려가기 직전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능선 방향으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임도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이어진다.
우측으로 굵은 참나무들이 보이는 임도를 따라 들어가니 다시 그물망이 설치된 도라지 밭을 지나 옥수수가 심어져 있는 밭경작지 끝자락에 쉼터와 용신각이란 작은 사당같은 건물 그리고 그 건물 뒷쪽 잔디밭에 팔각정이 보이는 지점도 통과한다.
용신각과 팔각정자 지나 조금 더 이어지는 그물망이 설치된 밭경작지를 지나 간이화장실 뒤로 이어지는 능선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굵은 아카시아나무와 가지가 많은 참나무가 서 이는 무명봉 넘어 잠시 뚜렷하고 깨끗한 내리막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잠시 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시야가 열리면서 능선 등로가 끝이나고 안동시 용상동 마을과 건물들이 펼쳐지기 시작해 사진에 담고 조심스럽게 하산 등로를 찾아보니 우측 강변쪽 도로로 내려서는 곳은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이 어려워 보이기에 좌측 주택 사이로 나 있는 콘크리트 계단을 타고 내려가 본다.
내려가니 용상북길로서 원 마루금은 우측 낙동강변에 조성된 용상북1길이기에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가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니 드디어 등로 우측으로 낙동강이 보이기 시작하는 용상북1길에 도착을 해 좌측으로 내려가니 안동호반나들이길이란 커다란 표지석이 반겨준다.
이제부터 그 낙동강 변을 따라 조성된 남서 방향으로 걸어내려가니 눈 앞으로 법흥교가 보이기 시작하고 우측 천변에 조성된 산책로로 내려가 진행하니 많은 경기장들이 보이는데 이 무더위에도 많은 주민들이 모여 운동을 즐기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산책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그 갈림삼거리 위로는 방금 전 용상북1길에서 바라봤던 법흥교가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한동안 우측에 많은 경기장을 두고 좌측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며 많은 주민들과 교행을 하다 보니 드디어 낙동강주차장에 도착을 해 주차시킨 애마를 끌고 전거리길을 따라 주공4단지 아파트 앞 공터에 주차시키고 좌측의 반변천이 우측의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으로 걸어 내려가며 우측을 보니 낙동강 위에 설치된 낙천교 넘어 강변펠리시아 아파트와 법흥동 마을 뒤로 안동시청이 있는 중심부의 나즈막한 야산이 눈에 들어오는데 하루해가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며 뚜껍게 드리워진 구름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咸白山, 1,573m)에서 발원하여 영남지방의 중앙저지(中央低地)를 통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강으로서 본류의 길이는 525.15㎞이고 남한에서는 제일 긴 강이며 북한을 포함하면 압록강 다음으로 길다.
총유역면적은 2만 3860㎢로 남한면적의 4분의 1, 영남면적의 4분의 3에 해당하는데 함백산에서 발원한 본류는 남류하다가 안동 부근에 이르러 반변천(半邊川, 116.1㎞)을 비롯한 여러 지류와 합류하여 서쪽으로 흐르다가 함창과 점촌 부근에서 내성천(乃城川, 107.1㎞)과 영강(穎江, 69.3㎞)을 합류한 뒤 다시 남류한다.
이 유로(流路)에서 상주와 선산에 이르러 위천(渭川, 117.5㎞)과 감천(甘川, 76.6㎞)을 합하고 다시 대구광역시 부근에서 금호강(琴湖江, 118.4㎞)과 합류한 후 경상남도에 접어들면서 황강(黃江, 116.9㎞)과 남강(南江, 193.7㎞)을 합한 뒤 동류하다가 삼랑진 부근에서 밀양강(密陽江, 101.0㎞)을 합친 뒤 남쪽으로 유로를 전환하여 부산광역시 서쪽에서 바다로 흘러든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낙수(洛水)로 표기되어 있으며 택리지에는 낙동강으로 되어 있는데 본래 낙동이란 가락의 동쪽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영남지방의 거의 전역을 휘돌아 남해로 들어가는 낙동강은 가야와 신라 천년간의 민족의 애환과 정서가 서려 있고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비극을 간직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영남인들의 삶의 젖줄이 되어왔다.
오늘날은 특히 우리 나라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동맥으로서 낙동강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낙동강과 안동시내 방향을 살펴보고 이제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어가는 햇살이 마지막으로 하늘과 구름을 붉게 물들이는 선물을 감상하며 낙천공원이 조성된 도로를 따라 좌측의 반변천이 우측의 낙동강을 만나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한 합수점에서 마지막 사진과 추억 몇장 남기면서 길고도 먼 덕산지맥을 3구간으로 나눠 참으로 힘들게 마무리를 하다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제 반변천이란 이름은 사라지고 온전한 자기 이름으로 흐르는 낙동강 위에 설치된 영가대교를 배경으로 추억 한장 남기는데 저 영가대교는 몇년 전 홀로 갈라지맥을 마무리하며 추억을 남겼던 곳이고 우측 뒤 저 먼곳으로는 옆지기와 함께 내려 와 고운 추억을 쌓았던 송야천 합수점이 있는 용암지맥을 마무리했던 곳이라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반변천은 경상북도 안동시의 임동면과 길안면 및 임하면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영양군 일월면 일월산에서 발원하여 영양읍과 입암면을 지나 청송군 진보면 서쪽으로 흘러 임하호로 들어간다. 청송군 파천면 임하호 상류에서부터 국가하천이 되고 임하댐을 지나 안동시 용상동 서쪽에서 낙동강에 합류하며 옛날에 영양에서는 대천 혹은 한천이라고 불렀다. 모두 영양에서 제일 큰 강이란 의미로 붙인 이름이고 또 진보의 옛 문헌에는 신한천(神漢川)이란 명칭으로 안동의 문헌에는 와부탄(瓦釜灘)이란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안동)에 와부탄은 부의 동쪽 3리에 있고 진보현 신한천, 청송부 남천(南川), 임하현 금소천(琴召川)의 하류이다 라는 기사가 있고 청송부의 남천은 지금의 용전천을, 임하현의 금소천은 지금의 길안천을 각각 가리킨다. 반변천 명칭이 기록된 조선시대 문헌은 확인되지 않는다만 조선지형도에는 반변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일설에 따르면 영양 읍내를 흐를 때 강변이 반으로 줄어들어 반변천이란 명칭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시간을 보니 이제 저녁 7시를 넘어가는 시간이라 세종에서 아직까지 일을 하고 있는 기술자들에게 전화를 하니 잠시 후 밤 8시부터 샘풀링 작업을 할 계획인데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밤 10 이전에 끝날 것 같다는 소식에 세종을 들리는 것은 포기하고 곧바로 귀가를 하니 밤 10시 30여분에 무사히 귀가를 해 덕산지맥 산행을 완료한다.
등로 자체는 힘들거나 어렵지 않았는데 역시나 무더위에 많은 식수를 준비했는데도 충분하지 못해 중간에 민가에서 식수 보충을 했으니 잘 마무리가 되었지 그렇지 못했으면 오늘도 식수 부족으로 고생을 했을 듯 싶지만 어둡기 전에 무탈하게 반변천 합수점에서 추억 한장 남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번주 산행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일요일 하루 시간이 돼 무탈하게 덕산지맥을 마무리 할 수 있어 다행이었고 내일부터는 다시 세종으로 내려가 고객 교육과 마지막 설비 성능과 전체 라인 점검을 하다 보면 또 일주일이 금새 지날 것 같아 다음 주 산행은 가능할지 고민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첫댓글 삼복더위에 긴 지맥길을 가셨네요.저도 오래전에 2구간을 가는 곳을 한번에 가고자,중간에 물을 잘 감추어 두었는데
막상 산행하다가보니 물이 없어져 있어서요~그래도 칠갑산님은 누군가 물이 더 필요한 사람이 있었나보다라고 지나셨군요~~~
그리고 덕산지맥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네 덩달이님,
더워도 너무 더워 쉬엄쉬엄 낮잠도 자면서 진행을 했답니다.
지난 구간 위동재에 묻어 둔 식수와 음료수를 누군가 가져 가 마음 편히 그곳에서 마무리하고 귀가했는데 오늘은 조금 부담이 되더군요
그래도 중간에 민가에서 1.5리터 쯤 더 보충을 하고 나니 부자된 기분으로 잘 마무리하고 올라 올 수 있어 다행이었구요
늘 응원과 성원해 주심에 감사 드림니다.
덕산지맥 완주 축하 축하 드립니다
무더위에 세구간으로 해서 마무리 하였네요
여름철 올해 특히 더워서 정말 충분한 식수가 최고 입니다
그래도 민가가 있어 다행이었네요
공사구간 등나무숲 벌목지도 지나고 고생 많이 했습니다
산불지역에 소나무에 한잎버섯 채취해서 술담구면 좋은데
저도 올해 지맥 산행 중에서 산불지역 소나무에 한잎버섯 좀 채취해서 술 담구었네요
마지막 낙동강 안동 시가지로 노을이 아름답네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곧 끝이 보이네요^)^
처음 계획은 3구간이었다가 워낙 더워 4구간으로 다시 조정을 했는데 쉬엄쉬엄 하다 보니 다시 3구간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네요
식수를 충분히 준비한다고 4리터 이상을 준비했는데도 모자라 중간에 민가에서 1.5리터쯤 더 보충을 하고나서야 마음 편히 진행할 수 있었고요
등로는 생각보다 좋아 진행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무더위로 많은 땀을 흘리고 날파리들의 습격으로 힘들게 진행을 하였네요
불난 지역의 검게 그을린 소나무에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한잎버섯들이 보였지만 아직 어리고 무더위에 산행 자체도 힘들어 수확하는 것은 일찍 포기하고 산행에만 집중해 걸었네요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반변천 합수점에 도착을 해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어 좋았고요
이제 12개 남아 있는데 빨리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많은 아쉬움이 느껴지기 시작해 급하지 않게 평소대로 진행을 해 보려고 합니다.
와룡산님도 함께하는 산친구님들과 건강 유의하면서 즐거운 산행길 이어가시기 바람니다.
습하고 무더운 날에 덕산지맥 36km를 걸어 내셨네요.
대단한 걸음 하셨습니다.
지난구간에 위동재에 보관해둔 식수를 분실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4리터가 넘는 물을 지고 가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이제 12개 남으셨다니 올 년말전에 전지맥 졸업을 하실듯 합니다.
무더위에 장도를 걸어 내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부뜰이 운영자님,
진행하다 힘들고 어려우면 중간에 마무리하고 다시 한번 더 내려 올 생각이었는데 도중에 한시간 정도 오수를 즐기다 보니 생각보다 몸의 컨디션이 좋아져 마무리까지 하게 되었네요
물은 총 4리터 조금 더 짊어지고 시작했는데 중간에 모자라 비어있는 민가 수돗가에서 500미리 정도 마시고 빈통 2개를 채웠으니 총 6리터쯤 마신 듯 싶습니다.
그래도 모두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올라오는 길에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새털처럼 가볍게 기분 좋게 잘 올라 왔네요
이제 12개만 남겨 놓고 보니 모두 짧은 지맥들이라 이틀에 마칠 수 있어 마음은 편하지만 왠지 아쉽다는 생각에 서두를 일 없이 늘 하던대로 진행해 볼까 합니다.
두분도 무더위에 늘 건강 유의하시고 즐기시는 지맥 산행 이어가시기 바람니다
장거리로 덕산지맥 완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낙동강 상류로 날머리가 되는 덕산지맥이 인상이 깊었던 추억이 소환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가는길도 쉽지 않고 구간 나누기도 쉽지 않아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던 덕산지맥이지만 막상 마무리가 되고 보니 후련함보다는 아쉬움이 많은 지맥이네요
날머리는 도심 근처러 공원으로 조성되어 다른 지맥과 달리 그 끝자락에서 추억 한장 남기기 편리한 부분도 있었고요
세르파님도 요즈음은 늘 홀로 오르시니 건강 유의하시고 무더위에 안전 산행 이어가시기 바람니다.
얼마안남은 지맥길도 화이팅입니다 ~~~
네 세르파님,
12개 남은 지맥 산행도 즐기며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연이은 산행 끝에 덕산지맥도 뒤안길로 두셨네요.
덕산지맥 마무리를 축하드립니다.
이로써 먼 산줄기 여정도 얼마 남지 않은 듯 싶습니다.
남은 여정도 건강하게 잘 마무리되시길 기대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방장님,
이제 장거리 지맥 산행은 모두 마무리가 되었으니 내려가면 지맥 하나씩 마무리가 되겠지요
그래도 끝날때가 되니 많은 아쉬움도 밀려오고요
늘 성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심에 감사 드림니다.